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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만휴정 원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30003
한자 安東晩休亭園林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시설,시설,정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묵계리 1081]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신재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6년 12월 11일연표보기 - 안동 만휴정 원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3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1년 8월 8일연표보기 - 안동 만휴정 원림 명승 제8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안동 만휴정 원림 명승 재지정
현 소재지 안동 만휴정 원림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묵계리 1081]
성격 정자|경관림
면적 42,336㎡
문화재 지정번호 명승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및 소나무 숲.

[개설]

만휴정(晩休亭)은 조선 시대의 문신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1431~1521]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하여 지은 별서(別墅)로 폭포, 계류, 산림 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는 명승지이다. 만휴정 주변으로는 화강암 계곡과 소나무 경관림이 형성되어 있다. 특히 만휴정은 사색과 독서를 위해 다른 정자에는 없는 담장을 두른 점이 특징적이다.

김계행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1447년(세종 29)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김종직(金宗直)과 교유하였으며 성주와 충주에서 사학(四學) 교수를 지냈다. 고령 현감, 홍문관 부수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지내며 간쟁 업무에 힘썼다. 김계행은 “내 집에는 보물이 없지만 있다면 그것은 청렴뿐이다”라는 유훈을 남길 만큼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전한다.

안동 만휴정 원림(安東晩休亭園林)은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7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8월 8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가 해지되고 정자를 포함하여 명승 제82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명승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김계행연산군 때에 대사간을 지내면서 척신들의 비위를 논박하였으나 시정될 가망이 없자 벼슬을 버리고 안동 풍산(豊山)에 은거하며 만휴정을 지었다.

[구성]

만휴정과 원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명승으로 지정될 당시 전체 면적은 4만 2336㎡이다. 관리는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하며, 명승 지정 구역 내에 사유지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만휴정 원림에는 소나무 숲을 비롯하여 화강암에 발달하는 폭호(瀑壺) 등이 형성되어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현황]

안동 만휴정 원림 주변에는 김계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묵계 서원(黙溪書院)을 비롯하여 묵계 종택(黙溪宗澤), 하회 마을, 병산 서원(屛山書院) 등이 있다. 안동 만휴정 원림은 현재까지 보존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으나, 만휴정 주변 소나무 숲을 제외하고는 병충해 방재를 위해 일부 간벌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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