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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290
한자 龍溪里
영어음역 Yonggy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순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10.46㎢
총인구(남, 여) 57명(남자 27명, 여자 30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25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약계(藥溪) 권순기(權舜紀)가 마을 뒷산을 보고, 용이 누운 형상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남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전동·하국동 일부를 통합하여 용계리라 하고 안동군 길안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됨에 따라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가 되었다. 원래 한밭·원용계·도랫마·도연·길목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모두 수몰되고 현재의 마을인 검박골과 교회마가 새로 들어섰다.

한밭은 대부분 수몰되고 산등성이 일부분에 1가구가 이주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에 넓은 밭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에 물이 저수지처럼 고여 있다 하여 도연(陶淵)이라고도 하였고, 또 청송에서 내려오는 대수(大水)가 도연폭포로 전부 흐르지 못하고 산을 한 바퀴 돌아 흘러 섬과 같이 생겼다 하여 섬산이라고도 하였다.

[자연환경]

와룡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앞으로 용계천이 흘러 임하호로 유입된다. 전형적인 배산 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수몰되기 전 한밭에는 도연폭포와 함께 격진령(隔塵嶺)이라는 암벽이 있었는데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였다. 도연폭포는 망천에서 반변천을 따라 10㎞ 정도 올라가면 길안면, 임동면, 임하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다.

용계리에는 수몰된 도연폭포와 격진령 관련하여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안동팔경 중 으뜸으로 이름 난 도연폭포와 선찰암 사이에 조그만 독산이 하나 있는데 옛날에는 폭포가 없었고 강물이 독산 끝을 돌아 선찰암 앞으로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지금의 폭포 밑 깊은 소(沼)에 사는 용과 선찰암에 있는 부처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이유는 용은 물을 바로 흐르게 하자는 것이요, 부처는 예전대로 돌아 흐르게 하자는 것이었다. 싸움이 쉽사리 끝나지 않자 화가 난 용이 그만 꼬리로 산을 내리치니 그 자리가 갈라져서 도연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폭포 밑의 소는 명주꾸리 하나를 풀 정도로 깊으며, 천년 묵은 이무기가 산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연폭포는 아득한 옛날에 격진령의 산허리가 들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물이 멀리 산자락을 돌아 흐르던 것이 오랜 세월 홍수와 급류가 산허리를 깎아 산을 무너뜨리면서 형성되었다. 홍수가 지면 비좁은 폭포로만 다 흐를 수가 없어 멀리 산자락을 돌아서 흘렀다. 폭포의 높이는 4m에 지나지 않았지만 낙동강 지류에 있는 여러 개의 폭포 중 으뜸이었다. 망천에서 반변천을 따라 10㎞가량 올라가 길안면·임동면·임하면 경계에 있었다.

격진령은 폭포 옆에 깎아지른 듯이 서 있는 높이 50m, 길이 300m의 바위산으로 층암절벽의 기화요초와 산마루에 솔숲을 얹고 있는 품이 천하일색(天下一色)이었다. 격진령을 아늑히 둘러싼 높고 짙푸른 산색과 검은 벼랑 밑을 미끄럽게 흐르는 파란 물빛, 햇빛 아래 더욱 빛나는 하얀 돌, 폭포 주변의 경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에 비분강개한 선비 김시온(金是縕)이 은거하여 산수(山水)로 울분을 달래고 학문을 벗하여 소요자적하면서 세상을 멀리한다는 뜻으로 격진령이라 하였다.

[현황]

길안면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0.46㎢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25세대에 57명(남자 27명, 여자 3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사과와 더덕즙 등이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다. 검박골은 원용계에 살던 주민들이 원용계 위쪽 골짜기에 형성한 마을로 모두 안동권씨이며 8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에는 권순기가 세운 약계정(藥溪亭)이 있다.

검박골로 가려면 길안면에서 청송 방면 도로를 따라 1㎞가량 가다가 왼쪽 작은 길로 접어들어서 4㎞가량 더 들어가거나, 구수리를 통하여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가 있는 길로 가면 된다. 용계리 은행나무로 가는 길은 물이 차면 자동차는 들어가지 못한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영남 지방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은행나무로 1966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전하는 탁순창 연보에 따르면, 그는 선조 때 훈련대장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후 고향으로 내려와 이곳을 멀리 떠났을 때를 대비하여 은행나무를 보호하고자 대(臺)를 쌓고 동지들과 행정계(杏亭契)를 조직하였으며, 매년 칠월이면 은행나무 그늘에서 흥겹게 놀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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