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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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潘南朴氏 |
영어의미역 | Bannam Ba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복영 |
세거지 | 와룡면 지내리 나주골|와룡면 가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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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5세기 중엽 |
성씨시조 | 박응주(朴應珠) |
입향시조 | 박숙(朴숙, 1444~1536) |
[정의]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숙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반남박씨는 시조 박응주(朴應珠)의 9세손 은곡(隱谷) 박숙(朴숙, 1444~1536)이 15세기 중엽 안동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연원]
반남박씨의 시조 박응주는 고려 때 반남호장을 역임했으며 6세손 박은(朴訔)은 조선 초 이방원의 난에 공을 세워 익대동덕좌명공신에 올라 반남군(潘南君)에 봉해졌다가 금천부원군에 봉해진 이후로 오랫동안 세거하게 되어 그 후손들이 박응주를 시조로 반남을 본관으로 쓰게 되었다. 반남은 현재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지역의 지명으로 백제 때 반내부리현이던 것을 757년(경덕왕 16) 반남군으로 고쳐 부른 이후 지금까지 내려온 옛 지명이다.
[입향경위]
박은의 증손 박숙이 능성구씨(綾城具氏, 일명 능주구씨(綾州具氏)) 안동 입향조 구익명(具益命)의 사위가 되어 서울에서 안동으로 이거하면서 정착하였다. 박숙은 능성구씨가 터를 잡은 모사골의 남쪽 입구인 나주골에 시거하였는데 맏아들 박침(朴琛)과 셋째 아들 박형(朴珩)은 영주 조제리와 조와리로 이거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수도리(무섬), 고현리, 문정리로 퍼져나가 문과 급제자 13명, 생원 진사 30여 명을 배출하여 크게 현달하였다.
안동에는 둘째 아들 박진(朴璡)과 후손들이 번거로움을 피하여 가류(현 와룡면 가류리), 감호, 문암 등에 터를 잡고 세거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쓴 은둔처사가 되었다. 『와룡지(臥龍誌)』「우거조(寓居條)」에 박숙은 손자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77, 박형의 넷째 아들)이 귀하게 되어 승지에 증직되고 죽은 뒤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만시로 조위하였다고 한다.
[현황]
반남박씨의 세거지인 나주골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이 안동댐에 수몰되어 옛 월곡면 가류, 문암 등지에 남아 있는 반남박씨들도 예전의 삶의 모습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