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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46
한자 宋章植
영어음역 Song Jangsik
이칭/별칭 비성(斐成),천사(川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5년연표보기
몰년 1982년연표보기
본관 진천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비성(斐成), 호는 천사(川沙)이다. 1895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서 태어났다. 송천동에 묘가 있다.

[활동사항]

일찍이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던 송장식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면 만세시위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1차는 3월 13일, 2차는 3월 18일, 3차는 3월 23일이었는데, 그중 송장식은 3월 18일 2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안동면 2차 만세시위는 계획 단계에서 안동교회와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송장식김병우(金炳宇)를 비롯한 김익현(金翊顯)·김계한(金啓漢) 등과 서로 의논하여 18일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철저히 준비하였다.

드디어 3월 18일 장날 낮 12시 삼산동 곡물전(현 신한은행과 농협안동지부 중간 지점) 앞에서 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이들은 안동 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다가 3월 19일 0시 50분 무렵 2,500여 명이라는 시위 군중이 모여들자 일제 식민통치기관인 군청과 경찰서·대구지방재판소 등에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 일로 송장식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 받고 항소하였으나, 5월 2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11.29 [활동사항] 수정 <변경 전> 1919년 순종 황제의 죽음으로 <변경 후>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이용자 의견
송** [활동사항]
...... 1919년 순종 황제의 ..... "순종황제"가 아니라"고종황제" 입니다
  • 답변
  •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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