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년 안동을 비롯한 영남 유생들이 사도세자의 신원을 요구한 상소 운동. 1749년(영조 25)부터 15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하던 사도세자는 1762년(영조 38) 나경언의 고변(告變)으로 뒤주에서 아사하는 참변을 당하였다. 사도세자가 죽고 난 후 영조는 세자의 위호를 회복하고 직접 시호를 사도(思悼)라고 지었으며, 세손(世孫)에게는 이 문제를 다시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1855년 안동을 비롯한 영남 유림들이 사도세자의 신원과 추존을 요구한 상소 운동.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림은 1792년(정조 16) 사도세자 신원 만인소를 올렸지만, 정조가 신중론을 펼치면서 신원에 실패하였다. 이후 영남의 남인들은 정조의 사망과 노론 벽파의 전횡으로 정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사도세자 탄신 120주년을 맞이하여 영남의 남인들은 다시 사도세자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