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
-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서 사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어,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써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가 벌어지면 5개로 각각 신호하여 상황...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 안동은 동쪽과 동북쪽에 태백산맥을 접하고 북으로는 소백산맥에 닿아 있는, 태백과 소백이 갈라지는 곳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안동의 산지는 시가지 남동쪽으로 길안천을 끼고 우뚝 솟은 길안면, 시가지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북후면, 북쪽에 위치한 녹전면 등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정기를 받은 안동의...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산. 『경북마을지』에는 소산리에 대하여 “마을 뒤의 정산(鼎山)과 서쪽의 관산(冠山)이 모두 표고 100m 정도의 구릉이며 앞과 동쪽은 확 트인 들판이다. 마을의 전체적 형상이 ‘소가 누운 형국’이라 하여 쇠미 또는 금산(金山)으로 불리었다”라는 명칭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원래 금산리였던 마을이 소산리가 된 까닭은 병자호란 때 낙향한 청음(淸...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소산 동제당은 상당인 산신당(주산당, 주산어른)과 하당인 골맥이당(수구맥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원적인 당의 구성은 한국 농촌사회의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상당과 하당을 모시는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구별 짓는 관행은 그리 흔하지 않다. 상제당 제관은 대부분 안동김씨가 맡고, 하제당 제관은 다른 성씨가 주로 맡았다....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원래 소산리는 금산촌이라 하였다.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금산촌은 현의 서편 5리에 위치한다. 앞에 큰 들을 놓고 땅이 기름져 온갖 곡식이 잘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산촌은 ‘소가 누운 형국’이라 하여 쇠미 또는 금산이라 하였다. 소산으로 이름이 바뀐 때는 병자호란 때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낙향...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원래 금산촌(金山村)이었다가 김상헌(金尙憲)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 금산촌은 너무나 화려하므로 합당치 않다고 하여 마을을 감싸고 있는 소요산의 이름을 따서 소산(素山)으로 고쳤다. 소산리 안동김씨는 후안동김씨(신안동김씨)와 선안동김씨(구안동김씨)로 갈라진다. 후안동김씨는 고려시대 삼태사 중의 한 명인 김선평(金宣平)의 후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