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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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안동체육관에서 2003년 2월 13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체육 행사. 시민에게 한국 배구의 진수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지방 체육 활성화와 배구 인구의 저변을 확대함으로써 지역 사회 발전과 화합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개최하였다. 2003 삼성화재애니카 한국배구슈퍼리그는 대한배구협회·KBS한국방송이 주최하고 안동시체육회와 안동시배구협회가 주관하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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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정오(正吾), 호는 잠은(潛隱)·이오당(二吾堂)·잠노(潛老). 할아버지는 홍문관응교를 지낸 강덕서(姜德瑞),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강윤조(姜胤祖),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숙(趙璹)의 딸이다. 동생이 도은(陶隱) 강각(姜恪)이다. 강흡은 한양(漢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김영남으로부터 『사략(史略)』을 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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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 말에 사복재(司僕齋) 권정(權定)이 접거(接居)하였으므로 접실이라고도 하였다. 『영가지(永嘉誌)』에 “고려 신촌(愼村) 권사복(權思復)이 만년에 우거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이전에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검암리 일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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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 있는 순천김씨 동성 마을. 마을 주변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에 의해 생겨난 아홉 개의 깊은 소[潭]가 있다 하여 구담(九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말 선초 상주목사를 지낸 권집경(權執經)이 관직에서 물러나 구담리에 정착한 뒤 아들이 없어 사위인 김유온(金有溫)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 이에 당시 한양에 거주하던 김유온이 벼슬에서 물러나 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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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말로 전승되는 민간 지식의 총체. 문화의 전승에는 전승 매체와 방식에 따라 구비전승·행위전승·물질전승 등이 있다. 구비전승은 행위나 물질이 아니라 말로 전승되는 문화를 뜻한다. 말로 전승되는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비문학이다. 그러나 구비전승 이전에 말로 소통되는 경험담·목격담·풍문 등의 구술 정보가 있는가 하면, 구비전승은 되지만 문학적 형상성을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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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낙행의 시문집.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은 일찍부터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문하에서 『근사록(近思錄)』과 『심경(心經)』 등을 깊이 연구하면서 평생을 초야에서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으로 보냈다. 1801년에 종제 김도행(金道行)이 주체가 되어 『제산집』을 간행하고, 또 그동안 정리하여 교정한 본을 가지고 별집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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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에 있는 산. 퇴계 이황(李滉)은 국망봉에서 한양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축지법으로 왕래하면서 국사(國事)를 논의하였다 한다.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있을 때, 간신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명종을 국망봉에서 관망하여 축지법으로 그 곳에 당도하여 구했다고 한다. 또한 이황의 조부인 이계양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국망봉에 단을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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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중(文仲), 호는 감고당(感顧堂). 아버지는 권명형(權命逈)이다. 권희학은 1697년(숙종 23)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 최석정(崔錫鼎)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와 교련관(敎鍊官)이 되었고, 3진(鎭)의 첨사(僉使) 등을 지냈다. 1728년(영조 4)에 금위영교련관(禁衛營敎鍊官)으로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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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그네에 올라타고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놀이. 그네뛰기는 주로 단옷날에 큰 나무의 옆가지에 줄을 매어 그 위에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올라타고 앞뒤로 솟구쳐 흔들며 노는 놀이이다. 큰 나무 외에 인위적으로 굵고 긴 통나무 기둥을 양쪽에 세워서 그네를 만들기도 한다. 두 기둥 사이에 가로대를 대고 두 개의 밧줄을 매달아 발판(밑싣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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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립(公立), 호는 만회헌(晩悔軒). 김경한(金景漢)의 현손, 현감을 지낸 김택동(金宅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정언을 지낸 김희성(金熙成), 아버지는 서추(西樞) 김재인(金在仁),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의 후손인 홍종해(洪宗海)의 딸이다. 김건수는 1830년(순조 30) 정시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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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겸(景謙), 호는 구재(鳩齋). 증조부는 김극(金克), 할아버지는 좌찬성 김희맹(金希孟), 아버지는 김진(金震),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도헌(陶軒) 류우잠(柳友潛)의 딸이다. 아내는 두 명으로, 16세에 완산이씨(完山李氏)와 결혼하였다가, 이씨 사후인 44세에 다시 안동권씨(安東權氏)를 맞아들였다. 김계광은 안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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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 김득우(金得雨)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김혁(金革), 아버지는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전(金腆)의 딸이다. 김계행은 안동부 풍산현 불정촌(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배움에 재질을 보였다. 5세 때부터 글공부를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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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경(文卿), 호는 창균(蒼筠)·금산(金山). 증조부는 남대장령(南臺掌令)을 지낸 김영수(金永銖), 할아버지는 좌승지를 지낸 김영(金瑛), 아버지는 사포서별좌(司圃署別坐)를 지낸 김생락(金生洛), 처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찰방을 지낸 벽오(碧梧) 이문량(李文樑)의 딸이다. 증조부 대부터 대대로 벼슬살이를 하여 김기보도 한양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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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준(子峻), 호는 계암(溪巖). 증조부는 광산김씨 예안 입향조 김효로(金孝盧), 할아버지는 김유(金綏), 아버지는 현감 김부륜(金富倫),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부호군 신수민(申壽民)의 딸이다. 김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7세의 나이로 류성룡(柳成龍)의 막하로 자진 종군했으며, 당시 명군 총병사 오유충(吳維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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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의 지명유래는 마을 진입로에 서 있는 오미마을표지석에 자세히 적혀 있다. 즉 원래는 다섯 가닥의 산줄기가 뻗어 있다고 해서 오릉동(五陵洞)이라 불렀으나, 허백당 김양진의 아들 김의정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오릉동을 오무동(五畝洞)으로 고쳤다고 한다. ‘능(陵)’이란 글자가 언덕을 일컫기도 하지만 임금의 무덤을 뜻하기도 해서 ‘이랑무(畝)’ 자를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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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을 시조로 하고 서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대구서씨는 고려 때 조봉대부 군기소윤을 지낸 대구서씨의 시조 서한(徐閈)의 14세손 약봉(藥峯) 서성(徐渻) 이후 크게 번창한 가문이다. 모든 서씨(徐氏)의 시조는 신라 말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이라 한다. 이후 고려 군기소윤을 지낸 서한(徐閈)을 시조로 하는 대구서씨와 고려 판도판서를 지내고 달성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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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형성된 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1930년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의 마을 총수는 28,336개로 이 가운데 14,672개가 동성마을이었다. 우리의 전통마을 가운데 반 이상이 동성마을인 셈이다. 동성마을은 동족부락(同族部落)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1930년대부터 주로 일본인 학자들이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용어이다. 그러나 동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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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조선 중기 송여원(宋汝源)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천옥(天獄)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천옥에서 벗어나려면 거침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만운(晩雲)으로 이름 지었다. 안동권씨는 방담(方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방담 권강(權杠)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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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이자 효자. 본관은 원주(原州). 초명은 변중일(邊仲一), 자는 가순(可純), 호는 간재(簡齋). 증조부는 변광(邊廣), 할아버지는 변영청(邊永淸), 아버지는 생원 변경장(邊慶長),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정희순(鄭希舜)의 딸이다. 변중일은 안동부(安東府) 금계촌(金溪村, 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18세 때인 임진왜란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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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에서 사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어,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써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가 벌어지면 5개로 각각 신호하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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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수침동 위쪽에 있어 수상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남후면(南後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지동(馬旨洞)·수침동(水沈洞), 남선면(南先面) 강정리 등을 통합하여 수상리가 되었다. 1983년 안동시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수상동이 되었다. 1998년 행정동인 서구동(西區洞) 관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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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가」는 유교적 전통과 종족의식이 강한 동성마을에서 주로 전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가사작품을 말한다. 오미리의 풍산김씨 집안에서 전해 오는 「세덕가」를 지은 사람은 김병철(金秉喆, 1881~1951)이라고 한다. 김병철은 김봉조(金奉祖)의 후손으로, 당대 손꼽히는 한학자였으며 숭조의식도 각별했던 것으로 전한다. 「세덕가」는 김병철이 40세 되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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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시능(始能), 호는 긍암(肯庵). 아버지는 이수응(李秀應),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생원 권의도(權義度)의 딸이다. 이돈우는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소호리(蘇湖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가정세제(柯亭世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남다른 재질과 기골이 빼어났는데, 하루는 증숙조(曾叔祖)인 면암(俛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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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 우계(羽溪). 자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 고조부는 태조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개국공신으로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도평의사사(都評議司事)를 지낸 이의(李薿), 증조부는 호분위(虎賁衛)를 역임한 이만(李蔓), 할아버지는 덕천군수(德川郡守)를 지낸 이인숙(李仁淑), 아버지는 군자감주부를 지낸 이경창(李景昌),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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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 고성(固城). 자는 경원(景園), 호는 모정(慕亭).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용헌(容軒) 이원(李原)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평지옹(平地翁) 이헌복(李憲復), 아버지는 생원 이주령(李周齡),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학도(權學度)의 딸이다. 이시수의 집은 본래 안동이지만, 이시수가 태어난 곳은 외갓집이 있는 현재의 경상북도 봉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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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고려 후기 이후 지금까지 풍산류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하회가 전국 각지에 양반마을로 알려지면서 나아가 명문세가의 마을로, 또는 유교문화의 전형적 마을로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겸암과 서애로부터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겸암과 서애에 얽힌 전설도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전설 속에서 겸암은 한결같이 이인(異人)으로 묘사되어 서애보다 탁월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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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유재(幼材), 호는 밀암(密庵)·금수병수(錦水病叟). 할아버지는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할머니는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정부인(貞夫人) 안동장씨(安東張氏)로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의 딸, 아버지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어머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로 경력 박늑(朴玏)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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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산(漢山). 자는 여곽(汝廓), 호는 수은(睡隱). 할아버지는 이대형(李大馨),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해산(海山) 이문영(李文英),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딸이다. 1595년(선조 28) 10월 17일에 전라도 함열군(咸悅郡, 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경성(京城) 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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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이황은 안동에서 태어나 학문 활동을 하였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주자(朱子)의 이기(理氣) 철학 및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천명도(天命圖)」 및 『심경(心經)』을 바탕으로 한 경(敬)의 철학을 수립하여 조선 중기 이후 한국의 유학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 본관은 진성(眞城). 고조부는 군기시정을 지낸 이운후(李云侯), 증조부는 선산도호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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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숭조(金崇祖)는 1598년 김대현과 모친 전주이씨 사이에 8남으로 태어나 5세 때 부친을 여의고 큰형인 김봉조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였다. 1624년 27세 되던 해에 진사시에 합격을 하고 나서, 형들의 권유로 대과를 목표 삼아 성균관에 유학했으나 2년 뒤 어머니가 숨을 거두자 낙담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모친의 3년상을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 성균관에서 대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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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은 겸암 류운룡의 아우로서 임진왜란의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선조 때의 명신이자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학자이다. 21세에 형 겸암과 도산서당을 찾아가 퇴계의 가르침을 받았고, 23세에 사마시(司馬試)의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했으며, 성균관에 입학하던 25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서애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고향의 전원과 독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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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조(金延祖)는 1585년 영주에서 부친 김대현과 모친 전주이씨 사이에 5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총명함이 남달라 8세 때 스스로 글을 지어 형제들과 친구들 앞에서 읊기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는데, 다음은 김연조가 17세 되던 무렵 아버지 김대현한테서 온 편지글 내용이다. 스승에게 ‘中(중)’자를 써 달라고 하여 거처하는 방 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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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한국 국학 진흥원에 있는 조선 후기 공신 정탁의 초상. 정탁(鄭琢)[1526~1605]의 본관은 청주(淸州)로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고 좌의정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대 선조를 모시고 피난 갔던 공로를 인정받아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에 봉하여졌다. 「정탁 초상」은 이를 기념하여 나라에서 그려서 내려 준 초상으로, 17세기 공신 초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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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생.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향경(向卿), 호는 둔암(鈍巖). 할아버지는 조봉징(趙鳳徵), 아버지는 조원익(趙元益),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로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형제로 조보양(趙普陽), 조득양(趙得陽), 조의양(趙宜陽), 조몽양(趙夢陽)이 있다. 조규양은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둔산리에서 태어났다. 이유장(李惟樟)의 수제자였던 이성전(李成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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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인경(仁卿), 호는 팔우헌(八友軒). 증조부는 조명한(趙鳴漢), 할아버지는 조봉징(趙鳳徵),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조원익(趙元益), 어머니 예안이씨(禮安李氏)로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형 조규양(趙葵陽)과 함께 문장이 뛰어나서 난형난제라 불렸다. 증조부는 김응조(金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할아버지는 이현일(李玄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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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이성(而晠), 호는 일봉(一峯). 증조부는 조봉징(趙鳳徵), 할아버지는 조원익(趙元益), 아버지는 성균생원 조규양(趙葵陽), 어머니는 풍산김씨(豊山金氏)로 김달룡(金達龍)의 딸이다. 조석회는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둔산리에서 태어났다. 1747년(영조 23)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고, 1773년(영조 49) 증광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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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의경(義卿), 호는 오죽재(梧竹齋). 아버지는 조원익(趙元益),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로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아버지 조원익은 문행(文行)으로 향리에서 중망을 받았다. 조의양은 현재의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둔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대답에 막힘이 없어 농은(農隱) 이급(李級)이 박아군자(博雅君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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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 유학자 이황이 주자의 서간문 가운데 주요 부분을 정선하여 편찬한 책. 이황이 주희의 저작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처음 접한 것은 한양에서 벼슬을 하던 중인 1543년의 일이다. 그 뒤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한 1549년 이후 이황은 본격적으로 이 책을 탐구하였다. 그 중에도 가장 주목한 부분은 48권에 달하는 서간문들이었다. 여기에는 주희가 사우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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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조(金奉祖)는 1572년 한양 장의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부친 김대현과 모친 전주이씨 사이에서 장남, 곧 팔련오계(八蓮五桂)의 맏형으로 태어났다. 1601년 30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42세 되던 해인 1613년에 문과급제를 하였다. 김봉조는 효심이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사시 합격을 한 이듬해에 부친이 세상을 뜨자 묘소 옆에 여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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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金大賢)은 1553년 부친 김농(金農)과 모친 안동권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서 1602년 숨을 거두었다. 호는 유연당(悠然堂)으로, 허백당(虛白堂) 김양진(金楊震)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김대현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면모를 보이면서 성장하였다. 당시 한양에서 살았던 그는 조선 전기 성리학의 대가로 알려진 우계(牛溪) 성혼(成渾)으로부터 글을 배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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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적을 시조로 하고 김자순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풍산김씨는 조선 초 김자순(金子純)이 왕자의 난을 피해 풍산현 오릉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金文迪)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나라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풍산백(豊山伯)에 봉군되었다. 김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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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金榮祖)는 1577년 한양 장의동에서 부친 김대현과 모친 전주이씨 사이에 차남으로 태어나, 6세 되던 해에 부친을 따라 영주로 내려와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이듬해인 7세부터 이웃에 살고 있는 장씨(張氏)라는 사람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여타 학동들에 비해 총명함이 두드러져 “훗날 문호를 일으킬 사람이다.”라는 칭찬을 듣곤 하였다. 김영조가 8세 되던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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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한양조씨는 1600년대 중엽 조적(趙績)이 영주에서 안동으로 옮긴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한양조씨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고종 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의 현손 조인벽(趙仁壁) 때부터이다. 조인벽의 아버지는 용성총관을 지내고 홍건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용성부원군(龍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