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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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海東 |
영어음역 | Yi Haedong |
이칭/별칭 | 이회동(李悔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선양리 66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평창(平昌). 또 다른 이름은 이회동(李悔東)이다. 1896년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태어났으나 후에 현재의 안동시 예안면 선양리 66번지로 이주하였다.
[활동사항]
1907년 임하면 천전리에 세워진 협동학교를 졸업한 이해동은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 예안장터에서 이동봉과 이광호의 주도 하에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시위 대에 참여하였다. 그는 군중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를 쓰러뜨린 것을 시작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해 나갔다.
오후 6시 무렵에는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해동은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17일 대구복심법원과 5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