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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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是榲 |
영어음역 | Gim Sion |
이칭/별칭 | 이승(以承),표은(瓢隱),도연(陶淵),숭정처사(崇禎處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석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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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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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598년![]() |
몰년 | 1669년![]() |
본관 | 의성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이승(以承), 호는 표은(瓢隱)·도연(陶淵). 할아버지는 김수일(金守一), 아버지는 김철(金澈),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로 찰방 김종무(金宗武)의 딸이고 대사간(大司諫) 김취문(金就文)의 손녀이며 관찰사(觀察使) 유중영(柳仲郢)의 외손이다. 아버지 김철은 백부 김극일(金克一)의 후사가 되었다.
김시온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행(才行)이 뛰어나 경상좌도에 이름이 높았다. 1616년(광해군 8) 아버지 김철이 청도객관(淸道客館)에서 병사하자 그곳에 가 몸소 장례를 치름에 정성을 다하였다. 1623년(인조 1) 향교 교임(校任)으로 선발되었다. 어버이를 위해 향시에 응시하여 합격한 적이 있지만 이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 안동부에서 창의(倡義)를 거론하여 김시온을 부장으로 추대하였다. 1651년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수되었지만 사양하고 은거하면서 학문에 힘썼다. 이후 인근의 수령과 관찰사가 문학기덕(文學耆德)으로 조정에 천거하였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숭정처사(崇禎處士)’라 자칭하였다.
김시온은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경학(經學)에 통달하였다.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 오로지 스스로를 함양하고 글 지음을 경계하도록 하였다. 또 일찍부터 『중용(中庸)』을 익히면서 말하기를 “성인의 심법(心法)은 모두 이 책 속에 있다.”라고 하면서 단가일곡(短歌一曲)을 지어 『중용』의 대의인 대본달도(大本達道)의 뜻을 밝히기도 하였다. 또 자제들에게는 허물이 있을지라도 준책함이 없었으며 늘 용모를 다스릴 것, 언행을 조심할 것, 의리를 분변할 것, 취사(取捨)를 살필 것 등을 훈계하였다.
문집으로 『표은집(瓢隱集)』이 있다.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송석산(松石山)에 있다.
도연서원(陶淵書院), 경절사(景節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