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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거부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54
한자 神社參拜拒否運動
영어음역 Sinsa Chambae Geobu Undong
영어의미역 Resistance to Shinto Worship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30년대 후반
관련인물/단체 이원영(李源永)|이원세(李源世)|박충락(朴忠洛)|전계원(田桂元)|권수영(權秀盈)|이수영(李壽永)|이수원(李壽元)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있었던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한 운동.

[역사적 배경]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가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학생은 물론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이에 맞선 거부·투쟁운동이 전개되었다.

[발단]

일제의 집요한 정책으로 기독교가 일제의 황민화 정책을 받아들이자 이에 반대하는 교역자와 신도들이 서로 연대하여 조직적 집단적 저항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경과]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신사참배거부 운동은 이원영(李源永) 목사를 구심점으로 하여 이원영의 동생인 이원세(李源世)·박충락(朴忠洛)·전계원(田桂元)·권수영(權秀盈)·이수영(李壽永)·이수원(李壽元) 등이 주도하였다. 특히 1886년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에서 태어난 이원영퇴계 이황(李滉)의 14세손으로 일제강점기 다섯 차례나 체포되었다. 첫 번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 시위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고, 나머지 네 차례는 1939년 5월 이후 신사참배거부로 체포되었다.

[의의와 평가]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한 신사참배거부운동은 당시 일제의 억압과 회유에 굴복하여 변절된 제도권 교회의 변질을 경고하고 이에 맞서 투쟁하였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일본적 체제를 부정하고, 일제의 이른바 황민화 정책과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민족사적 의의도 일정하게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일제는 신사참배거부 운동자를 모두 민족주의자로 규정하여 「치안유지법」, 「보안법」, 불경죄 등을 적용하여 탄압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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