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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758
한자 乖厓精舍
영어음역 Goeaejeongsa
영어의미역 Goeaejeongsa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누정
건립시기/일시 1994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1칸 반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에 있는 정자.

[개설]

괴애정사(乖厓精舍)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괴애(乖厓) 류지(柳榰)의 정자이다. 류지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중오(重吾), 호는 괴애(乖厓)이다. 종형(從兄)인 백졸암 류직(柳㮨)에게 수학하였으며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합격하고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서 장원 급제하였다.

벼슬은 상주교수(尙州敎授)를 시작으로 전적(典籍), 형조(刑曹), 예조좌랑(禮曹佐郞) 등을 거쳐 결성현감(結城縣監)에 부임하였다. 당시 이 고을에는 조정의 권문 세가와 귀척 세력에 기대어 백성들에게 심한 횡포를 부리는 자가 많았는데, 그들을 법대로 다스렸다. 그로 인하여 미움을 받아 파직된 이래 10년 동안 관직에 기용되지 못하였다.

1671년(현종 12) 복직되어 예조좌랑, 단성현감을 거쳐 울진군수를 지냈으며, 1676년(숙종 2) 성균직강(成均直講),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고, 이듬해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어 척신(戚臣)을 탄핵하는 데 앞장섰다.

류지는 어버이가 연로하자 어버이 봉양을 위해 외직을 구하여 밀양부사, 능주목사, 길주목사 등을 지냈는데, 길주를 떠날 때는 고을 백성들이 백 리 밖까지 나와서 전송하였다. 1693년(숙종 19)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재직하다가 당쟁이 심해지자 벼슬에 물러나 임동(臨東) 고천(高川)에서 정사(精舍)를 짓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저서로 『괴애집(乖厓集)』이 전한다.

[위치]

안동에서 동쪽으로 국도 34호선 도로를 따라 20㎞쯤 올라가면 길 오른쪽에 임동면 수곡리로 건너는 수곡교(水谷橋)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좌회전하여 호반을 따라 동쪽으로 4.4㎞쯤 올라가면 길가 오른쪽에 ‘괴애선생유공기적비(乖厓先生柳公紀蹟碑)’가 서 있으며 기적비 뒤에 괴애정사가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이곳은 예부터 류지의 정자가 있었던 곳이라는 뜻에서 ‘서당두들’로 불려왔다. 정자는 2백여 년 전에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는데, 1994년에 후손들에 의해 복원, 중건되었다.

[형태]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팔작지붕 집으로, 담으로 둘러져 있으며, 북향(北向)으로 앉아 있다. 공간 구성은 가운데 1칸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각각 1칸 크기의 온돌방을 배치하고, 대청과 온돌방 앞에는 반 칸 크기의 툇간을 내고 쪽마루를 설치한 후 계자난간을 둘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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