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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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귀래정은 고성이씨 입향조 이증(李增)의 둘째 아들인 낙포(洛蒲) 이굉(李汯, 1440~1516)의 정자이다. 이굉은 25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4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상주목사·개성유수 등을 지내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택리지(擇里志)』에서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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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우의 문집. 『송재집(松齋集)』은 원래 송재(松齋) 이우(李堣, 1486~1521)가 죽은 뒤 조카인 이황(李滉)이 그의 저술 가운데 남아 있던 「관동행록(關東行錄)」과 「귀전록(歸田錄)」 등의 시를 모아 필사본으로 전하던 것을 이황의 제자이며 저자의 외종손인 오운(吳澐)이 1584년(선조 17) 충주목사로 있을 때 간행한 것으로, 이것이 초판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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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조상 제사에는 고조부·증조부·조부·부(父)까지의 4대조를 위한 기제(忌祭)를 비롯하여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차례(茶禮)·묘제(墓祭) 등이 있다. 이 중 불천위제사는 종가(宗家)의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 때문에 항간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고 있어야만 종가의 자격을 부여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안동 지역에서는 불천위를 모시고 있는 종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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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겸중(謙仲), 호는 춘당(春塘). 할아버지는 의령현감을 지낸 오석복(吳碩福), 아버지는 전의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彥毅),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송재(松齋) 이우(李堣)의 딸이다. 할아버지 오석복이 만년에 함안으로 이거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외당숙이 된다. 오수영은 5, 6세 때 외가에서 지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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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옥정동은 자연마을인 신정리에 맑고 큰 우물인 옥정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우물은 감리교회 정문 맞은편 집과 농협중앙회 앞 음식의 거리 입구 부근의 개천, 그리고 옛 군청 앞에 있었다고 한다. 옥정은 밤에도 물밑이 훤하게 밝아서 어두운 한밤중에도 물을 기를 수 있었고, 날이 가물어 시내의 모든 샘물이 말라도 늘 물이 풍족하게 넘쳐 멀리 법석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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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이계양(李繼陽)이다. 조카가 온계(溫溪) 이해(李瀣)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이우는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혜리(溫惠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492년(성종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498년(연산군 4) 3월 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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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평중(平仲), 호는 창애(滄厓).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형인 송재(松齋) 이우(李堣)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소퇴계(小退溪)’로 불렸던 이동표(李東標), 아버지는 이회겸(李晦兼),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벌(權橃)의 6세손 권두인(權斗寅)의 딸이다. 숙부가 두릉(杜陵) 이제겸(李濟兼)이다. 이중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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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滉)은 조선 중기, 성리학 문화를 완성하고, 성리학을 학문화한 사람이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만년에 머물러 공부하고 제자를 길러 냈던 도산서당을 기반으로 하여 퇴계 이황이 타계한 후 서원으로 확장 발전한 곳이다. 역사 속에서 이황의 역할은 무수한 제자들을 양성함으로써 시대를 바꾸어 내는 전위대를 등장시킨 데 있다. 도산서당은 교육자 이황이 있게 하였던 바탕이고,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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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을 시조로 하고 이자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진성이씨는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고려 말 마애촌에 입향한 후 이자수의 증손 이계양(李繼陽)이 크게 현달하여 벌족을 이루면서 도산면 일대를 중심으로 세거해 온 가문이다. 이석은 누대로 진보현(眞寶縣)에 토착해온 호족의 후예이다. 이석의 아들 이자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판전의사사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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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왔을 때 태자가 머물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갈 때 이곳에 머물러서 태자리라 하였다는 설과, 왕이 불공을 드려 태자를 낳고 태자사(太子寺)라는 절을 지었으므로 태자·자산이라 하였다는 설도 전해 온다. 자연마을인 지경(地境)은 소정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고려 말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