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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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의성 둘러보기,역사의 고장 의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집필자 | 이형기 |
[경상북도의 지리적 중심, 의성]
의성군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위치한다. 경상북도 내 다른 시·군과는 직선거리가 울진군을 제외하면 모두가 80㎞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육로상의 거리도 도로망의 발달로 점차 단축되고 있다. 또한 중앙선 철도가 금성면, 의성읍, 단촌면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중앙고속도로는 봉양면, 안평면을 통과하면서 봉양면 도원리에 의성 IC가 설치되어 있다. 의성 지역에는 예부터 비안현, 단밀현, 다인현이 있어서 이 현들이 조선 후기까지도 상주, 예천에 영속되기도 하고 의성에 영속되기도 하여 그곳 문화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행정적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송군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상주시, 남쪽으로 구미시·군위군, 북쪽으로는 안동시·예천군과 각각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의성 지역의 자연환경을 보면 동부 지역의 점곡면·옥산면·가음면·춘산면·금성면 일대는 보현산맥에서 뻗어 내린 줄기와 황학산·비봉산·선암산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 산악 지대이고 서남부 지역의 안평면·안계면·단밀면·다인면·구천면·비안면 일대는 낙동강과 위천 유역으로 하상 평야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많다.
하천은 위천과 미천을 주류로 하며 이들 하천과 그 외 하천이 모두 낙동강 상류로 흘러든다. 위천은 군위군 팔공산에서 북류하며 의성군 비안면 쌍계천으로 흘러든 뒤 비안면·단북면 등을 거쳐서 흐르다가 단밀면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미천은 동부 산악 지대인 안동시 경계 황학산에서 발원하며 의성군 옥산면·점곡면·단촌면을 관류해 단촌면 세촌리와 안동시 일직면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쌍계천은 춘산면 신흥리 산두봉(山頭峰)[719m]에서 발원해 춘산면·가음면·금성면 등 3개 면을 관류하는 하천이다. 이외에도 신평면 덕봉리에서 시작되어 북서류하는 광산천, 안사면에서 시작되어 만리리·월소리·쌍호리를 거쳐 북류하는 신평천, 다인면 외정리에서 시작되는 봉정천, 다인면 덕지리에서 시작되는 망지천, 안평면 신안리에서 시작되는 신안천 등이 모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그 중 위천 유역에는 경상북도 3대 평야 중의 하나인 안계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계천 저수지·조성 저수지 등이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유교 문화가 꽃핀 안동, 청송, 예천 등에 둘러싸여 있고, 너른 안계평야를 가지고 있는 의성군의 인문 지리적 환경 때문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면 의성 군민들은 ‘순박(淳朴)하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아무래도 경상북도 지역 최대의 곡창 지대가 의성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풍요로운 생산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의성 지역의 역사]
의성 지역의 청동기 시대에는 활발히 사회가 분화되어 조문국이 형성되었다. 조문국은 185년(신라 벌휴왕 2) 신라에 병합되어 조문군으로 편성되었으며, 514년(지증왕 15)에는 안계면 지역에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에 중심 지역에는 문소군(聞韶郡)이, 서부에는 비옥현(比屋縣)·안현현(安賢縣)·단밀현이 설치되었고, 문소군이 이들과 진보현을 다스렸다. 이때 다인면 지역은 달이현(達已縣)에서 다인현(多仁縣)으로 개명되어 상주에 속하였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 지역은 군사상 요지로서 왕건과 견훤의 쟁탈 대상이 되었는데, 이 지역의 호족 홍술(洪術)이 왕건에게 귀부해 의성부(義城府)가 설치되어 우대받았지만, 929년(고려 태조 12) 견훤의 침공을 받아 홍술이 죽임을 당하였다. 1018년(현종 9) 지방 제도 개편시 의성부와 의흥군은 안동부에 속했고, 비옥현 및 이 때 이름이 안현현에서 바뀐 안정현(安定縣)은 상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초에도 세 지역은 행정 구역을 그대로 유지했으나 의흥현은 1413년(태종 13) 현감이 임명되었고, 비옥현은 1421년(세종 3) 안정현과 합쳐서 안비현(安比縣)으로 되었고, 1423년(세종 5)에 비안현(比安縣)으로 개명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전국이 23부로 편성되자 세 지역 모두 군으로 되어 대구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경상북도에 소속되어 의성군은 2등군, 비안군·의흥군은 4등군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안군·의흥군은 의성군에 병합되어 현재의 의성군으로 발전되었으며, 1940년 의성면이 의성읍으로 승격되었다.
[의성 지역의 대표적 자연유산 빙혈]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현의 동남쪽 40리에 빙산(氷山)이 있으며, 빙산 큰 바위아래 풍혈(風穴)이 있고 또 바위 바닥 아래에는 빙혈(氷穴)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빙혈이 있는 빙계계곡은 크고 깊어 ‘지(之)’자의 모습로 몇 굽이의 곡류를 이루며 흘러 ‘경북8승’의 하나로 꼽힐 만큼 주위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방랑 시인 김삿갓은 이곳을 돌아보고 “굽이치는 개울물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떨어질 듯 매달린 바위틈에 꽃이 드리워졌구나.”라고 했다.
계곡 한쪽 언덕에 큰 바위가 있는데 아래쪽 구멍인 빙혈은 한여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평균 영상 3도의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위쪽 구멍인 풍혈은 여름철에는 찬바람이 나오고 겨울철엔 더운 바람이 나오는 계절을 잊은 오묘한 자연 현상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 빙혈과 풍혈 곁 평평한 곳에 빙산사지 오층 석탑이 서 있다. 1958년 국보로 지정됐다가 1963년 국보 재사정 때 제외되어 현재는 보물 제3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층 석탑 옆에는 인암(人岩)이라는 큰 바위가 있다. 한낮 햇빛이 바위 전면에 강하게 내리쬐면 ‘인(人)’자 모양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한다.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개울 가운데 유난히 커 보이는 바위에 ‘빙계동(氷溪洞)’이라 새겨져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이곳을 지나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썼다는 전설이 있다. 그 옆에 놓인 큰 바위 위에는 ‘경북팔승지일(慶北八勝之一)’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가 자리잡고 있다. 계곡 위 불정봉 꼭대기에 움푹 파인 데가 있는데, 주민들은 이를 불정(佛頂)이라고 부른다. 옛날 부처와 용이 서로 물길을 내기 위해 다툴 때 부처가 찍은 쇠스랑 자국이라고 한다. 또 근처 개울가에 길이 수십 미터의 웅덩이가 있는데 이곳은 부처와 다툰 용의 머리가 부딪혀 파인 곳이란 전설이 있다. 지금은 오랫동안 개울물이 흐르지 않아 물웅덩이가 거의 없어졌지만 용추(龍湫)라 한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의성]
의성 지역은 경상북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선사와 고대, 불교와 유교 문화가 혼재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사 시대부터 고대 사회의 유적 이후, 삼국 시대 불교문화가 유입되어 다양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라 석탑의 시원적 양식에 속하는 탑리리 5층 석탑이 의성 지역에 있는 것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잘 드러내어 준다. 이후 조선 시대 들어서 안동, 예천, 상주 지역과 더불어 다양한 유교 문화도 함께 보여주는 그야말로 문화의 보고가 의성 지역인 것이다. 고대 사회부터 의성 지역이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입지가 이러한 문화 양상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1. 선사와 고대문화
의성 지역의 선사시대 대표적 유적으로는 고인돌이 있다. 농경지 개간 등으로 많은 훼손이 있었겠지만 약 190여 기가 산재하고 있다. 분포 현황을 보면, 위천과 쌍계천, 남대천, 미천 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금성면, 봉양면, 비안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대부분 하천 유역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높이 100m이내의 구릉 사면에도 몇 기만 남아 있다.
또한 봉양면 장대동과 금성면 초전동에는 수십 기가 한꺼번에 무리 지어 있고, 1~3열로 배치되어 있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봉양면 장대동에 위치한 것으로 장축 350㎝, 단축 275㎝, 두께 98㎝이며 이와 비슷한 규모의 것이 10여 기에 이른다. 고인돌과 더불어 대표적인 거석 유적인 선돌[立石]도 다인면에 4기, 안계면에 1기, 안평면에 1기, 봉양면에 3기, 옥산면에 3기 등 15기가 남아 있으며, 이 중 군위군 효령면과 경계 지역인 금성면 도경동[선돌마을]의 선돌이 높이 245㎝, 폭 250㎝, 두께 180㎝로 가장 규모가 크다.
삼국 시대의 고분으로서 1960년에 발굴한 바 있는 금성면 탑리리 고분군이 있다. 또한 단촌면 장림리에 있는 석곽분 60여 기가 1980년에 발굴 조사된 바 있으며,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에 걸쳐 조성된 324기의 대규모 고분군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5호로 지정되었다. 금성면 산운리의 금성산에는 금성성지, 의성읍 팔성리에 성산산성지가 있다.
2. 불교문화와 유교 문화
의성 지역의 불교문화는 사찰과 탑으로 대표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신라 681년(신문왕 1) 의상 대사(義湘 大師)에 의해 창건된 고운사(孤雲寺)가 단촌면 구계리에 있다. 처음 이름은 고운사(高雲寺). 신라 말 최치원이 가운루(駕雲樓),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니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바뀌었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면 가운루가 눈에 들어온다. 길이 16m, 높이가 13m에 달하는 3쌍의 긴 기둥이 계곡 바닥에서 거대한 루를 떠받치고 있다. 대웅보전은 최근 중창 불사로 단청의 색도 곱고 웅장하다. 상대적으로 예스러움은 없다. 대신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御牒)을 봉안한 연수전(延壽殿)이 눅눅한 세월의 티를 팍팍 낸다. 만세문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에 사방 담을 쌓은 가구식 기단에 겹처마 형식의 팔작 지붕이다. 사찰의 여타 전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숭유 억불 시대에 사찰 내에 왕실과 관련된 건물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약사전 안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호]이 있다. 높이 79㎝의 불상으로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다. 4각형 얼굴에 인중이 뚜렷하고, 작은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다인면 봉정리의 대곡사(大谷寺)는 고려 공민왕 때 지공 선사(指空 禪師)와 나옹 화상(懶翁 和尙)이 창건한 절로서 대곡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과 대곡사 범종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1호]이 경내에 있다. 이 밖에도 신라 시대 의상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수정사(水淨寺)·운람사(雲嵐寺)·지장사(地藏寺) 등이 있다.
불탑으로는 국보로 지정된 금성면에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국보 제77호]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단촌면의 의성 관덕동 삼층 석탑[보물 제188호], 구계리 고운사 삼층 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춘산면 빙계리의 의성 빙산사지 오층석탑(義城氷山寺址五層石塔)[보물 제327호], 의성읍의 치선동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호], 옥산면의 금학리 삼층석탑, 비안면의 자락리 삼층석탑, 안사면의 쌍호동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호] 등이 있다.
불상으로는 단촌면 구계리의 고운사석조석가여래좌상(孤雲寺石造釋迦如來坐像)[보물 제246호], 단촌면의 의성 관덕동 석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비안면 자락동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6호], 의성 장춘리 비로자나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4호], 단북면의 의성정안동석조여래입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5호], 안사면의 의성 월소동 석조비로사나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의성 안사동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비안면 석제리의 만장사 석조여래좌상(卍長寺 石造如來坐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2호], 구천면의 의성 내산리 석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5호] 등이 있다.
유교 문화로서는 건축물이 대표적인데 의성읍 도동리에 의성향교(義城鄕校)[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금성면 산운리의 의성 소우당(義城 素宇堂)[중요민속문화재 제237호], 금성면 산운리의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4호], 의성 점우당(義城 漸于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5호], 점곡면 윤암리의 의성 소계당(義城 小溪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6호], 안계면 교촌리에 비안향교, 춘산면 대사리에 덕양서원, 빙계리에 빙계서원, 단밀면 속암리에 속수서원, 사곡면 오상리에 동강서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5호], 봉양면 구미리에 오봉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7호], 금성면 산운리에 학록정사(鶴麓精舍)[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2호], 점곡면 서변리에 영귀정(詠歸亭)[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4호], 사촌리에 의성 만취당(義城 晩翠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9호], 의성읍 원당리 구봉산에 문소루 등이 있다.
[하늘과 맞닿은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
의성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는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국보 제77호]이다. 분황사 모전 석탑과 함께 신라 석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부분적으로 벽돌로 탑을 수법을 모방한 모전(模塼)석탑이다. 우리나라 석탑 문화의 효시로 중국 목탑 형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화강암을 소재로 석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독자적 문화를 창조한 계기를 만들어 준 탑인 것이다. 목탑과 전탑의 기법을 적당히 혼합하여 만든 이 탑은 높이 9.56m, 기단의 폭은 4.51m로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을 본뜬 것으로 여겨지며, 기단은 단층 14석으로 된 지대석과 24석의 면석으로 구성되었고,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 2개씩의 안 기둥이 별석으로 되어 있다. 목탑 양식에 쓰이는 배흘림 기둥이 일층 탑신에 잘 표현되었고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아 지붕을 받치고 있다. 목조 건물의 공포와 같은 수법이다. 남쪽에는 감실을 개설해 공간의 미를 보여준다.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들이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탑사기』에서 탑리리 오층 석탑에 대해 “그 자체로 하나의 조형 의지와 미감을 갖추고 있다”며 “정림사 오층 석탑을 방불케 하는 늘씬한 상승감과 튼실한 기단이 지닌 안정감이 살아나 있으며…[중략]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오롯하게 서 있는 기상이 당당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러한 석탑의 조형은 의성 지역의 풍요로운 생산력과 경상북도 지역의 중앙에 위치하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일찍부터 신라에서 군사적으로도 중요시 하였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 탑은 높은 토축 위에 있어 하늘과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의성의 기품 있는 반촌 사촌마을]
의성읍에서 고운사를 향해 가다 보면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을 지나게 된다. 고가(古家)와 재실(齋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조선 시대 정경을 연상케 한다. 안동 김씨 중시조이자 고려 충렬공 김방경의 5세손인 입향조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이 1392년 터를 잡은 사촌마을은 조선 시대에 46명의 과거 급제와 사마시 합격자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부자보다는 학자들이 많이 태어날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걸맞게 송은 김광수, 만취당 김사원, 천사 김종덕 등 영남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들뿐만 아니라 대과에 13명, 소과에 35명이 합격하는 등 문집과 저서를 낸 분들이 6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마을 서쪽에는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서쪽으로 길게 가로 놓인 가로 숲이 있다.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수령이 400~600년 된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 빼곡하다. 나무의 높이는 20~30m이며 길이도 800m에 이른다. 서애 류성룡의 어머니가 1542년 사촌리 친정집에 다니러 왔다가 이 숲에서 류성룡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다.
사촌마을 외에도 의성군 금성면에 40여 동의 전통 고가옥이 보존되어 있는 양반촌인 산운(山雲)마을이 있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영천 이씨 집성촌으로 마을은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금성산을 뒤에, 비봉산을 옆에 두고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이름은 신라 시대 불교가 융성할 때에 수정계곡 아래 산과 구름이 조화를 이룬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 산운이라 하였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의성의 자연과 문화를 둘러보는 의성읍 둘레길]
하나의 트랜드가 된 걷기 열풍에 따라 전국 각지에는 역사와 문화를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있으며, 의성 지역에도 의성읍 외곽지를 둘러볼 수 있는 아름다운 둘레길이 생겼다. 의성종합운동장을 출발해 구봉공원과 남대천, 남원들과 전통시장을 거쳐 종합 운동장으로 돌아오는 총 길이 7.5㎞의 이 길은 ‘의성읍 둘레길’로 부르는데, 구간별로 무궁화 꽃길, 두충나무 숲길, 벚꽃 길,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꽃길 등 테마 길을 조성하였으며 100m에 이르는 꽃 터널도 설치되어 꽃과 그늘이 있는 산책길로 만들었다.
의성읍 둘레길을 걸으면 냇가의 돌다리를 건너면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고, 다리 밑을 통과하기도 하며, 각양각색의 꽃길을 만나기도 하고, 의성 마늘이 자라고 있는 들판을 지나게 될 뿐만 아니라 남대천에서는 의성의 군조인 왜가리의 우아한 자태도 볼 수 있다. 읍내로 들어서면 전형적인 농촌 소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전통 시장도 방문할 수 있다.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이다.
남대천 변 3만 3000㎡의 대형 화단에는 키 낮은 해바라기와 황화 코스모스 군락지를 조성하여 꽃이 피는 장관을 이룬다. 거기에는 꽃 속을 걸을 수 있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남대천 제방 벚꽃 길에는 의성의 지명 유래와 민속 문화, 구봉산 육곡수와 의성 마늘을 소개하는 안내판 4종이 설치되어 있고 향토 시인들이 의성을 노래한 시와 유명 시인들의 시를 새긴 시판 등 문화 갤러리를 조성하여 의성에 대한 정보와 시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둘레길과 연계해 의성의 명산인 구봉산과 의성의 남쪽 화기(火氣)를 막아 준다는 자라바위, 의성향교를 방문할 수 있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냥 공장도 볼 수 있고, 한여름에도 동계 스포츠 종목인 컬링경기장을 구경할 수 있다.
이 길이 의성 전체를 아우르지는 않고 있어 아쉬움을 주고는 있으나, 점차 확대해 나가면 선사와 고대 문화, 불교와 유교 등의 문화들이 잘 남아 있는 의성 지역을 잘 알려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전통, 의성 지역의 민속놀이]
의성 지역의 민속놀이에는 가마 싸움·기와밟기·줄다리기 등이 있다. 가마 싸움은 약 100~150년 전부터 매년 팔월 한가위에 서당 학생들이 행하던 일명 “가매싸움”이라고 불리는 민속놀이로서 의성읍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아사천 유다리를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어 가마 싸움 준비를 한다. 적기를 많이 빼앗고 상대편의 가마를 먼저 쳐부수면 승리하게 되는데 승자는 적의 기와 가마를 포획하여 개선하면서 관중의 갈채와 환호를 받게 되고 패자는 신발을 벗어서 땅을 치며 원통해 한다. 우리나라 다른 지방의 민속놀이가 주로 어른들에 의해 행해지고 농업·어업과 관련된 것인데 비해, 이것은 서당 학동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특징이 있다. 1906년부터 중단되어 왔던 것을 재현하여 1983년 10월에 제24회 전국 민속 경연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의성 중학교의 학생 중심으로 매년 시연되고 있다.
기와밟기 는 정월 대보름날 저녁달이 뜰 때를 기다려 모군[모으는 사람]이 “동네 처녀들 나오소 개와[기와] 밟으러 가세” 외치며 마을을 누비면 집안에서 처녀들이 나와 의성읍 가운데 위치한 유다리를 경계로 남북으로 대결하는 옛 민속놀이로 상대편의 기마를 먼저 부수거나 기수를 떨어뜨리면 승자가 되는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놀이로 안동 지방의 여자 놀이인 놋다리 밟기와 남자 놀이인 차전놀이[일명 동채싸움]의 두 특징을 합한 듯한 내용이 특징이다.
기와밟기 는 정월 대보름에 여자들에 의해 행해지던 놀이로 ‘꽃게삼’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안동의 놋다리밟기와 비슷한데 그것보다는 좀 더 과격한 것이 특징이다. 기와 밟기 놀이로서 그 해 농사를 점쳤는데 북쪽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남쪽이 이기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줄다리기 는 정월 대보름에 남북으로 나뉘어 넓은 남대천 옆 백사장에서 마을마다 만들어 온 줄을 합쳐 시합한다. 사람이 많을 때는 수만 명이 모여서 힘을 겨루었다. 각 마을에서 가져온 줄은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참여할 수 있도록 머리 부분을 하나로 묶고, 끝으로 갈수록 여러 갈래로 만들었다. 줄이 연결된 부분은 고로 연결하고 다시 동여매었기 때문에 장정의 한 아름이나 될 정도로 굵었다.
이러한 의성 지역의 고유 민속을 발굴하여 전승, 보급, 확산시켜 군민이 함께 즐기며 활기찬 의성군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 1983년 10월 처음으로 의성문화제가 개최된 이후로 의성군이 주최하고 의성문화원이 주관하여 행사가 치러지고 있으며, 1997년 군민의 날을 10월 9일로 제정한 이후 매년 이날을 전후하여 개최하고 1999년부터 농·특산품 박람회와 마늘 아가씨 선발 대회와 더불어 청소년 한마당 축제 행사를 동시 실시하게 되면서 3일간에 걸쳐 전개되는 볼거리가 많은 풍성한 행사이다. 문화제는 초롱 행렬, 향토제 등의 전야제와 가마 싸움, 기와밟기, 농악놀이, 그네뛰기, 씨름, 향토 음식 맛 자랑, 연 날리기, 널뛰기, 윷놀이, 제기차기, 농요가사 경창 대회, 한시 백일장, 국궁 대회와 수석 및 분재, 서예, 사진 등 각종 전시회, 학생 문예 행사가 다양하게 열리는 지역 축제이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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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 내용 수정(현행화) |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의성] 1. 선사와 고대문화 삼국 시대의 고분으로서 1960년에 발굴한 바 있는 금성면 탑리리 고분군이 있다. 또한 단촌면 장림리에 있는 석곽분 60여 기가 1980년에 발굴 조사된 바 있으며,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가 금성산 고분군으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에 지정되었다. → 삼국 시대의 고분으로서 1960년에 발굴한 바 있는 금성면 탑리리 고분군이 있다. 또한 단촌면 장림리에 있는 석곽분 60여 기가 1980년에 발굴 조사된 바 있으며,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일대에 걸쳐 조성된 324기의 대규모 고분군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5호로 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