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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87
한자 鄭惟一
영어음역 Jeong Yuil
이칭/별칭 자중(子中),문봉(文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33년(중종 28)연표보기
몰년 1576년(선조 9)연표보기
본관 동래
대표관직 승지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중(子中), 호는 문봉(文峯). 증조부는 군수를 지낸 정난원(鄭蘭元), 할아버지는 생원 정광우(鄭光祐), 아버지는 정목번(鄭穆蕃),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홍준(李弘準)의 딸이다.

[활동사항]

정유일은 어려서부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이황의 가르침을 듣고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몸소 체득하였다. 함께 수학했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등도 정유일의 재능을 인정하였으며, 특히 시부(詩賦)에 뛰어나 명망이 높았다.

1552년(명종 7) 생원이 되고 1558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 정언 등을 거친 후 1563년 부모봉양을 위해 외직을 자청 진보현감, 예안현감을 거쳐 영천군수 등을 지냈다. 그 뒤 다시 직강, 지평,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70년(선조 3) 인재양성을 위해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업에 전념케하는 제도인 사가독서(賜暇讀書)에 류성룡 등과 함께 선발되었다. 이듬해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한 뒤 대사간, 승지 등을 지냈다.

[학문과 사상]

정유일은 주자학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발전시켜 이(理)가 발하여 기(氣)가 이에 따르는 것이 사단(四端)이며, 기가 발하여 이가 기를 타는 것이 칠정(七情)이라 주장한 스승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추종하고 발전시켰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문봉집(文峯集)』이 있으며, 편서로는 『명현록(名賢錄)』이 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한중록(閑中錄)』, 『관동록(關東錄)』, 『송조명현록(宋朝名賢錄)』 등을 저술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내성읍 의동(蟻洞)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안동의 백록리사(栢麓里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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