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안동권씨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권씨는 가지가 많아야 번성한다는 뜻으로 지곡(枝谷)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일·지곡촌·갈전리 일부와 풍남면 하회리의 일부를 통합하고 가일(佳日)과 지곡에서 한 글자씩 따서 가곡(佳谷)이라 하였다.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가일마을은 따사롭고 아름다운 햇빛이 드는 마을이...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광산김씨 동성 마을. 마을 동쪽에 있는 조산(造山)의 형상이 매우 아름답다 하여 순흥안씨 동고(東皐) 안제(安霽, 1538~1602)가 아름다울 ‘가(佳)’자와 언덕 ‘구(邱)’자를 써 가구(佳邱)라 하였다. 원래 순흥안씨 집성촌으로, 조선 후기에 김도상(金道常)이 와룡면 가야리에 세거하다가 순흥안씨 소유였던 지금의 종택을 매입하여 옮겨 와 정...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네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긴 개울을 끼고 있는 골짜기가 있다고 해서 개실 또는 계실이라 하다가 ‘계곡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뜰’이라는 뜻으로 가야(佳野)라고 하였다. 가야리 안동권씨 집성촌인 늪실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연못에 늪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눌곡(訥谷)이라고도 한다. 조선 전기에 권익창(權益昌)이 병자호란으로 국정이 혼란해지자...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절터. 개심사(開心寺)는 원래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우두사(牛頭寺)를 1945년 임공월(林公月)이 남선면 현내리로 옮기고 개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심사지(開心寺址)에 있던 삼층석탑은 현재 불광사 앞마당으로 다시 옮겼다.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 새터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우두골에서 북쪽으로 작게 갈라져 생긴 절골의 완...
-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재 또는 영(嶺)이라고도 한다. 산의 양쪽 비탈면에 계곡이 발달하여 양쪽으로부터 침식이 진전되면 등성이 부분이 낮아져서 안부를 형성한다. 또 경연(硬軟)의 암석이 호층(互層)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연한 암석이 있는 부분이 침식을 빨리 받아 낮아져서 안부를 형성하기도 한다. 『안동향토지』에 따르면 안동 지역은 은 예부터...
-
이황을 시조로 하고 이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에 살고 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는 입향조 이증을 파조로 하는 참판공파(參判公派)의 일부로 안동시 정상동과 법흥동 일원에 세거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한 안동의 대표적 명문 사족중 하나이다. 중국 한나라 무제 때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왔다가 눌러 살게 된 이반(李槃)의 24세손 이황(李璜)이 고려 덕종 초에...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고성이씨 집성촌.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심동·형호동·하회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광덕리라 하였다. 풍산류씨 집성촌인 광디이마을은 광덕(廣德)의 방언으로, 광덕은 마을에 넓은 둔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광디이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인접해 있어 풍산류씨들의 출입이 잦았던 곳이지만, 풍산류씨들이 본격적으로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약 150년...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무와 김용석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는 신라 왕자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고 17세손 김천리(金天利)의 아들 김무(金務)와 17세손 김영리(金英利)의 5세손 담암(潭庵) 김용석(金用石, 1453~?)을 입향조로 여말선초에 와룡면 오천리와 풍천면 구담리에 세거하기 시작한 씨족이다. 광산김씨는 시조 김흥광의 후손들이 후대에...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고려시대에 향교가 있었으므로 향교골·행겟골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평촌리와 대석동을 통합하면서 교리(校理)로 개칭하였다. 안동권씨 복야공파인 권인(權靷)이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입향하여 숨어 지낸 것이 계기가 되어 안동권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권인은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후 벼슬을 내려도...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 있는 순천김씨 동성 마을. 마을 주변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에 의해 생겨난 아홉 개의 깊은 소[潭]가 있다 하여 구담(九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말 선초 상주목사를 지낸 권집경(權執經)이 관직에서 물러나 구담리에 정착한 뒤 아들이 없어 사위인 김유온(金有溫)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 이에 당시 한양에 거주하던 김유온이 벼슬에서 물러나 구담...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 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구미천(九眉川)의 이름에서 따 구미(九尾)라 하였다. 안동김씨 국헌공파 김언적(金彦迪)에게는 아들 삼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장남 김홍과 막내 김수정은 안동 시내에 터를 잡았다. 차남 김준(金準)은 구미리에 정착하였는데, 이로 인해 구미리 안동김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명확한 이주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는 자...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경서(景瑞), 호는 백담(栢潭). 삼한삼중대광검교대장군(三韓三重大匡檢校大將軍) 구존유(具存裕)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구중련(具仲連), 아버지는 구겸(具謙),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회(權檜)의 딸이며, 처는 함창김씨(咸昌金氏)이다. 구봉령은 안동부(安東府) 동면(東面) 모산동(茅山洞)에서 태어났다. 7세에 모친상을...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구수리에 있는 영양남씨 동성 마을. 마을의 형상이 마치 소 여물통인 구유와 같다고 하여 구수(九水)라 하였다. 영양남씨 집성촌인 남촌(南村)은 남씨가 세거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구수리에는 광산탁씨(光山卓氏)들이 세거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영양남씨(英陽南氏)들이 난을 피해 들어오면서 영양남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입향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 마을. 마을 뒷산이 거북의 꼬리 모양 같다고 해서 귀미(龜尾)라고 하였다. 미천(眉川)이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구비라고도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귀미가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에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이 외가가 있는 귀미리로 옮겨 오면서 귀미리 의성김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근의 부친 김안계는 당시 귀미리 일대에...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안동장씨 동성 마을. 마을의 지세가 거문고처럼 생겼다고 하여 금지(琴地)로 불리다가 김성일(金誠一)이 옮겨 와 검제로 고치고 한자로는 금계(金溪)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에 장이강의 아들 5형제가 단종 복위에 연루되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할 때 넷째 아들 장의(張儀)가 금계리에 터를 잡음으로써 금계리 안동장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장의의 6세손인...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원주변씨 동성마을. 『영가지(永嘉誌)』에 “금계(金溪)는 일명 금지(金池)라고 하는데, 옛날의 이름은 금제(琴堤)라고 하였다. 방언으로는 금(琴)을 검다는 뜻의 ‘검(黔’)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검제라고 하였다.” 하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 원주변씨 입향조 변광(邊廣)이 당시 금계리에 세거하고 있던 권철경(權哲經)의 사위가 되면서 세거 기틀을...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 마을. 『영가지(永嘉誌)』에 “금계(金溪)는 일명 금지(金池)라고 하는데, 옛날의 이름은 금제(琴堤)라고 했으며 방언으로는 금(琴)의 뜻을 검다는 글자인 ‘검(黔)’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검제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금계리에서 의성김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검제와 복당마을인데, 검제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입향조 학봉(...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예천임씨 동성 마을.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에 임억숙(林億淑)이 정착함으로써 예천임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울진임씨 동성마을. 원래 금수 또는 금양이라 하였다가, 마을 안산인 비봉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소(錦韶)라고 불렀다. 그 뒤 비봉산 아래에 있는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제격이라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 임강(林江)이 원래 살고 있던 영해에서 옮겨 와 금...
-
고려와 조선시대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설치된 교통 및 통신기관. 금소역(琴召驛)은 안동부(安東府) 동쪽 30리(지금의 임하면 금소리) 임하현(臨河縣) 서쪽의 금소천(琴召川) 북안에 있다. 동남으로 송제역(松蹄驛)이 40리, 동으로 청송(靑松) 청운역(靑雲驛)이 60리에 있다. 이 역에는 대마 1필, 중마 1필, 복마 8필을 갖춰져 있고, 역리(驛吏) 285명과 노(奴) 66명, 비...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절터. 1983년 발간된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 “옛날 『영가지(永嘉誌)』 편찬 당시(1608)에는 이곳에 남연사(南淵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깊은 물이 있었으나, 『안동향토지』를 발간할 때는 사찰이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연사지(南淵寺址)는 임하면 금소리의 앞산인 비봉산 정상부 남쪽에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에 있는 우계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녹전동의 ‘녹’자와 내동의 ‘내’자를 따서 녹래리로 하였다. 우계이씨 집성촌인 녹래리 놋점마을은 예전에 놋그릇을 파는 유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전기에 입향조 이영(李榮)의 할아버지인 이수형(李秀亨)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녹전면과 접해 있는...
-
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익명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능성구씨는 고려 때 삼한삼중대광검교대장군(三韓三重大匡檢校大將軍)을 지낸 능성구씨의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7세손 송은(松隱) 구홍(具鴻)을 파조로 하는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의 후손 구익명(具益命)이 안동으로 이거해오면서 시작된 세거 성씨이다. 능성구씨(綾城具氏)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단사와 면천에서 ‘단’자와 ‘천’자를 따서 단천리라고 하였다. 진성이씨 집성촌인 단천리 단사마을은 마을 뒤쪽에 붉은 점토질의 산맥이 뻗어 있고 강가의 자갈이 연분홍빛을 띠고 있어 ‘붉은 단(丹)’자와 ‘모래 사(砂)’자를 써서 단사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입향조 이석(李碩)이 진성이씨 세거지...
-
서한을 시조로 하고 서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대구서씨는 고려 때 조봉대부 군기소윤을 지낸 대구서씨의 시조 서한(徐閈)의 14세손 약봉(藥峯) 서성(徐渻) 이후 크게 번창한 가문이다. 모든 서씨(徐氏)의 시조는 신라 말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이라 한다. 이후 고려 군기소윤을 지낸 서한(徐閈)을 시조로 하는 대구서씨와 고려 판도판서를 지내고 달성군에...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대사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마을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한절, 한절골, 대사촌(大寺村)이라고 불리다가 대사리가 되었다. 안동권씨 집성촌인 대사리 토일마을은 아침 해가 마을 뒷산에서 마치 토하는 듯이 떠오른다고 하여 토일(吐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입향조는 『영가지(永嘉誌)』를 편찬한 권기(權紀)의 셋째 아들 후손이다. 처음에는 대사리와 접해 있는...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 장안절골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도곡동 장안절골 고인돌 떼는 원래 안동시 월곡면 도곡리의 안동댐 수몰지구에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이곳은 와룡면 도곡리 웃문암마을에서 남서쪽으로 9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현재는 안동호에 잠겨버렸다. 도곡동 장안골절 고인돌은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안동댐 수몰지역 조사시에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목리에 있었던 흥해배씨 동성마을. 산천이 아름답고 그윽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고 복숭아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도목(桃睦) 또는 도목촌(桃睦村)이라 불렀다. 또한 한 점쟁이가 와서 마을 주위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도목촌(道木村)으로 한자를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도목(道睦)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남첨(南襜)이 강학하던 장소를 기려 후손들이 8...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촌동과 천곡동을 병합하면서 원촌동의 ‘원’자와 천곡동의 ‘천’자를 따서 원천리라 하였다. 퇴계 이황의 8세손인 이귀성(李龜星)이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진성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이원록)와 그의 형인 이원조를 배출함으로써 명성이 높아졌다....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미륵불. 도솔원(兜率院)은 조선 세조 때 관원(官員)이나 선비들이 숙식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이다.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이 도솔원이 되었다고 한다. 원(院)은 공무로 지방에 출장을 오가는 관리들의 숙박 시설이다. 국가에서 역(驛)과 역 사이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일종의 여관이다. 도솔원 미륵불은 서후면 명리 남쪽에 위치한 도솔원...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폭포. 물줄기 밑이 마치 움푹한 질그릇 모양의 저수지 같이 고여 있다고 하여 도연(陶淵)폭포라 불렀다. 안동 지역의 낙동강 지류로는 가장 큰 물줄기인 반변천의 한 굽이에 배포된 절경으로 도연폭포, 격진령, 선유창벽이 유명한데 이를 일컬어 도연삼절(陶淵三絶)이라 불렀다. 기험한 바위언덕 잘룩한 목중이를 타고, 넓게 퍼져 암벽을 곤두박질하는 우람한...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진리에 있었던 청주정씨 동성마을. 마을을 개척하면서 황무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칼로 베어내고 논을 만들었다고 하여 칼 ‘도(刀)’자와 논 ‘답(畓)’자를 써서 도답촌이라 불렀다. 또한 마을 앞에 내가 흐른다고 하여 나리라고도 불렀으며, 지하수가 풍부하여 도나리라고도 하였다가 후에 도진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마사는 예전에 삼이 많이 났고, 아래마사는 마사...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뒤쪽에 천등산과 대곡산, 사곡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옥계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같은 경관이 자기 수양을 위한 도(道)를 닦기에 적합한 곳이라 하여 도촌(道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입향조 권사빈(權士彬)은 원래 지금의 서후면 교리에 살았는데, 1472년(성종 3) 24세 되던 해 사마시에 합격하면서 외...
-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정승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동래정씨는 기세조 정지원(鄭之遠)의 9세손 정승원(鄭承源)이 안동으로 이거한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동래정씨는 본래 신라 6부촌의 하나인 진지촌장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서기 32년(유리왕 9) 지백호가 정씨(鄭氏)로 사성되어 경주(慶州)가 본관이 되었고 그 뒤 동래...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마을의 형상이 중국의 망천(輞川)과 비슷하다고 하여 망천이라고 하였다가, 절벽의 바위에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麻厓)라고 불렀다. 진성이씨는 본동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송군에서 살고 있던 진성이씨의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인 이자수(李子脩)가 터를 잡았으나, 만년에 와룡면 주촌으로 옮겨가 살았다. 그 후 고려...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막곡리 고분군은 세 곳으로 나누어진다. 막곡리 고분군1은 속칭 방갓골 뒤쪽 능선에 30여기의 고분이 반달 모양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방갓골 내에 있는 의성김씨 율리 종택(義城金氏栗里宗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81호)에서 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송야천과 그 좌우 경작지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막곡리...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견훤의 군사와 왕건의 군사가 합전다리(현 안동시 송현동) 부근에서 전투를 할 때 지역 의병들이 마을 골짜기에서 진(陳)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 막(幕)을 치고 주둔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막을 쳤던 골짜기라는 뜻에서 막곡(幕谷)으로 불렀다.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웃막실마을이며, 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조선 중기 송여원(宋汝源)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천옥(天獄)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천옥에서 벗어나려면 거침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만운(晩雲)으로 이름 지었다. 안동권씨는 방담(方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방담 권강(權杠)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기암절벽. 마애는 마을의 생김새가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중국의 망천(輞川)을 빼어 닮았다고 해서 망천이라 불렸다. 이러한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어 자연스레 망천절벽이 되었으며 이후 낙동강가에 바위를 쪼아 만든 부처상인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磨崖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 있어서 마을 이름은 마애(磨崖)라 변경되어 불리게 됐다. 망천절벽은 마애마을 앞 낙...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한산이씨 동성마을. 고려 말 소씨(蘇氏) 일족이 살 때 앞에 펼쳐진 들을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안망실이라 하였고,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망실과 소호리를 병합하고 안망실의 ‘망’자와 소호리의 ‘호’자를 따서 망호리라 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영창대군이 죽임을 당하고 1617년...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상산(商山)의 용소(龍沼)에서 태어난 용마가 개목산에 눈을 뜨고, 이개리에서 귀가 열렸으며, 이 마을에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여 명리(鳴里)라 하였다. 안동권씨 복야공파 권대인(權大仁)의 아들인 권중상(權重常)이 서후면 교리에 살다가 풍광 좋은 곳을 찾아 명리에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원래 거무역(居無驛) 또는 거묵역(居墨驛)이라고 하였다. 그 뒤 안동김씨 입향조 김계행(金係行)이 마을에 은거하게 되면서 묵촌(黙村)이라 하였다가 송암폭포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정자 앞에 시내가 흐르므로 묵계(黙溪)라고 하였다. 연산군 때 김계행이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세 차례의 옥고를 치른 뒤 벼슬에서 물러...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 있는 문소김씨를 기리는 표열각. 문소김씨 표열각(聞韶金氏 表烈閣)은 흥해배씨 배재형(裵在衡, 1894~1919)의 부인 문소김씨의 효열(孝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배재형은 한일병합 후 가족과 함께 만주로 옮겨 갔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활동하다가 갑자기 병이 들자, 문소김씨 부인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병 구환...
-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숙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반남박씨는 시조 박응주(朴應珠)의 9세손 은곡(隱谷) 박숙(朴숙, 1444~1536)이 15세기 중엽 안동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반남박씨의 시조 박응주는 고려 때 반남호장을 역임했으며 6세손 박은(朴訔)은 조선 초 이방원의 난에 공을 세워 익대동덕좌명공신에 올라 반남군(潘南君...
-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군필(君弼), 호는 괴담(槐潭). 여말선초 두 왕조를 섬기지 않은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배행목(裵行睦), 아버지는 배집(裵緝),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경여(權慶餘)의 딸이다. 배상열은 1760년 안동부(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석평2리 녹동)에서 태어났다. 5~6세에 이...
-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고성이씨 동성마을. 신라시대 법흥사(法興寺)가 있던 마을이므로 법흥동이라 하였다. 조선 초기 입향조 이증(李增)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영산현감으로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안동으로 낙향하여 산수가 수려한 남문 밖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 법흥동으로 옮겨 와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이후영(李後榮), 이상룡(李相龍) 등 뛰어난 인물을...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효각. 변중일 충효각(邊中一 忠孝閣)은 간재(簡齋) 변중일(1575~1660)의 충성과 효행을 기려 건립한 것이다. 변중일은 임진왜란 당시 할머니와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어 피난을 가지 못하고 간호를 하였다. 어느 날 왜병이 할머니를 해치려 하자 대신 죽겠다고 자청하였는데, 왜병이 효심에 감복하여 깃발과 칼을 신표(信表)로 주고 물...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는 산. 빼어난 자연경관이 병풍을 둘러친 듯하여 병산(屛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낙동강 굽이가 넓은 못을 이루어 에워 둘러싼 산으로, 본래의 자연지명보다는 병산서원이 있는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절벽이 깎은 듯이 서 있는 병산은 화산(花山) 아래에 있다. 절벽 맞은편에는 노송정과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운치를 더한다. 병풍을 치듯 수직으로 깎인 병...
-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서 사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어,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써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가 벌어지면 5개로 각각 신호하여 상황...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산야리 고인돌 떼는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 보토골마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이 마을은 산야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산골마을에서 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이다. 보토골마을은 안동댐으로 이루어진 안동호의 가장자리에 있으며, 큰대골과 작은대골 사이로, 동쪽으로 낮아지는 경사면이다. 고인돌은 마을 아래 물가의 평지에 있다. 산야리...
-
예전부터 풍수지리에서는 산과 물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의 형상을 이상적인 길지의 하나로 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형상을 이루고 있는 길지는 흔하지 않은데, 특히 마을의 입지로는 더욱 희귀한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산태극수태극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앞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 물줄기가 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있는 기암(奇巖).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인 『영가지(永嘉誌)』「고적조(古跡條)」에는 “삼첩석은 부사(府司)의 문안에 있고 형태는 보릿짚 삿갓 같다. 부기(府基)의 주맥(主脈)을 누르기 위한 것이며, 이를 건드리면 관재(官災)를 입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첩석은 서지리 서갓마을(서간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서갓마을은 안동시...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에 있는 예안이씨 동성마을. 풍산읍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상리리(上里里)라고 하였다. 조선 중기 조광조와 깊은 친분이 있던 이영(李英)·이전(李荃)·이훈(李薰) 삼형제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여러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진외증조부인 조안도의 별서(別墅)가 있던 풍산읍 하리리에 정착하였다. 그 뒤 이훈이 상리리로 옮겨 와 후손들...
-
김상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선성김씨는 고려 때 예안호장을 지낸 김상(金尙)을 시조로 하여 선성(宣城, 예안의 옛 이름)을 본관으로 하는 안동 지역 토성의 하나이다. 시조 김상의 2세 김존성(金存誠), 3세 김돈부(金敦富), 4세 김희보(金希寶)도 호장직을 지냈고 5세 김성세(金成世)는 밀직사상호군, 6세 김뉴(金紐)는 대호군, 7세 김방식(金...
-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산성. 성황당 토성과 관련한 기록은 안동 지역 향토지인 『영가지(永嘉誌)』와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서 찾을 수 있다. 『영가지』에는 “성황당 토성은 부(府)의 동쪽 5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안동향토지』에는 “성황당 토성 터는 지금 용상동 뒤 성황산에 있으며, 동편은 오로봉에 감싸고, 서남에는 낙동강이 둘러, 부를 방...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원래 금산촌(金山村)이었다가 김상헌(金尙憲)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 금산촌은 너무나 화려하므로 합당치 않다고 하여 마을을 감싸고 있는 소요산의 이름을 따서 소산(素山)으로 고쳤다. 소산리 안동김씨는 후안동김씨(신안동김씨)와 선안동김씨(구안동김씨)로 갈라진다. 후안동김씨는 고려시대 삼태사 중의 한 명인 김선평(金宣平)의 후손들이...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송리리 고분군은 일직면 송리리, 속칭 ‘핏골’의 서쪽 능선과 동쪽 능선에 있는데, 서쪽 능선에 있는 것을 송리리 고분군1, 동쪽의 것을 송리리 고분군2로 구분한다. 송리리 고분군1은 현마의 북동쪽으로, 남으로 낮아지는 능선에 분포하는데, 해발 150~172m에 해당한다. 송리리 고분군2는 현마의 동쪽으로, 서남으로 낮아지는 능...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봉수 터. 송리리 봉수지(松里里 烽燧址)는 일직면 송리1리 동북쪽에 있는 야산의 정상부 솔마골과 향교골 사이에 있다. 야산 정상부에는 송리산성이 있는데, 봉수대가 위치한 곳은 산성의 동남쪽 끝 해발도고 약 293m 지점이다. 봉수대의 규모나 형태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봉수대는 편평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석불좌상. 『안동향토지』에는 “범씨동 석불은 『영가지(永嘉誌)』에 부성(府城) 북문 밖 3리쯤, 큰길 왼편에 있었다. 범씨동은 동네 이름, 역시 북동(北洞)의 지세가 허술함을 메우기 위해 조성·설치하였다.”라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문화유적총람』에는 ‘안동 송천동 석불좌상(安東 松川洞 石佛坐像)’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는 본래의 위치에서...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 동쪽에서 흘러오므로 수동촌(水東村)이라 하였다가 후대로 오면서 수리(水里)로 바뀌었다. 수리의 안동김씨 입향조에 대해서는 남후면 개곡리에서 이주했다는 사실 외에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남후면 개곡리 안동김씨들은 익원공 김사형(金士衡)의 후손들로, 풍산읍 소산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의정 김질(...
-
김총을 시조로 하고 김유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순천김씨는 상주목사 권집경(權執經)의 사위가 된 국담(菊潭) 김유온(金有溫)이 조선 초 처가가 있는 안동 구담(현 풍천면 구담리)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순천김씨의 시조 김총(金摠)은 신라왕실의 후예로 헌안왕 때 인가별감으로 있으면서 많은 공을 세워 평양군(平陽君: 평양은 순천...
-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선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순흥안씨는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8대손 안선손(安善孫, 1422~1497)이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사위가 되어 15세기 중엽 안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순흥안씨는 시조 안자미(安子美)가 고려시대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고, 후손들이 순흥현에 세거하면서...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신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고인돌은 예안면 신남리 두곡마을과 점골마을의 경계가 되는 계곡에 조성된 밭둑에 위치한다. 이곳은 두곡마을 새마을회관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서쪽으로 90m 떨어진 곳에는 지방도 919호선이 통과한다. 지형은 문바위골이 남쪽으로 낮아지면서 평지와 만나는 부분이며, 주변은 논·밭으로 이용된다. 고인돌은 장방형...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에 연못이 있다고 하여 신당(新塘), 또는 동제를 지냈던 당나무가 있는 곳이어서 신당(新堂)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당과 인덕에서 ‘신’자와 ‘덕’자를 각각 따서 신덕리(新德里)라 하였다. 입향조 김명일(金明一)은 청계 김진(金璡)의 3남으로 천전리에서 살다가 당시 신당마을에 살고 있던 영양남씨 남...
-
전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쌓아 올린 탑으로,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다. 인도에서는 예부터 흙과 돌을 쌓아 올려 묘를 쓰던 습관과, 거룩하게 여겨 기리던 곳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고 탑을 조성한 뒤부터 불교의 예배 대상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처음 인도에서는 사발을 엎어 놓은 듯 둥글고 크게 탑을 쌓아 올려 내부 공간을 만들고 한가...
-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신석리 고분군은 위치에 따라 ‘고분군1·2·3’으로 구분된다. 신석리 고분군1은 남선면 신석리 ‘덕거리’마을의 동쪽으로, 북쪽으로 뻗은 낮은 능선을 따라 분포한다. 이곳은 구산골과 안성골 사이에 있는 능선으로, 해발 137.8~101.5m에 해당한다. 현재 밭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신석리 고분군2는 신석리 고분군1의 동쪽...
-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도종교에 비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 되지 않은 종교이다. 일반적으로 신종교는 교리혼합주의(syncretism),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 현실주의적 구원관, 임박한 종말론의 강조, 선민사상, 신자 집단 내의 강력한 연대감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신종교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개항기, 일...
-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교통 및 통신 기관. 역(驛)은 신라 487년(소지왕 9)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며, 고려 성종 때 더욱 구체화되었는데, 이때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이 구성되었다. 고려 1390년(공양왕 20) 중앙의 외방지역 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관을 파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역승제(驛丞制)를 조준(趙浚) 등 개국공신들의 건의에 따라 시행하...
-
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에 있는 함안조씨 동성마을. 조선시대에 안기역(安奇驛)이 있었으므로 안기동이라고 하였다. 조선 세조 때 참지공 조욱(趙昱)이 안동향교에 교수로 부임한 뒤 후손들이 안기동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현재 안기동에 세거하고 있는 함안조씨는 대부분 참지공파에 속한다. 마을 뒤쪽에 학(鶴)이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가학산(駕鶴山)이 있고, 가학산에는 골짜...
-
권행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권씨는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여 천년 이상 안동에 세거해온 안동의 대표적인 성씨이다.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은 대대로 안동에 살던 토족으로 본래 성은 김씨(金氏)이다.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과 함께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권씨(權氏) 성을 하사받고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보(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에...
-
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김씨[구](安東金氏 舊)는 시조 김숙승(金叔承)의 6세손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을 중시조로 하는 가문으로 득성조 이래 계속하여 안동에 살면서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두 김씨 중의 하나로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신](安東金氏 新)...
-
김선평을 시조로 하고 김삼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김씨는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물리치고 태사가 된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받들며 관향 안동에서 일천여 년을 세거해 온 안동의 토성이다. 이들은 같은 본관의 김방경계(金方慶系)와 구분하여신안동김씨(新安東金氏)로 불린다. 안동김씨[신]의 시조 김선평은 신라 말 고창군(古...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 안동 미림동굴은 북후면 학가산(882.0m) 동쪽 기슭인 석탑리[개랄마을] 미림골에 위치한 입구와 통로가 매우 협소한 동굴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36호이다. 1982년 1월 20일 오소리 사냥을 나섰던 주민에 의해 발견된 후 공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석탑리 미림골에 위치하여 안동 미림동굴이라 한다. 총 길이는 350m 정도이나...
-
고려와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지방 통치 행정 기관. 경상도의 도역(道域)은 산천을 경계로 한 합리적인 도제 확립의 필요에 따라 1413년(태종 13) 상주목(尙州牧) 소속 옥천·황간·영동·청산·보은을 충청도에 귀속시킴으로써 죽령을 북계(北界)로 하고 지리산을 서계(西界)로 하여 설정되었다. 감영은 개국초 경주에 있었으나 1407년(태종 7)경 상주로 옮겼다. 또한 이 때...
-
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장씨는 안동김씨(安東金氏), 안동권씨(安東權氏)와 더불어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의 하나로 시조 장정필(張貞弼) 이후 안동을 근거지로 세거해온 성씨이다. 시조 장정필의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로 원래 당(唐)나라 사람으로 현재의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났다. 9세기 말 경 난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신라로 와서...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에 있는 사찰. 애련사(愛蓮寺)는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소속 종단이 따로 없다. 다만, 1799년 발간된 『범우고(梵宇攷)』에 예련사(刈蓮寺)라고 기록되어 있고,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는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을 살펴보면 애련사(艾蓮寺)라 했고, 신라의 옛 절이라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애련암(...
-
조선시대 안동 지역의 역로에 세워졌던 국영 교통, 통신 및 숙박시설. 역(驛)은 공문서의 전달, 관리 및 외국 사신의 왕래 숙박, 말을 공급하여 관물(官物)의 수송 등을 돕기 위한 기관으로 신라시대인 487년(소지왕 9)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성종 대에 더욱 구체화 되어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이 만들어졌다. 1390년(공양왕 2) 중앙의 외방 지역 역에...
-
풍수지리에서는 연꽃이 물에 뜬 것 같은 형상을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 하여 길지로 여긴다. 그런데 과연 그런 형상을 한 마을이 있을까. 예부터 풍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회마을의 형국을 풍수지리적으로 다양하게 일컫는데,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해석이 연화부수형이라는 것이다. 이는 낙동강 물줄기가 마을을 휘감아 돌면서 마을이 물 위에 오롯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휘주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영양남씨는 시조 남민(南敏)의 둘째 아들 남군보(南君甫)를 파조로 하고 14세기 중엽 안동에 정착한 남휘주(南輝珠, 1326~1372)를 입향조로 하여 와룡면·일직면·풍산읍 일대에 세거해 왔다. 시조 남민은 본시 중국 당나라 사람 김충(金忠)으로 755년(경덕왕 14)에 봉명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풍랑을...
-
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이헌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영천이씨는 입향조 이헌(李軒)이 군기시소윤을 지내다가 고려 말에 영천에서 안동으로 이거한 후 후손들이 도산면 일대에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영천이씨는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낸 시조 이문한(李文漢)의 후대에 내려와서 이약(李約)을 파조로 하는 서승공파(署丞公派), 이대영(李大榮)을 파조로 하는 영양군파...
-
이익을 시조로 하고 이천과 이영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예안이씨는 조선 초 시조 이익(李翊)의 증손 백곡(栢谷) 이천(李蕆, 1376~1451)이 예안으로 중종 연간에 이익의 6세손 이영(李英)이 풍산에 이거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예안이씨는 전의이씨(全義李氏)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전의이씨 시조 고려개국공신 이도(李棹)의 6세손 이천(李...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 있는 풍산김씨 동성마을. 김대현(金大賢)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진사시에 합격하고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자 인조가 ‘팔련오계(八蓮五桂)’라고 하면서 ‘오미(五美)’라는 마을 이름을 내렸다. 경주 출신의 김연성이 관직에 있으면서 풍산 석릉촌(石陵村)에 와 있던 중 오미리에 별서(別墅)를 마련한 뒤로 현손인 김자순(金子純)이 서울 장의동에서 오미리로 낙향...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광산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 밑에 깔린 돌이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고 하여 오천(烏川)이라 하였다. 고려시대 광산김씨 안동 입향조인 김무의 셋째 아들인 김효지(金孝之)가 오천리에 살고 있던 평해황씨인 황재(黃載)의 사위가 되어 풍산 구담리에서 옮겨 옴으로써 광산김씨 집성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김효지에게 아들이 없어 종손자...
-
경상북도 안동시 옥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옥동 고분군은 위치에 따라 고분군1·2·3·4·5로 구분된다. 옥동 고분군1은 능선을 따라 4기가 분포되어 있다. 옥동 고분군2는 ‘씨레’처럼 남쪽으로 여러 갈래 뻗어 내린 능선에 1기가, 옥동 고분군3은 2~3기가, 옥동 고분군4는 3기가 분포되어 있다. 옥동 고분군5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낮아지는 능선을 따라 3기가 분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에 있는 전탑 터. 각각 1893년과 1992년에 발간된 『안동향토지』와 『경북마을지』에서 옥산사 전탑지와 관련하여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경북마을지』에는 “『영가지』에 옥산사는 부(府)의 북쪽 32리에 있다. 그 북쪽 5리에 석혈(石穴)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안동향토지』에는 이름만 전하는 옛 탑들에서 “월천전탑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진성이씨 집성촌. 마을에 있는 온천의 은혜를 받는다는 뜻에서 온혜리(溫惠里)라 하였다. 입향조 이계양(李繼陽)이 봉화현 교도(敎導)가 되어 부임지로 가는 길에 온혜리를 지나면서 산수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중턱에 앉아 쉬다가 지나가는 승려와 온혜의 풍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함께 마을로 내려왔는데 스님이 주변을 살피다가 낮은 구릉...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 있는 진주강씨 집성촌. 마을 북서쪽으로 높은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 단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옹전(瓮田),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 하였는데, 이후 마을에 물맛이 좋은 샘이 있다고 하여 ‘옹(瓮)’자와 ‘천(泉)’자를 붙여 옹천(瓮泉)이라고 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입향조 강시(姜蓍)가 성균시에 급제...
-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교통 및 통신 기관. 역(驛)은 신라 소지왕 9년(487)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며, 고려 성종 때 더욱 구체화되었는데, 이때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이 구성되었다. 고려 공양왕 20년(1390) 중앙의 외방지역 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관을 파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역승제(驛丞制)를 조준(趙浚) 등 개국공신들의 건의에 따라 시행하...
-
변안열을 시조로 하고 변광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원주변씨는 고려 충신 변안열(邉安烈)의 5세손 변광(邉廣)이 15세기 초에 안동에 정착한 이래로 많은 인물을 배출한 가문이다. 원주변씨는 황주변씨(黃州邉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황주변씨는 송(宋)이 망하자 고려 황주로 귀화한 중국 농서 사람 변요(邉幺)의 아들 변여(邉呂)를 시조로 한다. 변여의 6세손...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영천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인 원당과 오천에서 ‘원’자와 ‘천’자를 따서 원천(元川)이라고 하였다. 고려 말기 이대영(李大榮)의 5세손인 이헌(李軒)이 군기시소윤으로 재직하다가 영천에서 예안(지금의 도산면 분천리)으로 이거한 뒤 후손들이 도산면 일대에 세거하게 되었다. 그 뒤 이헌의 현손인 농암 이현보의 아우 이현우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한서암의 문. 유정문(幽貞門)은 도산서당(陶山書堂)의 유정문과 명칭이 동일하다. 두 곳 모두 이황이 만들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의미 또한 동일할 가능성이 높다. 도산서당의 유정문은 이황이 도산서당과 주위의 자연을 칠언시와 오언시로 노래한 『도산잡영(陶山雜詠)』 가운데 한 가지이다. 이때 유정이란 ‘그윽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이는...
-
김석을 시조로 하고 김거두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문소김씨(聞韶金氏) 또는 내앞김씨로도 일컬어지는 의성김씨는 안동 입향조 김거두(金居斗)의 현손 김만근(金萬謹)이 14세기 말 임하면 천전리(내앞)에 정착한 후 지역의 대표적인 명문 사족으로 발전한 가문이다. 의성김씨 시조 김석(金錫)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
-
조선 후기 이중건의 부인인 의성김씨의 정려문. 의성김씨 정려문(義城金氏 旌閭門)은 1854년(철종 5) 의성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부인이 살았던 도산면 토계리에 지은 것이다. 의성김씨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2세손인 이중건(李中健)의 부인이다. 김씨는 결혼 후 남편 이중건이 오랫동안 중병을 앓자,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결국 세상을 떠났으며, 김...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호원(浩源). 할아버지는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아버지는 영산현감 이증(李增)이다. 이명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1486년(성종 17) 김일손(金馹孫), 권오복(權五福) 등과 동방(同榜)으로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형조좌랑에 이르렀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우리와 황새골을 병합하면서, 이우리의 위쪽 지역이므로 이상리(伊上里)라고 하였다. 조선 중기 권대기(權大器)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상리와 이하리 일대에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권대기의 장남 권우(權宇)가 이름을 떨치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으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마을 뒤쪽으로 관점산(觀占山)이...
-
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 우계(羽溪). 자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 고조부는 태조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개국공신으로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도평의사사(都評議司事)를 지낸 이의(李薿), 증조부는 호분위(虎賁衛)를 역임한 이만(李蔓), 할아버지는 덕천군수(德川郡守)를 지낸 이인숙(李仁淑), 아버지는 군자감주부를 지낸 이경창(李景昌),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 영천(永川). 자는 중립(中立), 호는 선오당(善迂堂). 아버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 이덕홍(李德弘),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진사 남응건(南應乾)의 딸이다. 이시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서 13, 14세에 경사(經史)를 통달하였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 고성(固城). 자는 경원(景園), 호는 모정(慕亭).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용헌(容軒) 이원(李原)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평지옹(平地翁) 이헌복(李憲復), 아버지는 생원 이주령(李周齡),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학도(權學度)의 딸이다. 이시수의 집은 본래 안동이지만, 이시수가 태어난 곳은 외갓집이 있는 현재의 경상북도 봉화군...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치도(致道), 호는 간암(艮巖). 아버지는 퇴계학맥의 주요 전수자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이완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소호리(蘇湖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서 태어났다. 1771(영조 4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7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777...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이계양(李繼陽)이다. 조카가 온계(溫溪) 이해(李瀣)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이우는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혜리(溫惠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492년(성종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498년(연산군 4) 3월 식년...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하경(夏卿), 호는 고산(孤山)·마애(磨崖)·나암(懶庵)·우원(芋園)·우포(芋圃)·사익당(四益堂). 5대조 이훈(李薰)이 처음으로 풍산(豊山)에 입향하였다. 할아버지는 주부를 지낸 이진(李珍), 아버지는 통덕랑 이정발(李廷發),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의 딸이다. 이유장은 경상부 안동...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목지(牧之), 호는 우원(尤園). 아버지는 이인섭(李寅燮),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통덕랑을 지낸 류성구(柳聖久)의 딸이다. 이정국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3(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신을...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산보(山甫), 호는 허주(虛舟). 할아버지는 이원봉(李元鳳), 아버지는 이선경(李善慶), 어머니는 문소김씨(聞韶金氏)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인 김몽렴(金夢濂)의 딸이다. 이종악은 어려서부터 기개가 있었다. 8세에 부친상을 당한 후 어머니에게 극진하였고 그 뜻에 온순히 따랐으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제사를 잘 받...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균(仲勻), 호는 용재(慵齋)·용헌(慵軒)·부휴자(浮休子)·상우당(尙友堂)·태정일씨(太庭逸氏)·장육거사(藏六居士). 할아버지는 대사헌 이승직(李繩直), 아버지는 진사 이시민(李詩敏),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계경(權啓經)의 딸이다. 이종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5세에 글을 익혀 7세...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주지(冑之), 호는 망헌(忘軒). 할아버지는 이증(李增), 아버지는 이평(李泙),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군사(郡事) 허추(許樞)의 딸이다. 이주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평소 성품이 조용하고 담박하여 일체의 권세와 이익에 관심이 없었으며 옛 사람처럼 되기 위해 스스로 힘써 노력하였고...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할아버지는 진사 이계양(李繼陽), 아버지는 진사 이식(李埴), 어머니는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동생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이해는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계리(溫溪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간 후 어머니가 과부의 자식이란 말을 듣지...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여경(餘慶)·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소주도병(燒酒陶甁)·설빈옹(雪鬢翁). 할아버지는 이효손(李孝孫), 아버지는 이흠(李欽),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호군 권겸(權謙)의 딸이다. 이현보는 경상도 안동부 분천리(汾川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골상(骨相...
-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 할아버지는 이함(李涵), 아버지는 이시명(李時明), 어머니는 안동장씨(安東張氏)로 장흥효(張興孝)의 딸이다. 이현일은 경상도 영해(寧海) 인량리(仁良里, 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태어났으며, 퇴계학파의 적통인 외조부 장흥효와 중형 이휘일에게 수학하였다. 1646년(인조...
-
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경회(景會), 호는 풍은(豊隱). 할아버지는 군자감주부를 지낸 이신(李愼), 아버지는 이전(李荃),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여려(洪汝礪)의 딸이다. 이홍인은 경상도 안동부 풍산현(豊山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일대)으로 옮겨 살았다. 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혼자서 자랐지만 제사를 모시거...
-
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산(漢山). 자는 여곽(汝廓), 호는 수은(睡隱). 할아버지는 이대형(李大馨),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해산(海山) 이문영(李文英),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딸이다. 1595년(선조 28) 10월 17일에 전라도 함열군(咸悅郡, 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경성(京城) 낙선...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식(君式), 호는 눌재(訥齋).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이승직(李繩直), 아버지는 이시민(李時敏),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현감을 지낸 권계경(權啓經)의 딸이다. 형이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이다. 이홍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했다. 연산군의...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군목(君睦), 호는 고계(古溪).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귀응(李龜應), 아버지는 이승순(李承淳),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이다. 백부는 이지순(李志淳), 백모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백부에게 입양되었다. 이휘령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다. 1816년(순조 16) 생원시...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심보(深父), 호는 복재(復齋).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이귀서(李龜書), 아버지는 응교 이가순(李家淳),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언집(成彦集)의 딸이다. 이휘준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가순이 경술문장(經術文章)으로 당세에 이름이 드러났기에 자제들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학문을...
-
손응을 시조로 하고 손홍량을 중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일직손씨는 고려 후기의 명신 손홍량(孫洪亮, 1287~1397)을 중시조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는 안동의 토착 성씨 중 하나이다.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손홍량 유허비에 의하면 시조 손응(孫凝)은 원래 성은 순(筍)이었는데 고려 8대 현종의 이름과 음이 같다하여 손(孫)으로 사성되었으며 신라왕을 따라 일직현...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전주류씨 동성마을. 마을 뒤쪽에 있는 아기산(峨岐山)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을을 둘러싸는 형상으로 흐른다 하여 수곡리(水谷里)라고 하였다. 입향조 류성(柳城)의 아버지 류윤선(柳潤善)이 영주에 세거하고 있는 반남박씨 박승장(朴承張)의 사위가 되어 영주시 문수면으로 옮겨 온 뒤, 류성이 임하면 천전리에 세거하던 김진(金璡)의 맏사위가 되어 경...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임하리 고분군은 행정구역상 안동시 임하면 임하2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반변천과 길안천 사이에 위치하며, 남동에서 북서로 뻗어가는 능선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임하리 고분군의 범위는 북쪽 경계가 임하보조댐 남단이고, 남쪽 경계는 임하1리와 임하2리를 연결하는 시도이며, 동쪽 경계는 반변천, 서쪽 경계는 임하2리 추월마을이다...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낙동강 반변천 기슭에 있다 하여 임하(臨河)라고 하였다. 와룡면 이상리에서 출생한 권환(權寏)이 당시 임하현 천전리에 세거하던 의성김씨 집안의 사위가 되어 임하리로 옮겨 오면서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권환은 천전리에 세거하던 김진의 외손녀인 전주류씨를 셋째 부인으로 맞았다. 즉 김진의 셋째 딸이 수곡리에 살던 류란(柳...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반변천이 흘러 천전(川前, 일명 내앞)이라고 하였다. 입향조 김만근(金萬謹)이 당시 임하현의 대지주인 해주오씨 오계동(吳季童)의 사위가 되어 임하현에 정착한 뒤로 김예범(金禮範)이 천전리에 정착함으로써 의성김씨 집성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신덕·임하·망천·추월·지례·국란·내급 등 임하현 일대에 의성...
-
경상북도 안동시 옥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임하사지(臨河寺址)에 대한 기록은 1469년 발간된 『경상도 속찬지리지(慶尙道 續撰地理誌)』, 1608년 펴낸 『영가지(永嘉誌)』「고적조(古蹟條)」, 1983년 나온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 등에 등장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위치는 확인하지 못하다가 1985년 6월 안동문화연구회의 회원인 이진구와 김복영 등이 처음으로 위치를 확인한...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에 있는 청풍고씨 동성마을. 조선 말기 권방(權訪)이 16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정6품의 벼슬을 제수 받은 뒤 덕망과 인품이 널리 알려져, 재주와 인품을 겸비한 선비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재품(才品)이라고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인재가 많이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재(才)’를 ‘자(者)’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자품리의 청풍고씨 입향조는 중...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에 있는 진주강씨 동성마을. 옹천의 5일장이 서는 곳이라고 하여 장기(場基)라고 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입향조 강시(姜蓍)가 성균시에 급제하여 안동대도호부사로 부임한 인연으로 강시의 아들 5형제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사직하고 안동과 봉화(지금의 봉화군 법전면) 등지로 낙향하였다. 장남 강회백(姜淮伯)은 안동 북후면에 자리를 잡았고, 강회백의 아들 강...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장안사지 삼층석탑은 풍천면 하회1리 ‘탑골’에 위치한 연화사(蓮華寺) 내 대웅전과 요사채 사이에 위치한다. 마을의 동쪽으로는 화산(花山)이 솟아 있는데, 연화사는 화산의 서쪽 능선 끝에 위치한다. 이곳은 탑골의 끝부분으로 해발 105m 지점에 해당한다. 하회별신굿탈놀이전수관에서 동쪽으로 48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장안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에 있는 한양조씨 동성마을. 예부터 모시밭이 많았고 모시를 짜는 부인들이 많아서 ‘모시밭’이라 하였다. 저전(苧田)은 모시밭의 한자 표기이다. 1519년 기묘사화 때 한양조씨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조종(趙琮)의 아들 5형제가 영주로 몸을 피하였는데, 이후 넷째 아들 조신완(趙信琬)은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에 정착하여 세거하였다. 조신완의 증손자인 조적(...
-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웅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전의이씨는 판서를 지낸 이웅(李雄)이 조선 초 풍산으로 우거한 뒤 후손들이 하리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전의이씨의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개국공신으로 원래 공주 출신인데 왕건(王建)을 도와 후백제 견훤(甄萱)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공신록에 오르고 전산후(全山侯, 전산은 전의의 옛 지명)...
-
류습을 시조로 하고 류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 지역의 전주류씨는 무실류씨로도 불리며 전주류씨의 시조 류습(柳濕)의 8세손 류성(柳城, 1533~1560)이 1550년경 안동 무실(현 임동면 수곡리)에 정착하고 후손들이 크게 문호를 넓혀 세거해 온 가문이다. 류습이 고려 말에 전주에 살면서 완산백(完山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류습을 시조로 하고 전주를...
-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고성이씨 동성 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촌(亭村)·옹정골·삼정곡·거부골·도트마리 등을 통합하여 정상동이라 하였다. 정상동 고성이씨 집성촌인 정촌마을은 귀래정(歸來亭)과 반구정(伴鳩亭) 등의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굉(李浤)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김굉필(金宏弼)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고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 모든 민족에게서 보이는 문화 현상이다. 종교는 정치·경제·사상·예술·과학 등 사회의 전 영역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가치 체계로서 기능해 왔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경상북도 안동시는 의상의 화엄종과 퇴계의 성...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있는 전주류씨 동성마을. 낙동강의 나루터가 있었다고 하여 배나드리 또는 배나들이라 하였다. 주진(舟津)은 배나드리의 한자 표기이다. 임동면 수곡리에 살던 류석구(柳錫龜)가 분가하여 주진리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 류석구의 아들 류정원(柳正源)이 이름을 떨쳐 전주류씨 집성촌으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조선 말기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대동사(大東史)』를 저술...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 마을. 마을 주변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두루라고 하였고, 한자로는 주촌(周村)으로 표기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인근 지역을 병합하면서 주하리(周下里)가 되었다. 조선 초기 풍산읍 마애리에 살던 이자수(李子脩)의 둘째 아들 이운후(李云候)가 선산부사에서 물러나 만년에 주하리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이운후...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와룡면 중가구리 무학마을에서 북서쪽으로 540m 정도 떨어진 능선에 위치한다. 산 능선 일대와 정상부에 고분군이 밀집하여 들어서 있다. 이곳은 북쪽에 솟은 와룡산의 남쪽 지맥으로, ‘미드골’ 남서쪽은 ‘고래장등’이라 불려오는데, ‘고려장이 많이 있는 등성’이란 뜻이다. 1964년 9월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서 4기의 돌방무덤을...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중대사 삼층석탑은 본래 풍산읍 서미1리 서미마을의 중대사지(中臺寺址)에 있었던 것이다. 중대사지는 예천군과 안동시의 경계 지점인 해발 643m의 보문산 중턱에 있는 중대바위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오래전에 폐사되었으며, 현재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편평한 대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중대사지 앞에는 도괴된 석탑재가 일부 남아 있었...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 마을. 옛날 약초로 사용되는 지초(芝草)가 많이 나서 지촌(芝村)이라고 하였다가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지례(芝澧)라고 하였다.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이 임하면 천전리 청계 종가에서 분가하여 지례리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1992년 임하댐 건설로 수몰 지구가 되면서 원 마을 뒤편 산허리에 지촌 종택(경상북...
-
이석을 시조로 하고 이자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진성이씨는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고려 말 마애촌에 입향한 후 이자수의 증손 이계양(李繼陽)이 크게 현달하여 벌족을 이루면서 도산면 일대를 중심으로 세거해 온 가문이다. 이석은 누대로 진보현(眞寶縣)에 토착해온 호족의 후예이다. 이석의 아들 이자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판전의사사가 되었고...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종덕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진주강씨는 옹천강씨(瓮泉姜氏)로도 불리며 강이식(姜以式)을 도시조로 하고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진주강씨 박사공파(博士公派)의 후예 강종덕(姜宗德)이 조선 초 안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의 후손 강진(姜縉)이 통일신라 때 진...
-
하성을 시조로 하고 하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진주하씨는 시조 하성(河成)의 8세손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1412~1456)의 후손들이 안동에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진주하씨는 본래 진주의 토족으로 있었는데 하성으로부터 6세손 하지백(河之伯)까지는 대체로 하급 무관직으로 이어 오다가 7세손 하담(河澹)이 1402년(태종 2) 문과에 올라...
-
정극경을 시조로 하고 정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청주정씨는 청주정씨의 시조 정극경(鄭克卿)의 8세손 정침(鄭賝)이 조선 초 안동으로 이거하여 정착하고 후손들이 와룡 마암, 북후 도진 등지에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청주정씨는 고려 의종 때 중랑장을 지낸 시조 정극경의 5세손 정해(鄭瑎)가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도첨의찬성사에 올랐으며 정해의 아들...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태곡리 고인돌 근처에서는 간간히 민무늬토기편이 채집되며, 1983년에는 태곡초등학교 교정에서 돌도끼 한 점이 채집된 바 있다. 돌도끼는 길이 14㎝, 폭 5.5㎝ 정도의 조갯날 도끼로 전체를 정교하게 갈았으며, 석질은 화강암제이다. 태곡리 고인돌은 예안면 태곡리 397-5번지 밭 가운데, 약 80㎝ 의 사이를 두고 2기가 있...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안...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 있는 청주정씨 동성 마을. 탯골을 한자로 표기하여 태리(台里)라고 불렀으나,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입향조 정두(鄭枓)는 와룡면 지내리에서 출생하여 13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가세가 점점 기울어지자 척박한 환경의 지내리를 벗어나 태리에 정착하였다. 정두의 아들 정사성(鄭士誠)과 정사신(鄭士信)이 크게 이름을 떨쳐 가문...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에 있는 동굴. 천등굴(天燈窟)은 의상(義湘)의 제자인 능인(能仁)이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는 대망산(大望山)이라 불렀는데 신라 문무왕 때 능인이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던 중 천녀가 능인의 수행에 감복하여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이로부터 능인이 공부하던 바위굴을 천등굴이라 하고, 산...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 마을. 태백산 지맥인 용두산과 온혜리를 거쳐 흐르는 냇물이 상계마을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데 이 냇물을 퇴계(退溪)라고 한다. 원래 이름은 토계(兎溪)였으나 조선 명종 때 이황(李滉)이 이곳에 양진암을 짓고 냇물 이름을 퇴계로 고친 뒤 자신의 호로 삼았다. 이후 토(兎)와 음이 같은 토(土)로 고쳐서 마을 이름을 토계(土溪)라...
-
김문적을 시조로 하고 김자순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풍산김씨는 조선 초 김자순(金子純)이 왕자의 난을 피해 풍산현 오릉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金文迪)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나라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풍산백(豊山伯)에 봉군되었다. 김문적...
-
류절을 시조로 하고 류종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풍산류씨는 시조 류절(柳節)의 6세손 류종혜(柳從惠)가 조선 초 하회에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크게 번창한 가문이다. 풍산류씨는 고려 때 호장을 지낸 시조 류절의 증손 류백(柳伯)이 충열왕 때 출사하여 가문을 일으켰고 류절의 6세손 류종혜가 조선 초 공조전서를 지내고 풍산현으로 낙향하여 정착하면...
-
홍지경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풍산홍씨는 시조 홍지경(洪之慶)이 안동 풍산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안동의 토성 중의 하나이다. 홍지경이 1242년(고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국학직학에 이르렀으며 안동 풍산에 정착하였다. 홍지경의 아들로 고려 첨의사인을 지낸 홍애(洪崖) 홍간(洪侃, ?~1304)는 시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는데...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 있는 전의이씨 동성 마을. 풍산읍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하리리(下里里)라고 하였다. 고려 말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상서이부판사로 있던 전의이씨 이사례(李思禮)를 제거하고 그의 가족을 멸살하려 하였다. 이사례의 장남 이웅(李雄)은 아버지의 시신도 거두치 못한 채 당시 안동 풍산현에 세거하고 있던 처가 안동권씨와의 인연으로 소산리에 몸을...
-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하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하아리 민무늬토기산포지는 안동시 남후면 하아리 낙동강변 제방에 있다. 남후면 하아리는 낙동강이 풍산읍 마애리를 U자 모양으로 휘돌아 풍산평야 앞을 지나, 풍천면 병산리로 빠지는 강줄기에 세 면이 둘러싸인 야산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강과 맞닿은 하아리의 동쪽은 병풍과 같은 수직 암벽으로 이어져 있고, 암벽이 끝나는 곳에서...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풍산류씨 동성 마을. 마을 주변으로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하여 물돌이동이라 하였다. 하회(河回)는 물돌이동의 한자 표기이다. 입향조 류종혜(柳從惠)는 원래 풍산 상리리에 살고 있었는데 하회마을의 아름다운 경관에 이끌려 옮겨 살게 되었다. 당시 류종혜와 허물없이 지내던 흥해배씨 배상공(裵尙恭)도 함께 옮겨 왔다고 한다. 후손인 류중영(柳仲郢)과 류...
-
이윤경을 시조로 하고 이홍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한산이씨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0세손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祖, 1595~1666)가 광해군 때 안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한산이씨는 본관은 같으면서 각기 시조를 달리 하는 두 계열이 있는데 안동에 세거하는 한산이씨는 고려 중엽에 호장을 지낸 이윤경(李允卿)을 시...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한양조씨는 1600년대 중엽 조적(趙績)이 영주에서 안동으로 옮긴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한양조씨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고종 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의 현손 조인벽(趙仁壁) 때부터이다. 조인벽의 아버지는 용성총관을 지내고 홍건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용성부원군(龍城...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현애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 마을. 마을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토질이 비옥하여 달 ‘감(甘)’자와 언덕 ‘애(厓)’자를 써서 감애 또는 현애(玄厓)라고 하였다. 풍산 소산리에 세거하고 있던 북애공 김후(金垕)가 당시 현애리에 살고 있던 아주신씨(鵝州申氏)의 사위가 됨으로써 안동김씨 집성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독립운동가 김시현(金始顯)을 배출한 곳이기...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옛날 안동부 내에는 두 개의 커다란 제방(堤防)이 있었는데, 송제(松堤)와 포항제(浦項堤)가 그것이다. 송제는 반변천(半邊川)의 홍수를 막아 ‘맛뜰’을 보호하는 제방이고, 포항제는 낙동강의 홍수를 막아 부의 성(城)을 보호하던 제방이다. 포항제는 임청각(臨淸閣) 밑 개목다리에서 옥야천을 지나 영호루(映湖樓) 아래...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지금의 황산사인 봉황사는 644년(선덕여왕 13)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사료가 없어서 누가 언제 세웠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임하현에서 동쪽으로 15리 떨어진 기산(岐山) 아래에 있는 신라 고찰이다.”라는 기록만 전할 뿐이다. 봉황사는 번성기...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석등간주석. 지금의 황산사인 봉황사는 644년(선덕여왕 13)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사료가 없어서 누가 언제 세웠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임하현에서 동쪽으로 15리 떨어진 기산(岐山) 아래에 있는 신라 고찰이다.”라는 기록만 전할 뿐이다. 봉황사는 번성기 때는 대...
-
배경분을 시조로 하고 배상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지 안동의 흥해배씨는 입향조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1351~1413)의 아들 4형제가 모두 출사한 이래로 6백여 년을 세거해 온 가문이다. 흥해배씨는 고려 때 검교장군을 지낸 시조 배경분(裵景分)의 6세손 배전이 충혜왕 때 호군을 거쳐 군부판서로 조적(曹蹟)의 난을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