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 연맹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480
한자 眞友聯盟事件
이칭/별칭 진우 연맹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정의]

1920년대 무정부주의 운동의 대표적 항일 운동 비밀 결사에 의성 지역 인사가 연루된 사건.

[개설]

1920년대 중반 식민지 조선에서는 새로운 사상인 무정부주의가 의성 지역을 비롯한 각 지역에 파급되었다. 이를 계기로 진우 연맹 사건이 발생하여 의성군의 무정부주의자인 박석홍이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역사적 배경]

무정부주의 운동은 모든 제도화된 정치 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키즘이라 불리는데, 이 말은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에서 유래되었다.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항일 민족 운동의 한 형태로 무정부 운동이 전개되었다. 1922년 일본에서는 박열(朴烈)이 중심이 된 풍뢰회(風雷會)가 결성되었고, 1925년 국내 대구에서는 진우 연맹(眞友聯盟)이 결성되었다.

[경과]

1923년 박열이 그의 일본인 애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今子文子]와 함께 일왕을 암살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5년 9월 일본의 박열 사건에 연루되어 불기소 처분을 받은 서동성(徐東星)이 고향인 대구로 돌아와 지역의 신재모(申宰模), 방한상(方漢相), 서학이(徐學伊), 정명준(鄭命俊), 하종건(河鍾健), 김소성(金召成) 등과 만나 진우 연맹을 만들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대구에서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던 인사들이었다. 신재모는 대구 노동 공제회와 대구 노동 친목회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방한상은 대구 청년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서학이는 바로 몇 달 전에 전 조선 민중 운동자 대회에 연루되어 탄압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방한상은 1925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무정부주의자와 만나는 등 3개월가량 머물러 있었다. 1926년 4월 일본의 무정부주의자 구리하라[栗原一南]가 박열의 사형이 집행될 경우의 시신 인도와 가네코의 입적 문제로 박열의 형 박정식을 만나러 왔을 때, 진우 연맹신재모·서학이·마명·우해룡·정명준 등이 그를 맞이하였다. 이 때 진우 연맹 회원들은 구리하라로부터 일본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색 청년 연맹(黑色 靑年 聯盟)에 가입할 것을 권유받았다.

1926년 4월 12일과 13일에 연이어 진우 연맹 회원들은 신재모의 집에 모여, 흑색 청년 연맹의 가입 문제를 놓고 토의를 한 결과 흑색 청년 연맹과 제휴하여 같이 무력 행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곧 부호들을 대상으로 활동 자금을 확보하고, 도청·경찰서·법원 등 일제의 지배 기구와 일본인 중심의 상권이 형성된 시가를 파괴할 것에 뜻을 모았다. 또 도지사나 경찰 부장 등 일제 주요 권력자를 암살할 것도 함께 계획하였다. 동시에 중국 상하이에 있는 고백성(高白性)과 연락하여 당시 추진 중에 있던 극동 무정부주의 총연맹이 성립되면 시급히 가맹하기로 하였다.

1920년대 의성군에서는 무정부주의를 수용한 박석홍(朴錫洪)비안면에 거주하고 있었다. 의성군은 사회 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곳이었으나, 전통적으로 농지가 많이 분포된 비안면에서 일제의 농정과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상의 한 형태인 무정부주의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진우 연맹 사건이 터지자 1929년까지 일제 관헌의 철저한 감시를 받아야 했다. 박석홍과 같이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된 사람은 봉화의 권경섭, 선산의 남해욱·육홍균·박기홍·신준원, 김천의 김영, 대구의 신경수 등이었다.

[의의와 평가]

1926년 5월 말 일제 관헌은 진우 연맹을 예의 주시하는 가운데 맹원 중의 한 사람이 마약과 관계되었다는 것을 구실로 관련자들을 체포하여 탄압하였다. 그리하여 15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어 최고 5년에서 최저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지역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제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 탄압을 받아야 했다.

1920년대 진우 연맹은 일제의 탄압에 맞선 국내 무정부주의자들의 대표적 항일 독립운동 단체였다. 그렇지만 진우 연맹은 전국적 단체로 확대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 관헌의 탄압을 받아 해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우 연맹은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을 위한 다양한 사상의 한 형태였고, 여기에 의성군의 박석홍도 함께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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