-
김순흠(金舜欽)은 1840년 김경조(金慶祖)의 8세손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6세 때에 조부에게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8세에는 스스로 시문(詩文)을 지을 정도였다. 12세에는 소학을 공부하여 충효야말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 도리임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김순흠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외출을 했을 때에는 비록 늦은 밤이더라도 동구 밖까지 나가서...
-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육로는 큰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유일하다. 이렇듯 육로는 하나뿐이지만 꽃내가 마을을 감싸 돌아나가는 덕분에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물길이 많다. 그래서 몇십 년 전만 해도 하회마을 사람들은 나룻배로 건넛마을인 월애와 광덕을 오갔으며, 강물이 적은 철에는 소나무로 만든 섶다리를 놓기도 했다. 그렇게 본다면 하회를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서너 길이나 되는...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와 태자리를 연결하는 고개.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과 싸우던 공민왕의 군대는 홍건적이 주둔하고 있던 도랑 위쪽에 석회 가루를 풀었다. 홍건적은 위에서 내려오는 하얀 물을 쌀뜨물로 착각하여 그만큼 공민왕의 군대가 많다고 여겨 겁에 질려 부리나케 그곳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때 불티가 날아가듯 빠르게 도망갔다 하여 부티재[불티골]로 불리게 되었다. 부티재에서...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나소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안동시 와룡면 나소리 169-2에 있다. 원래 나소초등학교 동쪽 밭 가운데 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5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복원하였다. 안동역 교차로에서 도산서원·안동시청 방면으로 가다가 지방도 933호선 와룡삼거리에서 예안 방면으로 8㎞쯤 가서 방잠 방면으로 가면 나소리가 나온다. 나소동 삼층석탑은 화강석으로 된...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소라와 같이 생겼다 하여 나소골 또는 나소곡(羅所谷)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나별로 불렀다. 『정감록(鄭鑑錄)』에 ‘영가사십리고동소라(永嘉四十里古洞召羅)’라는 곳을 찾아가면 난(亂)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 전한다. 나별 안에 나소곡이 있고 나소곡 안에는 소라곡(召螺谷)이 있는데, 『정감록』에 나오는 고동소라(...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하경(夏卿), 호는 고산(孤山)·마애(磨崖)·나암(懶庵)·우원(芋園)·우포(芋圃)·사익당(四益堂). 5대조 이훈(李薰)이 처음으로 풍산(豊山)에 입향하였다. 할아버지는 주부를 지낸 이진(李珍), 아버지는 통덕랑 이정발(李廷發),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의 딸이다. 이유장은 경상부 안동...
-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군칙(君則), 호는 나은(懶隱). 아버지는 이운익(李雲翼), 어머니는 김기후(金基厚)의 딸이다. 종숙(從叔) 이지온(李之馧)에게 출계하였다. 이동표는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금릉리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향교에서 『심경(心經)』을 강론하였다. 30세 때 안동과 예안의 류세명(柳世鳴), 김명기, 이선, 권성구...
-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여직(汝直), 호는 낙금헌(樂琴軒). 할아버지는 이연(李演), 아버지는 이희안(李希顔),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예범(金禮範)의 딸이다. 양부 이희옹(李希雍)에게 입양되었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과는 내외종(內外從)이었다. 형이 송간(松澗) 이정회(李庭檜)이다. 이정백은 경상도 안동부 주촌리(周村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와룡면을 남류하여 안동호를 이루고 천리동, 옥동을 지나 남후면, 풍천면을 서류하는 하천. 낙동강은 태백산맥의 준령계곡을 흐르면서 영남 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그 중앙 저지대를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 1,573m)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半邊川)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있는 낙동강유역환경청 안동사업소. 낙동강유역환경청 안동사업소는 낙동강 수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자연 자산과 생태 자원 보전 및 국민의 환경 보전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2009년 2월 16일 설립되었다. 낙동강 유역 수질보전대책 수립 및 수질오염총량관리, 수계관리 재원확보 및 기금운용 관리, 환경기초시설, 상수원보호구역, 정수장 운영 및 평...
-
청량산 자락을 휘감아 돌아가는 맑고 깨끗한 강물과 여기저기 우뚝 솟은 바위들 그리고 병풍을 연상케 하는 절벽의 웅장함 등 이 모든 것은 가송리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때론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하는 천옥의 생활조건이다. 청량산 인근의 경치는 거듭 얘기하지 않아도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가송의 풍광은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야말로...
-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낙암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배환(裵桓, 1379~?)의 정자이다. 배환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용(趙庸)의 문인으로 1401년(태종 1)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감찰·병조좌랑·봉화현감·공조좌랑·형조좌랑을 거쳐 1420년(세종 2) 정랑에 올랐다. 1432...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조선시대의 암각서. 낙연현류(落淵懸流)는 도연폭포(陶淵瀑布)의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해 새긴 글씨이다.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도연폭포 오른쪽 절벽 뒤편에 표은고풍(瓢隱高風)·하남삼절(河南三絶)과 함께 새겨져 있었으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세로 방향 두 줄로 새겼다.‘낙(落)’과‘현(懸)’자는 모두 위에서 아래...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탁이(濯以), 호는 난곡(蘭谷). 약봉(藥峰) 김극일(金克一)의 6세손으로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7세손이다. 고조부는 김시온(金是榲), 증조부는 김방걸(金邦杰), 할아버지는 김원중(金遠重, 1658~1724), 아버지는 김필흠(金必欽),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중형(仲兄)인 이해(李瀣)...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현언(顯彦), 호는 나재(懶齋). 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다. 아들로 남급(南礏)과 남연(南碝)을 두었다. 남융달(南隆達, 1565~1652)은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 시험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효행이 지극하여 선조가 관직과 포상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1627년 예천의 용궁에서 우거하고 있...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앙(子昻), 호는 나졸재(懶拙齋). 증조부는 이령(李苓), 할아버지는 이명길(李鳴吉), 아버지는 이필(李泌),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로 안칭(安偁)의 딸이다. 이산두의 귀함으로 인해 증조부는 좌승지에,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아버지는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산두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권증(權證)의...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태. 안동 지역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경계로 하는 내륙 분지 지형으로 낙동강 수계의 상류 지역이다. 낙동강 수계를 따라 1976년 안동호, 1992년 임하호가 형성되면서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의 복사 냉각 현상으로 안개가 많은 지역으로 변화하였고, 이 같은 현상은 대기 중의 수분·먼지·빛 등 기상 요소에 영향을...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정자. 남갈정은 남갈(覽葛) 손일(孫逸, 1681~1743)을 기리기 위한 정자이다. 손일의 자는 충언(忠彦), 호는 남갈이다. 손연수(孫延壽)의 손자이며 손시운(孫時運)의 아들이다. 손일은 영조(英祖, 1694~1776) 때 특명으로 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저서로 『남갈정실기(覽葛亭實記)』 1책이 있다. 경상북도 안동의 안산인 갈라산(葛蘿山)...
-
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에 있는 온천. 대한광업진흥공사 기술연구소에서 남광온천의 온천수를 검사한 성분 분석 결과에 따르면 pH는 9.61로, 수질이 부드럽고 미끈미끈한 느낌을 주며 모발 보호, 아토피 피부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침전물이나 부유물이 생기지 않고 여러 가지 기능성 물질이 함유되어 피부의 탄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만성 피부 질환,...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탁부(卓夫), 호는 유유헌(由由軒).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남응원(南應元)이고, 아버지는 세거지를 안동 풍산으로 옮겨 신안의 시조가 된 남융달(南隆達)이다. 동생이 남연(南碝)이다. 남급(南礏, 1592~1671)은 우복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30년(인조 9) 학문으로...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범섭(林汎燮)은 본관이 예천(醴泉)으로, 이명은 임범섭(林範燮)이고, 자는 우석(禹昔)이며, 호는 남당(南堂)이다. 1898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영양군으로 이주하였다. 1969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범섭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임찬일·임...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 남쪽에 있었다고 해서 남문거리 또는 남부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안동면 동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면이 안동읍으로 승격하면서 동부동의 일부를 분할하여 남문정1정목(南門町1丁目)이라 하였다. 1947년 남부동으로 개칭되었고, 1964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하면서...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성의 남문이 있던 마을이므로 남문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남문정2정목(南門町2丁目)이 되었고,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남문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남문동이...
-
경상북도 안동시 남문동에서 서부동까지 연결되는 도로. 조선시대 안동부성(安東府城) 남문이 부근에 있었다고 하여 남문거리 또는 남문가라 불리었으며, 이에 따라 남문로라고 이름하였다. 전체 길이는 346m이며, 도로 폭은 약 12m이다. 남문로는 안동 시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도로로, 안동시외버스터미널 교차로 부근의 가락안동종친회에서부터 안동시 보건소 맞은편에 있는 서부동 영에이지 안...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 남쪽에 있었다고 해서 남문거리 또는 남부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안동면 동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면이 안동읍으로 승격하면서 동부동의 일부를 분할하여 남문정1정목(南門町1丁目)이라 하였다. 1947년 남부동으로 개칭되었고, 1964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하면서...
-
경상북도 안동시 옥동에 있는 산림청 산하 행정 기관. 남부지방산림청은 전국 5개 지방산림청 중 경상남북도 일원에 분포하는 국유림을 관리하는 국가 기관이다. 1967년 8월 28일 본서 3과와 산하기관으로 15개 관리소, 3개 관작사업소, 2개의 양묘장을 갖춘 안동영림서가 설치되었다. 이후 1972년 7월 21일 남부영림서로, 1991년 5월 31일 안동영림서로, 1996년 1월 1...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삼진은 1883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남삼진은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현재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어촌의 소득 격차를 줄여 도농간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고자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1983년 말에 제정되었으며, 1984년부터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남선농공단지는 남선면...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본래 안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부남면이라 했다가, 조선 숙종 때 부남면이 남선면과 남후면으로 분리되면서 남선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임서면의 평지리를 병합하였다. 1983년 안동군 남선면 정상리와 정하리가 안동시로 편입됨에 따라 동으로 바뀌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남선면이 되었다. 북쪽 경계에...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는 어린이, 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어린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어린이, 아름다운 것을 찾아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5년 7월 19일 개교하였다. 1974년 9월 20일 본관 라멘조 2층 8실을 준공하였으며 1981년 3월 1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남선초...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에 열 ‘십(十)’자로 큰길이 나 있어 납 신(申)자와 같이 생겼으므로 납성계·남성개·신성포(申城浦)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豊南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산동(箕山洞) 일부와 용궁군(龍宮郡) 신하...
-
조선 후기 인물인 임만휘(1783~1834)가 남긴 『만문유고(萬聞遺稿)』 권지1(卷之一)에는 동채싸움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한시가 있다. 벼락치듯 빠른 놀림 이길 틈 엿보며 엎치락뒤치락 좋은 날 좋은 시비 나갈 때나 물러설 때 하해를 물꼬튼 듯 솟구쳐 오를 때는 새매가 나는 듯 한 마당 동채에 바람끝이 뒤따르고 겹겹의 사람숲엔 달빛이 비추이네 서북편이 이겼는가 개선소리 놀랍구나...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계순(季純), 호는 남악(南嶽). 아버지는 청계(靑溪) 김진(金璡),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세경(閔世卿)의 딸이다. 김진의 다섯 아들 중 오남으로 당시 형 김극일(金克一), 김수일(金守一),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과 함께 ‘김씨오룡(金氏五龍)’으로 불렸다. 김복일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고속국도 입체 교차로. 남안동IC 도로의 전체 길이는 약 1㎞이며, 왕복 2차선이다. 남안동IC는 1995년에 개통되었으며, 중앙고속도로와 지방도 914호선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건립하였다. 안동 지역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남안동IC라고 한다. 남안동IC는 중앙고속도로의 21번째 교차로이다. 중앙고속도로의 남안동IC를 나오면 지방도 914호선과...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에 있는 신라시대 석탑. 남양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의 사찰인 남양사에 있던 탑으로 추측된다.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마을 뒤의 야산 자락에 위치한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중석 갑석을 갖추고 있는데, 본래 1층뿐이었는지, 아니면 하층 기단이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중석을 받치고 있는 지대석처럼 보이는 부분은 두 매의 판석으로 이루...
-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연부(鍊夫), 호는 무망재(无妄齋).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남응원(南應元)이고, 아버지는 안동 풍산으로 세거지를 옮겨 신안의 시조가 된 남융달(南隆達)이다. 형이 남급(南礏)이다. 남연(南碝, 1598~1664)은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정랑, 성균관직강, 호조좌랑, 형조정랑, 봉상시첨정...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절터. 1983년 발간된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 “옛날 『영가지(永嘉誌)』 편찬 당시(1608)에는 이곳에 남연사(南淵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깊은 물이 있었으나, 『안동향토지』를 발간할 때는 사찰이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연사지(南淵寺址)는 임하면 금소리의 앞산인 비봉산 정상부 남쪽에 위치...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현언(顯彦), 호는 나재(懶齋). 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다. 아들로 남급(南礏)과 남연(南碝)을 두었다. 남융달(南隆達, 1565~1652)은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 시험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효행이 지극하여 선조가 관직과 포상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1627년 예천의 용궁에서 우거하고 있...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장은 1925년 2월 안동에서 개최된 경북청년대회(慶北靑年大會)에 참가하여 대회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고, 8월 안동청년동맹(安東靑年同盟) 창립식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 가을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이회승(李會昇)을 책임자로 하는 경북야체이카에서 활동하다가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입당하였다. 조선공산당에...
-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남준이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을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후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남준이는 의병 항쟁에 뛰어들었다. 19...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남천 고택은 권장(權藏, 1802~1874)이 셋째 아들 권숙(權潚, 1832~1901)의 살림집으로 지어 준 가옥이다. 권숙은 남천 고택의 사랑채에서 학문 연구와 문중을 중심으로 한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사랑채의 이런 기능은 조선 후기 범계급적이며 기초적인 일반 서당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이는 반가에 존재했던 지방...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소우(蘇宇), 호는 태암(苔巖).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원이고, 할아버지는 남융달이며, 아버지는 남잡이다. 남천한의 동생이다. 외할아버지는 송기복이고, 장인은 이장과 이홍업이다. 남천택(南天澤, 1619~1684)은 1642년(인조 20)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48년(인조 26)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장우(章宇), 호는 고암(孤巖).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고, 할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며, 아버지는 남잡이다. 남천택(南天澤)의 형이다. 외할아버지는 송기복이다. 남천한(南天漢, 1607~1686)은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46년(인조 2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과 사헌부...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의중(義仲), 호는 비지(賁趾). 남부량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남신신(南藎臣)이며 4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남치리(南致利, 1543~1580)는 김언기(金彦璣)에게서 처음 배웠으며, 21세에 금난수(琴蘭秀)와 함께 이황(李滉)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24세 되던 해에 가옥이 침수되어 고림촌(高林村)에 옮겨 살...
-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남편구거는 현재 소유자인 이필구(李必久)의 집안이 5대에 걸쳐 거주하던 가옥으로 이만형(李晩瀅, 1825~?)의 구택이다. 건축 당시 집주인인 이만형이 홍문관교리를 지냈기 때문에 교리댁(校理宅)이라고도 하였다. 이만형의 옛집이므로 그의 호를 따서 남편구거(南片舊居)라고 부른다. 이만형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성(眞城),...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진해는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1894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남포(南圃)이다. 1951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현재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어촌의 소득 격차를 줄여 도농간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고자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1983년 말에 제정되었으며, 1984년부터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남후농공단지는 남후면...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안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부남면이라 했다가, 조선 숙종 때 부남면이 남선면과 남후면으로 분리되면서 남후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선면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1983년 안동군 남후면 수상리와 수하리가 안동시에 편입됨에 따라 동으로 바뀌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남후면이 되었다.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
-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무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바르고 서로 돕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슬기롭게 생각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5년 10월 19일 남후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37년 3월 25일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81년 3월 7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4년 2월 28일 고곡분교...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와룡면 소재지의 안동 쪽 끝부분으로 가면 정산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가 있다. 그곳에 마련된 시멘트 다리를 건너서 가다 보면 안동댐과 연결된다. 남흥재사의 표석은 이 길의 초입, 시멘트 다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남흥재사는 더 나아가 중가구리 마을의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남흥재사는 낮은 산이 원형을 이루며 둥그렇...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에 열 ‘십(十)’자로 큰길이 나 있어 납 신(申)자와 같이 생겼으므로 납성계·남성개·신성포(申城浦)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豊南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산동(箕山洞) 일부와 용궁군(龍宮郡) 신하...
-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지표수가 모여 일정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곳. 안동시를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하천은 낙동강이며 가장 큰 지류는 반변천이다. 낙동강이 안동시를 벗어나면서 송야천이 흘러들고, 이 밖에도 동계천·미천·역계천·광산천·내성천 등이 안동시를 관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현재 안동시에는 직할 하천 1개, 지방 하천 3개, 준용 하천 34개, 소하천 30개가 있으며, 총연장...
-
경상북도 안동시를 소재로 한 가요. 「내 고향 안동」은 안동을 소개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안동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안동 사투리와 낙동강 물줄기, 도산서원, 하회탈춤, 안동포와 차전놀이, 선비의 고장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08년 7월 28일 밤 10시 KBS-1TV 가요무대에 김경남이 출연하여 「내 고향 안동」을 불렀다. 시중에는 김경남 외에 가수 임춘화가 부른 「...
-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활동하는 시인 김원길의 시집. 시인 김원길이 그동안 써온 작품을 모아 1984년 민음사에서 간행하였다.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는 김원길의 자서와 함께 1~5부로 나누어 작품을 배열하였고, 발문으로 김용직의 ‘시인 김원길에 대하여’가 뒤에 수록되어 있다. 「고향」, 「용계동 은행나무」 등의 시에는 아무리 잘난 몸으로 세상을 떠돌아다녀도 돌아가 쉬고 싶은...
-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의성. 초명은 박수(璞銖), 자는 내극(乃克), 호는 노원(魯園)·미추자(味鄒子). 아버지는 통덕랑 김재신(金在信)이고, 어머니는 흥양이씨(興陽李氏)로 창석(蒼石) 이준(李埈)의 후손과 선성김씨(宣城金氏) 김담(金淡)의 후손인 김장배(金章培)의 딸이다. 김철수(金喆銖)는 1822년 봉화 해저촌(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에서 태어나 3세...
-
오미리의 지명유래는 마을 진입로에 서 있는 오미마을표지석에 자세히 적혀 있다. 즉 원래는 다섯 가닥의 산줄기가 뻗어 있다고 해서 오릉동(五陵洞)이라 불렀으나, 허백당 김양진의 아들 김의정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오릉동을 오무동(五畝洞)으로 고쳤다고 한다. ‘능(陵)’이란 글자가 언덕을 일컫기도 하지만 임금의 무덤을 뜻하기도 해서 ‘이랑무(畝)’ 자를 넣어...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양반가의 부녀자들이 짓고 향유한 시가와 산문의 중간 형태의 문학. 내방가사는 주로 규방의 여성들에 의하여 창작되고 전해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규방가사(閨房歌詞)·여성가사(女性歌辭)·여류가사(女流歌辭) 등으로도 부른다. 소재는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적인 것부터 남성 중심의 유교 체제하에서 여성이 겪는 비애와 노동의 고단함, 기행(...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초자(初字)는 내봉(來鳳)·명수(鳴叟), 호는 소은(小隱). 생부는 류상문(柳相文)이고, 계부는 류두문(柳斗文)이다. 류치구(柳致球, 1793~1854)는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합격을 빌미로 뇌물을 요구하는 이를 보고 관직에 환멸을 느껴 낙향하였다. 인근에 살던 권이복(權以復), 서활(徐活) 등과 학문적...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왕모당은 원천리 내살미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동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를 ‘내살미왕모당’·‘공민왕어머니당’ 등으로도 일컫는다. 왕모당은 왕모산성을 기반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왕모산성에는 1361년 고려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을 때 축성했다는 전설...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반변천이 흘러 천전(川前, 일명 내앞)이라고 하였다. 입향조 김만근(金萬謹)이 당시 임하현의 대지주인 해주오씨 오계동(吳季童)의 사위가 되어 임하현에 정착한 뒤로 김예범(金禮範)이 천전리에 정착함으로써 의성김씨 집성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신덕·임하·망천·추월·지례·국란·내급 등 임하현 일대에 의성...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앞으로 반변천(半邊川)이 흐르고 있어 내앞 또는 천전(川前)이라 하였다. 내앞이라는 지명은 주로 천전1리를 지칭한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현내면(臨縣內面)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금의 천전2리 지역인 반시동(盤市洞) 일부를 병합하여 천전리(川前里)가 되었다. 1931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하면(臨河面)에...
-
김석을 시조로 하고 김거두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문소김씨(聞韶金氏) 또는 내앞김씨로도 일컬어지는 의성김씨는 안동 입향조 김거두(金居斗)의 현손 김만근(金萬謹)이 14세기 말 임하면 천전리(내앞)에 정착한 후 지역의 대표적인 명문 사족으로 발전한 가문이다. 의성김씨 시조 김석(金錫)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남녀의 공간을 구분하는 상징적 경계에 조성한 담. 동성마을에서 볼 수 있는 반가(班家)의 집은 일반적으로 안채·사랑채·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행랑채가 추가되기도 한다. 안채와 사랑채는 서로 분리된 ㅁ자형의 뜰집을 이루고 있고, 사당은 일자형으로 사랑채의 서북쪽이나 동북쪽에 배치한다. 이 경우 여자가 생활하는 안채와 남자가 거처하는 사랑채는 떨어져...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천등산 자락에 넓고 평평한 바위가 많아 너븐들이라 하였다. 광평(廣坪)은 너븐들의 한자 표기이다. 자연마을인 추산(楸山)은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마을 뒷산의 큰 소나무에 그네를 매고 동네 사람들이 추천(鞦韆)을 즐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가야마을은 조선 초기에 맹사성(孟思誠)이 이곳을 지나다가 천등산...
-
경상북도 안동시 신안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동요 중의 하나. 「널뛰기 노래」는 어린아이들이 널을 뛸 때에 불렀던 동요이다. 널뛰기를 할 때에 한쪽 편의 아이가 “아가리 딱딱 벌려라”를 메기며 양쪽으로 다리를 쫙 벌려 뛰면, 맞은편 아이는 “열무김치 들어간다”로 받으며 공중에서 앞뒤로 다리를 쫙 벌리며 뛴다. 노랫말도 재미있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행동이 노랫말과 딱 어울려 더욱 재...
-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활동하는 시인 권오신의 시조집. 시인 권오신이 그동안 써온 작품들을 모아 1995년 영남사에서 발간하였다. 시조집 『네 생각』은 시인의 자서, 1~7부로 나누어진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조집 전체가 고향을 추억하는 주제들인데 가난, 보릿고개, 병사 등 우울한 내용이 가득하다. 정작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만, 농사지으며 고향을 꿋꿋하게 지키는...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의 노동자 계층이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벌인 조직적인 운동. 1911년부터 1940년까지 일제강점기 한국의 공업은 양적인 면에서 크게 증가하였다. 1911년 252개이던 공장이 1920년에는 2,000여 개를 넘었고, 1930년 들어서는 4,613개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종업원 수도 늘어났다. 그러나 양적인 증가가 한국의 공업...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노리는 모운사(暮雲寺)라는 절이 있어 ‘모노골’, ‘모놋골’, ‘노곡’이라 부르다가 노리로 정착되었다. 또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이 안동 지역으로 몽진하여 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왕비인 노국공주가 하룻밤을 지냈다고 하여 모로곡(慕魯谷)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서선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동...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사달(士達), 호는 노봉(蘆峯). 고조할아버지는 유연당 김대현(金大賢)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학문과 문장으로 사림의 중망을 받았던 학사 김응조(金應祖)이며, 할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김시행(金時行)이다. 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을 지낸 김휘봉(金輝鳳, 1643~1683)이고, 어머니는 봉화금씨로 성성재 금난수(琴蘭秀)의 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노산리는 마을이 노산(盧山)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노산촌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후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현동·석동동·반시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노산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안동댐 건설로 노산리의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고...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노산리는 마을이 노산(盧山)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노산촌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후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현동·석동동·반시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노산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안동댐 건설로 노산리의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고...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노승(魯升). 1887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류동수는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문(叔文), 호는 노애(蘆厓). 아버지는 참의 류관현(柳觀鉉)이고, 참의 류승현(柳升鉉)에게 입양되었다. 류장원(柳長源)이 동생이다. 류도원(柳道源, 1721~1791)은 동생인 류장원과 함께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재주가 뛰어나 네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동생과도 우애가...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 아침에 우물물을 제일 먼저 길어오는 풍속. 우물물 먼저뜨기는 정월의 첫 진일[辰日]이나 대보름날에 부인들이 닭이 울 때를 기다렸다가 서로 앞을 다투어 물을 길어 오던 풍속이다. 이를 ‘용알뜨기’라고도 하며, 용의 알을 뜬다는 뜻으로 한자어로는 ‘노용란(撈龍卵)’이라고 한다. 부녀자들은 찰밥을 해놓고 닭이 울 때 우물에서 물을 뜬다. 특히 먼저 뜨...
-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의성. 초명은 박수(璞銖), 자는 내극(乃克), 호는 노원(魯園)·미추자(味鄒子). 아버지는 통덕랑 김재신(金在信)이고, 어머니는 흥양이씨(興陽李氏)로 창석(蒼石) 이준(李埈)의 후손과 선성김씨(宣城金氏) 김담(金淡)의 후손인 김장배(金章培)의 딸이다. 김철수(金喆銖)는 1822년 봉화 해저촌(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에서 태어나 3세...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후성은 1896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과 민족자결의 국제정세로 3·1운동의 물결이 전국에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김후성은 풍산면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만세 시위는...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추백(秋伯), 호는 노주(蘆洲). 생부는 김단(金鍴)이며, 둘째아버지인 김곤(金錕)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사고처사(槎臯處士) 권극해(權克諧)의 딸이다. 김태일(金兌一, 1637~1702)은 장인인 권극해에게 학문을 익혔으며, 15~16세에 이미 경서제자사(經書諸子史)를 읽었다.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처음 성균관학유가...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풍수상 백로하전(白鷺下田)의 형국이므로 노하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부내면(府內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동(鳳洞), 서후면(西後面) 경광동(瓊光洞), 서선면(西先面) 막곡동(幕谷洞) 등을 통합하여 노하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노하동이 되었다. 송야천 남쪽 나지막한 구릉지...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봉수산과 녹전산(570m) 아래에 있고, 놋그릇을 만드는 유기점이 있었다고 하여 녹전이라 하였다. 또한 토질이 좋고, 수원(水源)이 깊어 가뭄이 들지 않아 결실이 잘되는 곳이라 하여 녹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녹전리의 ‘녹’자와 내동의 ‘내’자를 합하여 녹래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예안군 서면에 속하...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에 있는 우계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녹전동의 ‘녹’자와 내동의 ‘내’자를 따서 녹래리로 하였다. 우계이씨 집성촌인 녹래리 놋점마을은 예전에 놋그릇을 파는 유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전기에 입향조 이영(李榮)의 할아버지인 이수형(李秀亨)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녹전면과 접해 있는...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농촌의 다양한 삶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체험 마을. 안동에서는 암산마을, 동악골 안동댐마을, 가송마을 등이 농촌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풍부한 안동의 인지도에 더하여 특색 있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녹색농촌체험마을은 농림부로부터 2억 원을 지원 받아서 시행하는 사업으로 안동에서는 안동댐 근...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녹전 골매당은 녹전면 사신리에서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허씨 처녀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사신리골매당’·‘골매기당’·‘골매기할매’라고도 일컫는다. 녹전 골매당의 천연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당집이 동제당으로 모셔지고 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골...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예안현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서면이라고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의 한가운데에 있는 녹전산의 이름을 따서 녹전면으로 고쳤다. 일설에는 ‘복록이 굴러 들어오고 토질이 비옥하다’ 하여 녹전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서면이었을 당시 지례리·구간리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면의 11개 리와 입내면의 일...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와 영주시 평은면 경계에 걸쳐 있는 산. 봉수산은 박달산, 일출봉 등으로 더 널리 불리고 있다. 봉수산은 조선시대 서후면 개목산에서 봉화를 받아서 봉화군 용점산으로 전해주던 봉수대가 산정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지금은 봉수대의 흔적만 있을 뿐이다. 박달산은 옛날에 박달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출봉은 지대가 높아 해가 뜰 때 제...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할 일을 스스로 하는 어린이,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고 궁리하는 어린이, 사랑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4년 12월 12일 녹전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38년 4월 1일 녹전공립심상학교로, 1945년 4월 1일 녹전국민학교로 교명을 각각 변경...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유두(流頭)나 칠석(七夕)에 음식을 마련하여 논밭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용신제는 논에서 음력 유월 용날·유두날·삼복[三伏 초복(양력 6월 10일), 중복(양력 6월 20일), 말복(양력 7월 10일)]·칠월 칠석에 용왕님께 풍년을 빌며 지내는 제사이다. 즉 농가에서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지내는 것으로 ‘논굿’, ‘논고사’라 하기도 한...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유두(流頭)나 칠석(七夕)에 음식을 마련하여 논밭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용신제는 논에서 음력 유월 용날·유두날·삼복[三伏 초복(양력 6월 10일), 중복(양력 6월 20일), 말복(양력 7월 10일)]·칠월 칠석에 용왕님께 풍년을 빌며 지내는 제사이다. 즉 농가에서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지내는 것으로 ‘논굿’, ‘논고사’라 하기도 한...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행하는 여성의 집단 놀이. 놋다리밟기는 ‘지애밟기’, ‘기와밟기’, ‘논따리밟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놋다리 밟기라는 대표 명칭 속에는 다양한 놀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꼬개싸움은 아주 격렬한 편싸움이었다. 놋다리를 놋쇠처럼 굳은 다리 또는 동교(銅橋) 등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안동에서는 정월 한 달 동안 일을 하...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논매기를 하면서 부르던 농업노동요. 「논매는 소리」는 모심기가 끝난 뒤에 논의 잡풀을 매면서 부르던 농요이다. 안동 지역에서는 보통 세 번의 논매기를 한다. 아시 논매기·두벌 논매기·시벌 논매기 등을 할 때마다 부르는데, 이 「논매는 소리」는 각 시기의 논매기 노래 중에서도 긴소리에 해당된다.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안동시사』에 수록되어 있...
-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안동놋다리밟기의 전승과 보급을 위하여 설립된 단체. 안동놋다리밟기는 안동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여성들만의 민속놀이로 ‘놋다리놀이’ 또는 ‘기와밟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놋다리밟기는 고려 후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노국공주를 데리고 안동 지역으로 피난을 와 개울을 건널 때 마을의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다리를 놓았다는데서 유래하였다고...
-
안동 지역의 농민들이 정치적·경제적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전개해 온 운동. 1920년대 안동의 농민운동은 1923년 11월 조직된 풍산소작인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풍산소작인회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이준태와 권오설, 예안청년회·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에서 활동하던 김남수 등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인물들이 풍산을 비롯한 안동 서북 지역 일대 농민들과 함께 조직하였다. 명칭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고수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보광사 주지(남, 74)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91년 지식산업사에서 출간한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동시사』에 재수록하였다.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고씨 성을 가진 아주 유명한 집안이 있었다....
-
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는 이현보의 영정 사본과 관복띠.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는 영천인으로, 1498년(연산군 4)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부사,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42년(중종 37)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고향인 예안으로 낙향하여 8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연을 벗하여 시를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 이현보의 신도비. 이현보(李賢輔, 1467~1555)는 1498년(연산군 4)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과 예문관봉교 등을 역임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사간원정언이 되어 서연관(書筵官)의 비행을 논하다가 안동으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사헌부지평에 복직되었고, 형조참판과 호조참판을 거쳐 1542년(중종 37)...
-
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와 전적. 농암 이현보 종손가 소장 문적은 원래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종손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선 전기와 중기의 고문서와 전적류, 회화류 등으로 2004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었다. 농암 이현보 종손가 소장 문적 중 1994년 7월 29일에 보물 제1202호로 지정된 문적은 교지류(敎...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여경(餘慶)·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소주도병(燒酒陶甁)·설빈옹(雪鬢翁). 할아버지는 이효손(李孝孫), 아버지는 이흠(李欽),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호군 권겸(權謙)의 딸이다. 이현보는 경상도 안동부 분천리(汾川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골상(骨相...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바위에 새긴 글자. 농암각자(聾巖刻字)는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조 작가인 농암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정자 터를 기리기 위해 새긴 글자이다. 이현보의 본관은 영천, 자는 비중(棐中)이며 예안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만년에는 고향에 돌아와 시를 지으며 한거하였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서 예안면 신남리까지 연결되는 도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묘소가 있는 두리봉 등산로 입구로 도로가 지나고 있어서 농암로(聾巖路)라고 이름하였다. 전체 길이는 31.991㎞이며, 도로 폭은 약 8m이다. 2008년 안동시에서는 도로명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예안면 태곡리 322-3번지에서 예안면 신남리 산9-1번지까지의 기존 구간을 연장 및 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농암사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위패와 별본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분강서원(汾江書院)에 딸린 건물이다. 이현보는 1498년(연산군 4)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2년 호조참판에 올랐고 이듬해 상호군이 되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의 분강서원에 배...
-
1665년과 191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현보의 시문집. 『농암집(聾巖集)』은 1665년(현종 6) 외손 김계광(金啓光)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여러 차례 난리를 거치면서 유고의 태반이 산실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간행을 의논하여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문 약간 편을 수습하였다. 이에 김계광이 편차를 고증하고 6세손 이언필(李彥弼)이 선사(繕寫)하여 1663년 겨울에 시작, 166...
-
경상북도 안동 지역 농업의 특성.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마애리 구석기 유적에 의하면 안동의 농경문화가 3~4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B.C. 10세기경 청동기시대의 저수지 터가 발굴되면서 안동이 논농사 최고 선구 지역이란 설이 유적으로 증명되었다. 경상북도 내륙에 위치하여 태백에서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도산, 예안, 월곡, 남후, 풍산, 풍천...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진은 본관이 선성(宣城)으로 1887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농제(聾齊)이다. 1957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안동시 예안면 귀단산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
-
가송마을에서는 계절별로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는 가송마을에서 전해 오는 세시풍속과 농업의 전통이 밑천이 되는 것으로, 봄에는 봄나물 캐기, 감자 심기 등 봄을 주제로 한 다양한 농사체험을 할 수 있고, 여름에는 물고기 잡아보기, 고산정 선비 되기, 제기차기 등 동심을 주제로 한 놀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가을에는 수확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 콩 타작하...
-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농업인 단체. 농촌지도자 안동시연합회는 우애, 봉사, 창조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우리 농촌 농업의 지킴이로서 과학 영농을 통한 농가 소득 증대, 농민 권익 보호 및 복리 증진, 농촌 청소년 및 영농 후계자 육성 등 선진 농촌 건설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나아가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2년의 「농촌진흥법」 공포 이후 1...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농촌의 다양한 삶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체험 마을. 안동에서는 암산마을, 동악골 안동댐마을, 가송마을 등이 농촌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풍부한 안동의 인지도에 더하여 특색 있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녹색농촌체험마을은 농림부로부터 2억 원을 지원 받아서 시행하는 사업으로 안동에서는 안동댐 근...
-
가송리는 지난 2003년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선정된 데 이어, 2004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어 많은 도시민들이 찾고 있다. 농촌전통테마마을의 경우 도시민들이 농촌마을에 머무르면서 농민과 같이 생활하며, 농민의 하루를 함께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하는 제도이다. 가송마을은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된 이후 계절별, 시기별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
가송마을은 어떻게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을까? 2009년 현재도 농촌진흥청에서는 농가소득을 높여 주기 위한 일환으로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하기 위해 전국의 여러 농촌마을을 답사하고 있으며, 또한 각 마을로 공문을 내려 보내 꾸준히 참여 여부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송리의 경우 안동시청 직원이 마을을...
-
하회마을에는 하회마을보존회라는 모임이 있다. 마을문화를 온전하게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회마을 사람들의 자치모임으로 공공기관인 하회마을관리사무소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이 모임에서는 마을 보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마을일에 직접 관여하기도 한다. 류한승 씨는 2007년부터 하회마을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하회에서 태어나 13세에 학업을...
-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활동한 시인 임병호의 시집. 고 임병호 시인은 부산의 사상공단에서 직접 노동자로 체험한 세계를 사실적인 시로 써서 1990년 글방 출판사를 통해 『누가 에덴으로 가자 하는가』를 간행하였다. 시인은 생존 문제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집을 발간하였다. 『누가 에덴으로 가자 하는가』는 시인의 머리말과 작품, 이오덕·김영...
-
금소리에 있는 안동포타운에는 관광객들이 안동포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본관 맞은편에 위치한 체험관에서는 안동포 복주머니 만들기와 한지공예체험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안동포 복주머니 만들기 체험은 안동포를 이용해 복주머니를 만드는 것이다. 복주머니 만들기 체험장에는 6명의 체험 강사들이 교대로 상주하며 기초 작...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서 개목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일조각에서 출간한 『한국구비전설의 연구』와 1983년 한국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설화의 유형적 연구』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1984년 안동군에서 출간한 『내고향 전통가꾸기』와 1991년 지식산업사에서 출간한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 그리고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동시사』...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천상(天祥), 호는 눌은(訥隱). 할아버지는 이시암(李時馣)이고, 아버지는 이후룡(李後龍),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시철(李時哲)의 딸이다. 양부는 이선룡(李先龍)이다. 이광정은 조현명(趙顯命)이 경상도관찰사 재임 중 지방에 학문과 교화를 일으키고자 많은 선비를 뽑을 때 안동부훈도장(安東府訓都長)이 되었다. 하루는...
-
1808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광정의 시문집.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1674~1756)은 갈암 이현일과 밀암 이재를 스승으로 한 남인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다. 83세라는 장수를 누리면서 많은 시문을 지었으나 62세 되던 1735년(영조 11)에 평소 거처하던 녹문정사(鹿門精舍)의 화재로 많은 시문이 불에 탔다. 처음 이광정의 장례식에 모인 향중 사림들이 발기하여 유문(遺文)...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식(君式), 호는 눌재(訥齋).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이승직(李繩直), 아버지는 이시민(李時敏),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현감을 지낸 권계경(權啓經)의 딸이다. 형이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이다. 이홍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했다. 연산군의...
-
경상북도 안동시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 높이는 26m, 둘레는 3m에 이른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나무껍질은 회백색이며 늙은 나무에서는 비늘처럼 떨어진다. 껍질눈[皮目]은 옆으로 길어지고, 어린 가지에 잔털이 빽빽이 있다. 잎은 길이 2~12㎝, 너비 1~5㎝이고 어긋나며 긴 타원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이다. 표면이 매우 거칠거칠하고 끝...
-
종손(宗孫)이란 종가(宗家)의 대를 잇는 사람을 말한다. 과거에는 종손의 명예와 주어진 권한이 상당히 컸다. 명예와 주어진 권한이 큰 만큼 종손이 감당해야 할 책임 또한 막중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회마을에서 종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류상붕 씨는 하회마을 입향조로부터 22대, 겸암 류운룡 선생으로부터는 16대 종손이다. 그는 종손이란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
-
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익명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능성구씨는 고려 때 삼한삼중대광검교대장군(三韓三重大匡檢校大將軍)을 지낸 능성구씨의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7세손 송은(松隱) 구홍(具鴻)을 파조로 하는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의 후손 구익명(具益命)이 안동으로 이거해오면서 시작된 세거 성씨이다. 능성구씨(綾城具氏)의...
-
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익명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능성구씨는 고려 때 삼한삼중대광검교대장군(三韓三重大匡檢校大將軍)을 지낸 능성구씨의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7세손 송은(松隱) 구홍(具鴻)을 파조로 하는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의 후손 구익명(具益命)이 안동으로 이거해오면서 시작된 세거 성씨이다. 능성구씨(綾城具氏)의...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 물이 범람하여 파도를 쳐도 이 바위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물결을 능멸한다’는 뜻에서 새긴 글씨이다. 능파대(凌波臺)는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芙蓉臺) 동쪽에 자리한 하회 옥연정사(河回 玉淵精舍)에서 남쪽으로 2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가로 암각서가 새겨진...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정자. 니산정은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 1825~1912)를 기리기 위한 정자이다. 김도화는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곽종석(郭鍾錫)·김흥락(金興洛)·권진연(權晋淵) 등과 함께 의거하여 일제의 침략 야욕을 분쇄하자는 통문을 각지에 보내고, 1896년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