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D01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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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정현 |
옹천리는 마을에 용바위가 있고 옥계천이 흘러서 용전, 또는 옥천 등으로 불리다가 옹천이라 했다고 전한다.
옹천리에는 예부터 영천(靈泉)이란 유명한 우물이 있다.
진주강씨들의 서기가 어려 있는 사익재와 열녀각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영천과 관련하여 강신중 옹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이쪽에 신령령(靈) 자, 샘천(泉) 자 쓰는 영천이라고 있어요. 서울로 과거 보러 갈 때 이리로 댕겼는데, 다니다가 목이 마르먼 그 물을 먹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국에서 유명해져 영천이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요 우에 가면 두문령이라꼬도 있는데, 그것은 유래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두사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 두사춘이라 그는 분이 묘터를 찾으로 다녔다 그래요. 그래 인제 사람들이 여기에 묘터가 좋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와 보니 참말로 묘터가 좋은 곳이 있거든요. 그래 그 묘터를 보고 거기서 춤을 막 추었다고 해서 두무영(杜舞嶺)이라 그래요. 한자로 막을 두(杜)에, 춤출 무(舞)자를 쓰지요.
다르게 말하는 이도 있는데, 이조 중엽이지요. 맹사성(孟思誠)이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지리학에 밝았다 그래요, 그분이 이리를 지나며 여기 아주 묘터 좋다 하면서 춤 췄다 그래요. 그래서 두무령이라 말하는 이도 있어요.”
서울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옹천에 있던 영천의 물을 먹고 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신령스럽다는 ‘영(靈)’ 자를 쓴 걸 보면 필시 과거시험에 효험을 보았거나 신성한 무언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천 근처에는 거북바위도 있다. 그 위치 역시 진주강씨들의 조상숭배와 학문, 정절 등의 상징인 사익재 근처에 있어 옹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금계산 줄기에서 발원한 영천과 남산의 용바위가 조화를 이루어 옹천을 수호하고 있으니 용전이란 지명의 ‘용’과, 금계포란, 또는 단지형국의 ‘옹’ 자, 신령한 샘물의 ‘천’ 자가 합쳐져서 옹천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암정에 걸린 현판인 ‘용귀(龍龜)’ 역시 영천의 거북바위와 남산의 용바위가 옹천을 수호해 왔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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