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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가일리·지곡촌·갈전리·하회리에서 ‘가(佳)’자와 ‘곡(谷)’자를 따서 가곡(佳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풍서면의 가일리·지곡촌·갈전리의 각 일부와 풍남면 하회리 일부가 통합되어 가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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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안동권씨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권씨는 가지가 많아야 번성한다는 뜻으로 지곡(枝谷)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일·지곡촌·갈전리 일부와 풍남면 하회리의 일부를 통합하고 가일(佳日)과 지곡에서 한 글자씩 따서 가곡(佳谷)이라 하였다.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가일마을은 따사롭고 아름다운 햇빛이 드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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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저수지. 행정적으로는 풍천면 가곡리지만 통상적으로 가일마을로 불리는 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는 저수지이다. 마을에서도 가곡지보다는 가일못으로 더 널리 불린다. 가일을 옛날에는 지곡(枝谷)이라 칭하였고, 『영가지(永嘉誌)』에는 풍산현 지곡리 골 입구에 있는 지곡지(枝谷池)라 칭하였다. 안동권씨의 집단 마을로 권(權)은 가지가 많아야 번성한다는 뜻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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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동쪽에 있는 조산(造山)이 매우 아름답다 하여 순흥안씨 동고(東皐) 안제(安霽, 1538~1602)가 아름다울 ‘가(佳)’자와 언덕 ‘구(邱)’자를 붙여 가구(佳邱)라 하였다. 가구리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무의마을은 경치가 아름다워 중국의 푸젠성[福建省]에 있는 무이산(武夷山)에서 이름을 따 왔다. 밤실[栗里]은 마을의 형국이 밤송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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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광산김씨 동성 마을. 마을 동쪽에 있는 조산(造山)의 형상이 매우 아름답다 하여 순흥안씨 동고(東皐) 안제(安霽, 1538~1602)가 아름다울 ‘가(佳)’자와 언덕 ‘구(邱)’자를 써 가구(佳邱)라 하였다. 원래 순흥안씨 집성촌으로, 조선 후기에 김도상(金道常)이 와룡면 가야리에 세거하다가 순흥안씨 소유였던 지금의 종택을 매입하여 옮겨 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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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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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갈전리와 청송군 진보면 추현리 경계에 있는 고개. 주위에 가래나무가 많아서 생긴 명칭이다. 흔히 가랫재라 부르며 명기하고 있다. 북쪽으로 갈전못이 있고 남서쪽으로 모시골못이 있다. 주변에는 청송군 추현리에 있는 가레두들이 있다. 가래재 마루턱이 안동시와 청송군의 경계이므로 마루턱에서 동쪽은 청송군 진보면 추현리이고, 서쪽은 안동시 임동면 갈전리이다. 가래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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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낙동강에 더해진다고 가류리(加流里)라고 한다. 낙동강이 갈고리 모양처럼 돌아 흐른다고 하여 갈쿠리·가크리라고도 하며, 낙동강이 마을을 돌아서 흐르는 모양이 아름다워 가류리(佳流里)라고도 한다. 가류리에서 남서쪽에 자리 잡은 새터마을은 예전 월곡면 도목동 주민들이 수몰 지역에서 이주해 와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여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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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사리와 송오리 등을 병합하면서 가사의 ‘가’자와 송오의 ‘송’자를 따서 ‘가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사리·송오리·고리·광석동·운천동과 봉화군 하남면 여을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가사리와 송오리의 이름을 따서 가송동(리)이라 하고 안동군 도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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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서지리 가수내마을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후백제의 왕 견훤이 고창[안동] 땅을 침공하자 신라의 세 장수인 김선평(金宣平), 권행, 장길(장정필)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우려 고창군민을 모아 병산[甁山, 와룡면 서지리]에서 후백제군을 맞아 싸웠다. 겨울동안 결전이 계속되었으나 지렁이의 소생인 견훤이 싸움을 하다 불리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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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산골에서 보기 드물게 넓고 아름다운 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개실·계실(溪實)·가야촌(佳野村)으로도 불린다. 자연마을인 돌미(일명 석산)는 마을 앞뒤에 예쁜 돌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돌미 서쪽의 늪실은 마을 앞의 연못에 늪이 워낙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늪실은 눌곡(訥谷)이라고도 한다. 권익창(權益昌, 1562~164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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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네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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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긴 개울을 끼고 있는 골짜기가 있다고 해서 개실 또는 계실이라 하다가 ‘계곡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뜰’이라는 뜻으로 가야(佳野)라고 하였다. 가야리 안동권씨 집성촌인 늪실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연못에 늪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눌곡(訥谷)이라고도 한다. 조선 전기에 권익창(權益昌)이 병자호란으로 국정이 혼란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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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칡넝쿨이 무성한 곳을 개척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데서 갈밭 또는 갈전(葛田)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동면의 추곡과 신곡이 통합되어 갈전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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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1592년(선조 25) 조연원이라는 사람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들어와 마을을 일구었는데, 당시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산천을 뒤덮어 갈밭[葛田]이라고 칭하였다. 또 여자지(못)와 갈대밭으로 새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더할 가(加), 새 을(乙), 밭 전(田)을 써서 가을전(加乙田)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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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갈골·굴현(屈峴, 일명 굴티)·상등골을 병합하면서 갈골의 ‘갈’자와 굴현의 ‘현’자를 따서 ‘갈현’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굴현·갈골·상등골을 병합하여 갈곡과 굴현의 이름을 따서 갈현동(리)이라 하고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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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지형이 가마솥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가마골[釜谷]·가마촌(加麻村)·감이촌(甘爾村)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인 우무실(憂無室)은 근심이 없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곡(憂谷)이라고도 한다. 미우리(일명 미꾸미)는 웃골 앞에 있는 와우형(臥牛形) 산의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리원(五里院)은 부근에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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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의 수상동·수하동·정상동·정하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관할 동인 수상동·수하동·정상동·정하동이 낙동강 아래에 자리잡고 있어 강남동이라고 부른듯 하다. 1983년 남후면 수상동·수하동, 남선면 정상동·정하동이 안동시로 편입되면서 행정동인 강남동 관할이 되었다. 1998년에 서구동에 통합되면서 폐지되었고, 2005년에 다시 분리되어 4개 법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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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 말에 사복재(司僕齋) 권정(權定)이 접거(接居)하였으므로 접실이라고도 하였다. 『영가지(永嘉誌)』에 “고려 신촌(愼村) 권사복(權思復)이 만년에 우거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이전에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검암리 일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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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절터. 개심사(開心寺)는 원래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우두사(牛頭寺)를 1945년 임공월(林公月)이 남선면 현내리로 옮기고 개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심사지(開心寺址)에 있던 삼층석탑은 현재 불광사 앞마당으로 다시 옮겼다.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 새터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우두골에서 북쪽으로 작게 갈라져 생긴 절골의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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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검암리는 자연마을인 검방우(일명 검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검방우는 400여 년 전 순천김씨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 뒤에 검은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선비들이 모여서 소일하던 곳이기도 하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야리를 병합하여 검암리가 되었다. 미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양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벼농사를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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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마곡·전시곡·장성백리를 병합하여 계곡동(리)이라 하였다. 193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곡면에 편입되었고, 1974년 안동댐 건설에 따라 월곡면이 폐지되면서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가 되었다. 댐이 건설되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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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와평리·상계곡리·회곡리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계곡의 ‘계(桂)’자와 와평의 ‘평(平)’자를 따서 ‘계평’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서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와평리·상계곡리·회곡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계평리가 되었다.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넓은 들에 자리 잡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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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재 또는 영(嶺)이라고도 한다. 산의 양쪽 비탈면에 계곡이 발달하여 양쪽으로부터 침식이 진전되면 등성이 부분이 낮아져서 안부를 형성한다. 또 경연(硬軟)의 암석이 호층(互層)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연한 암석이 있는 부분이 침식을 빨리 받아 낮아져서 안부를 형성하기도 한다. 『안동향토지』에 따르면 안동 지역은 은 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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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고곡리는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이 골짜기가 깊고 길다고 하여 고일, 고곡(古谷), 고곡촌(古谷村)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소리 일부가 통합되어 고곡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하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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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란리의 자연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인 골안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길안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사리, 미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뒤로 계명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길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 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골안은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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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고상리는 고일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웃고일·상고곡·상고동이라고도 한다. 고일은 골짜기가 ‘날 일자[日]’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납시리, 중방리, 흠실 등을 병합하여 고상리가 되었다. 마을 뒤는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로는 하고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아곡지, 중방지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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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고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세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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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안동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가래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뒤로 아기산이 솟아 있고,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일부가 수몰되었다. 갈전교를 지나 가래재를 오르기 전 오른쪽에 난 도로를 따라 3㎞가량 들어간 동쪽에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4,326,896㎡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28세대에 263명(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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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고일 아래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랫고일·하고곡·하고동이라고도 한다. 고일은 고상동(古上洞)과 고하동(古下洞)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골짜기가 ‘날 일자[日]’처럼 생겨서 붙여졌다. 자연마을인 갈골[葛谷]은 칡이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조선 선조 때 선비 권익상(權益相)이 피난 와서 새로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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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넓은 둔덕이 있어 광덕(廣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풍남면의 안심동·형호동·하회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광덕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가 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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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고성이씨 집성촌.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심동·형호동·하회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광덕리라 하였다. 풍산류씨 집성촌인 광디이마을은 광덕(廣德)의 방언으로, 광덕은 마을에 넓은 둔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광디이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인접해 있어 풍산류씨들의 출입이 잦았던 곳이지만, 풍산류씨들이 본격적으로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약 1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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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마을에 넒은 돌이 있었으므로 광석(廣石)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으로 부내면(府內面) 옥리(玉里)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고, 1931년 동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법상정4정목(法尙町4丁目)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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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안동부 일직현의 현감이 살던 터가 있어서 고양터·괭이터라 하였는데, 마을에 화재가 자주 나므로 앞들에 못을 파고는 뒤의 향로봉(326.9m)의 불길을 끈다는 뜻으로 광연(光淵)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리·안망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유촌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광연리로 개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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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넓고 큰 바위가 여러 곳에 흩어져 광암이라 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광음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리, 암산, 신기, 장성배기, 원당곡, 한곡 등을 병합하여 광음리가 되었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 잡은 농촌 마을로 동쪽으로 낙동강이 굽이져 흐른다. 한골 앞에는 큰 저수지인 한골못이 있고, 긴 골짜기에 논과 밭이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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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천등산 자락에 넓고 평평한 바위가 많아 너븐들이라 하였다. 광평(廣坪)은 너븐들의 한자 표기이다. 자연마을인 추산(楸山)은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마을 뒷산의 큰 소나무에 그네를 매고 동네 사람들이 추천(鞦韆)을 즐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가야마을은 조선 초기에 맹사성(孟思誠)이 이곳을 지나다가 천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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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있는 봉수 터. 『문화유적총람』과 『안동지역전통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에 “광평리 봉수지(廣坪里 烽燧址)는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을 왔을 당시, 개목산성(開目山城)에 피신하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당시 지방 주민이 성 밖인 이곳 광평리에서 지키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알리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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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느티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마을 뒤 산비탈에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고려시대에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따라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발산동·수박동·신사동·매곡동·오미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괴정리가 되었고,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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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시대에 이 지역에 향교가 있었다고 하여 향교골 또는 행겟골이라 하였다. 고려 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역임했던 권인(權靷)이 이곳의 지명을 소야(所夜, 일명 솟밤)에서 송파(松坡)로 바꾸어 불렀다고 하는데, 고려의 도읍지인 송도를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시묘골은 1545(인종 1) 참봉을 지냈으며, 효자로 이름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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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고려시대에 향교가 있었으므로 향교골·행겟골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평촌리와 대석동을 통합하면서 교리(校理)로 개칭하였다. 안동권씨 복야공파인 권인(權靷)이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입향하여 숨어 지낸 것이 계기가 되어 안동권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권인은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후 벼슬을 내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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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주변에 낙동강의 흐름에 의해 생긴 아홉 개의 소[潭]가 있어 구담(九潭)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예천군 용궁면 암천리와 예천군 호명면 금릉동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담동으로 개편되었다. 구담동은 1934년 안동군 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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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 있는 순천김씨 동성 마을. 마을 주변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에 의해 생겨난 아홉 개의 깊은 소[潭]가 있다 하여 구담(九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말 선초 상주목사를 지낸 권집경(權執經)이 관직에서 물러나 구담리에 정착한 뒤 아들이 없어 사위인 김유온(金有溫)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 이에 당시 한양에 거주하던 김유온이 벼슬에서 물러나 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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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구렁이 있으므로 구렁 또는 구룡방이라 하였다. 마을의 형국이 구룡장생(九龍長生) 혹은 구룡쟁주(九龍爭珠)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달리와 양옥동이 통합되어 구룡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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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기룡산(일명 작우산)에서 발원한 구미천(九眉川)이 굽이쳐 흘러 구비·구미라 한다. 자연마을인 양지마을과 음지마을은 각각 남쪽과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백일마을에는 백일곡(白日谷)이 있는데, 마을 뒷산에서 백일장이 열린 적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남선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백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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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 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구미천(九眉川)의 이름에서 따 구미(九尾)라 하였다. 안동김씨 국헌공파 김언적(金彦迪)에게는 아들 삼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장남 김홍과 막내 김수정은 안동 시내에 터를 잡았다. 차남 김준(金準)은 구미리에 정착하였는데, 이로 인해 구미리 안동김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명확한 이주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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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말로 전승되는 민간 지식의 총체. 문화의 전승에는 전승 매체와 방식에 따라 구비전승·행위전승·물질전승 등이 있다. 구비전승은 행위나 물질이 아니라 말로 전승되는 문화를 뜻한다. 말로 전승되는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비문학이다. 그러나 구비전승 이전에 말로 소통되는 경험담·목격담·풍문 등의 구술 정보가 있는가 하면, 구비전승은 되지만 문학적 형상성을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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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 윤씨들이 들어와서 살았는데 윤씨 중에 벼슬한 사람이 많아서 홍패가 아홉이라는 뜻으로 구단(九丹)이라 하였고, 또한 마을에 솔밭이 많았으므로 구단의 ‘구’자와 소나무 ‘송’자를 따 구송(九松)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지례마을은 구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지령(芝嶺) 윤의정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예의를 세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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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부터 귀현(龜峴)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어려운 거북 ‘구(龜)’자 대신 아홉 ‘구(九)’자를 썼다는 설이 전해 온다. 아홉 곳에서 물이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계동·용계동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수리로 개편되고 길안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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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구수리에 있는 영양남씨 동성 마을. 마을의 형상이 마치 소 여물통인 구유와 같다고 하여 구수(九水)라 하였다. 영양남씨 집성촌인 남촌(南村)은 남씨가 세거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구수리에는 광산탁씨(光山卓氏)들이 세거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영양남씨(英陽南氏)들이 난을 피해 들어오면서 영양남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입향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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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미천(眉川)이 굽이쳐 흘러서 구천(九川)이라 하였다. 앞들이 기름져서 복리촌(福利村)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일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보리리·원호리·구미리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천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일직면 구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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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경상북도 의성군 청계에서 발원하여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까지 흐르는 을곡천(乙曲川)이 아홉 굽이를 돌아 흐르며 각 굽이마다 깊고 푸른 소(沼)를 만들어 구호(九湖)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마을을 관통하는 을곡천이 돌아가는 형국을 보고 ‘굽이’라 불렀는데, 음이 변하여 구미·구미촌이 되었다. 마을 남쪽 산등성이가 마치 늙은 거북의 등과 같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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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주변의 산세가 국화꽃을 닮았다고 하여 국곡(菊谷)이라 하였다. 국싯골이라고도 한다. 약 180년 전 하국곡에서 이조참판을 지낸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일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조탑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국곡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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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에 있는 산. 퇴계 이황(李滉)은 국망봉에서 한양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축지법으로 왕래하면서 국사(國事)를 논의하였다 한다.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있을 때, 간신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명종을 국망봉에서 관망하여 축지법으로 그 곳에 당도하여 구했다고 한다. 또한 이황의 조부인 이계양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국망봉에 단을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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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구다니·구단이라 하였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말에 예안군 동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갈동이 통합되어 귀단동으로 개편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귀단리가 되었다. 귀단리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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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물이 껴안은 듯하며 거북과 뱀이 모인 듯하여 ‘귀미(龜尾)’라 하였다고 한다. 미천(眉川)이 굽이쳐 흐르므로 ‘구비’라 하던 것이 변하여 귀미가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호리·귀천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구산면 신기동의 일부가 통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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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 마을. 마을 뒷산이 거북의 꼬리 모양 같다고 해서 귀미(龜尾)라고 하였다. 미천(眉川)이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구비라고도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귀미가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에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이 외가가 있는 귀미리로 옮겨 오면서 귀미리 의성김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근의 부친 김안계는 당시 귀미리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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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안동장씨 동성 마을. 마을의 지세가 거문고처럼 생겼다고 하여 금지(琴地)로 불리다가 김성일(金誠一)이 옮겨 와 검제로 고치고 한자로는 금계(金溪)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에 장이강의 아들 5형제가 단종 복위에 연루되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할 때 넷째 아들 장의(張儀)가 금계리에 터를 잡음으로써 금계리 안동장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장의의 6세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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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원주변씨 동성마을. 『영가지(永嘉誌)』에 “금계(金溪)는 일명 금지(金池)라고 하는데, 옛날의 이름은 금제(琴堤)라고 하였다. 방언으로는 금(琴)을 검다는 뜻의 ‘검(黔’)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검제라고 하였다.” 하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 원주변씨 입향조 변광(邊廣)이 당시 금계리에 세거하고 있던 권철경(權哲經)의 사위가 되면서 세거 기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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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 마을. 『영가지(永嘉誌)』에 “금계(金溪)는 일명 금지(金池)라고 하는데, 옛날의 이름은 금제(琴堤)라고 했으며 방언으로는 금(琴)의 뜻을 검다는 글자인 ‘검(黔)’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검제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금계리에서 의성김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검제와 복당마을인데, 검제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입향조 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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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금계리에 있는 연대 미상의 전탑. 금계리 전탑은 풍천면 금계리 탑마을 서쪽에 있다. 원래 서쪽 밭둑에 위치한 5층 전탑이었다고 한다. 이후 무너진 것을 주민들이 현재의 상태로 쌓아올린 것이다. 탑의 현재 높이는 약 250㎝이며, 북쪽면은 완전히 허물어져 있다. 『경북마을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탑은 사각형으로 된 지대석(址臺石)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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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가지(永嘉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속명은 금음지 또는 금계라 한다.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옛날에 칭하기를 천 년 동안 패하지 않는 땅이라고 했다. 사복정 배상지(裴尙志)가 여기에 살았는데 백죽당(栢竹堂)이 있다.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판서 권예(權輗)도 또한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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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계곡이 마치 비단과 같이 아름다워 금계리(錦溪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豊南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기동과 병합되어 금계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풍천면(豊川面)에 편입되었다. 북쪽에 솟은 마늘봉(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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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세실·왕곡·금시동이라 하였다가 1885년(고종 22) 안동권씨 추밀파(樞密派)의 권영준(權寧準)이 지금의 안동성소병원 뒤쪽 언덕에 지은 금곡서당(金谷書堂)에서 따와 금곡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동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법상정5정목(法尙町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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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쇠가 많이 나는 골짜기라 하여 금곡(金谷)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소일은 해가 넘어가는 광경을 볼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망고지[芒谷]는 풀이 우거져서 붙여진 이름이고, 갈고개[葛谷]는 칡넝쿨이 많이 얽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마실[叩馬谷]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임진왜란 때 한 장군이 이곳에 몸을 숨겼다가 말을 버리고 떠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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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금소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자 일본인들이 마을의 이름을 금소라고 바꾸었다고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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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예천임씨 동성 마을.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에 임억숙(林億淑)이 정착함으로써 예천임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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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울진임씨 동성마을. 원래 금수 또는 금양이라 하였다가, 마을 안산인 비봉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소(錦韶)라고 불렀다. 그 뒤 비봉산 아래에 있는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제격이라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 임강(林江)이 원래 살고 있던 영해에서 옮겨 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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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처음에 지실어촌(只失於村)·지실이·기실기·지시러기·옥산동(玉山洞)으로 부르다가 고려 말에 사복재(思復齋) 권정(權定, 1353~1411)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한 후 ‘기사(棄士)’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죽전곡(일명 대밭말)·서당곡·아휴리가 통합되어 기사리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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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마치 곡식을 까부는 데 사용하는 도구인 키[箕]를 빼어 닮았다고 하여 기산(箕山)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성동과 안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기산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풍천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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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고려시대 초기에는 길안부곡(吉安部曲)이었다가 충선왕 때 길안현(吉安縣)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숙종 때 안동군 길안이 되었다. 1608년에 편찬된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는 길안면에 대해 “검색(儉嗇)하며 힘써 농사짓는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1904년 길안면과 임남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동군 길안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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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중앙을 지나 임하면 반변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길안천은 지방 하천으로 유수의 계통은 낙동강이 그 본류이며 반변천이 제1지류, 길안천이 제2지류이다. 하천 연장은 72.00㎞이고 유로 연장은 75.00㎞, 유역 면적은 519.56㎢이다.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경계를 기점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반변천(국가하천) 합류점 경계를 종점으로 한다. 길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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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와 태자리를 연결하는 고개.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과 싸우던 공민왕의 군대는 홍건적이 주둔하고 있던 도랑 위쪽에 석회 가루를 풀었다. 홍건적은 위에서 내려오는 하얀 물을 쌀뜨물로 착각하여 그만큼 공민왕의 군대가 많다고 여겨 겁에 질려 부리나케 그곳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때 불티가 날아가듯 빠르게 도망갔다 하여 부티재[불티골]로 불리게 되었다. 부티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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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소라와 같이 생겼다 하여 나소골 또는 나소곡(羅所谷)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나별로 불렀다. 『정감록(鄭鑑錄)』에 ‘영가사십리고동소라(永嘉四十里古洞召羅)’라는 곳을 찾아가면 난(亂)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 전한다. 나별 안에 나소곡이 있고 나소곡 안에는 소라곡(召螺谷)이 있는데, 『정감록』에 나오는 고동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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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와룡면을 남류하여 안동호를 이루고 천리동, 옥동을 지나 남후면, 풍천면을 서류하는 하천. 낙동강은 태백산맥의 준령계곡을 흐르면서 영남 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그 중앙 저지대를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 1,573m)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半邊川)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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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성의 남문이 있던 마을이므로 남문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남문정2정목(南門町2丁目)이 되었고,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남문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남문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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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문동에서 서부동까지 연결되는 도로. 조선시대 안동부성(安東府城) 남문이 부근에 있었다고 하여 남문거리 또는 남문가라 불리었으며, 이에 따라 남문로라고 이름하였다. 전체 길이는 346m이며, 도로 폭은 약 12m이다. 남문로는 안동 시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도로로, 안동시외버스터미널 교차로 부근의 가락안동종친회에서부터 안동시 보건소 맞은편에 있는 서부동 영에이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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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 남쪽에 있었다고 해서 남문거리 또는 남부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군 안동면 동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東部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면이 안동읍으로 승격하면서 동부동의 일부를 분할하여 남문정1정목(南門町1丁目)이라 하였다. 1947년 남부동으로 개칭되었고, 1964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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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본래 안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부남면이라 했다가, 조선 숙종 때 부남면이 남선면과 남후면으로 분리되면서 남선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임서면의 평지리를 병합하였다. 1983년 안동군 남선면 정상리와 정하리가 안동시로 편입됨에 따라 동으로 바뀌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남선면이 되었다. 북쪽 경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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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안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부남면이라 했다가, 조선 숙종 때 부남면이 남선면과 남후면으로 분리되면서 남후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선면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1983년 안동군 남후면 수상리와 수하리가 안동시에 편입됨에 따라 동으로 바뀌었다.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남후면이 되었다.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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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노리는 모운사(暮雲寺)라는 절이 있어 ‘모노골’, ‘모놋골’, ‘노곡’이라 부르다가 노리로 정착되었다. 또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이 안동 지역으로 몽진하여 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왕비인 노국공주가 하룻밤을 지냈다고 하여 모로곡(慕魯谷)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서선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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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노산리는 마을이 노산(盧山)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노산촌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후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현동·석동동·반시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노산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안동댐 건설로 노산리의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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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풍수상 백로하전(白鷺下田)의 형국이므로 노하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부내면(府內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동(鳳洞), 서후면(西後面) 경광동(瓊光洞), 서선면(西先面) 막곡동(幕谷洞) 등을 통합하여 노하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노하동이 되었다. 송야천 남쪽 나지막한 구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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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봉수산과 녹전산(570m) 아래에 있고, 놋그릇을 만드는 유기점이 있었다고 하여 녹전이라 하였다. 또한 토질이 좋고, 수원(水源)이 깊어 가뭄이 들지 않아 결실이 잘되는 곳이라 하여 녹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녹전리의 ‘녹’자와 내동의 ‘내’자를 합하여 녹래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예안군 서면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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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에 있는 우계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녹전동의 ‘녹’자와 내동의 ‘내’자를 따서 녹래리로 하였다. 우계이씨 집성촌인 녹래리 놋점마을은 예전에 놋그릇을 파는 유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전기에 입향조 이영(李榮)의 할아버지인 이수형(李秀亨)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녹전면과 접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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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예안현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서면이라고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의 한가운데에 있는 녹전산의 이름을 따서 녹전면으로 고쳤다. 일설에는 ‘복록이 굴러 들어오고 토질이 비옥하다’ 하여 녹전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서면이었을 당시 지례리·구간리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면의 11개 리와 입내면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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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자연마을인 단사(丹沙)와 면천(綿川)에서 ‘단’자와 ‘천’자를 따 단천(丹川)이 되었다. 단사는 마을 뒤에 붉은 점토질의 산맥이 뻗어 있고 강가의 자갈이 연분홍빛인 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면천은 기후가 항상 온화하여 목화 재배지로 적합한 곳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말 예안면과 의동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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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단사와 면천에서 ‘단’자와 ‘천’자를 따서 단천리라고 하였다. 진성이씨 집성촌인 단천리 단사마을은 마을 뒤쪽에 붉은 점토질의 산맥이 뻗어 있고 강가의 자갈이 연분홍빛을 띠고 있어 ‘붉은 단(丹)’자와 ‘모래 사(砂)’자를 써서 단사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입향조 이석(李碩)이 진성이씨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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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낙동강이 흘러 나가는 모양이 단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주위의 흙빛이 붉고 못이 있어서 단지(丹池)라고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단호(丹湖)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듯하다. 조선시대 말에 서선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현과 오미를 병합하여 단호리라 하고 풍산읍에 편입되었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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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법룡사(法龍寺, 일명 한절) 법당 뒤 당집 북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당북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동(玉洞)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일본식 지명인 팔굉정5정목(八紘町5丁目)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당북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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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지례동과 지동 사이 큰 골짜기 중심에 위치하여 골이 깊어 한실이라고 하였으며, 한자 표기로 대곡(大谷)이라 하였다. 또 차가운 물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임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부곡리·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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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크고 긴 골짜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대곡(大谷) 또는 한실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복수천, 해천, 신평, 고도, 금수천, 고사, 갈마곡과 위리(渭里) 일부가 통합되어 대곡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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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신라시대 때 큰 사찰인 도솔사가 있어서 한도솔, 한두실이라 하였다가 대도솔, 대두실이 되었고, 고려 공민왕 때 개목산성을 쌓고 이곳에 소를 두었다고 하여 대두소라 하였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대두서가 되었다. 대두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중 오동정은 마을 뒷산에 있는 오동나무에 여러 해 동안 기이한 새가 찾아와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 가음곡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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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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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시대에 큰 절이 위치하고 있어 대사(大寺)라고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송천읍, 조선시대에는 임하현에 속한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길안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청송군 현북면의 대사동을 병합하여 안동군 길안면 대사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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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대사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마을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한절, 한절골, 대사촌(大寺村)이라고 불리다가 대사리가 되었다. 안동권씨 집성촌인 대사리 토일마을은 아침 해가 마을 뒷산에서 마치 토하는 듯이 떠오른다고 하여 토일(吐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입향조는 『영가지(永嘉誌)』를 편찬한 권기(權紀)의 셋째 아들 후손이다. 처음에는 대사리와 접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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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마을에 지름 3m의 큰 돌이 있으므로 대석동이라 하였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을 일본식 지명인 법상정1정목(法尙町1丁目)에서 법상정5정목까지 다섯 개로 분할하였다가,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법상정2정목이 대석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대석동이 되었다. 2008년 12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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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대현리는 원래 와룡면 서현리에 속한 마을이었다. 서현이란 이름은 서티재 밑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서티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서현(西峴)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대현리라는 이름을 짓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가 없다. 원래는 안동군 와룡면 서현2리에 속하였으나, 1987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안동군 북후면 대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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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산.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서면 기느리[기니리]마을이 나온다. 기느리마을 서쪽으로 덤산이 위치하고 바로 반변천이 나온다. 정상인 장지봉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수려한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덤산은 높이 200m이며, 유서 깊은 안동의 선어대(仙漁臺) 건너편에 위치하고 시내와 인접해 있어 교통이 편리해 1시간여의 짧은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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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1608년 펴낸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도곡촌(道谷村)이라 하며 속명으로 도질질로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 질그릇점이 있었던 까닭으로 돗질, 도질(陶質), 도질질이라 부른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상정 또는 상전은 지세가 중국에 있는 상산(商山)과 비슷하다 하여 상산이라 하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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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도율리의 ‘도’자와 지로리의 ‘로’자를 따 도로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사부골 또는 사부곡은 앞산이 높고 골이 깊어 하천이 길며 암석으로 이루어져 모래가 없어 모래의 지아비란 뜻으로 사부곡이라 하며, 또한 앞 산 줄기가 뱀이 꿈틀거리는 형국이라 하여 사부곡(沙夫谷)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사시나무골(백양동)은 마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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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산천이 아름답고 그윽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고 복숭아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도목(桃睦) 또는 도목촌(桃睦村)이라 불렀다. 또 한 점쟁이가 와서 마을 주위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도목촌(道木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도목(道睦)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남첨(南襜)이 강학하던 장소를 기려 후손들이 8칸의 정사를 지은 뒤 편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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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목리에 있었던 흥해배씨 동성마을. 산천이 아름답고 그윽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고 복숭아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도목(桃睦) 또는 도목촌(桃睦村)이라 불렀다. 또한 한 점쟁이가 와서 마을 주위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도목촌(道木村)으로 한자를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도목(道睦)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남첨(南襜)이 강학하던 장소를 기려 후손들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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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예안군에 딸린 의인현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의동면(宜東面)이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곳에 있는 도산서원의 이름을 따 도산면이 되었다. 도산면의 지명 유래가 되는 도산(陶山)은 예안 고을의 9곡(曲) 가운데 제4곡과 제5곡 사이에 위치하는 산으로 현재 도산서원이 자리 잡은 부근의 지명이다. 이곳은 예전에 옹기 굽는 가마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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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촌동과 천곡동을 병합하면서 원촌동의 ‘원’자와 천곡동의 ‘천’자를 따서 원천리라 하였다. 퇴계 이황의 8세손인 이귀성(李龜星)이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진성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이원록)와 그의 형인 이원조를 배출함으로써 명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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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미륵불. 도솔원(兜率院)은 조선 세조 때 관원(官員)이나 선비들이 숙식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이다.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이 도솔원이 되었다고 한다. 원(院)은 공무로 지방에 출장을 오가는 관리들의 숙박 시설이다. 국가에서 역(驛)과 역 사이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일종의 여관이다. 도솔원 미륵불은 서후면 명리 남쪽에 위치한 도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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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양지쪽에 자리 잡아 되양골 또는 도양골이라 하였는데, 조선 중종 때 관찰사 김연(金緣)이 살면서 도왕동으로 고쳤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질 당시 ‘볕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뜻의 도양리(道陽里)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풍산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풍서면에 편입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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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폭포. 물줄기 밑이 마치 움푹한 질그릇 모양의 저수지 같이 고여 있다고 하여 도연(陶淵)폭포라 불렀다. 안동 지역의 낙동강 지류로는 가장 큰 물줄기인 반변천의 한 굽이에 배포된 절경으로 도연폭포, 격진령, 선유창벽이 유명한데 이를 일컬어 도연삼절(陶淵三絶)이라 불렀다. 기험한 바위언덕 잘룩한 목중이를 타고, 넓게 퍼져 암벽을 곤두박질하는 우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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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개척하면서 황무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칼로 베어내고 논을 만들었다고 하여 칼 ‘도(刀)’자와 논 ‘답(畓)’자를 써서 도답촌이라 불렀다. 또한 마을 앞에 내가 흐른다고 하여 나리라고도 불렀으며, 지하수가 풍부하여 도나리라고도 하였다. 후에 한자 표기로 나루 진(津)자를 써서 도진리(道津里)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마사는 예전에 삼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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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진리에 있었던 청주정씨 동성마을. 마을을 개척하면서 황무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칼로 베어내고 논을 만들었다고 하여 칼 ‘도(刀)’자와 논 ‘답(畓)’자를 써서 도답촌이라 불렀다. 또한 마을 앞에 내가 흐른다고 하여 나리라고도 불렀으며, 지하수가 풍부하여 도나리라고도 하였다가 후에 도진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마사는 예전에 삼이 많이 났고, 아래마사는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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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뒤쪽에 천등산과 대곡산, 사곡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옥계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같은 경관이 자기 수양을 위한 도(道)를 닦기에 적합한 곳이라 하여 도촌(道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입향조 권사빈(權士彬)은 원래 지금의 서후면 교리에 살았는데, 1472년(성종 3) 24세 되던 해 사마시에 합격하면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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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자연 경관이 가히 도(道)를 닦을 만한 좋은 곳이라 하여 도촌(道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500년 전 안동인(安東人) 권사빈(權士彬, 1449~1535)이 서후면(西後面) 송파(松坡)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영가지』에는 도촌리가 도기촌(道岐村)으로 나오는데 “도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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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도촌리는 원래 길골·질골·길곡(吉谷)·도곡(道谷) 등으로 불리었다. 예전 영해에서 소금이나 해산물을 지고 영양을 거쳐 장갈령(長葛嶺)을 넘어 도촌리를 지나 예안까지 갔는데, 장갈령에서 마을로 뻗어 내려오는 길을 길골이라 하였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피박 또는 피박골이라고도 불렀다. 사래실 앞산 고지박을 닮은 명당을 껍박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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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읍성의 동문이 있었으므로 동문거리 또는 동문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에 안동군(安東郡) 안동면 동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동면 동부동에 편입되었다. 1931년 안동면이 안동읍으로 승격하면서 동부동의 일부를 갈라서 본정1정목(本町一丁目)이라 하였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동문동으로 개칭하였고,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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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의 동쪽에 있어서 동부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쪽에 있던 지역으로 용흥리(龍興里)·운흥리(雲興里)·입석리(立石里)·율곡리(栗谷里)·신정리(新亭里)·원북리(院北里) 등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문내동(東門內洞)·운흥리·서문내동·천리(泉里)·신세리(新世里)·용하리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동부동이 되었다.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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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예전 예안읍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동부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골내는 고려시대 말에 내가 있었고, 만촌은 동부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새터(신기·통시모래)는 골내 남쪽에 1890년경 새로 조성된 마을이며, 세천나들은 마을 가운데로 작은 내가 흐르고, 송티는 송티재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 월천은 조선중기의 학자 월천(月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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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내[川]가 있다고 하여 동천리(東川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학리·부모리·장갈리를 병합하여 동천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동천리가 되었다. 동천리의 동쪽으로는 영양군 청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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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1610년 김동암(金東岩)이란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지역의 생김새가 말을 엎어 놓은 모양과 같다 하여 말산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두산리(두메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두메는 마을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굴암(굴방웃골)은 마을 앞에 구멍 뚫린 바위가 있으며, 마점(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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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수몰되기 전의 마을 모습이 우마(牛馬)가 짐을 싣고 있는 형국, 또는 말발굽 형상인 데서 맛재, 마령(馬嶺)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하현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쇠랑실, 우무골, 이식골, 송골, 지리실, 한내골 등을 마령리로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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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삼한시대에 마읍군(馬邑郡)이 있었으므로 마읍(馬邑), 또는 맛골, 마읍촌(馬邑村)으로 불리다가 마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천·도수곡·신기·사곡을 병합하여 마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일부가 수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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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모습이 중국의 망천(輞川)을 닮아서 망천이라 하다가, 바위에 부처의 모습을 새긴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磨崖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 있어서 마애(磨崖)라 하였다. 마래, 마라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내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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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마을의 형상이 중국의 망천(輞川)과 비슷하다고 하여 망천이라고 하였다가, 절벽의 바위에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麻厓)라고 불렀다. 진성이씨는 본동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송군에서 살고 있던 진성이씨의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인 이자수(李子脩)가 터를 잡았으나, 만년에 와룡면 주촌으로 옮겨가 살았다. 그 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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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청성산이 낙동강과 합류되는 곳에서, 청성산이 남쪽을 막고 있어 막실·두곡·막곡촌이라 하였다. 또한 후삼국시대에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안동의 합전교(현 안동시 송현동) 부근에서 진을 치고 전투할 때 지역의 호족들이 의병을 일으켜 마을에 진을 쳤는데, 이때 커다란 군막을 쳐서 주둔하였으므로 막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안동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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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견훤의 군사와 왕건의 군사가 합전다리(현 안동시 송현동) 부근에서 전투를 할 때 지역 의병들이 마을 골짜기에서 진(陳)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 막(幕)을 치고 주둔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막을 쳤던 골짜기라는 뜻에서 막곡(幕谷)으로 불렀다.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웃막실마을이며, 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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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만운촌은 일명 두답(斗畓)이라고도 한다. 풍산현의 북쪽 5리에 위치하며 선비 송여원(宋汝源)이 마을의 이름을 만오(晩悟)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을의 형태가 말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말논, 마논, 또는 두답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마을이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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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조선 중기 송여원(宋汝源)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천옥(天獄)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천옥에서 벗어나려면 거침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만운(晩雲)으로 이름 지었다. 안동권씨는 방담(方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방담 권강(權杠)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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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두리봉(斗里峯)의 응달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름·만음·원만음이라고도 한다. 약 400년 전 영양남씨(英陽南氏)와 의령옥씨(宜寧玉氏)들이 개척하면서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만음·개곡·서당리·명곡이 통합되어 만음리가 되었다. 뒤로 낮은 산이 있고, 가운데로 백자천과 길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길안면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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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염흥방이란 사람이 사병을 길러 약탈을 일삼자 나라에서 관군을 보내어 마을 앞 반변천(半邊川)에서 토벌하여 사병들이 이곳에서 전멸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망지내[亡地川]라 칭해 오다가 지명에 ‘망(亡)’자가 있어 좋지 않다고 하여 망천(網川)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숙종 때 안동군 임동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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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절터. 망천사지(望天寺址)가 위치한 마을은 원래 중국에 있는 망천(輞川)과 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지녔다고 하여 망천이라 하였다. 그 후 낙동강 변에 바위를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로 바꾸어 불렀다. 망천사지는 풍산읍 마애리 마애마을에 있다. 이곳은 마애들의 동남쪽 끝자락에 해당하며 낙동강 변에 위치한다. 현재 망천사지 주변은 마애들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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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기암절벽. 마애는 마을의 생김새가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중국의 망천(輞川)을 빼어 닮았다고 해서 망천이라 불렸다. 이러한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어 자연스레 망천절벽이 되었으며 이후 낙동강가에 바위를 쪼아 만든 부처상인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磨崖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 있어서 마을 이름은 마애(磨崖)라 변경되어 불리게 됐다. 망천절벽은 마애마을 앞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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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말에 시랑(侍郞) 벼슬을 지낸 소씨(蘇氏) 가문이 살았는데, 앞에 펼쳐진 들과 호수를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망호리(望湖里)라 하였다. 또한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불렀다.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옛날에는 구미촌(龜尾村)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일직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호리(蘇湖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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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한산이씨 동성마을. 고려 말 소씨(蘇氏) 일족이 살 때 앞에 펼쳐진 들을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안망실이라 하였고,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망실과 소호리를 병합하고 안망실의 ‘망’자와 소호리의 ‘호’자를 따서 망호리라 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영창대군이 죽임을 당하고 16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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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매남리(梅南里)·우안동(愚安洞)·번곡(蕃谷)을 병합하여 매남리의 ‘매(梅)’자와 번곡의 ‘곡(谷)’자를 따서 매곡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고,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남리·우안동·번곡이 병합되어 매곡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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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와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경계의 보문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매곡리는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매남리·우안동·번곡을 병합하고 매남리의 ‘매’자와 번곡의 ‘곡’자를 따서 매곡이라 하였으며, 매곡천은 이 매곡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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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골매의 ‘매’자와 신정의 ‘정’자를 따서 매정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북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골매리·신정리·고정리·지심골·담마가 병합되어 매정리가 되고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가 되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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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 매정리 석불(梅井里 石佛)은 석불좌상으로, 매정리 쥐심골에 있어 일명 ‘쥐심골 부처메기’라고도 한다. 2000년 안동대학교박물관이 시행한 지표 조사 당시에는 서안당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마을 어귀에 석불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현재는 도난으로 인해 분실된 상태이다. 쥐심골마을은 매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골매(骨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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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에 있는 고개.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암행 중 이곳에 이르러 점심식사를 부탁했는데 그 해는 흉년이 들어 곡식을 구하지 못하여 풋보리를 잘라 드리니 왕이 말하기를 ‘이곳이 바로 보릿고개로군’하여 보리고개라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보리고개를 맥현(麥峴)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주변에는 갓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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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향교의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의 이름을 따서 명륜동이라 하였다. 예전에 안동향교가 있던 마을이므로 향교골이라 불렀다. 생긋골이라고도 하였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안막동 일부가 명륜동 일정목이 되었고,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명륜동이 되었다. 1964년 법정동인 명륜동과 신안동이 병합되어 행정동인 명륜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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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상산(上山)에서 위용이 대단한 용마(龍馬)가 태어났는데 이개리(耳開里)에서 귀를 열고 이곳에서 와서 울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말우리라 하였다. 명리는 말우리의 한자 표기이다. 상산은 일명 상산(商山)이라고도 하는데 서후면의 중심이 되는 산이다. 자연마을인 수능골[水陵谷, 일명 쑤능골]은 진골 동쪽 산 너머에 있는 마을로 아무리 가물어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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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상산(商山)의 용소(龍沼)에서 태어난 용마가 개목산에 눈을 뜨고, 이개리에서 귀가 열렸으며, 이 마을에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여 명리(鳴里)라 하였다. 안동권씨 복야공파 권대인(權大仁)의 아들인 권중상(權重常)이 서후면 교리에 살다가 풍광 좋은 곳을 찾아 명리에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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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명리(明里)·덕리·광연리(光淵里)·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망진리(望津里)를 병합하고 명리의 ‘명’자와 망진의 ‘진’자를 따서 명진(明津)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일직현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리·덕리·광연리·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망진리가 병합되어 명진리가 되었다. 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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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목성산(木城山)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목성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한 지역으로 잿골 또는 성야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고,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법상동에서 분리되어 목성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목성동이 되었다. 목성산 밑에 마을이 형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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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미천(眉川)이 산부리를 돌아 흘러 들어가므로 무른개라 하였고, 뒤에 무릉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트골·중산·몽곡·묵느므가 병합되어 무릉리가 되었다. 넓은 들에 자리 잡고 있으며 미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59㎢이며,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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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원래 거묵역(居墨驛)이라 하다가 1500년(연산군 6)에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이 머물게 되면서 이듬해에 묵촌(黙村)으로 개칭하였다. 그 뒤 김계행이 송암폭포(松岩瀑布)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정자 앞으로 냇물이 잔잔히 흐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묵계(黙溪)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에 길안현에 속하였고, 1914년 오락을 병합하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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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원래 거무역(居無驛) 또는 거묵역(居墨驛)이라고 하였다. 그 뒤 안동김씨 입향조 김계행(金係行)이 마을에 은거하게 되면서 묵촌(黙村)이라 하였다가 송암폭포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정자 앞에 시내가 흐르므로 묵계(黙溪)라고 하였다. 연산군 때 김계행이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세 차례의 옥고를 치른 뒤 벼슬에서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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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물이 너무 차가와서 마을 이름을 한천(寒泉)이라 불렀다. 후에 물이 부족함 없이 많다고 하여 무란기로 부르다가 물한이 되었다. 약 370년 전 선비 강세명(姜世命) 일가가 처음 마을을 형성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곡리와 도진리의 일부가 병합되어 물한리가 되었다. 물한리에서 가장 큰 자연마을인 물한에 연곡으로 넘어가는 아방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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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 약수탕으로 유명하여 움터·음터[飮터]라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임북면에 속하여 미지리, 또는 미질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계·벌탄·벽지곡·동파가 병합되어 미질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월곡면의 중심지로서 면사무소·지서·우체국·국민학교·고등공민학교·시장 등이 있었으나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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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을 북류하여 남후면 검암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