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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52
한자 申應淑
영어음역 Sin Eungsuk
이칭/별칭 대언(大彦)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79년연표보기
몰년 1952년연표보기
본관 평산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대언(大彦). 187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에 묘가 있다.

[활동사항]

쓰러져 가는 나라를 근심하던 신응숙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신응숙은 안동 지역에서 대규모 군중이 최초로 만세시위를 일으킨 3월 17일 예안면 1차 만세시위를 계획·전개하였다.

예안면 1차 만세시위는 예안면장인 신상면(申相冕)이 3월 11일 밤 9시에 신응숙을 비롯한 이시교(李時敎)·이중원(李中元)·이남호(李南鎬)·백남학(白南鶴)·이광호(李洸鎬) 등을 면사무소 숙직실로 부른 뒤 『독립신문』을 보여주면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제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뜻을 같이 하여 예안면 장날인 3월 17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이곳에서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대량으로 인쇄·제작하였다.

드디어 3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이광호·이동봉(李東鳳) 등이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 올라가 일제가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記念碑)’를 쓰러뜨렸고, 이와 동시에 1,5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예안주재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약 600명은 산을 타고 안동 시내로 들어가 3월 18일 안동면 2차 시위에 합세하였다. 이로 인해 신응숙은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태형 90대를 선고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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