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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가일리·지곡촌·갈전리·하회리에서 ‘가(佳)’자와 ‘곡(谷)’자를 따서 가곡(佳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풍서면의 가일리·지곡촌·갈전리의 각 일부와 풍남면 하회리 일부가 통합되어 가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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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산성. 가곡리 산성은 가곡리 가일마을 뒷산 정상부 해발고도 약 260m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가곡리를 비롯해 풍산읍 소산리와 풍산평야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가일마을은 안동권씨(安東權氏) 집성촌으로 안동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이다. 산성의 형태는 봉우리의 8부 능선을 둘러싼 테뫼식이다. 돌로 쌓은 석성이며, 성벽은 내외협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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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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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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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성혈. 성혈(性穴)이란 자연 암반 표면에 홈처럼 파인 구멍을 말한다. 거석 신앙을 대표하는 고인돌이나 선돌에 파여 있다. 민간에서는 성혈이 파여 있는 바위를 알바위, 알터, 알구멍, 바위구멍이라고도 한다. 크기는 지름 5~10㎝에 깊이 3~5㎝ 내외가 대부분이나, 지름이 15~20㎝에 달하는 것도 있다. 가구리 성혈은 와룡면 가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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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괴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가류동 박씨 고가는 안동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던 까치구멍집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까치구멍집은 실내 공기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지붕 용마루의 양쪽에 구멍을 낸 집을 이르는 것으로 이것이 까치둥지와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웬만한 일은 실내에서 할 수 있도록 평면이 구성되어 있다. 원래 안동시 월곡면 가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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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네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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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칡넝쿨이 무성한 곳을 개척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데서 갈밭 또는 갈전(葛田)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동면의 추곡과 신곡이 통합되어 갈전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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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1592년(선조 25) 조연원이라는 사람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들어와 마을을 일구었는데, 당시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산천을 뒤덮어 갈밭[葛田]이라고 칭하였다. 또 여자지(못)와 갈대밭으로 새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더할 가(加), 새 을(乙), 밭 전(田)을 써서 가을전(加乙田)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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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의 수상동·수하동·정상동·정하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관할 동인 수상동·수하동·정상동·정하동이 낙동강 아래에 자리잡고 있어 강남동이라고 부른듯 하다. 1983년 남후면 수상동·수하동, 남선면 정상동·정하동이 안동시로 편입되면서 행정동인 강남동 관할이 되었다. 1998년에 서구동에 통합되면서 폐지되었고, 2005년에 다시 분리되어 4개 법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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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개목사란 이름에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원래는 절 이름을 흥국사(興國寺)라 하였다 한다. 당시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많았는데 절 건립 후 비보사찰을 삼은 후에 소경들이 없어졌다 하여 개목사(開目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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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절터. 개심사(開心寺)는 원래 남선면 외하리에 있는 우두사(牛頭寺)를 1945년 임공월(林公月)이 남선면 현내리로 옮기고 개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심사지(開心寺址)에 있던 삼층석탑은 현재 불광사 앞마당으로 다시 옮겼다. 안동시 남선면 외하리 새터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우두골에서 북쪽으로 작게 갈라져 생긴 절골의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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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암각서. 광덕리 부용대와 하회마을 사이로 흐르는 낙동강 가운데에 큰 바위가 누운 듯이 있어서 ‘배를 매어 두기 좋다’ 하여 ‘계강암(繫舡巖)’이라 새겼다. 계강암은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와 하회마을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에서 부용대 쪽으로 치우친 돌출된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윗면을 가로 31㎝, 세로 68㎝ 정도로 다듬고, 글자는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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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계곡리 고인돌은 예안면 계곡리 계일마을의 건너편에 있었다. 현재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으며, 안동호 수면이 낮아질 때에만 노출되는 상태이다. 암석은 연질이며, 수침으로 인하여 대부분 훼손되고 뚜껑돌의 일부만이 남아 있다. 모두 30여개의 성혈이 있다고 한다. 계곡리 고인돌은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 계일마을 건너편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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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고곡리는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이 골짜기가 깊고 길다고 하여 고일, 고곡(古谷), 고곡촌(古谷村)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소리 일부가 통합되어 고곡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 임하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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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에 있는 고려 건국 공신 삼태사의 비. 삼태사는 고려를 건국할 당시 왕건을 도왔던 안동의 공신들을 말하며,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정필(張貞弼)을 가리킨다. 퇴계 이황은 삼태사(三太師)의 공을 「삼공신묘기(三功臣廟記)」를 써서 고증하였는데, 김희순(金羲淳)이 이를 살펴 1805년(순조 5)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지었다. 삼태사 묘정비(三太師 廟庭碑)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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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고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세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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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넓은 둔덕이 있어 광덕(廣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풍남면의 안심동·형호동·하회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광덕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가 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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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안동부 일직현의 현감이 살던 터가 있어서 고양터·괭이터라 하였는데, 마을에 화재가 자주 나므로 앞들에 못을 파고는 뒤의 향로봉(326.9m)의 불길을 끈다는 뜻으로 광연(光淵)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리·안망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유촌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광연리로 개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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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있는 봉수 터. 『문화유적총람』과 『안동지역전통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에 “광평리 봉수지(廣坪里 烽燧址)는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을 왔을 당시, 개목산성(開目山城)에 피신하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당시 지방 주민이 성 밖인 이곳 광평리에서 지키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알리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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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광흥사 창건자인 의상(義湘, 625~702)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속성은 김(金)이다. 신라 십성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화엄을 공부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부석사(浮石寺)를 세우고 화엄종을 강론하여 우리나라 화엄종의 창시자가 되었다. 전국 열 군데에 화엄종 사찰을 세웠으며, 저서로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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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주변에 낙동강의 흐름에 의해 생긴 아홉 개의 소[潭]가 있어 구담(九潭)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예천군 용궁면 암천리와 예천군 호명면 금릉동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담동으로 개편되었다. 구담동은 1934년 안동군 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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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구렁이 있으므로 구렁 또는 구룡방이라 하였다. 마을의 형국이 구룡장생(九龍長生) 혹은 구룡쟁주(九龍爭珠)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달리와 양옥동이 통합되어 구룡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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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미천(眉川)이 굽이쳐 흘러서 구천(九川)이라 하였다. 앞들이 기름져서 복리촌(福利村)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일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보리리·원호리·구미리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천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일직면 구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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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경상북도 의성군 청계에서 발원하여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까지 흐르는 을곡천(乙曲川)이 아홉 굽이를 돌아 흐르며 각 굽이마다 깊고 푸른 소(沼)를 만들어 구호(九湖)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마을을 관통하는 을곡천이 돌아가는 형국을 보고 ‘굽이’라 불렀는데, 음이 변하여 구미·구미촌이 되었다. 마을 남쪽 산등성이가 마치 늙은 거북의 등과 같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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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주변의 산세가 국화꽃을 닮았다고 하여 국곡(菊谷)이라 하였다. 국싯골이라고도 한다. 약 180년 전 하국곡에서 이조참판을 지낸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일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조탑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국곡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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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 국망봉에 있는 암각서. 온혜리 진성이씨(眞城李氏) 집성촌의 입향조인 노송정(老松亭) 이계양(李繼陽, 1488~1524)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후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후에 도산면 운곡리 국망봉 정상부에 글자를 새겼다. 국망봉 정상부에는 세 개의 바위가 앞뒤로 나란히 있는데, 앞쪽에서 뒤쪽으로 가면서 ‘국(國)’, ‘망(望)’, ‘봉(峯)’이란 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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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 권행의 묘. 권행(權幸)은 안동권씨의 시조(始祖)로, 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 등과 함께 930년 안동의 병산(甁山, 현 와룡면 서지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에 왕건은 이들에게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다. 현재도 세 사람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안동 태사묘(安東 太師廟)가 있다. 안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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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구다니·구단이라 하였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말에 예안군 동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갈동이 통합되어 귀단동으로 개편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귀단리가 되었다. 귀단리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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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물이 껴안은 듯하며 거북과 뱀이 모인 듯하여 ‘귀미(龜尾)’라 하였다고 한다. 미천(眉川)이 굽이쳐 흐르므로 ‘구비’라 하던 것이 변하여 귀미가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호리·귀천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구산면 신기동의 일부가 통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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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금계리에 있는 연대 미상의 전탑. 금계리 전탑은 풍천면 금계리 탑마을 서쪽에 있다. 원래 서쪽 밭둑에 위치한 5층 전탑이었다고 한다. 이후 무너진 것을 주민들이 현재의 상태로 쌓아올린 것이다. 탑의 현재 높이는 약 250㎝이며, 북쪽면은 완전히 허물어져 있다. 『경북마을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탑은 사각형으로 된 지대석(址臺石)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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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계곡이 마치 비단과 같이 아름다워 금계리(錦溪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豊南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기동과 병합되어 금계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풍천면(豊川面)에 편입되었다. 북쪽에 솟은 마늘봉(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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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안산(案山)인 비봉산(飛鳳山) 봉우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하여 금수(錦水)·금양이라 하였다가,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에는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된다는 전설에 따라 금소(琴韶)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금소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자 일본인들이 마을의 이름을 금소라고 바꾸었다고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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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금소리 고인돌 떼는 모두 4곳에 나뉘어 있다. 금소리 고인돌 떼1은 금소평야에 위치한다. 현재 외형상으로 제대로 확인되는 고인돌은 1기뿐으로, 계단식 논의 둑에 위치하고 있다. 금소리 고인돌 떼2는 금소리 입구 당지골에 골짜기를 따라 4기가 분포되어 있다. 금소리 고인돌 떼3은 마을 뒷산(쇗골)에 있다. 또한 고인돌이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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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연대 미상의 석탑. 금소리 석탑은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마을회관 뒤에 위치한다. 새마을공판장 옆으로 돌아가면 담장 안쪽으로 탑이 보인다. 현재 석탑은 금소리 560[금소3길 8-7] 임용재의 집 마당 남쪽 구석에 위치한다. 석탑의 북쪽에 석불이 놓여 있다. 금소리 석탑은 전체적으로 파손이 심하여, 현재는 흩어진 석탑재를 대강 맞추어 쌓아 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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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금양단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이 강학하던 금양정사(錦陽精舍) 자리에 새긴 암각서이다. ‘금양’이란 금양정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이현일의 별칭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이곳에서 이현일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 657명의 이름을 기록한 『금양급문록(錦陽及門錄)』이 전한다. 이현일은 퇴계학통을 계승하여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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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처음에 지실어촌(只失於村)·지실이·기실기·지시러기·옥산동(玉山洞)으로 부르다가 고려 말에 사복재(思復齋) 권정(權定, 1353~1411)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한 후 ‘기사(棄士)’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죽전곡(일명 대밭말)·서당곡·아휴리가 통합되어 기사리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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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마치 곡식을 까부는 데 사용하는 도구인 키[箕]를 빼어 닮았다고 하여 기산(箕山)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성동과 안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기산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풍천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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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헌의 유허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속칭 ‘빗집바우’ 위에 있다. 빗집바우는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강론하던 서간사(西磵祠) 뒤쪽에 위치한다. 빗집바위 위에 세워진 단칸 팔작지붕 안에 유허비가 있다. 높이 171㎝, 너비 72㎝, 두께 21㎝ 정도이다. 앞면에는 ‘청음선생목석거유허비(淸陰先生木石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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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김선평의 단소(壇所). 김태사 단소(金太師壇所)는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의 무덤이다. 김선평은 권행(權幸)·장정필(張貞弼)과 함께 930년 안동의 병산(甁山, 현 와룡면 서지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에 왕건은 이들에게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다. 현재도 세 사람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안동 태사묘(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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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노하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정열효각. 김성범·일직손씨 정열효각(金成範·一直孫氏 旌烈孝閣)은 안동시 노하동 885번지에 세워져 있다. 노하동은 서후면과 경계 지점에 있는 마을로, 정열효각은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마을회관에서 북쪽으로 170m 정도 떨어져 있다. 조선 순조 때 안동시 노하동에 사는 김해김씨 김전대(金塡大)가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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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문. 김정근 효자문(金正根 孝子門)은 성균진사를 지낸 김정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김정근 정려문이라고도 한다. 김정근은 1738년(영조 14)에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대직(大直), 호(號)는 낙북(洛北)이다. 김희맹(金希孟)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옥경(金沃慶)이다. 1773년(영조 49) 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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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조선시대의 암각서. 낙연현류(落淵懸流)는 도연폭포(陶淵瀑布)의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해 새긴 글씨이다.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던 도연폭포 오른쪽 절벽 뒤편에 표은고풍(瓢隱高風)·하남삼절(河南三絶)과 함께 새겨져 있었으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세로 방향 두 줄로 새겼다.‘낙(落)’과‘현(懸)’자는 모두 위에서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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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절터. 1983년 발간된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 “옛날 『영가지(永嘉誌)』 편찬 당시(1608)에는 이곳에 남연사(南淵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깊은 물이 있었으나, 『안동향토지』를 발간할 때는 사찰이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연사지(南淵寺址)는 임하면 금소리의 앞산인 비봉산 정상부 남쪽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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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노리는 모운사(暮雲寺)라는 절이 있어 ‘모노골’, ‘모놋골’, ‘노곡’이라 부르다가 노리로 정착되었다. 또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이 안동 지역으로 몽진하여 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왕비인 노국공주가 하룻밤을 지냈다고 하여 모로곡(慕魯谷)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서선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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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노산리는 마을이 노산(盧山)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노산촌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후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현동·석동동·반시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노산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안동댐 건설로 노산리의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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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봉수산과 녹전산(570m) 아래에 있고, 놋그릇을 만드는 유기점이 있었다고 하여 녹전이라 하였다. 또한 토질이 좋고, 수원(水源)이 깊어 가뭄이 들지 않아 결실이 잘되는 곳이라 하여 녹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녹전리의 ‘녹’자와 내동의 ‘내’자를 합하여 녹래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예안군 서면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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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 물이 범람하여 파도를 쳐도 이 바위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물결을 능멸한다’는 뜻에서 새긴 글씨이다. 능파대(凌波臺)는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芙蓉臺) 동쪽에 자리한 하회 옥연정사(河回 玉淵精舍)에서 남쪽으로 2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가로 암각서가 새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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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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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크고 긴 골짜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대곡(大谷) 또는 한실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임하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복수천, 해천, 신평, 고도, 금수천, 고사, 갈마곡과 위리(渭里) 일부가 통합되어 대곡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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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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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 장안절골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도곡동 장안절골 고인돌 떼는 원래 안동시 월곡면 도곡리의 안동댐 수몰지구에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이곳은 와룡면 도곡리 웃문암마을에서 남서쪽으로 9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현재는 안동호에 잠겨버렸다. 도곡동 장안골절 고인돌은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안동댐 수몰지역 조사시에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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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산천이 아름답고 그윽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고 복숭아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도목(桃睦) 또는 도목촌(桃睦村)이라 불렀다. 또 한 점쟁이가 와서 마을 주위에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해롭다고 하여 도목촌(道木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도목(道睦)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남첨(南襜)이 강학하던 장소를 기려 후손들이 8칸의 정사를 지은 뒤 편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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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도소호계(陶笑虎溪)’는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나라 혜원법사(惠遠法師)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살면서 호계(虎溪)를 건너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혜원법사는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배웅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건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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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미륵불. 도솔원(兜率院)은 조선 세조 때 관원(官員)이나 선비들이 숙식할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이다.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이 도솔원이 되었다고 한다. 원(院)은 공무로 지방에 출장을 오가는 관리들의 숙박 시설이다. 국가에서 역(驛)과 역 사이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하여 운영하였던 일종의 여관이다. 도솔원 미륵불은 서후면 명리 남쪽에 위치한 도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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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양지쪽에 자리 잡아 되양골 또는 도양골이라 하였는데, 조선 중종 때 관찰사 김연(金緣)이 살면서 도왕동으로 고쳤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질 당시 ‘볕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뜻의 도양리(道陽里)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풍산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풍서면에 편입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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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도촌리는 원래 길골·질골·길곡(吉谷)·도곡(道谷) 등으로 불리었다. 예전 영해에서 소금이나 해산물을 지고 영양을 거쳐 장갈령(長葛嶺)을 넘어 도촌리를 지나 예안까지 갔는데, 장갈령에서 마을로 뻗어 내려오는 길을 길골이라 하였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피박 또는 피박골이라고도 불렀다. 사래실 앞산 고지박을 닮은 명당을 껍박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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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내[川]가 있다고 하여 동천리(東川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학리·부모리·장갈리를 병합하여 동천리가 되었다. 1934년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동천리가 되었다. 동천리의 동쪽으로는 영양군 청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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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수몰되기 전의 마을 모습이 우마(牛馬)가 짐을 싣고 있는 형국, 또는 말발굽 형상인 데서 맛재, 마령(馬嶺)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하현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쇠랑실, 우무골, 이식골, 송골, 지리실, 한내골 등을 마령리로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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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삼한시대에 마읍군(馬邑郡)이 있었으므로 마읍(馬邑), 또는 맛골, 마읍촌(馬邑村)으로 불리다가 마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천·도수곡·신기·사곡을 병합하여 마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일부가 수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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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모습이 중국의 망천(輞川)을 닮아서 망천이라 하다가, 바위에 부처의 모습을 새긴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磨崖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 있어서 마애(磨崖)라 하였다. 마래, 마라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내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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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마애리 구석기 유적은 풍산읍 풍산평야의 서남쪽 끝에 있는 마애마을 동남쪽의 낙동강변에 위치한다. 유적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S’자 모양으로 굽이치는데, 이로 인해 유적이 있는 일대는 오랜 기간 비옥한 토양이 퇴적되어 하안단구 지층을 형성하면서 사람들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왔다. 2007년 시굴 당시 구석기시대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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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청성산이 낙동강과 합류되는 곳에서, 청성산이 남쪽을 막고 있어 막실·두곡·막곡촌이라 하였다. 또한 후삼국시대에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안동의 합전교(현 안동시 송현동) 부근에서 진을 치고 전투할 때 지역의 호족들이 의병을 일으켜 마을에 진을 쳤는데, 이때 커다란 군막을 쳐서 주둔하였으므로 막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안동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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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막곡리 고분군은 세 곳으로 나누어진다. 막곡리 고분군1은 속칭 방갓골 뒤쪽 능선에 30여기의 고분이 반달 모양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방갓골 내에 있는 의성김씨 율리 종택(義城金氏栗里宗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81호)에서 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송야천과 그 좌우 경작지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막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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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만운촌은 일명 두답(斗畓)이라고도 한다. 풍산현의 북쪽 5리에 위치하며 선비 송여원(宋汝源)이 마을의 이름을 만오(晩悟)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을의 형태가 말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말논, 마논, 또는 두답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마을이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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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염흥방이란 사람이 사병을 길러 약탈을 일삼자 나라에서 관군을 보내어 마을 앞 반변천(半邊川)에서 토벌하여 사병들이 이곳에서 전멸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망지내[亡地川]라 칭해 오다가 지명에 ‘망(亡)’자가 있어 좋지 않다고 하여 망천(網川)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숙종 때 안동군 임동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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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절터. 망천사지(望天寺址)가 위치한 마을은 원래 중국에 있는 망천(輞川)과 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지녔다고 하여 망천이라 하였다. 그 후 낙동강 변에 바위를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로 바꾸어 불렀다. 망천사지는 풍산읍 마애리 마애마을에 있다. 이곳은 마애들의 동남쪽 끝자락에 해당하며 낙동강 변에 위치한다. 현재 망천사지 주변은 마애들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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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말에 시랑(侍郞) 벼슬을 지낸 소씨(蘇氏) 가문이 살았는데, 앞에 펼쳐진 들과 호수를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망호리(望湖里)라 하였다. 또한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불렀다.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옛날에는 구미촌(龜尾村)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일직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호리(蘇湖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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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매남리(梅南里)·우안동(愚安洞)·번곡(蕃谷)을 병합하여 매남리의 ‘매(梅)’자와 번곡의 ‘곡(谷)’자를 따서 매곡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고,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남리·우안동·번곡이 병합되어 매곡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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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 매정리 석불(梅井里 石佛)은 석불좌상으로, 매정리 쥐심골에 있어 일명 ‘쥐심골 부처메기’라고도 한다. 2000년 안동대학교박물관이 시행한 지표 조사 당시에는 서안당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마을 어귀에 석불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현재는 도난으로 인해 분실된 상태이다. 쥐심골마을은 매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골매(骨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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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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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명리(明里)·덕리·광연리(光淵里)·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망진리(望津里)를 병합하고 명리의 ‘명’자와 망진의 ‘진’자를 따서 명진(明津)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일직현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리·덕리·광연리·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망진리가 병합되어 명진리가 되었다. 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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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모운사(暮雲寺)라는 절 이름은 신라 8산(八山)의 하나인 모운산(暮雲山)에서 유래하였다. 모운사를 건립한 의상(義湘, 625~702)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속성은 김(金)이다. 신라 십성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화엄을 공부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부석사(浮石寺)를 세우고 화엄종을 강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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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서. 목석거는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7세손인 김학순(金學淳, 1767~1845)이 안동부사로 있으면서 새긴 암각서이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후 현재의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로 물러나 청원루(淸遠樓)에서 생활하다가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로 거처를 옮기고 초가집을 지어 ‘목석거 만석산방(木石居萬石山房)’이라 이름하고 은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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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 있는 문소김씨를 기리는 표열각. 문소김씨 표열각(聞韶金氏 表烈閣)은 흥해배씨 배재형(裵在衡, 1894~1919)의 부인 문소김씨의 효열(孝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배재형은 한일병합 후 가족과 함께 만주로 옮겨 갔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활동하다가 갑자기 병이 들자, 문소김씨 부인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병 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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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 약수탕으로 유명하여 움터·음터[飮터]라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임북면에 속하여 미지리, 또는 미질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계·벌탄·벽지곡·동파가 병합되어 미질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월곡면의 중심지로서 면사무소·지서·우체국·국민학교·고등공민학교·시장 등이 있었으나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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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큰 골짜기에 있으면서 그 모양이 항아리와 닮았으므로 호곡(壺谷)이라 하였다가, 박 모양과 같다 하여 호곡(瓠谷)이라 하였다. 이후 박곡(博谷)으로 부르다가 박곡(朴谷)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또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염씨 가운데 정승을 지낸 사람이 벼슬에서 물러나 박을 가꾸면서 지내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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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배방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완문비. 완문(完文)은 조선 시대에 민간의 청원이나 진정에 대하여 해당 관아에서 발급하던 증명 또는 허가 문서를 가리킨다. 그리고 비석이 세워진 마을은 원래 팽나무재이 또는 장승배기라고 하였는데, 이후 마을에 샛길을 내면서 경상도 도백이 비석을 세워 ‘비석거리’라고도 하였다. 배방리 완문비(杯芳里 完文碑)는 1800년(정조 2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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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지금의 임청각(臨淸閣) 부근으로, 신라 때 법흥사(法興寺)란 절이 있어서 법흥골 또는 법흥이라 하였다. 고성이씨가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세동(新世洞)에 편입되었고,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신세동 일부가 분리되어 일본식 지명인 영남정(嶺南町)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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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효각. 변중일 충효각(邊中一 忠孝閣)은 간재(簡齋) 변중일(1575~1660)의 충성과 효행을 기려 건립한 것이다. 변중일은 임진왜란 당시 할머니와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어 피난을 가지 못하고 간호를 하였다. 어느 날 왜병이 할머니를 해치려 하자 대신 죽겠다고 자청하였는데, 왜병이 효심에 감복하여 깃발과 칼을 신표(信表)로 주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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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병산서원 앞에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병산(屛山)에서 따온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풍산현 상리와 하리의 일부, 풍서면 가곡리 일부가 병합되어 병산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풍천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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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봉서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義湘, 625~702)이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도력(道力)으로 날렸는데, ‘봉황이 이곳에 내려 앉아 알을 품었다’ 하여 봉서사(鳳棲寺)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보광전(普光殿)은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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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봉정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의상(義湘, 625~702)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속성은 김(金)이다. 신라 십성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화엄을 공부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부석사(浮石寺)를 세우고 화엄종을 강론하여 우리나라 화엄종의 창시자가 되었다. 전국 열 군데에 화엄종 사찰을 세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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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금혈비. 금혈비(禁穴碑)는 ‘금비(禁碑)’라고도 불린다. 비문에는 주로 ‘불존(佛尊)이 있는 특별한 구역이니 무덤을 만들지 말라’는 내용을 적어 놓는다. 봉정사 금혈비(鳳停寺 禁穴碑)는 봉정사 일주문에서 북쪽으로 70m 정도 떨어진 도로 왼쪽에 있다. 일주문을 통해 봉정사 경내로 올라가는 양편으로는 솔숲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고, 금혈비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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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중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시행해 온 역원공영제도(驛院公營制度)에 의하여 예안현(禮安縣)에 속했던 부라원(浮羅院)이 있었으므로 부라원·부라리라 하였다. 또한 마을에 장수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 수향(壽鄕)이라고도 하였다.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호군(護軍)과 경력(經歷)을 역임한 권간(權簡)의 윗대부터 마을에 살기 시작하였고, 그 후 금숙(琴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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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달과 같고 강에 모래가 많아서 사월(沙月)·사드레·사들·사월천·사평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임북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여동·미질리 일부가 통합되어 사월리가 되었다. 1934년 임북면이 동후면과 통합되면서 동후면 소재지인 도곡리와 함께 월곡면에 편입되었고,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이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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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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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산야리 고인돌 떼는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 보토골마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이 마을은 산야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산골마을에서 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이다. 보토골마을은 안동댐으로 이루어진 안동호의 가장자리에 있으며, 큰대골과 작은대골 사이로, 동쪽으로 낮아지는 경사면이다. 고인돌은 마을 아래 물가의 평지에 있다. 산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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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능골·성황리·오도락·원음·고감을 병합하고 성황리 앞에 세 줄기 내가 합쳐져 흘러가므로 삼계리(三溪里)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동상면(東上面)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능골·성황리·오도락·원음·고감이 병합되어 삼계리가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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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있는 기암(奇巖).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지방지인 『영가지(永嘉誌)』「고적조(古跡條)」에는 “삼첩석은 부사(府司)의 문안에 있고 형태는 보릿짚 삿갓 같다. 부기(府基)의 주맥(主脈)을 누르기 위한 것이며, 이를 건드리면 관재(官災)를 입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첩석은 서지리 서갓마을(서간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서갓마을은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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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풍산읍 위쪽에 있다 하여 웃마 또는 상리(上里)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고,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내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부리 일부와 서선면 하리, 서후면 대두서리 일부가 병합되어 상리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풍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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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병자호란 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 백이숙제(伯夷叔齊)가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려도 듣지 않자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고 살았던 것과 자신의 처지가 같다고 하여 고사리 ‘미(薇)’자를 써서 서미(西薇)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다. 『영가지(永嘉誌)』에는 “서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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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태화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창건 당시 절 이름을 운대사(雲臺寺)라 하였는데, 후에 안동부 사악(四嶽)의 하나인 서악(西嶽)에 위치한다 하여 서악사(西岳寺)로 개칭하였다. 서악사를 창건한 도선(道詵, 827~898)은 통일신라의 승려로, 풍수지리설의 대가였다. 혜철대사에게 무설설(無說說)·무법법(無法法)을 배워 크게 깨달았으며, 참선 삼매의 불도를 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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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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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석간대전별시는 1562년 3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제자 구암(龜岩) 이정(李楨)과 이별하면서 써 준 당시(唐詩) 구절을 을미년 2월 도산서원(陶山書院) 옆에 있는 암벽 가운데 경치가 뛰어난 석간대(石澗臺)에 새긴 것이다. 이후 시를 새겼던 바윗돌이 물에 잠기게 되어 현재의 위치에 모사하여 옮겨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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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진리 석류동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서. 석류동(石溜洞)이란 이름은 이수걸(李秀杰, 1877~1963)이 지은 『석류동기(石溜洞記)』에 따르면 “예전에는 이곳을 ‘석퇴’라 했는데, 빼어난 경치에 비해 이름이 걸맞지 않으므로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삽삽추우중(颯颯秋雨中) 천천석류사(淺淺石溜瀉)’라는 구절에서 따왔다.”라고 한다. 석류동문(石溜洞門)은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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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석수암을 창건한 도선(道詵, 827~898)은 통일신라의 승려로, 풍수지리설의 대가였다. 혜철대사에게 무설설(無說說)·무법법(無法法)을 배워 크게 깨달았으며, 참선 삼매의 불도를 닦았다. 도선의 음양지리설과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석수암은 통일신라 후기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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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석탑사에 전하는 「학가산신흥암기(鶴駕山新興庵)」라는 현판을 통하여 예전에는 절 이름이 신흥암(新興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석탑사라는 이름은 절 입구에 세워진 특이한 모양의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安東石塔里方壇形積石塔)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을 보면 석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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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선찰사의 절터. 선찰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1949년 화재로 인하여 산신각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다. 원래 선찰사는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었으며, 현재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에 있는 선찰사는 1949년 화재 이후 부처와 탱화를 옮겨 와 새로 건립한 것이다. 선찰사지는 1989년 임하댐 수몰지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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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원래 소산리는 금산촌이라 하였다.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금산촌은 현의 서편 5리에 위치한다. 앞에 큰 들을 놓고 땅이 기름져 온갖 곡식이 잘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산촌은 ‘소가 누운 형국’이라 하여 쇠미 또는 금산이라 하였다. 소산으로 이름이 바뀐 때는 병자호란 때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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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소산리 고인돌 떼는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삼구정(三龜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과 그 주변에 있다. 5기의 고인돌로, 산읍 안교리에서 916번 국도를 따라 가면 소산리 소산마을(본동)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삼구정은 소산마을 동남쪽 끝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모두 5기인데, 이 중 3기(1·2·3호)는 삼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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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송리리는 일직현의 현촌(縣村)이 있었던 마을의 속골짜기에 있다고 하여 속골, 속멋골이라 하였다. 또는 고려시대 말 손홍량(孫洪亮)의 출생지인데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다고 하여 송리(松里), 송골, 송곡(松谷), 솔마골, 손맛골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일직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촌을 병합하여 송리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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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송리리 고분군은 일직면 송리리, 속칭 ‘핏골’의 서쪽 능선과 동쪽 능선에 있는데, 서쪽 능선에 있는 것을 송리리 고분군1, 동쪽의 것을 송리리 고분군2로 구분한다. 송리리 고분군1은 현마의 북동쪽으로, 남으로 낮아지는 능선에 분포하는데, 해발 150~172m에 해당한다. 송리리 고분군2는 현마의 동쪽으로, 서남으로 낮아지는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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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봉수 터. 송리리 봉수지(松里里 烽燧址)는 일직면 송리1리 동북쪽에 있는 야산의 정상부 솔마골과 향교골 사이에 있다. 야산 정상부에는 송리산성이 있는데, 봉수대가 위치한 곳은 산성의 동남쪽 끝 해발도고 약 293m 지점이다. 봉수대의 규모나 형태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봉수대는 편평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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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묘비. 안동에서 10리쯤 떨어진 송제(松堤)가 있던 곳은 홍수의 피해가 심하였다. 1605년(선조 38) 대홍수가 났을 때 제방이 유실되자, 당시의 부사인 백암(栢巖) 김륵(金玏)이 읍민들 및 전 현감 이정회(李庭檜)와 함께 힘을 합쳐 큰물을 방어하고자 제방을 쌓으면서 세운 비이다. 송제비(松堤碑)는 용상동 선어대 주유소 옆 도로변 절벽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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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송천동 고인돌 떼는 안동에서 동쪽으로 약 7㎞ 정도 떨어진 송천동 솔뫼마을에 위치한다. 총 7기가 있는데 1기는 민가 마당에 있고, 나머지 6기는 민묘를 둘러싸고 있다. 민묘를 둘러싼 6기는 민묘 봉분을 중심으로 북서쪽에 2기, 북동쪽에 2기, 남쪽에 2기가 배치되어 있다. 송천동 고인돌 떼는 속칭 ‘칠성바위’로 불린다. 고인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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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석불좌상. 『안동향토지』에는 “범씨동 석불은 『영가지(永嘉誌)』에 부성(府城) 북문 밖 3리쯤, 큰길 왼편에 있었다. 범씨동은 동네 이름, 역시 북동(北洞)의 지세가 허술함을 메우기 위해 조성·설치하였다.”라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문화유적총람』에는 ‘안동 송천동 석불좌상(安東 松川洞 石佛坐像)’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는 본래의 위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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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노하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송현동(松峴洞)은 이 지역에 솔티고개가 있으므로 솔티의 한자 표기인 송현이라 하였다. 노하동(鷺下洞)은 골짜기의 모습이 백로가 날개를 펴서 논밭에 내려앉는 백로하전(白鷺下田) 형국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송하동에 속한 법정동인 송현동과 노하동은 1914년 안동부(安東府) 부내면(府內面)에 속하였다. 송현동은 안동부 부내면 서쪽의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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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수곡리 고인돌 떼는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수몰되기 이전 고인돌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 곳은 임동면 수곡리 무실마을 서쪽에 조성된 솔밭에 있었으며, 다른 한 곳은 무실마을에서 강을 따라 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늘치미마을 남쪽 동구의 강가 경사지에 있었다.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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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뒤 아기산에서 물줄기가 마을을 둘러싼 형상으로 흐르고 있다 하여 수곡(水谷)이 되었다. 또 일대의 모든 물이 마을을 감싸고 흘러가므로 무실 또는 수곡촌(水谷村)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하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6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평, 원파,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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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증수동, 탄곡리, 상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증수의 ‘수’자와 탄곡의 ‘곡’자를 따서 수곡(壽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안동군 서선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증수동·탄곡리·상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수곡리라 하였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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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 동쪽에서 흘러들어 수동촌이라 하였고, 또 마을이 낙동강가에 자리 잡은 탓에 홍수가 자주 들어 수동(水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수동촌(水洞村): 속명(俗名)은 수동(首冬)이다. 회곡(檜谷)에서 서쪽으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있다. 부(府)와는 25리의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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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산성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신남리(新南里)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죽·정자곡·구통·두곡·산양평·점곡과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남리라 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신남리가 되었다. 북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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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신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고인돌은 예안면 신남리 두곡마을과 점골마을의 경계가 되는 계곡에 조성된 밭둑에 위치한다. 이곳은 두곡마을 새마을회관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서쪽으로 90m 떨어진 곳에는 지방도 919호선이 통과한다. 지형은 문바위골이 남쪽으로 낮아지면서 평지와 만나는 부분이며, 주변은 논·밭으로 이용된다. 고인돌은 장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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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신당(新塘)의 ‘신’자와 인덕(仁德)의 ‘덕’자에서 따서 신덕리(新德里)라 하였다. 신당이라는 지명은 마을 앞에 연못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으며, 또한 옛날 추월(楸月)과 같이 동제를 지냈던 당나무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서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당동·인덕동·평지동과 남선면의 이곡동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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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하부가 지하에 매몰되어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받침돌이 없는 형식으로 추정된다. 동네 주민들은 고인돌을 ‘칠성바위’라고 부른다. 신덕리 고인돌 떼는 임하면 신덕리 중덕(신이덕)마을의 남쪽, 구도로 변에 있는 야산의 경사지에 위치한다. 중덕마을은 안동시 송천동에서 포진교를 건너 길안 방향으로 가다가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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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신석리 고분군은 위치에 따라 ‘고분군1·2·3’으로 구분된다. 신석리 고분군1은 남선면 신석리 ‘덕거리’마을의 동쪽으로, 북쪽으로 뻗은 낮은 능선을 따라 분포한다. 이곳은 구산골과 안성골 사이에 있는 능선으로, 해발 137.8~101.5m에 해당한다. 현재 밭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신석리 고분군2는 신석리 고분군1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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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고려시대 봉수 터. 신석리 봉수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을 때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1999년 발간된 『안동시사』에 신석리 봉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도지리지』(1425)에는 ‘남산봉수는 동쪽으로 신석산 봉수와 15리의 간격으로 연결되고, 신석산 봉수가 다시 15리 간격으로 약산봉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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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세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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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에 열 ‘십(十)’자로 큰길이 나 있어 납 신(申)자와 같이 생겼으므로 납성계·남성개·신성포(申城浦)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풍산현(豊山縣)에 속하였다가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豊南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산동(箕山洞) 일부와 용궁군(龍宮郡)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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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본래 풍산현의 지역으로, 신양 부곡이 있어 신양(新陽)이라 하였다. 1608년에 편찬된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만운(晩雲) 서쪽 5리에 있으며, 풍산현에서는 10리 떨어져 있다. 옛날에는 부곡(部曲)이었다가 지금은 촌리(村里)가 되고 본 현에 예속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안동군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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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경북마을지』와 『안동의 지명유래』에 “대밭골에서 서북쪽 골짜기에 악심사(嶽深寺·岳心寺)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을은 악심(岳心·嶽深), 고개는 악심고개[嶽深峴]라 불렀다고 한다. 악심의 북쪽에 있는 마을은 악대(嶽垈)라 하여 악심사의 옛터이며, 이 터에 화강석으로 된 삼층석탑이 있는데 신라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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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안교리의 자연마을 중 역마 또는 역촌(驛村)은 1530년 경 홍씨(洪氏)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1800년 경 소산동(素山洞)에 있던 역을 이곳으로 옮겨와 지어진 이름이다. 어란(魚卵) 또는 우안(愚安)은 마을 앞에 갈대늪이 있어서 고기가 모여 알을 낳고 부화하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새역마 또는 신역(新驛)은 1800년 후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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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안교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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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안기동(安奇洞)은 조선시대에 안기역(安奇驛)이 있었다고 하여 ‘안기역마’ 또는 ‘안기골’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안기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인 안기동과 이천동은 조선시대에 안동부(安東府) 부내면(府內面)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안기동의 경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기동이 되었고,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일부를 갈라서 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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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안동시에서 예천군으로 가는 국도 중간에 위치한다. 풍천면 좌측의 안동 하회마을 진입로에 약간 못 미친 지점에서 우측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야산을 등지고 자리 잡고 있다. 안동 권성백 고택은 현 소유자인 권영대의 부친이 매입한 것으로 구체적인 유래는 알 수 없다. 건축 양식으로 보아 180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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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에 있는 석불. 동암사 석불(東岩寺 石佛)은 대웅전 내부에 있는 주존불이다. 대곡리 바드래마을 서북쪽에 위치한 동암사에 있다. 대곡리는 임동면의 북동쪽으로, 중평리에서 지방도 999호선을 따라 17㎞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동암사는 바드래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남쪽에서 북쪽으로 낮아지는 해발고도 365m의 산등성이에 있다. 소유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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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안동 수곡 고택은 1792년(정조 16) 권조가 할아버지 권보(權陗, 1709~1778)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고택이다. 권보는 갑자사화 때 피해를 입은 권주(權柱, 1457~1505)의 8세손으로, 평생을 도학에 전심하면서 검소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안동 수곡 고택은 안동시 풍산읍 소재지에서 안동 하회마을로 가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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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태화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원우(院宇). 안동 관왕묘는 태화동 서악사(西岳寺) 옆 북동쪽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산등성이가 완만하게 낮아지면서 평지와 만나는 해발고도 115m 지점이다. 앞쪽에는 경덕중학교가 있다. 1598(선조 31) 명나라 장수 진정영도사(眞定營都事) 설호신(薛虎臣)이 세웠다. 당시에는 안동 성내동 목성산(木城山)에 있는 향교 맞은편에 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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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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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안동시 정상동 일대의 택지 개발과 관련한 발굴 도중, 조선시대 미라와 함께 당시의 복식이 묻혀 있는 무덤을 발굴하였다. 미라의 주인공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응태(李應台, 1556~1586)로 장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무덤에서 나온 애절한 필치로 쓴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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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의 중심부를 감싸고 있던 성곽. 안동읍성은 정치·경제·문화·군사 등의 기능을 아우른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중심 거점으로 1380년(우왕 6)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축조되었다. 이 후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전쟁에 대비해 보축을 하였고, 1606년 을사(乙巳) 대홍수 때 성첩(城堞)이 무너져 다시 보축하였는데, 1910년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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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 암각서(巖刻書)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로 마애각석(磨崖刻石) 또는 마애각문(磨崖刻文)이라고도 한다. 금석학(金石學)의 주요 대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청나라 고증학(考證學)의 영향을 받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암각서의 글씨는 대체로 당시 그 지역의 저명한 문인, 학자들이 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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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에 있는 사찰. 애련사(愛蓮寺)는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소속 종단이 따로 없다. 다만, 1799년 발간된 『범우고(梵宇攷)』에 예련사(刈蓮寺)라고 기록되어 있고,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는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을 살펴보면 애련사(艾蓮寺)라 했고, 신라의 옛 절이라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애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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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법정리. 풍수지리학적으로 마을의 지형이 자라 모양이기 때문에 ‘못이 있어야 마을이 흥한다’라고 하여 이름에 못[潭]을 넣어 어담(漁潭)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개동(自開洞)과 일직면 거물억리(巨物億里), 국곡리(菊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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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어담리 고인돌 떼는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 신성중학교에서 남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신성중학교 남쪽과 인접한 곳에는 도로 통과하는데, 고인돌은 도로와 도로 건너에 조성된 논 사이에 있다. 고인돌의 북쪽으로는 도로가 지나가고, 남쪽으로는 하신천(下新川)이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담리 고인돌 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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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세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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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상북도 안동의 역사와 문화. 경상북도 북부 중앙, 낙동강 상류에 자리 잡은 안동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풍산읍 마애리 구석기 유적을 비롯한 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남아 있고,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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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연미사라는 이름은 원래 조선시대 때 여행객이 쉬어가는 숙소인 연비원(燕飛院), 속칭 제비원에서 유래했는데, 당시 연미사 석불을 제비 모양의 누(樓)가 덮고 있었으며, 법당이 제비의 부리에 해당한다 하여 연미사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연미사 석불은 “성주 본향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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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우물. 이황(李滉, 1501~1570)은 도산서당과 주위의 자연을 7언시와 5언시로 노래한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지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열정(冽井)이다. 열정은 물이 차고 마시면 마음이 상쾌해진다고 하였다. 열정은 『주역(周易)』의 ‘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 즉 ‘물이 맑고 차가우니 마실 수 있네’라는 글에서 이름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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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영봉사는 민간신앙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사찰로, 현재 영봉사의 신도가 많이 줄면서 사세가 쇠퇴하고 있는데 절에서 전하기로는 그 이유가 산세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영봉사가 자리한 곳은 봉황이 새끼를 낳기 위해 엎드린 형국이라고 한다. 봉황은 새끼를 낳고 기르는 동안 몸이 야위어 가기 때문에 절이 피폐해져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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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고구려 때 매곡현(梅谷縣)이었고, 신라 때는 선곡현(善谷縣)으로 내령군(奈靈郡)의 영현(領縣)이었다. 고려시대 1018년(현종 9) 길주(吉州)에 복속되어 예안현이 되었고, 1376년(우왕 2) 다시 군으로 승격하였다가 얼마 뒤에 주(州)로 승격하였다. 공민왕 때 예안 동쪽에 있는 의인현(宜仁縣)을 병합하였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예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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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언덕이 져있으므로 어드기·오드기 또는 오도촌·오도리·어덕리라 불렀다. 이후 오동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오동지기(梧桐枝棄)라 부르다가 ‘오동나무 숲의 터’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오대(梧垈)로 정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서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나천리·금소리·길안면의 산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대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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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풍산김씨(豊山金氏) 500년 세거지로, 조선 초기에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金文迪)의 8세손 김자순(金子純)이 처음 마을에 정착하면서 ‘다섯 가닥의 산줄기가 뻗어 내려 있다’고 하여 오릉동(五陵洞)이라 하였다가, 후손 의정공(義貞公)이 을사사화 후에 낙향하여 ‘능(陵)’이란 글자가 언덕을 뜻하지만 임금의 무덤을 뜻하기도 하므로 이랑 ‘무(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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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옥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옥동 고분군은 위치에 따라 고분군1·2·3·4·5로 구분된다. 옥동 고분군1은 능선을 따라 4기가 분포되어 있다. 옥동 고분군2는 ‘씨레’처럼 남쪽으로 여러 갈래 뻗어 내린 능선에 1기가, 옥동 고분군3은 2~3기가, 옥동 고분군4는 3기가 분포되어 있다. 옥동 고분군5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낮아지는 능선을 따라 3기가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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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에 있는 전탑 터. 각각 1893년과 1992년에 발간된 『안동향토지』와 『경북마을지』에서 옥산사 전탑지와 관련하여 『영가지(永嘉誌)』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경북마을지』에는 “『영가지』에 옥산사는 부(府)의 북쪽 32리에 있다. 그 북쪽 5리에 석혈(石穴)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안동향토지』에는 이름만 전하는 옛 탑들에서 “월천전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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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암각서. 옥연(玉淵)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던 낙동강 물이 이곳에 이르러 ‘옥같이 맑은 못을 이룬다’ 하여 새긴 글씨이다.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芙蓉臺) 동쪽에 자리한 하회 옥연정사(河回 玉淵精舍)에서 남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가로 암각서가 새겨진 바위는 모래사장과 하회 옥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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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온혜리 고인돌은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독작골마을에 위치한다. 독작골마을은 도산면 태자리에서 온혜리 방향으로 국도 35호선을 따라 가면 나온다. 고인돌은 국도 35호선에서 동쪽으로 40m 떨어진 밭둑 옆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형은 서남쪽으로 낮아지는 동차골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고산재사(高山齋舍)에서 서남쪽으로 3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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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용의 뿔처럼 생겼으므로 용뿌리·용각(龍角)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일직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조탑리 일부가 병합되어 안동군 일직면 용각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됨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서쪽으로 삼표당(三標堂, 443.7m)이 솟아 있고, 그 산에서 발원한 송양천(松陽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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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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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굴처럼 생긴 고개가 있어 굴티·구르티·굴터로 부르다가 한자로 운산(雲山)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운산리(新雲山里)·소호리(蘇湖里)·송리(松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운산리라 하고 안동군 일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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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 웅파당비(雄波堂碑)는 1838년(헌종 4) 승려 웅파(雄波)의 행적을 기록하기 위하여 세웠다. 웅파당비는 길안면 금곡리 용담사의 부속암자인 금정암 어귀 가까이에 위치한다. 금정암은 용담사 앞을 흐르는 길안천의 지류인 개울을 건너, 남쪽의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1㎞ 정도 떨어져 있는 금학산 8부 능선 북쪽 기슭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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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운산역(雲山驛) 객사인 원(院)이 있어 행인들의 편의를 제공하여 원곡·원동·원골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호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안동군 일직면 원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면서 안동시 일직면 원리가 되었다. 남쪽과 북쪽은 구릉으로 둘러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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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원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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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불좌상. 원림사지 석불좌상(院林寺址 石佛坐象)은 임하1리 한작골못마을에서 북쪽으로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5m 거리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0호 안동 임하동 오층석탑(安東 臨河洞 五層石塔)이 있다. 높이는 100㎝, 어깨 너비는 52㎝이다. 견부(肩部) 이상과 오른쪽 팔목이 손실된 상태이다. 중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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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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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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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 인조 때 권홍(權弘)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때 남쪽 멀리에 큰 호수가 보인다고 하여 원호(遠湖)라 하였다. 물이 멀다고 하여 멈물·머무리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송리(松里) 일부가 통합되어 안동군 일직면 원호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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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윗골·위곡·위동촌이라 하였다. 위리 앞으로 수원이 풍부한 위천(일명 위수, 현 대곡천(大谷川))이 흘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6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기(新基)가 통합되어 안동군 임동면 위리로 개편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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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한서암의 문. 유정문(幽貞門)은 도산서당(陶山書堂)의 유정문과 명칭이 동일하다. 두 곳 모두 이황이 만들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의미 또한 동일할 가능성이 높다. 도산서당의 유정문은 이황이 도산서당과 주위의 자연을 칠언시와 오언시로 노래한 『도산잡영(陶山雜詠)』 가운데 한 가지이다. 이때 유정이란 ‘그윽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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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유하사는 창건 당시 풍수와 관련한 기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승천하지 못한 와룡(臥龍)의 승천을 돕기 위하여 유하사가 창건되었으며, 절 이름 역시 용이 활동하기 좋아하는 여름 ‘하(夏)’가 들어가는 편액을 걸었다는 것이다. 유하사의 변천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1897년 8월 월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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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율세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율세동 고분군은 안동시 율세동 가톨릭상지대학교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경사가 급한 능선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능선으로는 안동시 체육공원의 철제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해발 248m의 주능선에서 남쪽으로 낮아지다가 다시 약간 높아지는 해발 182.1m의 능선 정상부 일대이다. 2003년 12월 이 지역에 대한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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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암각서. 1820년 김상헌(金尙憲)의 7세손인 김학순(金學淳)이 안동부사로 근무하면서 김상헌을 추모하기 위해 새긴 글씨이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후, 안동 소산으로 물러나 청원루(淸遠樓)에서 생활하다가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초가집을 지어 ‘목석거만석산방(木石居萬石山房)’이라 이름 짓고 은거하였다. 은자암(隱者巖)은 안동시 풍산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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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중건의 부인인 의성김씨의 정려문. 의성김씨 정려문(義城金氏 旌閭門)은 1854년(철종 5) 의성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부인이 살았던 도산면 토계리에 지은 것이다. 의성김씨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2세손인 이중건(李中健)의 부인이다. 김씨는 결혼 후 남편 이중건이 오랫동안 중병을 앓자,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결국 세상을 떠났으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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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 신도비. 비석(碑石)은 고인의 사적(事蹟)을 칭송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문장을 새겨 넣은 돌을 말한다. 비석의 종류에는 신도비(神道碑)가 포함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만 세울 수 있게 제도화하였다. 이굉(李浤, 1440~1516)은 자는 심원(深源)이고, 호는 낙포(洛浦)·연생당(戀生堂)이며, 본관은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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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에 있는 이만도의 유허비 향산 이만도(李晩燾, 1842~1910)는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1866년(고종 3) 정시(庭試)에 장원 급제하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지자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1910년 나라가 일제에 병탄되자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24일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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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두 기의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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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 출토된 조선 중기 미투리. 1998년 4월 이응태(李應台, 1556~1586) 무덤에서 애절한 필치로 쓴 원이엄마의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가 출토되었다. 이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다큐멘터리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고고학 잡지 『엔티쿼티』와 중국의 국영 텔레비전 CCTV-4 등을 통해 소개되었다. 1998년 4월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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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청구리·도동리·전두리·송곡을 통합하면서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동계천(東溪川)의 ‘계’자를 따서 인계(仁溪)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동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구리·도동리·전두리·송곡이 통합되어 인계리가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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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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