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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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奎憲 |
영어음역 | Gim Gyuheon |
이칭/별칭 | 치방,속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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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
성별 | 남 |
생년 | 1886년(고종 23) |
몰년 | 1970년 |
본관 | 의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치방(致邦), 호는 속은(俗隱)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서 출생하여, 1970년 사망하였다. 김규헌은 의용단원(義勇團員)으로 활동하였는데, 의용단은 1920년 9월에 결성되어 1922년 12월까지 활동한, 서로군정서를 후원하기 위한 국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당시 조선민족대동단 사건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여관을 경영하며 독립자금을 후원하고 있던 김찬규는 서로군정서 총재 명의로 된 위임장 2통과 암호문 1통 등을 가지고 국내로 들어와 서로군정서의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응수·신태식을 만나고, 군자금 모집을 위해 의용단을 조직하였다.
신태식은 경북단장, 김찬규는 경남단장, 이응수는 경북총무, 금계마을 김용환은 서기를 맡아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그러나 1922년 11월경부터 일제의 경찰망에 포위되어 김찬규가 붙잡히고, 모두 세 차례나 검거되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은 멈추고 말았다. 이 거사로 체포된 사람은 40여 명에 이른다.
[활동사항]
대한제국기 이강년 의진(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펼쳤던 김규헌은 1921년 의용단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4월 도산면 옥계동의 이중면(李中冕)과 영덕(盈德)의 박재인(朴載寅)·박세찬(朴世燦) 등에게 독립자금을 요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6년 9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재판에 항의하다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다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