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3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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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烏川君子-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29[오천리 산28-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방규환 |
개설 시기/일시 | 2004년 - 오천 군자 마을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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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주소 | 오천 군자 마을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29[오천리 산28-1] |
성격 | 유적 마을 |
가구수 | 약 20가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집성촌 유적지.
[개설]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가 군자 마을이며 외내라고 불렀다. 500~600년 전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효로(金孝盧)[1454~1534]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동시대 외손인 봉화 금씨(奉化琴氏)가 들어와 현재까지 살아온 마을이다.
[명칭 유래]
낙동강이 도산에 와서 절경을 이루는데 이를 도산 구곡이라 하며, 그중 제1곡인 운암곡이 곧 군자리이다. 이곳에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도인 후조당(後彫堂) 김부필(金富弼), 읍청(挹淸) 김부의(金富儀), 산남(山南) 김부인(金富仁), 양정당 김부신(金富信),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 일휴당(日休堂) 금응협(琴應夾), 면진제(勉進齋) 금응훈(琴應壎) 등 당대 도학군자가 나왔다. 당시 안동 부사이던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오천 한 마을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읍지인 『선성지(宣城誌)』에 글을 남긴 데서 군자리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원래 낙동강 가에 위치한 외내의 군자 마을은 안동댐[1971~1976년] 개발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여 1972년부터 마을의 종택과 정자 및 유적을 안동 댐 상류로 옮겨 와 오천 유적지를 이루었다. 문화 관광부가 2002년 9월부터 전국 문화원 연합회를 통해 추진한 ‘우리 문화 역사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2004년 오천 군자 마을을 선정하여 안동 선비 정신을 계승하는 전통 체험장으로 개방하였다.
[자연 환경]
오천 군자 마을 유적지는 산 중턱에 조성되어 앞 골짜기가 호수를 이루며 터를 2단으로 구분하여 아래쪽에 주차장을 만들었다. 위쪽에는 산기슭의 경사면을 따라 광산 김씨 예안파의 중요 건물을 배치하여 놓았다.
[현황]
오천 군자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10여 동의 건축물 외에 보물로 지정된 고문서 29점과 전적 61점이 있다. 탁청정 종가[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6호], 광산 김씨 예안파 종가 소장 고문서[보물 제1018호], 광산 김씨 예안파 종가 소장 전적[보물 제1019호], 후조당 유물[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64호] 등이 보존되어 있다. 유물 전시관인 숭원각에는 선대 유물, 고문서, 서적 수백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탁청정은 1541년(중종 36) 김수(金綬)가 지은 가옥에 딸린 정자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명필 한석봉(韓石峯)의 현판이 걸려 있다.
오천 군자 마을은 연중 고택 체험과 문화 체험으로 공연 및 행사 등을 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에는 음식 체험, 의생활 체험, 서당 체험, 민속놀이 체험, 전통 혼례 재현 체험 등이 있다.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객실은 후조당, 후조당 사랑채, 읍청정, 산남정, 규수방, 군자방, 송죽방 등이 있다. 부대시설인 강당, 후조당 대청, 탁청정 정자 등과 캠프파이어 및 야외용 그릴을 사용할 수 있다.
안동에서 북쪽으로 도산 서원 가는 국도를 따라 17㎞ 정도 지나면 ‘오천 유적지’라는 안내판과 자연석에 ‘군자리’라고 새긴 표석을 만난다. 안내판을 따라 우측으로 300m 정도 들어가면 오천 군자 마을이 나온다. 안동시청으로부터 약 20분 걸리는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