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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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德淑 |
영어음역 | Yi Deoksuk |
이칭/별칭 | 이선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수상동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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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수상동 |
성별 | 남 |
생년 | 1894년 |
몰년 | 1960년 |
본관 | 경주 |
대표경력 | 대한통의부 의용군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덕숙(李德淑)은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다른 이름은 이선우(李宣雨)이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수상동에서 태어났으며, 묘소는 수상동 건직곡(乾直谷) 공동묘지에 있다.
[활동사항]
이덕숙은 1915년 처형을 따라 고향인 안동을 떠나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농사를 짓다가 1920년 4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교성대(敎成隊)에 배속되어 활동하였다. 1923년 5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군으로 들어가 김명봉이 이끄는 제5중대 산하 제1소대 소대장 이동건(李東健)의 부하로 활동하였다. 1923년 7월 대한통의부 본부로부터 군자금을 조달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동건·류연덕(柳淵德)과 함께 국내로 들어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1923년 10월 이덕숙은 신흥무관학교의 동창생인 이겸호(李謙浩)·신형섭(申亨燮)과 접촉한 후 대한통의부의 활동 방향을 설명하고 군자금 모집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1924년 4월 안동에서 권동호(權東鎬)와 이겸호를 만나 영덕, 영해 방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이덕숙은 6월 일본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이때 총을 쏘며 피신하였지만, 9월 18일 경기도에서 결국 체포되었다. 이덕숙은 1925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포장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