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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사 사적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569
한자 黃山寺事蹟碑
영어음역 Hwangsansa Sajeokbi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of Hwangsansa Temple
이칭/별칭 봉황사 사적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63[봉황사길 15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규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사적비
건립시기/일시 1813년연표보기
재질 석재
높이 136㎝
너비 50㎝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63[봉황사길 152]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개설]

지금의 황산사봉황사는 644년(선덕여왕 13)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사료가 없어서 누가 언제 세웠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임하현에서 동쪽으로 15리 떨어진 기산(岐山) 아래에 있는 신라 고찰이다.”라는 기록만 전할 뿐이다.

봉황사는 번성기 때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10개의 전각과 2개의 부속 암자가 있어 안동 지방에서 광흥사와 더불어 상당한 규모를 갖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모든 전각이 불탔고, 조선 중기 이후에 대웅전과 요사채 1채만이 중창되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980년 사찰 옆 개울에서 황산사 사적비가 발견됨으로써 숭정(崇禎) 후 118년, 즉 1813년(순조 13)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구아기산사명왈봉황창금(舊鵝岐山寺名曰鳳凰刱今)’을 통해 당시에도 봉황사라 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황산사 사적비(黃山寺 事蹟碑)임동면 수곡리 봉황사에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봉황사 대웅전(鳳凰寺 大雄殿) 동쪽 벽 옆에 세워져 있다. 봉황사아기산 중턱에 위치하는데, 무실 신단지 뒤로 이어져 있는 도로를 따라 500m 정도를 가면 나온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곡리가 수몰되자, 주민들이 마을 뒷산인 아기산 기슭에 신단지를 만들어 이주하여 개두들마을이 생겨났다. 마을 뒤편에 있는 골짜기를 황산골이라 하는데, 이것은 신라시대의 고찰인 황산사가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형태]

비석의 크기는 높이 136㎝, 너비 50㎝, 두께 16㎝ 정도이다. 받침돌은 사질이 많이 섞인 화강암이며, 비신(碑身)도 화강암이다.

[금석문]

비석 전면에는 ‘아기산봉황사사적비(鵝岐山鳳凰寺事蹟碑)’라는 비명과 함께 건립 내역 등을 적은 비문이 적혀 있으나, 매우 낡고 심하게 마모되어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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