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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올리고 손님 대접하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A020201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재해

전통시대 양반집의 가장 큰 일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이었다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효가 모든 행동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효를 실천하기 위해 죽은 조상의 제사를 잘 받들고자 하였다. 그래서 사대부의 일상생활에서 ‘봉제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제사에는 해마다 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기제(忌祭), 명절과 초하루, 보름 이외에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드리는 차례(茶禮),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시사(時祀)가 포함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거나 피치 못할 환난이 있다 하더라도 선조의 제사를 받드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다. 또 봉제사는 중요한 집안의 행사였으므로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가장 먼저 제삿날을 외우게 하였다. 봉제사는 가문의 중요한 행사로서 그 대표자는 종손이지만 실제적인 준비와 진행은 종부인 여성의 역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규범서에는 반드시 빠지지 않고 봉제사가 기술되어 있다.

양반집에서 봉제사 다음으로 중요시한 것이 바로 접빈객이었다. 사대부들은 접빈객을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예로 생각하였고, 더불어 평소에는 덕을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손님이 집에 넘치는 것은 그 집주인에게 덕이 있다는 징표로 생각하였으며, 손님이 끊기면 주인의 부덕한 소치로 빚어진 일로 받아들였다.

손님접대는 가문의 예와 경제 유지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었으므로 여성의 도리로도 강조되었다. 접빈객과 관련하여 여성들이 담당했던 주요한 집안일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음식과 술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손님 대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집안의 가풍이 평가될 정도였으므로 접빈객에서 여성의 역할은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풍산류씨 동성마을인 하회에서 ‘봉제사 접빈객’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특히 마을에 두 종가가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하회마을 주민들은 풍산류씨 종가에서 ‘봉제사 접빈객’이 중요한 도리로 여겨지는 것처럼, 자신들 또한 고향을 지키며 ‘봉제사 접빈객’ 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고 있다.

[정보제공]

  • •  조순희(여, 1929년생, 하회리 거주, 일명 상주댁)
  • •  류상붕(남, 1952년, 하회리 양진당 거주, 풍산류씨 종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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