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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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護國戰歿勇士 |
영어의미역 | Fallen Soldiers at Korean War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윤정 |
[정의]
6·25전쟁을 전후하여 공비 토벌 및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한 안동 출신 군인과 경찰.
[개설]
3년 1개월간 계속되었던 6·25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한국의 인명 피해는 민간인 약 100만 명을 포함한 약 200만 명이며, 공산 진영의 인명 피해는 100만 명의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중 군인 전사자는 한국군이 22만 7748명, 미군이 3만 3629명, 기타 UN군이 3,194명이다. 중국인민지원군과 북한군의 정확한 전사자수는 아직까지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전쟁 기간 중 한국은 43%의 산업 시설과 33%의 주택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휴전협정 제60조에 의거, 1954년 4월 제네바에서 대한민국과 UN 참전 16개국 그리고 북한과 중국 및 소련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정치 회담이 개최되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같은 해 6월 회담은 결렬되어, 남북한은 항구적인 평화가 아닌 휴전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군인 전사자 현황]
6·25전쟁을 전후하여 공비 토벌 및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한 안동 출신 군인과 경찰로는 강해원(姜海遠)·강금석(姜琴錫)·구득서(具得書)·권상봉(權相鳳)·권우봉(權佑鳳)·권태환(權泰煥)·권계훈(權桂勳)·권영기(權寧琪)·권영진(權寧珍)·권종락(權宗洛)·권규태(權圭台)·권순도(權淳道)·권영수(權寧洙)·권용대(權龍大)·권필수(權必秀)·김경석(金慶錫)·김국환(金國煥)·김응일(金應鎰)·김상태(金尙泰)·김규연(金珪年)·김덕재(金德在)·김동원(金東元)·김재영(金在榮)·김제동(金霽東)·남복규(南福圭)·류연식(柳淵植)·류덕영(柳德永)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공비토벌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한 사람들이다. 특히 구득서·권우봉·권태환은 1949년 4월 안동군 임하면에서 공비와 교전 중 전사하였다. 강금석과 김동원은 인민유격대 소탕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전사하였고, 권규태·권상봉·권용대·남복규는 1946년에 일어난 대구 10월 항쟁을 진압하던 중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