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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가일리·지곡촌·갈전리·하회리에서 ‘가(佳)’자와 ‘곡(谷)’자를 따서 가곡(佳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풍서면의 가일리·지곡촌·갈전리의 각 일부와 풍남면 하회리 일부가 통합되어 가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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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안동권씨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권씨는 가지가 많아야 번성한다는 뜻으로 지곡(枝谷)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일·지곡촌·갈전리 일부와 풍남면 하회리의 일부를 통합하고 가일(佳日)과 지곡에서 한 글자씩 따서 가곡(佳谷)이라 하였다.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가일마을은 따사롭고 아름다운 햇빛이 드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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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광산김씨 동성 마을. 마을 동쪽에 있는 조산(造山)의 형상이 매우 아름답다 하여 순흥안씨 동고(東皐) 안제(安霽, 1538~1602)가 아름다울 ‘가(佳)’자와 언덕 ‘구(邱)’자를 써 가구(佳邱)라 하였다. 원래 순흥안씨 집성촌으로, 조선 후기에 김도상(金道常)이 와룡면 가야리에 세거하다가 순흥안씨 소유였던 지금의 종택을 매입하여 옮겨 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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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에 있는 농암 종택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낙동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절경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세심정이 있고, 그 아래로 돌아 들어가는 곳에 고택이 있다. 사랑채인 긍구당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유유한 흐름은 농암 고택의 백미이다. 본래 농암 종택은 예안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이건이 추진되었고, 여러 사정을 거쳐 가송마을에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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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가 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뒤 마을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꾸어온 문화가 쭉정이 농촌문화가 아니라 많은 도시인들이 찾아와서 배우고 체험할 풍부한 문화자산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농사짓는 방법에서부터 두부 만드는 방법, 풍물을 치고 마을제사를 지내는 방법, 짚신을 만드는 법 등, 그 동안 자신들이 묵묵히 일상생활로 영위해 온 문화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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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긴 개울을 끼고 있는 골짜기가 있다고 해서 개실 또는 계실이라 하다가 ‘계곡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뜰’이라는 뜻으로 가야(佳野)라고 하였다. 가야리 안동권씨 집성촌인 늪실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연못에 늪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눌곡(訥谷)이라고도 한다. 조선 전기에 권익창(權益昌)이 병자호란으로 국정이 혼란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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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는 천옥과 같은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가꾸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곳이다.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마을의 주요 생산물은 담배와 고추이다. 마을 주민들의 성씨를 보면 영양남씨와 봉화금씨가 가장 많고 밀양박씨, 진성이씨, 평산신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날 가송에서 행하던 마을굿의 사설에 “송씨(宋氏) 터전에 엄씨(嚴氏) 가족에 금씨(琴氏) 제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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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칡넝쿨이 무성한 곳을 개척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데서 갈밭 또는 갈전(葛田)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동면의 추곡과 신곡이 통합되어 갈전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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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1592년(선조 25) 조연원이라는 사람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들어와 마을을 일구었는데, 당시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산천을 뒤덮어 갈밭[葛田]이라고 칭하였다. 또 여자지(못)와 갈대밭으로 새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더할 가(加), 새 을(乙), 밭 전(田)을 써서 가을전(加乙田)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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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의 수상동·수하동·정상동·정하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관할 동인 수상동·수하동·정상동·정하동이 낙동강 아래에 자리잡고 있어 강남동이라고 부른듯 하다. 1983년 남후면 수상동·수하동, 남선면 정상동·정하동이 안동시로 편입되면서 행정동인 강남동 관할이 되었다. 1998년에 서구동에 통합되면서 폐지되었고, 2005년에 다시 분리되어 4개 법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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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절터. 개심사(開心寺)는 원래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우두사(牛頭寺)를 1945년 임공월(林公月)이 남선면 현내리로 옮기고 개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심사지(開心寺址)에 있던 삼층석탑은 현재 불광사 앞마당으로 다시 옮겼다.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 새터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우두골에서 북쪽으로 작게 갈라져 생긴 절골의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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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고곡리는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이 골짜기가 깊고 길다고 하여 고일, 고곡(古谷), 고곡촌(古谷村)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소리 일부가 통합되어 고곡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하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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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입구에 위치한 고산정은 퇴계 선생의 제자로 유명한 성성재(惺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 선생이 지은 정자이다. 선생은 35세인 1564년(명종 19) 이미 예안 부포에다 ‘성재(惺齋)’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이어서 당시 선성(宣城, 예안현의 별칭)의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인 이곳 가송협에 고산정을 짓고 ‘일동정사(日東精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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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다리밟기는 본래 안동부에서 성안과 성밖으로 패를 나누어 부녀자들이 놀던 대동놀이이다. 가송리에서는 이 놋다리밟기의 의미가 더욱 깊은데, 마을에서 모시는 신과 그 신의 아버지가 가송까지 오는 과정에서 연행되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놋다리밟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공민왕의 몽진과 노국공주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 마치 자신이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건네주고 있는 듯한 판타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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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년 2차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공민왕의 안동 몽진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자 고장의 자랑거리로 남아 있다. 특히 가송리와 주변 지역에서는 공민왕과 부인 그리고 두 딸이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의 공민왕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신앙적 신념으로 전화된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을 통해 검토해 보면 공민왕이 실제 이곳에 왔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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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넓은 둔덕이 있어 광덕(廣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풍남면의 안심동·형호동·하회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광덕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가 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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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고성이씨 집성촌.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심동·형호동·하회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광덕리라 하였다. 풍산류씨 집성촌인 광디이마을은 광덕(廣德)의 방언으로, 광덕은 마을에 넓은 둔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광디이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인접해 있어 풍산류씨들의 출입이 잦았던 곳이지만, 풍산류씨들이 본격적으로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약 1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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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안동부 일직현의 현감이 살던 터가 있어서 고양터·괭이터라 하였는데, 마을에 화재가 자주 나므로 앞들에 못을 파고는 뒤의 향로봉(326.9m)의 불길을 끈다는 뜻으로 광연(光淵)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리·안망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유촌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광연리로 개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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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있는 봉수 터. 『문화유적총람』과 『안동지역전통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에 “광평리 봉수지(廣坪里 烽燧址)는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을 왔을 당시, 개목산성(開目山城)에 피신하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당시 지방 주민이 성 밖인 이곳 광평리에서 지키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알리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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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 마을. 고려시대에 향교가 있었으므로 향교골·행겟골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평촌리와 대석동을 통합하면서 교리(校理)로 개칭하였다. 안동권씨 복야공파인 권인(權靷)이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입향하여 숨어 지낸 것이 계기가 되어 안동권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권인은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후 벼슬을 내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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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주변에 낙동강의 흐름에 의해 생긴 아홉 개의 소[潭]가 있어 구담(九潭)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예천군 용궁면 암천리와 예천군 호명면 금릉동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담동으로 개편되었다. 구담동은 1934년 안동군 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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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 있는 순천김씨 동성 마을. 마을 주변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에 의해 생겨난 아홉 개의 깊은 소[潭]가 있다 하여 구담(九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말 선초 상주목사를 지낸 권집경(權執經)이 관직에서 물러나 구담리에 정착한 뒤 아들이 없어 사위인 김유온(金有溫)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 이에 당시 한양에 거주하던 김유온이 벼슬에서 물러나 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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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구렁이 있으므로 구렁 또는 구룡방이라 하였다. 마을의 형국이 구룡장생(九龍長生) 혹은 구룡쟁주(九龍爭珠)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달리와 양옥동이 통합되어 구룡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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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 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구미천(九眉川)의 이름에서 따 구미(九尾)라 하였다. 안동김씨 국헌공파 김언적(金彦迪)에게는 아들 삼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장남 김홍과 막내 김수정은 안동 시내에 터를 잡았다. 차남 김준(金準)은 구미리에 정착하였는데, 이로 인해 구미리 안동김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명확한 이주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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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구수리에 있는 영양남씨 동성 마을. 마을의 형상이 마치 소 여물통인 구유와 같다고 하여 구수(九水)라 하였다. 영양남씨 집성촌인 남촌(南村)은 남씨가 세거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구수리에는 광산탁씨(光山卓氏)들이 세거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영양남씨(英陽南氏)들이 난을 피해 들어오면서 영양남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입향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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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미천(眉川)이 굽이쳐 흘러서 구천(九川)이라 하였다. 앞들이 기름져서 복리촌(福利村)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일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보리리·원호리·구미리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천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일직면 구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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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경상북도 의성군 청계에서 발원하여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까지 흐르는 을곡천(乙曲川)이 아홉 굽이를 돌아 흐르며 각 굽이마다 깊고 푸른 소(沼)를 만들어 구호(九湖)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마을을 관통하는 을곡천이 돌아가는 형국을 보고 ‘굽이’라 불렀는데, 음이 변하여 구미·구미촌이 되었다. 마을 남쪽 산등성이가 마치 늙은 거북의 등과 같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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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주변의 산세가 국화꽃을 닮았다고 하여 국곡(菊谷)이라 하였다. 국싯골이라고도 한다. 약 180년 전 하국곡에서 이조참판을 지낸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일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조탑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국곡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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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은 2004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었다. 이후 사업비를 지원 받아 체험관을 짓고 산나물채취, 래프팅, 한지공예, 안동식혜 만들기, 감자송편만들기, 농사체험, 화전놀이, 투호 등의 민속놀이, 풍물놀이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체험프로그램들은 소극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직접 가송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모범적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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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구다니·구단이라 하였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말에 예안군 동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갈동이 통합되어 귀단동으로 개편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귀단리가 되었다. 귀단리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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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물이 껴안은 듯하며 거북과 뱀이 모인 듯하여 ‘귀미(龜尾)’라 하였다고 한다. 미천(眉川)이 굽이쳐 흐르므로 ‘구비’라 하던 것이 변하여 귀미가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호리·귀천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구산면 신기동의 일부가 통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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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 마을. 마을 뒷산이 거북의 꼬리 모양 같다고 해서 귀미(龜尾)라고 하였다. 미천(眉川)이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구비라고도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귀미가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에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이 외가가 있는 귀미리로 옮겨 오면서 귀미리 의성김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근의 부친 김안계는 당시 귀미리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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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안동장씨 동성 마을. 마을의 지세가 거문고처럼 생겼다고 하여 금지(琴地)로 불리다가 김성일(金誠一)이 옮겨 와 검제로 고치고 한자로는 금계(金溪)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에 장이강의 아들 5형제가 단종 복위에 연루되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할 때 넷째 아들 장의(張儀)가 금계리에 터를 잡음으로써 금계리 안동장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장의의 6세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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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원주변씨 동성마을. 『영가지(永嘉誌)』에 “금계(金溪)는 일명 금지(金池)라고 하는데, 옛날의 이름은 금제(琴堤)라고 하였다. 방언으로는 금(琴)을 검다는 뜻의 ‘검(黔’)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검제라고 하였다.” 하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 원주변씨 입향조 변광(邊廣)이 당시 금계리에 세거하고 있던 권철경(權哲經)의 사위가 되면서 세거 기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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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 마을. 『영가지(永嘉誌)』에 “금계(金溪)는 일명 금지(金池)라고 하는데, 옛날의 이름은 금제(琴堤)라고 했으며 방언으로는 금(琴)의 뜻을 검다는 글자인 ‘검(黔)’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검제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금계리에서 의성김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검제와 복당마을인데, 검제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입향조 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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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금계리에 있는 연대 미상의 전탑. 금계리 전탑은 풍천면 금계리 탑마을 서쪽에 있다. 원래 서쪽 밭둑에 위치한 5층 전탑이었다고 한다. 이후 무너진 것을 주민들이 현재의 상태로 쌓아올린 것이다. 탑의 현재 높이는 약 250㎝이며, 북쪽면은 완전히 허물어져 있다. 『경북마을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탑은 사각형으로 된 지대석(址臺石)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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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계곡이 마치 비단과 같이 아름다워 금계리(錦溪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豊南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기동과 병합되어 금계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풍천면(豊川面)에 편입되었다. 북쪽에 솟은 마늘봉(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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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금소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자 일본인들이 마을의 이름을 금소라고 바꾸었다고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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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예천임씨 동성 마을.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에 임억숙(林億淑)이 정착함으로써 예천임씨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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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울진임씨 동성마을. 원래 금수 또는 금양이라 하였다가, 마을 안산인 비봉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소(錦韶)라고 불렀다. 그 뒤 비봉산 아래에 있는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제격이라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 임강(林江)이 원래 살고 있던 영해에서 옮겨 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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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처음에 지실어촌(只失於村)·지실이·기실기·지시러기·옥산동(玉山洞)으로 부르다가 고려 말에 사복재(思復齋) 권정(權定, 1353~1411)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한 후 ‘기사(棄士)’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죽전곡(일명 대밭말)·서당곡·아휴리가 통합되어 기사리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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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마치 곡식을 까부는 데 사용하는 도구인 키[箕]를 빼어 닮았다고 하여 기산(箕山)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성동과 안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기산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풍천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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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자락을 휘감아 돌아가는 맑고 깨끗한 강물과 여기저기 우뚝 솟은 바위들 그리고 병풍을 연상케 하는 절벽의 웅장함 등 이 모든 것은 가송리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때론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하는 천옥의 생활조건이다. 청량산 인근의 경치는 거듭 얘기하지 않아도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가송의 풍광은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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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절터. 1983년 발간된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 “옛날 『영가지(永嘉誌)』 편찬 당시(1608)에는 이곳에 남연사(南淵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깊은 물이 있었으나, 『안동향토지』를 발간할 때는 사찰이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연사지(南淵寺址)는 임하면 금소리의 앞산인 비봉산 정상부 남쪽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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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노리는 모운사(暮雲寺)라는 절이 있어 ‘모노골’, ‘모놋골’, ‘노곡’이라 부르다가 노리로 정착되었다. 또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이 안동 지역으로 몽진하여 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왕비인 노국공주가 하룻밤을 지냈다고 하여 모로곡(慕魯谷)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서선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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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노산리는 마을이 노산(盧山)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노산촌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후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현동·석동동·반시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노산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안동댐 건설로 노산리의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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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봉수산과 녹전산(570m) 아래에 있고, 놋그릇을 만드는 유기점이 있었다고 하여 녹전이라 하였다. 또한 토질이 좋고, 수원(水源)이 깊어 가뭄이 들지 않아 결실이 잘되는 곳이라 하여 녹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녹전리의 ‘녹’자와 내동의 ‘내’자를 합하여 녹래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예안군 서면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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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에 있는 우계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녹전동의 ‘녹’자와 내동의 ‘내’자를 따서 녹래리로 하였다. 우계이씨 집성촌인 녹래리 놋점마을은 예전에 놋그릇을 파는 유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전기에 입향조 이영(李榮)의 할아버지인 이수형(李秀亨)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녹전면과 접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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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에서는 계절별로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는 가송마을에서 전해 오는 세시풍속과 농업의 전통이 밑천이 되는 것으로, 봄에는 봄나물 캐기, 감자 심기 등 봄을 주제로 한 다양한 농사체험을 할 수 있고, 여름에는 물고기 잡아보기, 고산정 선비 되기, 제기차기 등 동심을 주제로 한 놀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가을에는 수확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 콩 타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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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은 어떻게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을까? 2009년 현재도 농촌진흥청에서는 농가소득을 높여 주기 위한 일환으로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하기 위해 전국의 여러 농촌마을을 답사하고 있으며, 또한 각 마을로 공문을 내려 보내 꾸준히 참여 여부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송리의 경우 안동시청 직원이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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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단사와 면천에서 ‘단’자와 ‘천’자를 따서 단천리라고 하였다. 진성이씨 집성촌인 단천리 단사마을은 마을 뒤쪽에 붉은 점토질의 산맥이 뻗어 있고 강가의 자갈이 연분홍빛을 띠고 있어 ‘붉은 단(丹)’자와 ‘모래 사(砂)’자를 써서 단사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입향조 이석(李碩)이 진성이씨 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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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크고 긴 골짜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대곡(大谷) 또는 한실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복수천, 해천, 신평, 고도, 금수천, 고사, 갈마곡과 위리(渭里) 일부가 통합되어 대곡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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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대사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마을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한절, 한절골, 대사촌(大寺村)이라고 불리다가 대사리가 되었다. 안동권씨 집성촌인 대사리 토일마을은 아침 해가 마을 뒷산에서 마치 토하는 듯이 떠오른다고 하여 토일(吐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입향조는 『영가지(永嘉誌)』를 편찬한 권기(權紀)의 셋째 아들 후손이다. 처음에는 대사리와 접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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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산천이 아름답고 그윽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고 복숭아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도목(桃睦) 또는 도목촌(桃睦村)이라 불렀다. 또 한 점쟁이가 와서 마을 주위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도목촌(道木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도목(道睦)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남첨(南襜)이 강학하던 장소를 기려 후손들이 8칸의 정사를 지은 뒤 편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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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목리에 있었던 흥해배씨 동성마을. 산천이 아름답고 그윽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고 복숭아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도목(桃睦) 또는 도목촌(桃睦村)이라 불렀다. 또한 한 점쟁이가 와서 마을 주위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도목촌(道木村)으로 한자를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도목(道睦)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남첨(南襜)이 강학하던 장소를 기려 후손들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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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촌동과 천곡동을 병합하면서 원촌동의 ‘원’자와 천곡동의 ‘천’자를 따서 원천리라 하였다. 퇴계 이황의 8세손인 이귀성(李龜星)이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진성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이원록)와 그의 형인 이원조를 배출함으로써 명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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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미륵불. 도솔원(兜率院)은 조선 세조 때 관원(官員)이나 선비들이 숙식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이다.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이 도솔원이 되었다고 한다. 원(院)은 공무로 지방에 출장을 오가는 관리들의 숙박 시설이다. 국가에서 역(驛)과 역 사이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일종의 여관이다. 도솔원 미륵불은 서후면 명리 남쪽에 위치한 도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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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양지쪽에 자리 잡아 되양골 또는 도양골이라 하였는데, 조선 중종 때 관찰사 김연(金緣)이 살면서 도왕동으로 고쳤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질 당시 ‘볕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뜻의 도양리(道陽里)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풍산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풍서면에 편입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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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진리에 있었던 청주정씨 동성마을. 마을을 개척하면서 황무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칼로 베어내고 논을 만들었다고 하여 칼 ‘도(刀)’자와 논 ‘답(畓)’자를 써서 도답촌이라 불렀다. 또한 마을 앞에 내가 흐른다고 하여 나리라고도 불렀으며, 지하수가 풍부하여 도나리라고도 하였다가 후에 도진리가 되었다. 자연마을인 마사는 예전에 삼이 많이 났고, 아래마사는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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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뒤쪽에 천등산과 대곡산, 사곡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옥계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같은 경관이 자기 수양을 위한 도(道)를 닦기에 적합한 곳이라 하여 도촌(道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입향조 권사빈(權士彬)은 원래 지금의 서후면 교리에 살았는데, 1472년(성종 3) 24세 되던 해 사마시에 합격하면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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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도촌리는 원래 길골·질골·길곡(吉谷)·도곡(道谷) 등으로 불리었다. 예전 영해에서 소금이나 해산물을 지고 영양을 거쳐 장갈령(長葛嶺)을 넘어 도촌리를 지나 예안까지 갔는데, 장갈령에서 마을로 뻗어 내려오는 길을 길골이라 하였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피박 또는 피박골이라고도 불렀다. 사래실 앞산 고지박을 닮은 명당을 껍박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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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 동쪽 입칠봉 능성이 끝나는 곳에 있는 부인당(일명 공주당) 옆에는 1992년 안동시내에 사는 남영주라는 분이 가송동 서낭당과 금화섭 씨 독당(일명 개인당)의 영험을 얻어 부인의 병을 고친 뒤로, 감사의 뜻을 담아 마을에 기증하는 식으로 지은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이 없던 시절에는 마을굿을 행할 때 제상만 하나 더 차려서 제사를 모시다가 산신각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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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내[川]가 있다고 하여 동천리(東川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학리·부모리·장갈리를 병합하여 동천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동천리가 되었다. 동천리의 동쪽으로는 영양군 청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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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수몰되기 전의 마을 모습이 우마(牛馬)가 짐을 싣고 있는 형국, 또는 말발굽 형상인 데서 맛재, 마령(馬嶺)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하현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쇠랑실, 우무골, 이식골, 송골, 지리실, 한내골 등을 마령리로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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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삼한시대에 마읍군(馬邑郡)이 있었으므로 마읍(馬邑), 또는 맛골, 마읍촌(馬邑村)으로 불리다가 마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천·도수곡·신기·사곡을 병합하여 마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일부가 수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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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모습이 중국의 망천(輞川)을 닮아서 망천이라 하다가, 바위에 부처의 모습을 새긴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磨崖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 있어서 마애(磨崖)라 하였다. 마래, 마라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내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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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마을의 형상이 중국의 망천(輞川)과 비슷하다고 하여 망천이라고 하였다가, 절벽의 바위에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麻厓)라고 불렀다. 진성이씨는 본동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송군에서 살고 있던 진성이씨의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인 이자수(李子脩)가 터를 잡았으나, 만년에 와룡면 주촌으로 옮겨가 살았다. 그 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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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 당제는 다른 마을과 달리 제의 절차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당주가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면을 보여준다. 당주는 가송마을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봉화금씨들로 그 계보를 이어오고 있는데, 그만큼 공민왕이나 공주당과의 인연이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금용극 옹이 기억하는 당주로는 약 100여 년 전의 ‘운동어른’과 그 다음에 당주를 맡은 ‘걸노인’, 그리고 ‘주실어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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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에서 진행되는 농촌체험은 크게 자연경관을 활용한 래프팅과 천렵, 산책 등과 농촌생활을 활용한 농사체험 및 음식 만들기 등, 그리고 전통문화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행사가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농촌생활과 전통문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통문화 체험은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가르쳐 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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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 당제를 이끌어가는 인물 중에는 상쇠를 맡고 있는 이일영 옹이 있다. 이일영 옹은 풍물을 울리면서 신을 즐겁게 하는, 가송마을 전통을 이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마을 상쇠 이일영 옹은 예전 어렸을 때 보아온 가송마을 풍물에 대해 아마 전국에서 최고일 거라고 강조한다. 완벽하게 12차 풍물가락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 앞에서 연행하는 진법치기는 그야말로 화려한 볼거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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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의 부인당(일명 공주당)은 약 3.3㎡ 남짓한 기와건물로, 당 안에는 갖가지 옷가지가 화려하게 걸려 있고 성황대도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것은 부인당에서 모시는 신이 노국공주인가, 아니면 공민왕과 노국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가 하는 점인데, 이는 공주당과 부인당이라는 용어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어 정확한 신의 정체를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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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청성산이 낙동강과 합류되는 곳에서, 청성산이 남쪽을 막고 있어 막실·두곡·막곡촌이라 하였다. 또한 후삼국시대에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안동의 합전교(현 안동시 송현동) 부근에서 진을 치고 전투할 때 지역의 호족들이 의병을 일으켜 마을에 진을 쳤는데, 이때 커다란 군막을 쳐서 주둔하였으므로 막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안동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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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견훤의 군사와 왕건의 군사가 합전다리(현 안동시 송현동) 부근에서 전투를 할 때 지역 의병들이 마을 골짜기에서 진(陳)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 막(幕)을 치고 주둔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막을 쳤던 골짜기라는 뜻에서 막곡(幕谷)으로 불렀다.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웃막실마을이며, 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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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만운촌은 일명 두답(斗畓)이라고도 한다. 풍산현의 북쪽 5리에 위치하며 선비 송여원(宋汝源)이 마을의 이름을 만오(晩悟)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을의 형태가 말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말논, 마논, 또는 두답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마을이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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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조선 중기 송여원(宋汝源)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천옥(天獄)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천옥에서 벗어나려면 거침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만운(晩雲)으로 이름 지었다. 안동권씨는 방담(方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방담 권강(權杠)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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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염흥방이란 사람이 사병을 길러 약탈을 일삼자 나라에서 관군을 보내어 마을 앞 반변천(半邊川)에서 토벌하여 사병들이 이곳에서 전멸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망지내[亡地川]라 칭해 오다가 지명에 ‘망(亡)’자가 있어 좋지 않다고 하여 망천(網川)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숙종 때 안동군 임동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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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절터. 망천사지(望天寺址)가 위치한 마을은 원래 중국에 있는 망천(輞川)과 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지녔다고 하여 망천이라 하였다. 그 후 낙동강 변에 바위를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로 바꾸어 불렀다. 망천사지는 풍산읍 마애리 마애마을에 있다. 이곳은 마애들의 동남쪽 끝자락에 해당하며 낙동강 변에 위치한다. 현재 망천사지 주변은 마애들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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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말에 시랑(侍郞) 벼슬을 지낸 소씨(蘇氏) 가문이 살았는데, 앞에 펼쳐진 들과 호수를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망호리(望湖里)라 하였다. 또한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불렀다.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옛날에는 구미촌(龜尾村)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일직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호리(蘇湖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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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한산이씨 동성마을. 고려 말 소씨(蘇氏) 일족이 살 때 앞에 펼쳐진 들을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안망실이라 하였고,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망실과 소호리를 병합하고 안망실의 ‘망’자와 소호리의 ‘호’자를 따서 망호리라 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영창대군이 죽임을 당하고 16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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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매남리(梅南里)·우안동(愚安洞)·번곡(蕃谷)을 병합하여 매남리의 ‘매(梅)’자와 번곡의 ‘곡(谷)’자를 따서 매곡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고,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남리·우안동·번곡이 병합되어 매곡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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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 매정리 석불(梅井里 石佛)은 석불좌상으로, 매정리 쥐심골에 있어 일명 ‘쥐심골 부처메기’라고도 한다. 2000년 안동대학교박물관이 시행한 지표 조사 당시에는 서안당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마을 어귀에 석불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현재는 도난으로 인해 분실된 상태이다. 쥐심골마을은 매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골매(骨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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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상산(商山)의 용소(龍沼)에서 태어난 용마가 개목산에 눈을 뜨고, 이개리에서 귀가 열렸으며, 이 마을에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여 명리(鳴里)라 하였다. 안동권씨 복야공파 권대인(權大仁)의 아들인 권중상(權重常)이 서후면 교리에 살다가 풍광 좋은 곳을 찾아 명리에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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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명리(明里)·덕리·광연리(光淵里)·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망진리(望津里)를 병합하고 명리의 ‘명’자와 망진의 ‘진’자를 따서 명진(明津)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일직현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리·덕리·광연리·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망진리가 병합되어 명진리가 되었다. 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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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원래 거무역(居無驛) 또는 거묵역(居墨驛)이라고 하였다. 그 뒤 안동김씨 입향조 김계행(金係行)이 마을에 은거하게 되면서 묵촌(黙村)이라 하였다가 송암폭포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정자 앞에 시내가 흐르므로 묵계(黙溪)라고 하였다. 연산군 때 김계행이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세 차례의 옥고를 치른 뒤 벼슬에서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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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 약수탕으로 유명하여 움터·음터[飮터]라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임북면에 속하여 미지리, 또는 미질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계·벌탄·벽지곡·동파가 병합되어 미질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월곡면의 중심지로서 면사무소·지서·우체국·국민학교·고등공민학교·시장 등이 있었으나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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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큰 골짜기에 있으면서 그 모양이 항아리와 닮았으므로 호곡(壺谷)이라 하였다가, 박 모양과 같다 하여 호곡(瓠谷)이라 하였다. 이후 박곡(博谷)으로 부르다가 박곡(朴谷)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또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염씨 가운데 정승을 지낸 사람이 벼슬에서 물러나 박을 가꾸면서 지내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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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주민들이 낙동강을 오갈 공용 배를 마련하고 띄우기 위해 조직한 계. 계는 계원의 상호 부조와 친목, 통합, 공동의 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운영이 된다. 우리나라 계는 삼한시대(三韓時代)에까지 소급되는 공동 행사의 하나로, 상호 부조라는 주된 목적 아래 취미 또는 생활양식의 공통 분야에서 성립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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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배방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완문비. 완문(完文)은 조선 시대에 민간의 청원이나 진정에 대하여 해당 관아에서 발급하던 증명 또는 허가 문서를 가리킨다. 그리고 비석이 세워진 마을은 원래 팽나무재이 또는 장승배기라고 하였는데, 이후 마을에 샛길을 내면서 경상도 도백이 비석을 세워 ‘비석거리’라고도 하였다. 배방리 완문비(杯芳里 完文碑)는 1800년(정조 2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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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지금의 임청각(臨淸閣) 부근으로, 신라 때 법흥사(法興寺)란 절이 있어서 법흥골 또는 법흥이라 하였다. 고성이씨가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세동(新世洞)에 편입되었고,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신세동 일부가 분리되어 일본식 지명인 영남정(嶺南町)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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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고성이씨 동성마을. 신라시대 법흥사(法興寺)가 있던 마을이므로 법흥동이라 하였다. 조선 초기 입향조 이증(李增)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영산현감으로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안동으로 낙향하여 산수가 수려한 남문 밖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 법흥동으로 옮겨 와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이후영(李後榮), 이상룡(李相龍) 등 뛰어난 인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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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효각. 변중일 충효각(邊中一 忠孝閣)은 간재(簡齋) 변중일(1575~1660)의 충성과 효행을 기려 건립한 것이다. 변중일은 임진왜란 당시 할머니와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어 피난을 가지 못하고 간호를 하였다. 어느 날 왜병이 할머니를 해치려 하자 대신 죽겠다고 자청하였는데, 왜병이 효심에 감복하여 깃발과 칼을 신표(信表)로 주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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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계는 한국 농촌에서 가장 보편적인 집단의 하나로서, 지금도 다른 집단보다 활동이 활발하고 성원들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가송리에서는 각성바지 마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사회조직이 발달하여 서낭계·상여계·뱃계를 시작으로 쌀계·초롱계·짤순이계 등 별별 계가 다 있는데, 고리재 사람들을 제외한 쏘두들·가사리·올미재 사람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쌀계는 자식이 결혼할 때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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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병산서원 앞에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병산(屛山)에서 따온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풍산현 상리와 하리의 일부, 풍서면 가곡리 일부가 병합되어 병산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풍천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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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중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시행해 온 역원공영제도(驛院公營制度)에 의하여 예안현(禮安縣)에 속했던 부라원(浮羅院)이 있었으므로 부라원·부라리라 하였다. 또한 마을에 장수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 수향(壽鄕)이라고도 하였다.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호군(護軍)과 경력(經歷)을 역임한 권간(權簡)의 윗대부터 마을에 살기 시작하였고, 그 후 금숙(琴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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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달과 같고 강에 모래가 많아서 사월(沙月)·사드레·사들·사월천·사평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여동·미질리 일부가 통합되어 사월리가 되었다. 1934년 임북면이 동후면과 통합되면서 동후면 소재지인 도곡리와 함께 월곡면에 편입되었고,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이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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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에는 공민왕의 딸을 모신 부인당(일명 공주당), 산신각, 거리당(일명 동신목), 독당(독산에 위치한 개인당) 등 총 4개의 마을 제당이 있다. 부인당과 산신당, 거리당은 일련의 세트를 이루고 있고, 독당은 개인당이면서도 마을의 부인당 서낭신을 따로 모신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산신각은 고대로부터 모셔 오던 산신 전통이 마을 공동체 신앙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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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능골·성황리·오도락·원음·고감을 병합하고 성황리 앞에 세 줄기 내가 합쳐져 흘러가므로 삼계리(三溪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동상면(東上面)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능골·성황리·오도락·원음·고감이 병합되어 삼계리가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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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풍산읍 위쪽에 있다 하여 웃마 또는 상리(上里)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고,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내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부리 일부와 서선면 하리, 서후면 대두서리 일부가 병합되어 상리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풍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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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에 있는 예안이씨 동성마을. 풍산읍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상리리(上里里)라고 하였다. 조선 중기 조광조와 깊은 친분이 있던 이영(李英)·이전(李荃)·이훈(李薰) 삼형제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여러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진외증조부인 조안도의 별서(別墅)가 있던 풍산읍 하리리에 정착하였다. 그 뒤 이훈이 상리리로 옮겨 와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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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병자호란 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 백이숙제(伯夷叔齊)가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려도 듣지 않자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고 살았던 것과 자신의 처지가 같다고 하여 고사리 ‘미(薇)’자를 써서 서미(西薇)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다. 『영가지(永嘉誌)』에는 “서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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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원래 소산리는 금산촌이라 하였다.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금산촌은 현의 서편 5리에 위치한다. 앞에 큰 들을 놓고 땅이 기름져 온갖 곡식이 잘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산촌은 ‘소가 누운 형국’이라 하여 쇠미 또는 금산이라 하였다. 소산으로 이름이 바뀐 때는 병자호란 때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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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원래 금산촌(金山村)이었다가 김상헌(金尙憲)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 금산촌은 너무나 화려하므로 합당치 않다고 하여 마을을 감싸고 있는 소요산의 이름을 따서 소산(素山)으로 고쳤다. 소산리 안동김씨는 후안동김씨(신안동김씨)와 선안동김씨(구안동김씨)로 갈라진다. 후안동김씨는 고려시대 삼태사 중의 한 명인 김선평(金宣平)의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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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송리리는 일직현의 현촌(縣村)이 있었던 마을의 속골짜기에 있다고 하여 속골, 속멋골이라 하였다. 또는 고려시대 말 손홍량(孫洪亮)의 출생지인데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다고 하여 송리(松里), 송골, 송곡(松谷), 솔마골, 손맛골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일직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촌을 병합하여 송리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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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봉수 터. 송리리 봉수지(松里里 烽燧址)는 일직면 송리1리 동북쪽에 있는 야산의 정상부 솔마골과 향교골 사이에 있다. 야산 정상부에는 송리산성이 있는데, 봉수대가 위치한 곳은 산성의 동남쪽 끝 해발도고 약 293m 지점이다. 봉수대의 규모나 형태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봉수대는 편평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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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노하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송현동(松峴洞)은 이 지역에 솔티고개가 있으므로 솔티의 한자 표기인 송현이라 하였다. 노하동(鷺下洞)은 골짜기의 모습이 백로가 날개를 펴서 논밭에 내려앉는 백로하전(白鷺下田) 형국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송하동에 속한 법정동인 송현동과 노하동은 1914년 안동부(安東府) 부내면(府內面)에 속하였다. 송현동은 안동부 부내면 서쪽의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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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뒤 아기산에서 물줄기가 마을을 둘러싼 형상으로 흐르고 있다 하여 수곡(水谷)이 되었다. 또 일대의 모든 물이 마을을 감싸고 흘러가므로 무실 또는 수곡촌(水谷村)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하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6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평, 원파,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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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증수동, 탄곡리, 상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증수의 ‘수’자와 탄곡의 ‘곡’자를 따서 수곡(壽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안동군 서선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증수동·탄곡리·상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수곡리라 하였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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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 동쪽에서 흘러들어 수동촌이라 하였고, 또 마을이 낙동강가에 자리 잡은 탓에 홍수가 자주 들어 수동(水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수동촌(水洞村): 속명(俗名)은 수동(首冬)이다. 회곡(檜谷)에서 서쪽으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있다. 부(府)와는 25리의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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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 동쪽에서 흘러오므로 수동촌(水東村)이라 하였다가 후대로 오면서 수리(水里)로 바뀌었다. 수리의 안동김씨 입향조에 대해서는 남후면 개곡리에서 이주했다는 사실 외에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남후면 개곡리 안동김씨들은 익원공 김사형(金士衡)의 후손들로, 풍산읍 소산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의정 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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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산성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신남리(新南里)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죽·정자곡·구통·두곡·산양평·점곡과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남리라 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신남리가 되었다. 북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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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신당(新塘)의 ‘신’자와 인덕(仁德)의 ‘덕’자에서 따서 신덕리(新德里)라 하였다. 신당이라는 지명은 마을 앞에 연못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으며, 또한 옛날 추월(楸月)과 같이 동제를 지냈던 당나무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서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당동·인덕동·평지동과 남선면의 이곡동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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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에 연못이 있다고 하여 신당(新塘), 또는 동제를 지냈던 당나무가 있는 곳이어서 신당(新堂)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당과 인덕에서 ‘신’자와 ‘덕’자를 각각 따서 신덕리(新德里)라 하였다. 입향조 김명일(金明一)은 청계 김진(金璡)의 3남으로 천전리에서 살다가 당시 신당마을에 살고 있던 영양남씨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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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고려시대 봉수 터. 신석리 봉수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을 때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1999년 발간된 『안동시사』에 신석리 봉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도지리지』(1425)에는 ‘남산봉수는 동쪽으로 신석산 봉수와 15리의 간격으로 연결되고, 신석산 봉수가 다시 15리 간격으로 약산봉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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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에 열 ‘십(十)’자로 큰길이 나 있어 납 신(申)자와 같이 생겼으므로 납성계·남성개·신성포(申城浦)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豊南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산동(箕山洞) 일부와 용궁군(龍宮郡)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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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본래 풍산현의 지역으로, 신양 부곡이 있어 신양(新陽)이라 하였다. 1608년에 편찬된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만운(晩雲) 서쪽 5리에 있으며, 풍산현에서는 10리 떨어져 있다. 옛날에는 부곡(部曲)이었다가 지금은 촌리(村里)가 되고 본 현에 예속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안동군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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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경북마을지』와 『안동의 지명유래』에 “대밭골에서 서북쪽 골짜기에 악심사(嶽深寺·岳心寺)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을은 악심(岳心·嶽深), 고개는 악심고개[嶽深峴]라 불렀다고 한다. 악심의 북쪽에 있는 마을은 악대(嶽垈)라 하여 악심사의 옛터이며, 이 터에 화강석으로 된 삼층석탑이 있는데 신라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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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안교리의 자연마을 중 역마 또는 역촌(驛村)은 1530년 경 홍씨(洪氏)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1800년 경 소산동(素山洞)에 있던 역을 이곳으로 옮겨와 지어진 이름이다. 어란(魚卵) 또는 우안(愚安)은 마을 앞에 갈대늪이 있어서 고기가 모여 알을 낳고 부화하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새역마 또는 신역(新驛)은 1800년 후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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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안기동(安奇洞)은 조선시대에 안기역(安奇驛)이 있었다고 하여 ‘안기역마’ 또는 ‘안기골’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안기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인 안기동과 이천동은 조선시대에 안동부(安東府) 부내면(府內面)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안기동의 경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기동이 되었고,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일부를 갈라서 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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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에 있는 함안조씨 동성마을. 조선시대에 안기역(安奇驛)이 있었으므로 안기동이라고 하였다. 조선 세조 때 참지공 조욱(趙昱)이 안동향교에 교수로 부임한 뒤 후손들이 안기동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현재 안기동에 세거하고 있는 함안조씨는 대부분 참지공파에 속한다. 마을 뒤쪽에 학(鶴)이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가학산(駕鶴山)이 있고, 가학산에는 골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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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에 있는 석불. 동암사 석불(東岩寺 石佛)은 대웅전 내부에 있는 주존불이다. 대곡리 바드래마을 서북쪽에 위치한 동암사에 있다. 대곡리는 임동면의 북동쪽으로, 중평리에서 지방도 999호선을 따라 17㎞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동암사는 바드래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남쪽에서 북쪽으로 낮아지는 해발고도 365m의 산등성이에 있다. 소유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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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태화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원우(院宇). 안동 관왕묘는 태화동 서악사(西岳寺) 옆 북동쪽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산등성이가 완만하게 낮아지면서 평지와 만나는 해발고도 115m 지점이다. 앞쪽에는 경덕중학교가 있다. 1598(선조 31) 명나라 장수 진정영도사(眞定營都事) 설호신(薛虎臣)이 세웠다. 당시에는 안동 성내동 목성산(木城山)에 있는 향교 맞은편에 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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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에 있는 사찰. 애련사(愛蓮寺)는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소속 종단이 따로 없다. 다만, 1799년 발간된 『범우고(梵宇攷)』에 예련사(刈蓮寺)라고 기록되어 있고,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는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을 살펴보면 애련사(艾蓮寺)라 했고, 신라의 옛 절이라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애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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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풍수지리학적으로 마을의 지형이 자라 모양이기 때문에 ‘못이 있어야 마을이 흥한다’라고 하여 이름에 못[潭]을 넣어 어담(漁潭)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개동(自開洞)과 일직면 거물억리(巨物億里), 국곡리(菊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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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우물. 이황(李滉, 1501~1570)은 도산서당과 주위의 자연을 7언시와 5언시로 노래한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지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열정(冽井)이다. 열정은 물이 차고 마시면 마음이 상쾌해진다고 하였다. 열정은 『주역(周易)』의 ‘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 즉 ‘물이 맑고 차가우니 마실 수 있네’라는 글에서 이름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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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고구려 때 매곡현(梅谷縣)이었고, 신라 때는 선곡현(善谷縣)으로 내령군(奈靈郡)의 영현(領縣)이었다. 고려시대 1018년(현종 9) 길주(吉州)에 복속되어 예안현이 되었고, 1376년(우왕 2) 다시 군으로 승격하였다가 얼마 뒤에 주(州)로 승격하였다. 공민왕 때 예안 동쪽에 있는 의인현(宜仁縣)을 병합하였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예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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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공주를 부인으로 칭하며 모시는 가송리에서는 예전에 성대한 별신굿을 벌였다고 한다. 그리고 약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3년에 한 번씩 정월 초이튿날과 초사흗날에 입칠봉을 넘어서 산성마을에 있는 공민왕당에 가서 세배를 갔다. 공민왕당 세배는 아무리 눈이 많이 쌓이고 날씨가 사나워도 빠뜨리거나 미루는 일이 없었는데, 초록 저고리와 다홍치마의 서낭대를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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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에는 여러 사회조직이 발달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사회조직은 마을굿을 연행하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가송리에서 오랜 옛날부터 조직되어 활동해 온 계는 크게 서낭계·상여계·뱃계 등이 있으며, 공식적인 모임으로 부인회와 노인회 등이 있다. 서낭계는 동제를 드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계로서 고리재 사람들을 제외한 쏘두들, 가사리, 올미재 사람들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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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언덕이 져있으므로 어드기·오드기 또는 오도촌·오도리·어덕리라 불렀다. 이후 오동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오동지기(梧桐枝棄)라 부르다가 ‘오동나무 숲의 터’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오대(梧垈)로 정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서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나천리·금소리·길안면의 산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대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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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풍산김씨(豊山金氏) 500년 세거지로, 조선 초기에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金文迪)의 8세손 김자순(金子純)이 처음 마을에 정착하면서 ‘다섯 가닥의 산줄기가 뻗어 내려 있다’고 하여 오릉동(五陵洞)이라 하였다가, 후손 의정공(義貞公)이 을사사화 후에 낙향하여 ‘능(陵)’이란 글자가 언덕을 뜻하지만 임금의 무덤을 뜻하기도 하므로 이랑 ‘무(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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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 있는 풍산김씨 동성마을. 김대현(金大賢)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진사시에 합격하고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자 인조가 ‘팔련오계(八蓮五桂)’라고 하면서 ‘오미(五美)’라는 마을 이름을 내렸다. 경주 출신의 김연성이 관직에 있으면서 풍산 석릉촌(石陵村)에 와 있던 중 오미리에 별서(別墅)를 마련한 뒤로 현손인 김자순(金子純)이 서울 장의동에서 오미리로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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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광산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 밑에 깔린 돌이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고 하여 오천(烏川)이라 하였다. 고려시대 광산김씨 안동 입향조인 김무의 셋째 아들인 김효지(金孝之)가 오천리에 살고 있던 평해황씨인 황재(黃載)의 사위가 되어 풍산 구담리에서 옮겨 옴으로써 광산김씨 집성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김효지에게 아들이 없어 종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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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에 있는 전탑 터. 각각 1893년과 1992년에 발간된 『안동향토지』와 『경북마을지』에서 옥산사 전탑지와 관련하여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경북마을지』에는 “『영가지』에 옥산사는 부(府)의 북쪽 32리에 있다. 그 북쪽 5리에 석혈(石穴)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안동향토지』에는 이름만 전하는 옛 탑들에서 “월천전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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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진성이씨 집성촌. 마을에 있는 온천의 은혜를 받는다는 뜻에서 온혜리(溫惠里)라 하였다. 입향조 이계양(李繼陽)이 봉화현 교도(敎導)가 되어 부임지로 가는 길에 온혜리를 지나면서 산수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중턱에 앉아 쉬다가 지나가는 승려와 온혜의 풍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함께 마을로 내려왔는데 스님이 주변을 살피다가 낮은 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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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 있는 진주강씨 집성촌. 마을 북서쪽으로 높은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 단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옹전(瓮田),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 하였는데, 이후 마을에 물맛이 좋은 샘이 있다고 하여 ‘옹(瓮)’자와 ‘천(泉)’자를 붙여 옹천(瓮泉)이라고 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입향조 강시(姜蓍)가 성균시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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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용의 뿔처럼 생겼으므로 용뿌리·용각(龍角)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일직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조탑리 일부가 병합되어 안동군 일직면 용각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됨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서쪽으로 삼표당(三標堂, 443.7m)이 솟아 있고, 그 산에서 발원한 송양천(松陽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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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서낭당들이 매년 정월 대보름날 한 차례씩 제사를 올리는 데 비해 가송리에서는 정월 대보름과 단오에 마을굿을 한다. 그런데 정월 대보름 마을굿 때는 산성에 세배를 다녀오고 신내림을 받지만 단오 때에는 산성에 가는 일이 없고 신내림도 받지 않으며 간단히 지낸다. 가송 사람들은 아주 옛날에는 매년, 다음에 2년 터울, 그리고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3년마다 한 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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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굴처럼 생긴 고개가 있어 굴티·구르티·굴터로 부르다가 한자로 운산(雲山)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운산리(新雲山里)·소호리(蘇湖里)·송리(松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운산리라 하고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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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운산역(雲山驛) 객사인 원(院)이 있어 행인들의 편의를 제공하여 원곡·원동·원골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호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안동군 일직면 원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일직면 원리가 되었다. 남쪽과 북쪽은 구릉으로 둘러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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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불좌상. 원림사지 석불좌상(院林寺址 石佛坐象)은 임하1리 한작골못마을에서 북쪽으로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5m 거리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0호 안동 임하동 오층석탑(安東 臨河洞 五層石塔)이 있다. 높이는 100㎝, 어깨 너비는 52㎝이다. 견부(肩部) 이상과 오른쪽 팔목이 손실된 상태이다. 중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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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영천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인 원당과 오천에서 ‘원’자와 ‘천’자를 따서 원천(元川)이라고 하였다. 고려 말기 이대영(李大榮)의 5세손인 이헌(李軒)이 군기시소윤으로 재직하다가 영천에서 예안(지금의 도산면 분천리)으로 이거한 뒤 후손들이 도산면 일대에 세거하게 되었다. 그 뒤 이헌의 현손인 농암 이현보의 아우 이현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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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 인조 때 권홍(權弘)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때 남쪽 멀리에 큰 호수가 보인다고 하여 원호(遠湖)라 하였다. 물이 멀다고 하여 멈물·머무리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송리(松里) 일부가 통합되어 안동군 일직면 원호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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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윗골·위곡·위동촌이라 하였다. 위리 앞으로 수원이 풍부한 위천(일명 위수, 현 대곡천(大谷川))이 흘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6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기(新基)가 통합되어 안동군 임동면 위리로 개편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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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한서암의 문. 유정문(幽貞門)은 도산서당(陶山書堂)의 유정문과 명칭이 동일하다. 두 곳 모두 이황이 만들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의미 또한 동일할 가능성이 높다. 도산서당의 유정문은 이황이 도산서당과 주위의 자연을 칠언시와 오언시로 노래한 『도산잡영(陶山雜詠)』 가운데 한 가지이다. 이때 유정이란 ‘그윽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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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 신도비. 비석(碑石)은 고인의 사적(事蹟)을 칭송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문장을 새겨 넣은 돌을 말한다. 비석의 종류에는 신도비(神道碑)가 포함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만 세울 수 있게 제도화하였다. 이굉(李浤, 1440~1516)은 자는 심원(深源)이고, 호는 낙포(洛浦)·연생당(戀生堂)이며, 본관은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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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우리와 황새골을 병합하면서, 이우리의 위쪽 지역이므로 이상리(伊上里)라고 하였다. 조선 중기 권대기(權大器)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상리와 이하리 일대에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권대기의 장남 권우(權宇)가 이름을 떨치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으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마을 뒤쪽으로 관점산(觀占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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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청구리·도동리·전두리·송곡을 통합하면서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동계천(東溪川)의 ‘계’자를 따서 인계(仁溪)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동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구리·도동리·전두리·송곡이 통합되어 인계리가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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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어금실·니금곡(泥金谷)·니금곡촌(泥金谷村) 등으로 불리다가 1914년 월애동(月厓洞)을 통합하면서 인금(仁今)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6년 지방 관제 개편으로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애동이 통합되어 인금리가 되었고,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풍천면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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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1899년(광무 3)에 발간된 『안동읍지(安東邑誌)』「연혁조(沿革條)」와 「방리조(坊里條)」에 따르면, 일직현은 “본래 신라 때부터 일직(一直)으로 불리었으며, 경덕왕(景德王)이 일녕현(一寧縣)으로 고쳐 고창군(古昌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직성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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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안동의 읍지(邑誌)인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임동면은 “본래 고구려의 굴화군(屈火郡)이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곡성군(曲城郡)으로 고쳤는데, 고려 초기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顯宗) 때에 본부(本府)에 예속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 임하현에 속하였다가 조선 숙종 때 임하현이 분할되면서 안동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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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전주류씨 동성마을. 마을 뒤쪽에 있는 아기산(峨岐山)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을을 둘러싸는 형상으로 흐른다 하여 수곡리(水谷里)라고 하였다. 입향조 류성(柳城)의 아버지 류윤선(柳潤善)이 영주에 세거하고 있는 반남박씨 박승장(朴承張)의 사위가 되어 영주시 문수면으로 옮겨 온 뒤, 류성이 임하면 천전리에 세거하던 김진(金璡)의 맏사위가 되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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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반변천(半邊川)이 흐르는 강가에 있어 임하(臨河)라 하였다. 임하현의 관아가 있던 곳이라 하여 현내(縣內)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추월리(秋月里) 일부가 병합되었다. 1931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하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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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석등의 대석. 임하리 석등대석(臨河里 石燈臺石)은 임하1리 549번지[기르마제길 19] 민가 내에 위치하고 있다. 한작골못마을의 북쪽에 인접한 곳으로, 지금은 폐교된 임하동부초등학교에서 남동쪽으로 450m 정도 떨어져 있다. 원래 임하1리 동쪽 산속에 있었는데, 1960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팔각기둥 모양이며 중판연화문(重瓣蓮花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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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낙동강 반변천 기슭에 있다 하여 임하(臨河)라고 하였다. 와룡면 이상리에서 출생한 권환(權寏)이 당시 임하현 천전리에 세거하던 의성김씨 집안의 사위가 되어 임하리로 옮겨 오면서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권환은 천전리에 세거하던 김진의 외손녀인 전주류씨를 셋째 부인으로 맞았다. 즉 김진의 셋째 딸이 수곡리에 살던 류란(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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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강과 붙어 있다고 하여 임하(臨河)라고 하였다. 고구려 때 굴화군(屈火郡)이었다가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곡성군(曲城郡)이 되었다. 고려 초에 임하현(臨河縣)이 되었고, 조선 숙종 때 임하현이 분할되면서 안동군(安東郡)에 편입되었다. 1906년(광무 10) 임하현을 폐하여 안동군에 편입하고 임현내면·임남면·임동면·임북면·임서면으로 개편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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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반변천이 흘러 천전(川前, 일명 내앞)이라고 하였다. 입향조 김만근(金萬謹)이 당시 임하현의 대지주인 해주오씨 오계동(吳季童)의 사위가 되어 임하현에 정착한 뒤로 김예범(金禮範)이 천전리에 정착함으로써 의성김씨 집성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신덕·임하·망천·추월·지례·국란·내급 등 임하현 일대에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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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옥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임하사지(臨河寺址)에 대한 기록은 1469년 발간된 『경상도 속찬지리지(慶尙道 續撰地理誌)』, 1608년 펴낸 『영가지(永嘉誌)』「고적조(古蹟條)」, 1983년 나온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 등에 등장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위치는 확인하지 못하다가 1985년 6월 안동문화연구회의 회원인 이진구와 김복영 등이 처음으로 위치를 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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