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D010308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593-3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정현

영천 (일명 옥천)과 학가산을 조망할 수 있는 수려한 정자인 쌍암정(일명 쌍암정려)는 옹천의 근대인물인 국전(菊田) 강형수(姜馨秀)가 건립한 정자이다.

이 정자에는 김흥락이 쓴 「쌍암정려기」와 김제면이 쓴 「쌍암정려기」, 이화성이 쓴 「쌍암정사기」가 게첨되어 있다. 쌍암정은 옹천마을 서당골에 위치한 사익재 근처에 있다.

사익재는 옹천리에서 학가산 가는 길을 따라 마을이 끝나는 지점 두무령(杜舞嶺)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곳에 있고, 쌍암정은 몇 그루의 노송이 그윽한 자태를 드러내는 시내 사이로 무리지어 있는 기암괴석 위에 서 있다.

쌍암정은 강형수가 53세 때인 1927년에 거북과 용과 같은 형상의 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암반 위에다 지은 정자로서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기와집이다. 시멘트로 만든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각주를 세웠으며, 좌측에는 온돌방을 배치하고 우측에는 마루를 배치하였는데, 3면에 판벽과 판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꾸몄다.

국전 강형수(1875~1942)의 본관은 진주(晋州)로, 자는 건일(建一)이다. 오암 강영숙, 지포 강건수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 29세 때인 1903년에 관리서주사를 제수 받았다. 40세 때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교육에 있음을 직시하고 서당인 사익재에 용전학술강습회를 창립했다.

52세 때는 간석대(澗石臺)를 만들었고, 이듬해 쌍암정을 지었다. 저서로 『국전유고(菊田遺稿)』 2책이 있다.

쌍암정 현판 글씨는 강약이 잘 들어나고 시원스레 뻗어나간 힘이 붙박이처럼 든든한 해서체로, 안동이 낳은 근세 서예가 소우(小愚) 강벽원(姜壁元)의 글이다. 정자 우측면에 걸려 있는 용귀(龍龜) 현판은 날아갈 듯하다가 다시 자리를 잡고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킬 것 같은 해서체로 새겨져 있는 것으로 강형수 선생의 유묵(遺墨)이다. 용귀는 거북과 용을 닮은 쌍암(雙巖)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정보제공]

  • •  강신중(남, 1938년생, 옹천리 거주)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