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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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慕 |
영어음역 | Yi Mo |
이칭/별칭 | 효사(孝思),소백(小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배종석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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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성별 | 남 |
생년 | 1582년 |
몰년 | 1639년 |
본관 | 영천 |
대표관직 | 홍문관수찬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효사(孝思), 호는 소백(小白). 할아버지는 이충량(李忠樑), 아버지는 이덕홍(李德弘), 어머니는 이중청(李中淸)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모는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으며, 일찍부터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한림(翰林)을 역임하였다. 1615년 형제 이강(李茳), 이립(李苙)과 함께 식년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홍문관수찬으로 재임 중인 1617년 11월 25일 영상 기자헌(奇自獻)이 도당에 앉아 조정 백관의 의론을 봉상(捧上)하였는데 이날에 양사가 중학(中學)에 같이 모여 기자헌을 논계하고자 하였다. 당시 집의 임건(林健), 지평 정양윤(鄭良胤)·김호(金昈), 대사간 윤인(尹訒), 사간 남이준(南以俊),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이강 등이 합사하여 기자헌을 탄핵했는데 이모 역시 “임금을 해치는 원수를 신하된 도리로서는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대의가 있는데 어찌 다른 의론이 있겠습니까?”라며 동참하였다.
하지만 아버지 이덕홍을 따라 대북파(大北派)에 속했기 때문에 1623년 인조반정 후 폐모론에 연루되어 이강은 참수를 당하고 이모는 장연(長連)으로 정배되었다. 1635년(인조 13) 정월에 인조가 “이모(李慕), 이귀달(李貴達), 정기수(鄭麒壽) 등은 방귀전리(放歸田里)하라.” 라고 하교하여 풀려났다. 이후 향리로 돌아와 1639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