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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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重光 |
영어음역 | Yi Junggwang |
이칭/별칭 | 평중(平仲),창애(滄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명수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평중(平仲), 호는 창애(滄厓).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형인 송재(松齋) 이우(李堣)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소퇴계(小退溪)’로 불렸던 이동표(李東標), 아버지는 이회겸(李晦兼),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벌(權橃)의 6세손 권두인(權斗寅)의 딸이다. 숙부가 두릉(杜陵) 이제겸(李濟兼)이다.
[활동사항]
이중광은 외가인 경상도 안동부 춘양현 유곡리(酉谷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1741년(영조 17) 할아버지 이동표의 음덕에 힘입어 경기전참봉에 제수되었다. 이후 내관직으로 익위사세마를 지냈으며 외관직으로 장릉참봉, 현릉참봉 등을 지냈다. 현릉참봉 재직 중 일을 청렴하게 처리하여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었다. 일례로 당시 능의 경내에서 생산되는 물품은 향과 숯 구입비를 제외하고는 참봉이 차지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공용으로 쓰도록 하였다.
또한, 새로 부임할 때에는 옷과 행구가 없어 능의 관리가 준비한 것을 사용하였으며 사임했을 때도 웃옷은 벗어 매부인 신명악(申命岳)에게 주고 내의는 지인의 초상에 부의로 내고 무명으로 만든 고의는 팔아서 먹을 것을 사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정도로 청렴하였다. 만년에 숙부 이제겸이 터를 잡은 두들기(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로 거처를 옮기고 숙부와 밤낮으로 가까이 지내면서 학문과 도를 논하였다. 또 그곳에 창애정(滄厓亭)을 짓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창애집(滄厓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구가산(九佳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