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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동쪽에 있는 조산(造山)이 매우 아름답다 하여 순흥안씨 동고(東皐) 안제(安霽, 1538~1602)가 아름다울 ‘가(佳)’자와 언덕 ‘구(邱)’자를 붙여 가구(佳邱)라 하였다. 가구리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무의마을은 경치가 아름다워 중국의 푸젠성[福建省]에 있는 무이산(武夷山)에서 이름을 따 왔다. 밤실[栗里]은 마을의 형국이 밤송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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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낙동강에 더해진다고 가류리(加流里)라고 한다. 낙동강이 갈고리 모양처럼 돌아 흐른다고 하여 갈쿠리·가크리라고도 하며, 낙동강이 마을을 돌아서 흐르는 모양이 아름다워 가류리(佳流里)라고도 한다. 가류리에서 남서쪽에 자리 잡은 새터마을은 예전 월곡면 도목동 주민들이 수몰 지역에서 이주해 와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여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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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사리와 송오리 등을 병합하면서 가사의 ‘가’자와 송오의 ‘송’자를 따서 ‘가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사리·송오리·고리·광석동·운천동과 봉화군 하남면 여을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가사리와 송오리의 이름을 따서 가송동(리)이라 하고 안동군 도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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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산골에서 보기 드물게 넓고 아름다운 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개실·계실(溪實)·가야촌(佳野村)으로도 불린다. 자연마을인 돌미(일명 석산)는 마을 앞뒤에 예쁜 돌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돌미 서쪽의 늪실은 마을 앞의 연못에 늪이 워낙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늪실은 눌곡(訥谷)이라고도 한다. 권익창(權益昌, 1562~164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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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갈골·굴현(屈峴, 일명 굴티)·상등골을 병합하면서 갈골의 ‘갈’자와 굴현의 ‘현’자를 따서 ‘갈현’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굴현·갈골·상등골을 병합하여 갈곡과 굴현의 이름을 따서 갈현동(리)이라 하고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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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지형이 가마솥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가마골[釜谷]·가마촌(加麻村)·감이촌(甘爾村)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인 우무실(憂無室)은 근심이 없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곡(憂谷)이라고도 한다. 미우리(일명 미꾸미)는 웃골 앞에 있는 와우형(臥牛形) 산의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리원(五里院)은 부근에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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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 말에 사복재(司僕齋) 권정(權定)이 접거(接居)하였으므로 접실이라고도 하였다. 『영가지(永嘉誌)』에 “고려 신촌(愼村) 권사복(權思復)이 만년에 우거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이전에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검암리 일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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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검암리는 자연마을인 검방우(일명 검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검방우는 400여 년 전 순천김씨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 뒤에 검은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선비들이 모여서 소일하던 곳이기도 하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야리를 병합하여 검암리가 되었다. 미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양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벼농사를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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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마곡·전시곡·장성백리를 병합하여 계곡동(리)이라 하였다. 193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곡면에 편입되었고, 1974년 안동댐 건설에 따라 월곡면이 폐지되면서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가 되었다. 댐이 건설되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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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와평리·상계곡리·회곡리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계곡의 ‘계(桂)’자와 와평의 ‘평(平)’자를 따서 ‘계평’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서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와평리·상계곡리·회곡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계평리가 되었다.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넓은 들에 자리 잡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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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란리의 자연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인 골안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길안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사리, 미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뒤로 계명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길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 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골안은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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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고상리는 고일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웃고일·상고곡·상고동이라고도 한다. 고일은 골짜기가 ‘날 일자[日]’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납시리, 중방리, 흠실 등을 병합하여 고상리가 되었다. 마을 뒤는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로는 하고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아곡지, 중방지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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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안동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가래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뒤로 아기산이 솟아 있고,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일부가 수몰되었다. 갈전교를 지나 가래재를 오르기 전 오른쪽에 난 도로를 따라 3㎞가량 들어간 동쪽에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4,326,896㎡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28세대에 263명(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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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고일 아래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랫고일·하고곡·하고동이라고도 한다. 고일은 고상동(古上洞)과 고하동(古下洞)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골짜기가 ‘날 일자[日]’처럼 생겨서 붙여졌다. 자연마을인 갈골[葛谷]은 칡이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조선 선조 때 선비 권익상(權益相)이 피난 와서 새로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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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마을에 넒은 돌이 있었으므로 광석(廣石)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으로 부내면(府內面) 옥리(玉里)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고, 1931년 동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법상정4정목(法尙町4丁目)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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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넓고 큰 바위가 여러 곳에 흩어져 광암이라 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광음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리, 암산, 신기, 장성배기, 원당곡, 한곡 등을 병합하여 광음리가 되었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 잡은 농촌 마을로 동쪽으로 낙동강이 굽이져 흐른다. 한골 앞에는 큰 저수지인 한골못이 있고, 긴 골짜기에 논과 밭이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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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천등산 자락에 넓고 평평한 바위가 많아 너븐들이라 하였다. 광평(廣坪)은 너븐들의 한자 표기이다. 자연마을인 추산(楸山)은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마을 뒷산의 큰 소나무에 그네를 매고 동네 사람들이 추천(鞦韆)을 즐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가야마을은 조선 초기에 맹사성(孟思誠)이 이곳을 지나다가 천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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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느티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마을 뒤 산비탈에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고려시대에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따라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발산동·수박동·신사동·매곡동·오미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괴정리가 되었고,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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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시대에 이 지역에 향교가 있었다고 하여 향교골 또는 행겟골이라 하였다. 고려 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역임했던 권인(權靷)이 이곳의 지명을 소야(所夜, 일명 솟밤)에서 송파(松坡)로 바꾸어 불렀다고 하는데, 고려의 도읍지인 송도를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시묘골은 1545(인종 1) 참봉을 지냈으며, 효자로 이름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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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기룡산(일명 작우산)에서 발원한 구미천(九眉川)이 굽이쳐 흘러 구비·구미라 한다. 자연마을인 양지마을과 음지마을은 각각 남쪽과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백일마을에는 백일곡(白日谷)이 있는데, 마을 뒷산에서 백일장이 열린 적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남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백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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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 윤씨들이 들어와서 살았는데 윤씨 중에 벼슬한 사람이 많아서 홍패가 아홉이라는 뜻으로 구단(九丹)이라 하였고, 또한 마을에 솔밭이 많았으므로 구단의 ‘구’자와 소나무 ‘송’자를 따 구송(九松)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지례마을은 구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지령(芝嶺) 윤의정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예의를 세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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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부터 귀현(龜峴)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어려운 거북 ‘구(龜)’자 대신 아홉 ‘구(九)’자를 썼다는 설이 전해 온다. 아홉 곳에서 물이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계동·용계동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수리로 개편되고 길안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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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가지(永嘉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속명은 금음지 또는 금계라 한다.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옛날에 칭하기를 천 년 동안 패하지 않는 땅이라고 했다. 사복정 배상지(裴尙志)가 여기에 살았는데 백죽당(栢竹堂)이 있다.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판서 권예(權輗)도 또한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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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세실·왕곡·금시동이라 하였다가 1885년(고종 22) 안동권씨 추밀파(樞密派)의 권영준(權寧準)이 지금의 안동성소병원 뒤쪽 언덕에 지은 금곡서당(金谷書堂)에서 따와 금곡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동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법상정5정목(法尙町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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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쇠가 많이 나는 골짜기라 하여 금곡(金谷)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소일은 해가 넘어가는 광경을 볼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망고지[芒谷]는 풀이 우거져서 붙여진 이름이고, 갈고개[葛谷]는 칡넝쿨이 많이 얽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마실[叩馬谷]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임진왜란 때 한 장군이 이곳에 몸을 숨겼다가 말을 버리고 떠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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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고려시대 초기에는 길안부곡(吉安部曲)이었다가 충선왕 때 길안현(吉安縣)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숙종 때 안동군 길안이 되었다. 1608년에 편찬된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는 길안면에 대해 “검색(儉嗇)하며 힘써 농사짓는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1904년 길안면과 임남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동군 길안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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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소라와 같이 생겼다 하여 나소골 또는 나소곡(羅所谷)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나별로 불렀다. 『정감록(鄭鑑錄)』에 ‘영가사십리고동소라(永嘉四十里古洞召羅)’라는 곳을 찾아가면 난(亂)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 전한다. 나별 안에 나소곡이 있고 나소곡 안에는 소라곡(召螺谷)이 있는데, 『정감록』에 나오는 고동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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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성의 남문이 있던 마을이므로 남문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남문정2정목(南門町2丁目)이 되었고,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남문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남문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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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 남쪽에 있었다고 해서 남문거리 또는 남부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안동면 동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면이 안동읍으로 승격하면서 동부동의 일부를 분할하여 남문정1정목(南門町1丁目)이라 하였다. 1947년 남부동으로 개칭되었고, 1964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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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본래 안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부남면이라 했다가, 조선 숙종 때 부남면이 남선면과 남후면으로 분리되면서 남선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임서면의 평지리를 병합하였다. 1983년 안동군 남선면 정상리와 정하리가 안동시로 편입됨에 따라 동으로 바뀌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남선면이 되었다. 북쪽 경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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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안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부남면이라 했다가, 조선 숙종 때 부남면이 남선면과 남후면으로 분리되면서 남후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선면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1983년 안동군 남후면 수상리와 수하리가 안동시에 편입됨에 따라 동으로 바뀌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남후면이 되었다.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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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풍수상 백로하전(白鷺下田)의 형국이므로 노하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부내면(府內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동(鳳洞), 서후면(西後面) 경광동(瓊光洞), 서선면(西先面) 막곡동(幕谷洞) 등을 통합하여 노하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노하동이 되었다. 송야천 남쪽 나지막한 구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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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예안현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서면이라고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의 한가운데에 있는 녹전산의 이름을 따서 녹전면으로 고쳤다. 일설에는 ‘복록이 굴러 들어오고 토질이 비옥하다’ 하여 녹전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서면이었을 당시 지례리·구간리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면의 11개 리와 입내면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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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자연마을인 단사(丹沙)와 면천(綿川)에서 ‘단’자와 ‘천’자를 따 단천(丹川)이 되었다. 단사는 마을 뒤에 붉은 점토질의 산맥이 뻗어 있고 강가의 자갈이 연분홍빛인 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면천은 기후가 항상 온화하여 목화 재배지로 적합한 곳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말 예안면과 의동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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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낙동강이 흘러 나가는 모양이 단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주위의 흙빛이 붉고 못이 있어서 단지(丹池)라고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단호(丹湖)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듯하다. 조선시대 말에 서선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현과 오미를 병합하여 단호리라 하고 풍산읍에 편입되었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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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법룡사(法龍寺, 일명 한절) 법당 뒤 당집 북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당북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동(玉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팔굉정5정목(八紘町5丁目)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당북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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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지례동과 지동 사이 큰 골짜기 중심에 위치하여 골이 깊어 한실이라고 하였으며, 한자 표기로 대곡(大谷)이라 하였다. 또 차가운 물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임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부곡리·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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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신라시대 때 큰 사찰인 도솔사가 있어서 한도솔, 한두실이라 하였다가 대도솔, 대두실이 되었고, 고려 공민왕 때 개목산성을 쌓고 이곳에 소를 두었다고 하여 대두소라 하였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대두서가 되었다. 대두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중 오동정은 마을 뒷산에 있는 오동나무에 여러 해 동안 기이한 새가 찾아와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 가음곡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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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시대에 큰 절이 위치하고 있어 대사(大寺)라고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송천읍, 조선시대에는 임하현에 속한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길안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청송군 현북면의 대사동을 병합하여 안동군 길안면 대사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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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마을에 지름 3m의 큰 돌이 있으므로 대석동이라 하였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을 일본식 지명인 법상정1정목(法尙町1丁目)에서 법상정5정목까지 다섯 개로 분할하였다가,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법상정2정목이 대석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대석동이 되었다. 2008년 12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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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대현리는 원래 와룡면 서현리에 속한 마을이었다. 서현이란 이름은 서티재 밑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서티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서현(西峴)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대현리라는 이름을 짓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가 없다. 원래는 안동군 와룡면 서현2리에 속하였으나, 1987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안동군 북후면 대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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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1608년 펴낸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도곡촌(道谷村)이라 하며 속명으로 도질질로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 질그릇점이 있었던 까닭으로 돗질, 도질(陶質), 도질질이라 부른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상정 또는 상전은 지세가 중국에 있는 상산(商山)과 비슷하다 하여 상산이라 하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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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도율리의 ‘도’자와 지로리의 ‘로’자를 따 도로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사부골 또는 사부곡은 앞산이 높고 골이 깊어 하천이 길며 암석으로 이루어져 모래가 없어 모래의 지아비란 뜻으로 사부곡이라 하며, 또한 앞 산 줄기가 뱀이 꿈틀거리는 형국이라 하여 사부곡(沙夫谷)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사시나무골(백양동)은 마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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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예안군에 딸린 의인현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의동면(宜東面)이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곳에 있는 도산서원의 이름을 따 도산면이 되었다. 도산면의 지명 유래가 되는 도산(陶山)은 예안 고을의 9곡(曲) 가운데 제4곡과 제5곡 사이에 위치하는 산으로 현재 도산서원이 자리 잡은 부근의 지명이다. 이곳은 예전에 옹기 굽는 가마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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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개척하면서 황무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칼로 베어내고 논을 만들었다고 하여 칼 ‘도(刀)’자와 논 ‘답(畓)’자를 써서 도답촌이라 불렀다. 또한 마을 앞에 내가 흐른다고 하여 나리라고도 불렀으며, 지하수가 풍부하여 도나리라고도 하였다. 후에 한자 표기로 나루 진(津)자를 써서 도진리(道津里)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마사는 예전에 삼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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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자연 경관이 가히 도(道)를 닦을 만한 좋은 곳이라 하여 도촌(道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500년 전 안동인(安東人) 권사빈(權士彬, 1449~1535)이 서후면(西後面) 송파(松坡)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영가지』에는 도촌리가 도기촌(道岐村)으로 나오는데 “도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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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읍성의 동문이 있었으므로 동문거리 또는 동문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에 안동군(安東郡) 안동면 동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동면 동부동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면이 안동읍으로 승격하면서 동부동의 일부를 갈라서 본정1정목(本町一丁目)이라 하였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동문동으로 개칭하였고,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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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의 동쪽에 있어서 동부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쪽에 있던 지역으로 용흥리(龍興里)·운흥리(雲興里)·입석리(立石里)·율곡리(栗谷里)·신정리(新亭里)·원북리(院北里) 등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문내동(東門內洞)·운흥리·서문내동·천리(泉里)·신세리(新世里)·용하리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동부동이 되었다.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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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예전 예안읍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동부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골내는 고려시대 말에 내가 있었고, 만촌은 동부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새터(신기·통시모래)는 골내 남쪽에 1890년경 새로 조성된 마을이며, 세천나들은 마을 가운데로 작은 내가 흐르고, 송티는 송티재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 월천은 조선중기의 학자 월천(月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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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1610년 김동암(金東岩)이란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지역의 생김새가 말을 엎어 놓은 모양과 같다 하여 말산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두산리(두메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두메는 마을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굴암(굴방웃골)은 마을 앞에 구멍 뚫린 바위가 있으며, 마점(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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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두리봉(斗里峯)의 응달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름·만음·원만음이라고도 한다. 약 400년 전 영양남씨(英陽南氏)와 의령옥씨(宜寧玉氏)들이 개척하면서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만음·개곡·서당리·명곡이 통합되어 만음리가 되었다. 뒤로 낮은 산이 있고, 가운데로 백자천과 길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길안면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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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골매의 ‘매’자와 신정의 ‘정’자를 따서 매정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북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골매리·신정리·고정리·지심골·담마가 병합되어 매정리가 되고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가 되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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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향교의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의 이름을 따서 명륜동이라 하였다. 예전에 안동향교가 있던 마을이므로 향교골이라 불렀다. 생긋골이라고도 하였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안막동 일부가 명륜동 일정목이 되었고,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명륜동이 되었다. 1964년 법정동인 명륜동과 신안동이 병합되어 행정동인 명륜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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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상산(上山)에서 위용이 대단한 용마(龍馬)가 태어났는데 이개리(耳開里)에서 귀를 열고 이곳에서 와서 울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말우리라 하였다. 명리는 말우리의 한자 표기이다. 상산은 일명 상산(商山)이라고도 하는데 서후면의 중심이 되는 산이다. 자연마을인 수능골[水陵谷, 일명 쑤능골]은 진골 동쪽 산 너머에 있는 마을로 아무리 가물어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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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목성산(木城山)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목성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한 지역으로 잿골 또는 성야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고,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법상동에서 분리되어 목성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목성동이 되었다. 목성산 밑에 마을이 형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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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미천(眉川)이 산부리를 돌아 흘러 들어가므로 무른개라 하였고, 뒤에 무릉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트골·중산·몽곡·묵느므가 병합되어 무릉리가 되었다. 넓은 들에 자리 잡고 있으며 미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59㎢이며,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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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원래 거묵역(居墨驛)이라 하다가 1500년(연산군 6)에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이 머물게 되면서 이듬해에 묵촌(黙村)으로 개칭하였다. 그 뒤 김계행이 송암폭포(松岩瀑布)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정자 앞으로 냇물이 잔잔히 흐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묵계(黙溪)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에 길안현에 속하였고, 1914년 오락을 병합하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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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물이 너무 차가와서 마을 이름을 한천(寒泉)이라 불렀다. 후에 물이 부족함 없이 많다고 하여 무란기로 부르다가 물한이 되었다. 약 370년 전 선비 강세명(姜世命) 일가가 처음 마을을 형성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곡리와 도진리의 일부가 병합되어 물한리가 되었다. 물한리에서 가장 큰 자연마을인 물한에 연곡으로 넘어가는 아방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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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하였고,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남현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길안현과 임남현을 통합하여 길안면으로 개칭하고, 구수리 일부가 통합되어 배방리가 되어 안동군 길안면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되어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계명산 자락에 마을이 형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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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약 520년 전 선방재 아래에 마을을 개척할 당시 잣나무가 많아 잣나무 ‘백(栢)’자를 써서 백자(栢子)라 하였다. 경주이씨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길안현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길안현과 임남현을 통합하여 길안면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창녕성씨(昌寧成氏), 홍해배씨, 고성이씨, 청주정씨가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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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통일신라시대에 법상사(法尙寺)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安東邑制)가 실시되면서 법상정(法尙町) 1~5정목으로 구분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1·2·4·5정목은 각각 화성동·대석동·광석동·금곡동으로 갈라져 나가고 3정목은 법상동이 되었다. 1964년 3월 14일 동(洞) 기구 개편에 따라 금곡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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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성의 북문이 있었으므로 북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북문거리[北門街] 또는 북문통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 후기 안동부 북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율세동(栗世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율세동 일부를 분할하고 이곳에 있던 태사묘에서 이름을 따서 일본식 지명인 태사정(太師町)이라 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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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안동부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부북(府北, 현 와룡면 서부와 북후면 일대)이라 하였고, 숙종 때 북선면(北先面)에서 분리되면서 나중에 생겼다 하여 북후면(北後面)이라 하였다. 조선 숙종 때 북선면에서 갈라져 나와 북후면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10월 30일 부제(府制)가 공포되고 1914년 3월과 4월 부·군·면의 통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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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말에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지낸 이헌(李軒)이 어지러워지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벼슬을 버린 뒤 고향 영천을 떠나 돌과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분강(汾江) 굽이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는데, 마을을 둘러보니 낙동강 물이 맑게 흐르므로 부내라 하였다. 분천(汾川)은 부내의 한자식 표기이다. 분강촌(汾江村)이라고도 하였다.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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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안리·가야리·도치리·송두리·어석리·안지리를 병합하여 사신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서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안리·가야리·도치리·송두리·어석리·안지리가 병합되어 사신동이 되고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되었다. 1976년 안동댐 준공에 따라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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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사기막·간천리·방신동·원천동의 각 일부와 영주군 천상면 면천동 일부를 병합하고 사기막의 ‘사’자와 간천리의 ‘천’자를 따서 사천리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북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기막·간천리·방신동·원천동의 각 일부와 영주군 천상면 면천동 일부가 병합되어 사천리가 되고 안동군 녹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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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물야동(勿也洞)·산동(山洞), 동후면(東後面) 구접리(九接里)·우곡리(雨谷里)를 병합하고 산동의 ‘산’자와 물야의 ‘물’자를 따서 산야동이라 하였다. 지명과 관련한 기록으로는 『와룡면지(臥龍面誌)』에 “산야동(山野洞)은 옛날에 산동이라 하였고, 가구(佳邱)에서 5리쯤 되는 곳에 있다. 산은 높고 골은 깊다. 물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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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아래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북동쪽으로는 영남산이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5,926㎡이며, 2011년 6월 30일 현재 총 112가구에 224명(남자 109명, 여자 1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동인 중구동 관할이다. 안동시 중심부로서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주요 시설로 신한은행, 우체국, 농협중앙회 등이 있다. 자연마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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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지형이 상아(象牙)처럼 생겨서 상아동이라 하였다. 코끼리 이빨에 해당하는 자리에 큰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 오는데 지금은 빈터로 남아 있다. 1914년 안막동에 편입되었다가 1947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상아동이 되었다. 안막동에서 상아골 쪽으로 넘어가는 곳에 안막재가 있다. 안동시에서 약 2㎞ 떨어져 있으며 지금은 집들이 많이 들어섰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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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지형이 상아처럼 생겨서 상아골 또는 상아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부내면(府內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막동(安幕洞)에 편입되었다.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막동 일부를 분할하여 상아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상아동이 되었다. 영남산(嶺南山)이 신북동(新北洞), 법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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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아곡(阿谷, 일명 아틈실) 위쪽 지역이므로 상아리(일명 웃아틈실)라고 한다. 아곡은 상아리와 하아리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산비탈에 골짜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조선시대에 안동부(安東府) 부남면(府南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숙종(肅宗) 때 부남면이 남선면과 남후면으로 분리되면서 남후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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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안흥동·대석동·옥야동·광석동·당북동·법상동·금곡동·화성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97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흥동·대신동·당북동을 통합하고 안동시의 서쪽 구역에 있다고 하여 서구동이라 하였다. 1983년 안동군 남후면 수상동·수하동과 남선면 정상동·정하동을 안동시에 편입하여 강남동으로 개편하였다. 1997년 행정구역 통합으로 대흥동·대신동·당북동을 합하여 서구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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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의 서쪽에 있던 마을이므로 서부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안막리(安幕里)·삼곡리(三谷里)·천리(泉里)·당북리(堂北里)·북찰리·내거천리·외거천리 등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문내동(西門內洞)과 천리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서부동이 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본정4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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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예안군의 관저동·교촌동·만촌동 각 일부를 병합하면서 예안군 서쪽에 되므로 서부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읍내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안군이 안동군에 통합되고, 관저동·교촌동·만촌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서부리라 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 건설 과정에서 일부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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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옛 예안군 서면의 동현리·사천리·이전리를 병합하고 서면의 3개리라는 뜻으로 서삼리라 하였다. 조선 말기 예안군 서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현리·사천리·이전리가 병합되어 서삼리가 되고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가 되었다. 마을 뒤로 국사봉이 우뚝 서 있고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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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서가재 또는 서가현이라 불리다가 변하여 서가지·서지가 되었다. 서지리는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서가현촌으로 부르다가 후에 서지로 불렀는데 고려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남휘주(南暉珠, 1326~1361)가 처음으로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였고, 그 뒤 직강(直講) 이봉춘(李逢春, 1542~1625)이 이어서 살았다”고 한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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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서티재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서티·서현(西峴)·서현촌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북선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동리(大東里)와 거인리(居仁里) 일부가 병합되어 서현동이 되고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가 되었다. 구릉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위쪽으로 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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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안동부의 서쪽에 있어 부서면이라 하였다가 조선 숙종(肅宗) 때에 서후면이 되었다. 삼한(三韓)에 속하였다가 삼국시대에 신라에 편입되었다. 고려시대에 안동부 서쪽에 있어 부서면(府西面)이라 하였다.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부서면은 용산(龍山)·상계곡(上桂谷)·장가(長嘉)·하계곡(下桂谷)·회곡(檜谷)·수동(水東)·상단지(上丹地)·하단지(下丹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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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 후기 안동군 동후면(東後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석실 또는 석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성동·마일·다리골·사일·원당실 등을 통합하여 석동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곡면에 편입되었고, 1973년 안동댐 건설로 일부 지역이 수몰되면서 월곡면이 폐지됨에 따라 나머지 지역은 임하면(臨河面)에 편입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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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석탑사(石塔寺) 앞에 자연석을 쌓아 올린 탑이 있다고 하여 석탑이 되었다. 자연마을인 감나무골은 감나무가 많아서 붙여졌고, 새터는 석탑암 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졌으며, 압령골은 앞의 내에 오리[鴨]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추곡리와 신전리 일부와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 일부를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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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안동, 무양동, 교촌동, 천전동의 각 일부와 서면 구송동 일부를 병합하여 선안의 ‘선’자와 무양의 ‘무’자를 따 선양리가 되었다. 자연마을 중 독작골은 독을 만들기에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독 만드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있는 큰 잣나무 아래 앉아 독을 만들었다고 한다. 송라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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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기산성 밑에 있는 마을이어서 성곡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상동(龍上洞)에 편입되었다.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용상동 일부를 분리하여 성곡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성곡동이 되었다. 성곡동 위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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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이 마치 성을 이룬 듯한 모습이라 하여 성곡(城谷)이라 불렀다. 자연마을 중 독실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촌간인 박환소(朴還素)·박해립(朴海立) 형제가 피난지를 찾아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의 지형이 독같이 생겨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이름을 독실이라 짓고 마을을 개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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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제동와 마사리, 대사동을 통합하면서 송제동의 ‘송’자와 마사리의 ‘사’자를 따 송사리가 되었다. 조선시대 송사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6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길안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제동, 마사리, 대사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안동군 길안면 송사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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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송천동은 자연마을인 솔뫼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반변천 안쪽에 시냇물이 흐르고 마을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후기 안동군 임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진·답곡, 동후면(東後面) 석동리(石東里) 등을 통합하여 송천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송천동이 되었고,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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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솔티고개가 있어서 송현, 송티[松峙], 솔티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마을 이름에 ‘송(松)’자가 든 곳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마을은 안전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안동부 부내면(府內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호암리(虎岩里)·옥리(玉里), 서선면(西先面) 막곡리(幕谷里)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송현동이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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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수침동 위쪽에 있어 수상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남후면(南後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지동(馬旨洞)·수침동(水沈洞), 남선면(南先面) 강정리 등을 통합하여 수상리가 되었다. 1983년 안동시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수상동이 되었다. 1998년 행정동인 서구동(西區洞) 관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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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수침동(水沈洞) 아래쪽에 있어 수하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남후면(南後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침동·검암동 등을 통합하여 수하리가 되었다. 1983년 안동시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수하동이 되었다. 1998년 행정동인 서구동(西區洞) 관할이 되었다. 야산인 하산이 솟아 있고,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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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앞 들 가운데 납(원숭이의 옛말)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납돌 또는 신석(申石)이라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피난을 가던 도중 길이 없어서 말 위에서 내린 곳이라 하여 낙들[落坪]이라 했다고 전하는데, 약 500년 전에 원씨(元氏)가 처음 마을에 들어와 이름을 납들로 바꾸어 불렀다고도 한다. 1896년 지방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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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마을에 새 절이 있어 신세동 또는 새절골·새적골·신사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상리(龍上里)·용하리·율세리(栗世里)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신세동이 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2지구로 분할하여 일본식 지명인 신세정(新世町)과 영남정(嶺南町)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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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막동에서 독립하여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신안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막동(安幕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명륜정2정목(明倫町2丁目)이 되었고,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안막동에서 분리·독립하여 신안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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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주위에 참나무 숲이 많이 우거져 있다고 하여 섶나무 ‘신(薪)’자를 써서 신전(薪田)이라 하였다. 1540년경 유씨(劉氏)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고, 1600년경에 예천임씨(醴泉林氏)가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음리를 병합하여 안동군 북후면 신전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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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방하, 성천, 신기, 호암, 이현, 효잠, 삼대, 문평, 주곡, 안흥리에서 신기의 ‘신’자와 문평의 ‘평’자를 따 신평리가 되었다. 신기는 신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본래는 벌판이 있었는데 1914년 서면과 북면을 병합하여 녹전면으로 개칭하고 이곳에 면사무소와 지서를 지으면서 마을이 새로 생겼다 하여 신기 혹은 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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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시대 윤씨(尹氏)가 마을을 개척하여 망실(望實)이라 칭하고 살아오다가 마을이 운수가 없어 쇠퇴해가자 한 노승이 신흥(新興)으로 이름을 고치면 부유한 마을이 된다 하여 신흥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후 부유한 마을이 되었으며, 지금도 윤씨들이 많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한편으로는 기룡산 밑 골짜기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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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막동은 자연마을인 안막골(일명 안막곡)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7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며질리를 통합하여 안막동이 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안막동을 일본식 지명인 안막정(安幕町)·명륜1정목(明倫1丁目)·명륜2정목으로 분리하였고,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안막정이 안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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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대흥동 관할이었다가 행정동 통합으로 1997년부터 신설된 서구동의 관할이 되었다. 안흥동 아래로 낙동강이 흐른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19,766㎡이며, 2011년 6월 30일 현재 총 473가구에 964명(남자 459명, 여자 50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동인 서구동 관할이다. 도로변은 상가이고 마을 안쪽은 주택지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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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1700년경 한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큰 못이 있고 주위에 우거진 숲이 있어 늪실이라 불렀다고 한다. 연곡(蓮谷)이란 명칭은 큰 못에 연꽃이 피어서 유래된 이름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자연마을 중 종실(鍾室)은 늪실의 북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의 지형이 쇠로 만든 종과 같이 생겼다 하여 종실이라고 부른다. 또는 마을 뒷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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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약 360년 전 남복수(南復壽)란 사람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뒷산에 오동나무가 무성하였는데, 까치들이 오동나무 가지마다 둥지를 틀어 까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므로 남복수가 호를 오음(梧陰)이라 하고, 마을 이름을 오상(梧峠)이라 한 데서 오산리가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부 부북면에 속하였다가 북후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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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오천리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가 뿌리 내려 사는 마을이다. 광산김씨는 원래 전라도 광산의 토성(土姓)으로 고려 후기 중앙 관계에 진출하면서 명문으로 발돋움하였다. 그 한 파가 경상도 안동으로 옮겨 와 풍천의 구담(九潭), 와룡의 가구(佳邱), 예안의 오천 등에 세거하여 왔다. 광산김씨 오천리 입향조는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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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옛 안동부의 옥(獄)이 있던 곳이라 하여 옥거리·옥마·옥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거리와 안기리(安奇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안동군 옥동(玉洞)이 되었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옥동정(玉洞町)으로 바뀌었고,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 방침에 따라 다시 옥동이 되었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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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의 옥(獄)이 있었다고 하여 옥거리 또는 옥리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동(玉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옥동 일부를 분리하여 일본식 지명인 8굉정4정목(八紘町4丁目)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옥야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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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옥정동은 자연마을인 신정리에 맑고 큰 우물인 옥정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우물은 감리교회 정문 맞은편 집과 농협중앙회 앞 음식의 거리 입구 부근의 개천, 그리고 옛 군청 앞에 있었다고 한다. 옥정은 밤에도 물밑이 훤하게 밝아서 어두운 한밤중에도 물을 기를 수 있었고, 날이 가물어 시내의 모든 샘물이 말라도 늘 물이 풍족하게 넘쳐 멀리 법석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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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이황이 엮은 「온계전거사적(溫溪奠居事蹟)」에 따르면, 할아버지 이계양은 처음 예안현 동쪽 부라촌(浮羅村, 지금의 예안면 부포리)에 살았는데 봉화현 교도(奉化縣敎導)가 되어 봉화로 가는 길에 온계를 지나게 되었다. 이곳의 아름다운 산수에 취해 이리저리 거닐다가 신라현(新羅峴) 고개에 이르러 잠깐 쉬었는데 고개를 넘던 한 승려와 함께 쉬면서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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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북서쪽으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단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옹전(瓮田)이라 하였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에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샘이 있어 옹기 ‘옹(瓮)’자와 샘 ‘천(泉)’자를 써서 옹천(瓮泉)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선면 거인동의 일부가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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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와룡산(臥龍山, 460m)에서 이름을 취하여 와룡면이라 하였다. 와룡산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큰 제자인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이 “산 모습이 마치 용이 누워 있는 형국과 같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부(安東府) 동쪽과 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 부동(府東)·부북(府北)이라 하였고, 1906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동선면(東先面)·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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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수무(舞袖舞)·중리(中里)·신기(新基)·음지(陰地)·양지(陽地)가 병합되어 안동군 남선면 외하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갈라산에서 발원한 노림천이 마을의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며, 하천이 형성한 갯들과 갈라산 줄기의 구릉지에 집들이 흩어져 있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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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약계(藥溪) 권순기(權舜紀)가 마을 뒷산을 보고, 용이 누운 형상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남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전동·하국동 일부를 통합하여 용계리라 하고 안동군 길안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됨에 따라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가 되었다. 원래 한밭·원용계·도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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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용상동의 옛 이름은 마평(馬坪)으로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안동에 피난 왔을 때 기산(岐山)에 성을 쌓고 이곳에서 말을 먹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뜰·맛들이라고도 한다. 또 조선 전기의 재상 맹사성(孟思誠)이 안동부사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비만 오면 낙동강 가의 제방이 유실되었다. 하루는 마씨(馬氏) 성을 가진 사람의 꿈에 청룡(靑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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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지대가 높아 용두산과 국망봉 사이 골짜기에 항상 구름이 서려 있어 구름실·구래실·구레실이라 하였다. 운곡(雲谷)은 구름실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의서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곡·도곡·황정이 병합되어 운곡동이 되고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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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1947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기동(安奇洞) 일부를 분할하여 안동읍 운안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운안동이 되었다. 1997년 행정동인 평화동(平和洞) 관할이 되었다. 고개로 열리재, 골짜기로 장구석 등이 있다. 1983~1984년, 1986~1987년에 택지가 조성되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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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운흥동은 자연마을인 운흥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운흥사(雲興寺)가 있어 운흥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 지역에 속한 운흥리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8굉정1정목(八紘町1丁目)이 되었고,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운흥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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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노암리·노림리·원리·토파동·외하동을 통합하면서 원리와 노림리에서 ‘원’자와 ‘임’자를 따 원림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노암은 권씨가 일직에서 이주하여 와 살 때 마을 이름에 ‘암(巖)’자를 쓰면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일명 원리)은 1653년(효종 4) 분지(賁址) 남치리(南致利)를 배향하기 위한 노림서원(魯林書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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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원당리·어리·길명리·오천동·구천리를 통합하면서 원당리와 오천동에서 ‘원’자와 ‘천’자를 따 원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새터는 광복 후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구억마(일명 꿩마)는 옛날 구억만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후에는 뒷산에 꿩이 많이 서식한다 하여 꿩마라고도 하였다. 원당(일명 원당이·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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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원촌동·천곡동·이곡리를 통합하면서 원촌동과 천곡동에서 ‘원’자와 ‘천’자를 따 원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내살미는 원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흐르는 낙동강이 수려하고 넓은 강변에 쌓인 모래가 정결하고 광채가 아름답다 하여 예로부터 천사미라고 하였으며, 천사·천곡이라고도 하였다. 원촌(일명 원원천(原遠川)·원원대(遠遠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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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동산마에 있는 동산을 중심으로 반달처럼 생긴 계단식 밭이 있어 월전(月田, 일명 달밭)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큰마(일명 대촌)는 임진왜란 때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머물렀다고 전해지며, 김학달(金鶴達)과 이여송(李如松)의 원군이 왔을 때 피난민이 모여 300가구 정도의 큰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평(庫坪)은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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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율세동은 자연마을인 밤적골(일명 밤절골, 율세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세리(新世里)와 안막리(安幕里)의 일부를 통합하여 율세동이 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앵정(櫻町)·태사정(太師町)·율세정(栗世町) 등으로 분할되었다가 1947년 일제 잔재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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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옛 행정구역인 의서면의 첫 동네라는 뜻으로 의일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효잠(孝岑)은 효잠재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제비실[일명 연곡(燕谷)]은 의일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지형이 제비집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웃제비실(일명 상연곡)과 아랫제비실(일명 하연곡)로 나누어져 있다. 매정(梅亭·梅汀)은 마을 앞 냇가에 매화낙지형(梅花落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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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의인리와 섬촌을 통합하면서 ‘의(宜)’자와 ‘촌(村)’자를 따 의촌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섬촌(일명 섬마)은 낙동강이 두 갈래로 흘러 마을이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의인(宜仁)은 어진[仁]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시대 말에 예안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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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상산(商山)의 용소(龍沼)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이곳에 와서 귀가 열렸다 하여 귀여리(일명 궤리)라 하고, 한자로는 이개리(耳開里)로 표기하였다. 자연마을인 웃귀여리(일명 웃마·상이개(上耳開))는 이개리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와우실[臥牛谷]은 지형이 큰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보현(普峴, 일명 보연(普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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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이화어(伊化於)·이화어(伊火於)·익우촌(益友村)·천동촌·이계로 불리다가 1914년 이우리와 황새골을 통합하면서 이우리의 위쪽에 있으므로 이상(伊上)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도가못은 도가에서 수리용으로 만든 못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샘골(일명 천동(泉洞)·천곡(泉谷)·한샘골)은 좋은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정월 대보름에 그 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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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이 두 개 있어 두시내·두서천이라 하다가 이송천으로 변하였다. 자연마을인 까치개(일명 작포(鵲浦))는 나무숲에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까치 떼들이 많이 모여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골(일명 양지곡)은 바람이 없고 남향이어서 볕이 잘 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물골(일명 웅골)은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항상 일정한 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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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이천동(泥川洞)은 마을에 진흙이 많고 진흙의 질이 좋아서 도기(陶器)를 만들었다고 하여 도천이라 하다가 이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안동부 부내면(府內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우현동(斗牛峴洞), 북선면(北先面) 이하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이천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이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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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이곡동·하신석리·천평동·평지리를 통합하면서 이곡동과 천평동에서 ‘이’자와 ‘천’자를 따 이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뱁실(일명 이곡)은 이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한가운데에 아주 큰 배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샘들[泉坪]은 마을에 큰 우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원래 부남면에 속했다가, 숙종 때 남선면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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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익우촌으로 불리다가 1914년 구로동·왕상곡(旺祥谷)·율미곡(栗美谷)·미월(美月)·서지리의 일부를 통합하면서 이우리 아래쪽에 있으므로 이하(伊下)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산매골(일명 산막곡)은 예전에 나무를 베기 위한 산막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에 90세가 넘은 노인 아홉 명이 살았다 하여 구로곡(九老谷)이라고도 하였다. 안동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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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장(場)이 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장이 열리지 않는다. 자연마을인 장터(일명 장기·구장터)는 장기리의 바탕이 되는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에는 북후면사무소와 옹천장이 있었다. 1942년 중앙선이 개통되고 옹천역이 설치되면서 면사무소와 시장이 옹천리로 옮겨 갔으므로 장터·장기·구장터라고 부른다. 황새골(일명 황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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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 말에 학림공(鶴林公)이란 사람이 16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정6품 벼슬에 제수된 뒤 덕망과 인품이 널리 알려지자, 재곡의 품(品)을 받은 선비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재품(才品)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인재가 많이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재(才)’자를 ‘자(者)’자로 바꾸어 자품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백현은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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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한양조씨 후손들이 살면서 마을 주변에 모시를 심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급하였으므로 모시밭·저전동(苧田洞)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양지마는 지형이 삼태기 모양으로 되어 있고 정면이 정남향이어서 일 년 내내 온화하고 아늑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마는 조광조(趙光祖)의 난을 피하여 한양조씨가 처음 정착한 마을로, 남쪽에 높은 산이 있어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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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낙동강이 마을을 휘돌아서 흘러가는 풍광을 보고 중국의 저장성[浙江省]과 같다 하여 절강·절강촌(浙江村)이라 하였다. 골짜기가 깊어 예부터 피난민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박실(일명 박곡·박시골)은 지형이 박과 시루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초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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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귀래정 위쪽에 있으므로 정상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남선면(南先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촌(亭村)·옹정곡(瓮井谷)·삼정곡(三井谷)·거부곡(巨夫谷) 등을 통합하여 정상리가 되었다. 1983년 안동시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정상동이 되었다. 1998년 행정동인 서구동(西區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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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귀래정 아래쪽에 있으므로 정하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남선면(南先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다리(遠多里)·내곡동(內谷洞)·신설리(新設里) 등을 통합하여 정하리가 되었다. 1983년 안동시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정하동이 되었다. 1998년 행정동인 서구동(西區洞) 관할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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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주계리는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1526~1586)과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 1539~1617)을 배향한 주계서원(周溪書院)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자연마을인 섯밭은 와룡산(臥龍山) 기슭의 섶나무를 쳐 내고 밭을 일구어 그 터에 마을을 조성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전(薪田)·섶밭밑이라고도 한다. 인두루는 원강이 서쪽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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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둘레에 들이 널찍하게 퍼져 있어, 또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이 두루 평안하다고 하여 두루라 하였고, 한자로는 주촌(周村)으로 표기하였다. 15세기 말 영춘이씨 주하리 입향조인 이유선(李惟善)과 진성인(眞城人) 이정(李禎)이 낙향하여 한 마을에서 함께 늙었으므로 이로촌(二老村)이라고도 하였다. 자연마을인 대밭골은 옛날에 대나무 밭이 있었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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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송음리(松陰里·松音里)·죽전리(竹田里)·능리(陵里)·유빈동(柳殯洞)을 통합하면서 죽전리와 송음리에서 ‘죽’자와 ‘송’자를 따서 죽송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송음은 죽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솔음·소름·소르미라고도 한다. 능리는 죽전 남쪽에 있는 마을로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의 묘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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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남흥·장사리·가장리·석남골·세곡·무학·율세리를 통합할 때 가구들의 한가운데에 해당하므로 중가구(中佳邱)라 하였다. 석남골[石南谷]은 돌이 많고 정남향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실(佳庄室)은 남흥(南興)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약 320년 전 영양남씨와 안동권씨가 개척하면서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였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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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큰 못의 안쪽에 있으므로 지내(池內)·못안이라 하였다. 뒷산의 능선이 잔디를 모은 듯 부드럽다 하여 모산(茅山)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인 소장골은 장수골[長水谷]의 작은 마을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장수골은 장수현감이 처음 여기에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마는 동남향으로 자리 잡아 볕이 잘 들고 따뜻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먹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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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마을에 큰 샘이 있어 천리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한 지역으로 샘골 또는 천리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부동(西部洞)에 편입되었고,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8굉정2정목(8紘町2丁目)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천리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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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개척할 당시 큰 웅덩이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맛이 좋아 천지·샘나루라 하였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올 것이라 하여 성을 쌓았는데 공민왕이 오지 않고 예천군 하리면으로 가 버렸으므로 성을 완성하지 않고 철거한 흔적이 있어 성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자연마을인 새터는 천지리 입구에 있는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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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태리는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농와(聾窩) 이우춘(李遇春, 1673~1748)이 처음 살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태이동촌(台伊洞村)이라고 하였다. 자연마을인 서동골은 지형이 불을 밝히는 초롱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소등촌(所等村)으로 불렀으나 음이 변하여 서동골·서둥골·서도촌(西道村) 등으로 불린다. 합강(合江)은 동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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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왔을 때 태자가 머물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갈 때 이곳에 머물러서 태자리라 하였다는 설과, 왕이 불공을 드려 태자를 낳고 태자사(太子寺)라는 절을 지었으므로 태자·자산이라 하였다는 설도 전해 온다. 자연마을인 지경(地境)은 소정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고려 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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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1357년(공민왕 6) 궁중에서 태를 묻었다 하여 태무지라 하였고 한자로 태장리라 표기하였다. 자연마을인 중태장(中台庄, 일명 중마)은 태장리의 중앙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화원은 1361년(공민왕 10) 경발(慶發)이라는 효자가 화원지(花原池)에 고기를 길러서 부모를 봉양했다 하여 화원·방원(芳原)이라 하였다. 한편 어느 따뜻한 봄날 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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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545년(인종 1) 이황(李滉)이 토계(兎溪)의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庵)을 짓고 토계를 퇴계(退溪)로 고친 후 아호(雅號)로 삼았는데, 후에 ‘토(兎)’자를 음이 같은 ‘토(土)’자로 고쳐서 마을 이름도 토계(土溪)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상계(上溪)는 토계천의 상류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웃토계·웃토끼라고도 한다. 하계(下溪)는 토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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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아틈실[阿谷] 아래쪽에 있으므로 하아리·아래아틈실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남짓골[南池谷]은 남쪽에 못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샘숫골은 약 300년 전 한발이 심하였을 때 식수가 없어 땅을 파니 많은 물이 나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너머는 고개 너머에 마을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낙동강에 인접하며 토지가 비옥하고 채소가 잘되기로 손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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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내리·가현·도율을 통합하면서 가현과 내리의 이름을 따서 현내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내리는 동구 밖에 큰 소(沼)가 있었는데 그 소 안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 안에 있다고 하여 솔안이라고도 하였다. 더티[加峴]는 내리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더티고개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돗밤실[道栗]은 더티 북동쪽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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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길안현의 현청이 있던 곳이어서 현하리라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두현, 조선시대 초에는 두곡으로 불렸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현골은 현하리와 같이 길안현의 현청이 있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간마(일명 중리)는 응골과 현골의 중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응골은 삽실에서 현하1리로 넘어오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팽나무정이(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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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목성산(木城山) 밑에 있어 화성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 지역에 속했던 곳으로 잿골 또는 성지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고,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법상동 일부를 분할하여 일본식 지명인 법상정1정목(法尙町1丁目)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화성동이 되었고,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