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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자정순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83
한자 抗日自靖殉國
영어의미역 The Suicide Movement for anti-Japanes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자결순국
발생(시작)연도/일시 1908년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20년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안동시
관련인물/단체 김순흠|이용하|이중언|이현섭|류도발|김택진|류신영|이명우|권성

[정의]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제에 저항한 운동.

[발단]

안동 지역의 자결 순국은 세 차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907년(고종 43)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국권 침탈이고, 두 번째는 1910년 8월 국권 피탈이며, 세 번째는 1919년 고종의 죽음이었다.

[경과]

안동 지역에서 가장 먼저 자결 순국한 이는 김순흠이다. 김순흠은 일제의 국권 침탈이 심해지자 1907년부터 단식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1908년 9월 6일 단식을 시작하여 “내가 죽거든 빈소를 차려 곡은 하여도 상식(上食)은 차리지 마라. 왜놈 천하에서 자란 곡식을 먹을 수 없으니 국권이 회복되는 날 올리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단식 23일 만인 1908년 9월 28일 순절하였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안동의 유림들은 연이어 목숨을 걸고 저항하였다. 가장 먼저 권용하가 자결을 하였다. 권용하는 1910년 10월 9일(음 9월 7일) 사촌 형에게서 나라가 망하여 일제 식민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통분하여 기둥에 머리를 찧어 자결하였다.

이튿날인 10월 10일(음 9월 8일)에는 향산 이만도가 순절하였다. 이만도는 망국의 소식을 듣고 안동에서 가장 먼저 자진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인물이다. 그리고 단식 24일 만에 순절하였다. 이만도의 뒤를 이어 그의 9촌 조카인 동은 이중언이 자정순국하였다. 이중언은 「경고문(警告文)」을 지어 “자신도 나라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여 의리를 지킴으로써 우리 동포가 모두 여기에 매진하여 일제 강점을 용납하지 않도록 하는 초석이 되겠다”라는 희망을 밝히고, 단식 27일 만인 11월 5일(음 10월 4일) 세상을 떠났다.

11월 26일(음 10월 25일)에는 이현섭이 뒤를 이었다. 이현섭은 “내 차라리 목이 잘릴지언정 어찌 오랑캐의 백성이 될까 보냐”라는 내용의 시를 남기고 단식 21일 만에 의관을 갖추고 순절하였다. 이어 11월 11일 단식을 시작했던 류도발이 17일째인 11월 27일(음 10월 26일)에 순절하였다. 마지막으로 이강년 의진에서 활동하였던 김택진이 뒤를 이었다. 그는 “천만금이 생겨도 친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단식 21일 만인 11월 28일(음 10월 27일) 만 3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와 같이 국권 피탈이 있은 후 안동 지역에서는 모두 6명이 자진으로서 저항 의지를 보여 주었다.

안동 출신들의 자결 순국은 1919년에도 이어졌다. 1910년 단식 순국한 류도발의 아들 류신영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류신영고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3월 3일(음 2월 2일, 고종 장례일)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부자가 연이어 자결한 것이다. 이어 고종의 상기(喪期)가 끝나는 1920년 음력 12월 20일 저녁, 이명우와 권성 부부가 독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명우가 자결하면서 남긴 글에는 “나라를 잃고 10여 년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의 길을 가겠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권성이 남긴 한글 유서에는 충의의 길을 따르는 남편을 따라가겠다는 간곡함이 담겨 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듯이 부부 사이에도 의리가 있으니 자신은 ‘의부(義婦)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결과]

항일자정순국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 경종을 울리고, 국민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여 항일 투쟁을 계속해 나가게 만들었다. 특히 안동 지역에서는 이들의 뒤를 이어 줄기찬 항일 투쟁이 전개되었다.

[의의와 평가]

안동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가장 많은 10명의 자결 순국자가 나왔다. 이 가운데 특히 류도발·류신영과 같이 부자가 함께 자결한 사례, 이명우·권성과 같이 부부가 함께 자결한 사례는 유일하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권성은 일제강점기에 자결 순국한 유일한 여성이며, 여성이 한글 유서를 남긴 사례 또한 흔하지 않다. 이는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국문학적 자료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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