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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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무경(茂卿), 호는 호양자(湖陽子)·호양(湖陽). 아버지는 성균관학유를 지낸 권선(權宣)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권익창은 30대에 임진왜란을 겪었으며, 광해군 대를 거쳐 60대에 인조반정을 목도하며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살았다. 어려서부터 종숙부인 권우(權宇)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김성일(金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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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온(仲溫), 호는 유일재(惟一齋). 아버지는 진사 김주(金籌), 어머니는 죽계안씨(竹溪安氏)로 안처정(安處貞)의 딸이다. 김언기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서 태어났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백담(白潭) 구봉령(具鳳齡)과 함께 10년을 기한으로 하고 청량산(淸凉山)에 들어가 독서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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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滉)은 조선 중기, 성리학 문화를 완성하고, 성리학을 학문화한 사람이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만년에 머물러 공부하고 제자를 길러 냈던 도산서당을 기반으로 하여 퇴계 이황이 타계한 후 서원으로 확장 발전한 곳이다. 역사 속에서 이황의 역할은 무수한 제자들을 양성함으로써 시대를 바꾸어 내는 전위대를 등장시킨 데 있다. 도산서당은 교육자 이황이 있게 하였던 바탕이고,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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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지헌(芝軒). 아버지는 사섬시첨정 정두(鄭枓),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식(權軾)의 딸이다. 동생이 매창(梅窓) 정사신(鄭士信)이다. 정사성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에게 수학하였으며 10세 때는 구봉령(具鳳齡)에게 옮겨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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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부(子孚), 호는 매창(梅窓)·신곡(神谷). 증조부는 의영고직장 정윤소(鄭允昭), 할아버지는 진사 정언보(鄭彦輔), 아버지는 정두(鄭枓),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사직 권식(權軾)의 딸이다. 형이 양구현감 정사성(鄭士誠)이다. 정사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형 정사성에게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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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보(壽甫), 호는 송오(松塢). 할아버지는 정두(鄭枓), 아버지는 양구현감을 지낸 정사성(鄭士誠), 어머니는 남순효(南舜孝)의 딸이다. 정전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사성을 통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을 이어받았으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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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정사성의 문집. 『지헌집(芝軒集)』은 정사성(鄭士誠, 1545~1607)의 증손 정선(鄭鍹)이 편집하여 1821년(순조 21)에 간행하였다.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지헌선생문집(芝軒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1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7.8㎝, 세로 20.3㎝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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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경을 시조로 하고 정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청주정씨는 청주정씨의 시조 정극경(鄭克卿)의 8세손 정침(鄭賝)이 조선 초 안동으로 이거하여 정착하고 후손들이 와룡 마암, 북후 도진 등지에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청주정씨는 고려 의종 때 중랑장을 지낸 시조 정극경의 5세손 정해(鄭瑎)가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도첨의찬성사에 올랐으며 정해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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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태리는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농와(聾窩) 이우춘(李遇春, 1673~1748)이 처음 살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태이동촌(台伊洞村)이라고 하였다. 자연마을인 서동골은 지형이 불을 밝히는 초롱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소등촌(所等村)으로 불렀으나 음이 변하여 서동골·서둥골·서도촌(西道村) 등으로 불린다. 합강(合江)은 동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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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 있는 청주정씨 동성 마을. 탯골을 한자로 표기하여 태리(台里)라고 불렀으나,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입향조 정두(鄭枓)는 와룡면 지내리에서 출생하여 13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가세가 점점 기울어지자 척박한 환경의 지내리를 벗어나 태리에 정착하였다. 정두의 아들 정사성(鄭士誠)과 정사신(鄭士信)이 크게 이름을 떨쳐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