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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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중(孝仲), 호는 망와(忘窩). 할아버지는 사의(司議) 김농(金農)이고,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부인은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딸이다. 김대현의 8형제 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자 인조가 팔련오계지미라 크게 칭찬하고 마을 이름을 오미동(현 풍산읍 오미리)이라 사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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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공직(公直), 호는 잠암(潛庵)·유경당(幽敬堂). 증조부는 김종석(金從石)이고, 할아버지는 군수 김휘산(金徽山)이다. 아버지는 공조참판을 지낸 김양진(金楊震)이며, 어머니는 양천허씨로 허서(許瑞)의 딸이다. 김의정(金義貞, 1495~1547)은 재기가 뛰어나 8세에 글을 지었으며, 약관에 이미 문장이 성취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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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형성된 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1930년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의 마을 총수는 28,336개로 이 가운데 14,672개가 동성마을이었다. 우리의 전통마을 가운데 반 이상이 동성마을인 셈이다. 동성마을은 동족부락(同族部落)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1930년대부터 주로 일본인 학자들이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용어이다. 그러나 동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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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각종 잔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기록화. 안동 지역에 전하는 대표적인 연회도(宴會圖)로는 풍천면 오미마을에서 발견된 풍산김씨의 내력이 실려 있는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이 있다. 『세전서화첩』에 수록되어 있는 주요 연회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2화 「허백당공 동도문희연도」는 김양진이 김안로의 배척을 받아 1526년(중종 21) 경주부윤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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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집성촌락이 그러하듯 오미리에도 고색창연한 와가(瓦家)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허백당(虛白堂) 종택을 비롯하여 참봉댁과 영감댁은 오미리의 위상을 드높이는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8호로 지정된 허백당 종택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선조 대인 1576년에 김대현(金大賢)이 부친인 김농(金農)의 명을 받들어 지금의 영감댁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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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숭조(金崇祖)는 1598년 김대현과 모친 전주이씨 사이에 8남으로 태어나 5세 때 부친을 여의고 큰형인 김봉조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였다. 1624년 27세 되던 해에 진사시에 합격을 하고 나서, 형들의 권유로 대과를 목표 삼아 성균관에 유학했으나 2년 뒤 어머니가 숨을 거두자 낙담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모친의 3년상을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 성균관에서 대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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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 풍산김씨 문중에 전해 오는 것으로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이 있다. 2009년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있는 『세전서화첩』의 편찬자는 김중휴(金重休)로, 1797년 오미리에서 태어나서 1863년에 숨을 거두었다. 『세전서화첩』은 건(乾)과 곤(坤)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로 26.5㎝, 세로 36.0㎝이다. 수록된 그림은 풍산김씨 10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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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金大賢)은 1553년 부친 김농(金農)과 모친 안동권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서 1602년 숨을 거두었다. 호는 유연당(悠然堂)으로, 허백당(虛白堂) 김양진(金楊震)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김대현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면모를 보이면서 성장하였다. 당시 한양에서 살았던 그는 조선 전기 성리학의 대가로 알려진 우계(牛溪) 성혼(成渾)으로부터 글을 배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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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적을 시조로 하고 김자순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풍산김씨는 조선 초 김자순(金子純)이 왕자의 난을 피해 풍산현 오릉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金文迪)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나라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풍산백(豊山伯)에 봉군되었다. 김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