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군 예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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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 윤씨들이 들어와서 살았는데 윤씨 중에 벼슬한 사람이 많아서 홍패가 아홉이라는 뜻으로 구단(九丹)이라 하였고, 또한 마을에 솔밭이 많았으므로 구단의 ‘구’자와 소나무 ‘송’자를 따 구송(九松)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지례마을은 구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지령(芝嶺) 윤의정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예의를 세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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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구다니·구단이라 하였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말에 예안군 동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갈동이 통합되어 귀단동으로 개편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귀단리가 되었다. 귀단리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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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산천이 아름답고 그윽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고 복숭아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도목(桃睦) 또는 도목촌(桃睦村)이라 불렀다. 또 한 점쟁이가 와서 마을 주위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도목촌(道木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도목(道睦)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남첨(南襜)이 강학하던 장소를 기려 후손들이 8칸의 정사를 지은 뒤 편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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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도촌리는 원래 길골·질골·길곡(吉谷)·도곡(道谷) 등으로 불리었다. 예전 영해에서 소금이나 해산물을 지고 영양을 거쳐 장갈령(長葛嶺)을 넘어 도촌리를 지나 예안까지 갔는데, 장갈령에서 마을로 뻗어 내려오는 길을 길골이라 하였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피박 또는 피박골이라고도 불렀다. 사래실 앞산 고지박을 닮은 명당을 껍박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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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내[川]가 있다고 하여 동천리(東川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학리·부모리·장갈리를 병합하여 동천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동천리가 되었다. 동천리의 동쪽으로는 영양군 청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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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중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시행해 온 역원공영제도(驛院公營制度)에 의하여 예안현(禮安縣)에 속했던 부라원(浮羅院)이 있었으므로 부라원·부라리라 하였다. 또한 마을에 장수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 수향(壽鄕)이라고도 하였다.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호군(護軍)과 경력(經歷)을 역임한 권간(權簡)의 윗대부터 마을에 살기 시작하였고, 그 후 금숙(琴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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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능골·성황리·오도락·원음·고감을 병합하고 성황리 앞에 세 줄기 내가 합쳐져 흘러가므로 삼계리(三溪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동상면(東上面)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능골·성황리·오도락·원음·고감이 병합되어 삼계리가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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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예안군의 관저동·교촌동·만촌동 각 일부를 병합하면서 예안군 서쪽에 되므로 서부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읍내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안군이 안동군에 통합되고, 관저동·교촌동·만촌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서부리라 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 건설 과정에서 일부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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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안동, 무양동, 교촌동, 천전동의 각 일부와 서면 구송동 일부를 병합하여 선안의 ‘선’자와 무양의 ‘무’자를 따 선양리가 되었다. 자연마을 중 독작골은 독을 만들기에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독 만드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있는 큰 잣나무 아래 앉아 독을 만들었다고 한다. 송라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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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산성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신남리(新南里)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죽·정자곡·구통·두곡·산양평·점곡과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남리라 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신남리가 되었다. 북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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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오천리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가 뿌리 내려 사는 마을이다. 광산김씨는 원래 전라도 광산의 토성(土姓)으로 고려 후기 중앙 관계에 진출하면서 명문으로 발돋움하였다. 그 한 파가 경상도 안동으로 옮겨 와 풍천의 구담(九潭), 와룡의 가구(佳邱), 예안의 오천 등에 세거하여 왔다. 광산김씨 오천리 입향조는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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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82년(고종 1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삼계리에서 출생하여 1934년 사망하였다. 이남호는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예안면에서의 만세 시위는 면장 신상면(申相冕)의 주도 아래 일어난 것이 특징인데, 당시 예안면 면서기로 근무하던 이남호는 면장 신상면·이중원·신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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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92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 향년 4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병린은 예안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근무하던 중,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를 주도하였다. 1차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이 주도하여 일어났는데, 당시 면서기로 근무하던 이병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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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순팔(順八)이다. 1885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5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중원은 1908년 3월 15일 재경 영남 인사들이 창립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회원으로 참여하여 안동 지역의 교육구국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이중원은 1919년 3월 17일에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예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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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청구리·도동리·전두리·송곡을 통합하면서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동계천(東溪川)의 ‘계’자를 따서 인계(仁溪)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동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구리·도동리·전두리·송곡이 통합되어 인계리가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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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상정정리·하정정리·등산리·계곡리 각 일부를 병합하면서 정정의 ‘정(鼎)’자와 등산의 ‘등(登)’자를 따서 정산(鼎山)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정정리·하정정리·등산리·계곡리 각 일부가 통합되어 정산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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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낙동강으로 나가는 나루터가 있어 주진(舟津)·배나드리·배나들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동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노천리와 임북면 박곡리, 예안면 천전리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주진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이 이루어져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 건설 과정에서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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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공민왕 때 광산김씨가 처음 개척한 마을로, 임하면의 내앞[川前]처럼 마을 앞으로 낙동강이 흘러 내앞·천전(川前)·천전동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말 예안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천(上川)·중천(中川)·하천(下川)이 통합되어 천전리가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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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뒤쪽에 태봉(胎峯)이 있어 탯골·태곡(台谷)·태동(台洞)이라 하였다. 『선성지(宣城誌)』 서문에 “송나라 대중(大中)·천성(天聖) 연간인 현종(顯宗) 대에는 길주(吉州)에 속했는데, 신우(辛禑)의 태(胎)를 현 동쪽에다 묻었다 하여 다시 군으로 만들었다가 조금 뒤에 주로 승격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한 현 동쪽이 지금의 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