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D01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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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정현 |
옹천은 아주 오래 전에 ‘용전’이라 불렸다는데, 옹천리와 관련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는 강신중 옹은 이 이름이 마을의 남산 쪽에 있던 용바위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옹천이라는 이름은 요새 생겼고. 그 전에는 용전이라고도 그랬어요. 용용(龍)자, 밭전(田)자를 썼어요. 이 뜻이 뭐냐 하면, 옛날 5천 년 전 실농씨가 있었지요. 염제(炎帝) 실농씨라고 하면 의약을 제조하고, 농사짓는 법 이런 것이 실농유업(神農遺業)이라 하여, 실농씨가 다 했잖니껴. 실농씨가 우리 강씨(姜氏)거든요. 그래서 강가들이 농사를 지으면 잘 된다고 그래요. 농사를 지으려면 밭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우리 강가들 사는 데는 전(田)자를 마을 명에 넣으면 좋다 그래서 여기를 용전(龍田)이라고 그랬어요. 옹천(甕泉)이라 하는 것은 지역이 꼭 샘같이 생겼다고 옹천이라 그랬지요. 요새는 저 남쪽에 철도가 나는 바람에 이래 흩어 버렸지만, 그전에는 곡 단지처럼 생겼지요. 그래서 옹천이라 그러는 것 같애요.”
강씨(姜氏)라는 성(姓)을 최초로 가진 분은 5,200여 년 전 중국의 염제신농(炎帝神農)이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신농(神農)의 이름은 석년(石年)으로, 천수(天水) 지방에서 출생하여 강수(姜水) 땅에서 자라서 제위에 올랐다. 성장한 고장의 이름을 따서 인류 최초로 성을 강(姜)씨라 하였다. 천수 땅은 현재 감숙성(甘肅省) 위천현(渭川縣)인데, 한(漢)나라 때는 천수라고 했고, 강수는 현재 기서성(岐西省)을 말한다.
염제신농(炎帝神農)는 인신우수(人身牛首), 즉 몸체는 사람이며 머리는 소 모양으로 뿔이 났다. 인류 최초로 쟁기를 발명하여 농사짓는 법을 개량하였고, 백초(百草)를 입으로 맛보아 병을 고치는 의술(醫術)을 가르쳤으며, 시전을 설치하여 물물교환하는 장사법을 고안하셨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매년 음력 4월 26일을 신농선제천추제사일(神農先帝天秋祭祀日)로 정하고 각 성(省)마다 사당을 모시고 성대하게 제사를 모시고 있다.
한국의 강씨(姜氏), 즉 진주강씨(晋州姜氏)는 서기 500년대에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始祖)로 모시고, 관향(貫鄕)을 진주(晋州), 즉 진주의 옛 지명인 진양(晋陽)과 진산(晋山), 청천(菁川)으로 정하여 천파일본만지동근(千派一本萬枝同根)으로 동방(東方)의 대성(大姓, 큰 성씨)임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용전이라는 지명이 무색해지는 계기는 1941년 철도가 지나가면서 용바위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대로 이어온 용바위의 가치를 일제에 의해 강탈당했다고 볼 수 있다. 용바위에 대한 자긍심을 잃고 얻은 철도이기에 희비가 교차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인지 현재 마을 주민들은 용바위에 대해서 잊으려고 하는 듯하다. 몇 분에게 물어 봐도 아마 없어졌을 거라고 남의 말 하듯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금계산과 용전, 옥천 등의 아름다운 지명이 살아 있던 시절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더욱 그리울 수도 있겠다.
금계가 품고 있던 용과 옥천을 되찾기 위해서는 마을의 전통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마을 만들기를 통한 자긍심 고취가 중요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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