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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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興安氏 |
영어의미역 | Sunheong A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복영 |
세거지 |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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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5세기 중기 |
성씨시조 | 안자미(安子美) |
입향시조 | 안선손(安善孫, 1422~1497) |
[정의]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선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순흥안씨는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8대손 안선손(安善孫, 1422~1497)이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사위가 되어 15세기 중엽 안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연원]
순흥안씨는 시조 안자미(安子美)가 고려시대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고, 후손들이 순흥현에 세거하면서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순흥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입향경위]
문성공 안향의 8대손 안선손이 권구서(權九敍)의 사위가 되어 처가 마을인 와룡면 가구리에 정착하였다. 안선손은 자녀 교육에 힘을 쏟아 손자 안수(安琇, 1489~1546), 증손 안제(安霽, 1538~1602) 부자는 문과에 급제하여 고성군수와 충청도사를 지냈다.
안제는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에게 배웠으나 학업이 성취한 뒤에는 도학을 닦기 위하여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 되었다. 용궁현감으로 있을 때에는 임진왜란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의 구휼에 힘썼으며 벼슬을 그만둔 후에는 아버지의 무덤 아래 영모루(永慕樓)를 짓고 고을의 풍토 진작에 힘썼다고 한다.
안제는 5형제 중 넷째인데 위로 세형은 일찍 죽고 본인은 자식이 없어 동생 안담(安霮)의 아들 안경엄(安景淹)을 양자로 맞이하였는데 안경엄은 권춘란의 아들 권태일(權泰一)의 사위가 되었다. 안제의 후손들은 그 뒤에도 과한이 이어져 현손 안연석(安鍊石, 1662~1730), 5세손 안복준(安復駿, 1698~1777) 부자가 문과에 급제하여 양산군수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현황]
현재 와룡면 중가구리에 안제와 안담의 후손 50여 호가 살고 있다.
[관련유적]
안수와 안제 부자의 묘소가 와룡면 중가구리 가느실마을 뒷산에 있고, 안제를 모신 사당인 노봉사와 근년에 복원된 영모각(永慕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