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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면 시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72
한자 臨西面示威
영어의미역 Demonstration in Imseo-myeon
이칭/별칭 임하면 시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항일만세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 3월 21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 3월 21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지도보기 |신덕리지도보기
관련인물/단체 임찬일|임범섭|임득연|노말수|임동숙|임윤익|유북실|임춘섭|박유석|임석현|임호일|임지열|김도주|신필원

[정의]

1919년 안동 지역의 임하면(구 임서면)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

[역사적 배경]

1910년 8월 29일 우리 주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일본육군대장을 조선총독으로 임명하여 일본군 2개 사단과 헌병경찰제를 기초로 입법·행정·사법 및 군사의 전권을 행사하며, 식민지 지배 정책을 강행하였다.

[목적]

거족적인 민족 운동에 동참하여 일제의 강점을 거부하고 자주독립을 찾고자 일으킨 운동이다.

[발단]

임서면 시위(임하면 시위)는 금소동임찬일(林贊逸)임범섭(林範燮)·임득연(林得淵)과 함께 고종 인산에 참가하였다가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있음을 알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와 만세시위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경과]

임찬일고종 인산에 참례하고자 서울로 올라가 봉도단에 가입하였다. 참례를 마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임찬일은 안동의 김원진(金源鎭)을 만나 논의하고, 함께 만세운동을 할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이에 뜻을 같이 하기로 한 노말수(盧末守)·임동숙(林東淑)·임윤익(林潤益)·류북실(柳北實)·임범섭·임춘섭(林春燮)·박유석(朴有石)·임석현(林錫鉉) 등과 3월 16일 길안 장날에 거사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당일 호응자가 적어 만세 일자를 3월 21일로 연기하였다.

드디어 3월 21일 저녁 100여 명의 금소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면소재지인 신덕동으로 향하였다. 신덕주재소로 간 시위대는 일본 경찰의 위협 발포로 잠시 해산하였다. 그러나 밤 9시 무렵 3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다시 주재소로 들어가 돌을 던졌다.

이때 경찰 2명이 뒷산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총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하자 시위대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주재소 문과 유리창을 부수고, 서류를 파기하였다. 이어서 임찬일과 노말수는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로 향했다. 시위대는 면사무소의 지붕과 기둥만 남기고 모두 부수었다.

[결과]

임서면 시위에서 경찰이 발포하였지만 사상자는 없었다. 그러나 안동수비대의 추격을 받던 임호일(林浩逸)·임지열(林志烈)·김도주(金道周)·신필원(申必元) 등 5명은 5월 26일 피살되었다. 그리고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15명이 실형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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