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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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경오(敬五), 호는 도은(陶隱). 예조참판 강징(姜澂)의 현손, 사간원정언 강억(姜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응교를 지낸 강덕서(姜德瑞),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강윤조(姜胤祖),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숙(趙璹)의 딸, 처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참봉 홍남욱(洪南勖)의 딸이다. 형이 잠은(潛隱) 강흡(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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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정오(正吾), 호는 잠은(潛隱)·이오당(二吾堂)·잠노(潛老). 할아버지는 홍문관응교를 지낸 강덕서(姜德瑞),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강윤조(姜胤祖),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숙(趙璹)의 딸이다. 동생이 도은(陶隱) 강각(姜恪)이다. 강흡은 한양(漢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김영남으로부터 『사략(史略)』을 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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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계흠(季欽), 호는 소무헌(素無軒). 금난수(琴蘭秀)의 8세손으로 증조부는 금형(琴瀅), 할아버지는 금주석(琴疇錫), 아버지는 금여옥(琴汝玉),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백부 금여직(琴汝稷)에게 입양되었다. 금서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제자인 이야순(李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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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연(景淵), 호는 하재(下齋). 아버지는 김필순(金弼淳)이고, 어머니는 여주이씨로 첨지중추부사 이정진(李鼎搢)의 딸이다. 부인은 한양조씨로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후손인 학파(鶴坡) 조성복(趙星復)의 딸이다. 김우수(金遇洙, 1804~1877)는 어려서부터 의표(儀表)가 단정하였고, 겨우 말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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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흠약(欽若), 호는 함벽당(涵碧堂). 할아버지는 류숭(柳嵩), 아버지는 류동휘(柳東輝),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조정형(趙廷珩)의 딸이다. 류경시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 함벽당(涵碧堂)에서 태어났으며 이유장(李惟樟)과 이현일(李玄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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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한국의 전통 농업노동요. 「안동 저전동 농요」는 저전동 농민들이 벌모를 심고, 호미로 논을 매던 시기에 노동의 피로를 덜고 신명을 북돋우기 위해 불렀던 이 지방 특유의 노동요이다. 「모찌기 소리」, 「모심기 소리」, 「애벌 논매기 소리」, 「두불 논매기 소리」, 「타작 소리」, 「치야 칭칭」 등으로 이루어진다. 초대 예능보유자 조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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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한양조씨 후손들이 살면서 마을 주변에 모시를 심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급하였으므로 모시밭·저전동(苧田洞)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양지마는 지형이 삼태기 모양으로 되어 있고 정면이 정남향이어서 일 년 내내 온화하고 아늑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마는 조광조(趙光祖)의 난을 피하여 한양조씨가 처음 정착한 마을로, 남쪽에 높은 산이 있어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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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에 있는 한양조씨 동성마을. 예부터 모시밭이 많았고 모시를 짜는 부인들이 많아서 ‘모시밭’이라 하였다. 저전(苧田)은 모시밭의 한자 표기이다. 1519년 기묘사화 때 한양조씨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조종(趙琮)의 아들 5형제가 영주로 몸을 피하였는데, 이후 넷째 아들 조신완(趙信琬)은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에 정착하여 세거하였다. 조신완의 증손자인 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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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한양조씨는 1600년대 중엽 조적(趙績)이 영주에서 안동으로 옮긴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한양조씨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고종 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의 현손 조인벽(趙仁壁) 때부터이다. 조인벽의 아버지는 용성총관을 지내고 홍건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용성부원군(龍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