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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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금소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자 일본인들이 마을의 이름을 금소라고 바꾸었다고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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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기와밟기를 할 때에 불렀던 유희요의 하나. 기와밟기는 놋다리밟기의 일환으로 하는 놀이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놀이이다. 놋다리밟기는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 공민왕 몽진시 안동의 소야천에 다다랐을 때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왕후인 노국공주를 태워 강을 건너게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기와밟기 노래」는 기와밟기를 할 때에 여성들이 늠름한 남성을 맞이하면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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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명우(鳴于), 호는 이호(伊湖). 아버지는 금옹(錦翁) 김학배(金學培),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로 고이절(高爾節)의 딸이며, 처는 팔거도씨(八莒都氏)로 도이망(都爾望)의 딸이다. 김세용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김학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 내종형 고세헌(高世憲)에게 수업을 받았고 11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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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삼 삼기를 할 때에 부르는 길쌈노동요. 베를 짜는 데 필요한 섬유질은 삼의 껍질에서 나온다. 삼 삼기와 베짜기는 길쌈 작업의 대표적인 것이다. 삼 삼기는 입으로 가늘게 짼 삼실을 한 올 한 올 침을 발라 끝을 이어서 긴 삼실로 만드는 일이다. 삼 삼기는 고되기도 하지만 줄곧 앉아서 하는 일이어서 다른 일보다 훨씬 지루하기 때문에 지루함을 덜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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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장례의식요. 「상여 소리」는 장례 절차 중에서 출상 당일에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갈 때 선소리꾼(상두꾼)이 부르는 장례의식요이다. 이를 「상여나가는 소리」라고도 부른다. 앞소리꾼이 사설로 앞소리를 메기면 상두꾼들이 뒷소리를 후렴으로 받는다. 안동 지역에서 「상여 소리」의 후렴은 “너호 너호 에이 넘차 너호”라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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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동유희요. 「실감기 노래」는 아이들이 실감기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아동유희요이다. 마치 전라도 지역의 ‘강강술래’ 가운데 ‘청어엮기’ 할 때에 부르는 노래와 비슷하다. 실감기는 나선을 이루며 놀이를 이끄는 선두가 계속 원의 바깥쪽으로 돌고 제일 뒷사람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므로 마치 꾸리에 씨실을 감는 것과 흡사하다. 예전에는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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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주로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는 아동유희요. 실감기가 끝나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멈추면 「실풀기 노래」와 더불어 실풀기를 시작한다. 실꾸리에서 씨실을 풀어낼 때처럼, 이번에는 실꾸리의 한가운데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아이들이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의 팔 밑으로 뚫고 나오면 그 뒷사람들이 계속 따라 나와 실풀기를 하게 된다. 실감기할 때 후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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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안동포를 만드는 정보화 마을. 안동포(安東布)란 신라 시대에는 화랑도 옷감으로, 조선 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명성을 누려 온 옷감이다. 안동포 짜기는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1호이다. 정보화 마을 조성 사업은 농촌, 어촌, 산촌과 같이 정보화에 소외된 지역에 초고속 인터넷 이용 환경 조성 및 전자 상거래와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지역 주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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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생냉이를 가지고 삼베를 짜는 과정. 안동포는 안동 지역에서 제작된 대마포(大麻布)로서 생냉이[生布]로 짠 삼베이다. 안동은 기후와 토질이 삼베 재배에 적합하고 베 짜는 기술이 우수하여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명성을 날렸다. 현재 안동포짜기는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와 고곡리, 서후면 저전리 등지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 중 생산량이 가장 많은 금소리는 안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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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집안에 모신 여러 신령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안택은 가신에게 고사를 지내 가정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가신신앙 행위이다. 안택(安宅)은 글자 뜻 그대로 집안을 평안하게 하는 굿을 말한다. 주로 강신무들이 행한다. 대체로 농한기인 시월이나 정월에 많이 하는데, 한해의 추수를 마치고 햇곡으로 제물을 준비하여 성주·지신·조상·제석·조왕 등 가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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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서 한글의 말머리를 노랫말의 첫마디로 가져와 부르는 가창유희요.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안동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67년 7월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은출(남, 49)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언문뒤풀이」는 한글 닿소리와 홑소리를 차례로 결합하여 그 소리에 말을 이어 붙여서 부르는 노래로, 혼자서 부르는 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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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유재(幼材), 호는 밀암(密庵)·금수병수(錦水病叟). 할아버지는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할머니는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정부인(貞夫人) 안동장씨(安東張氏)로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의 딸, 아버지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로 경력 박늑(朴玏)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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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범섭(林汎燮)은 본관이 예천(醴泉)으로, 이명은 임범섭(林範燮)이고, 자는 우석(禹昔)이며, 호는 남당(南堂)이다. 1898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영양군으로 이주하였다. 1969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범섭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임찬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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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윤익(林潤益)은 본관이 울진이고, 이명(異名)은 임종열(林宗烈)이며, 자는 주현(周顯)이다. 1885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임하면 오대리 냉천곡(어대골)마을에 있다. 임윤익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임찬일·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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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지열(林志烈)은 본관이 울진(蔚珍)이다. 1900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향년 2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지열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들과 함께 금소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시작하여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몰려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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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찬일(林灒逸)은 본관이 울진(蔚珍)이고, 이명(異名)은 임상열(林尙烈)이다. 자는 국삼(國三)이며, 호는 송원(松園)이다. 1895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72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안동시 임하면 오대2리 뒷산 나천곡에 있다. 임찬일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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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춘섭(林春燮)은 본관이 울진(蔚珍)이고, 자는 군현(君顯)이며, 호는 명열(明烈)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56년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춘섭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시위에 참가하여, 저녁 무렵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금소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시위 행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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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호일(林浩逸)은 본관이 울진(蔚珍)이고, 이명(異名)은 임무열(林武烈)이다. 자는 국윤(國允)이며, 호는 소은(昭隱)이다. 1890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향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호일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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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복선(趙卜先)은 본관이 함안(咸安)이고, 조복선(趙福先)·조상선(趙相善)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복선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금소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하면서 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