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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를 누비고 다닌 김재봉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C030104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미영

1891년 김경조의 12세손으로 태어난 김재봉(金在鳳)은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다가 1908년 대구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09년 경성공업전습소에 입학하였다.

1912년 학업을 마치자 곧바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김경조는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1920년 『만주일보』 경성지사 기자로 입사하였다. 그러나 조선독립단의 문서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입사한 지 몇 달 만에 체포되어 6개월의 감옥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1921년 출감과 동시에 만주로 망명한 김경조는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했으며, 이후 한인소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산술과 한문을 가르쳤다. 1923년 5월 귀국한 김경조는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함과 동시에 공산당 꼬르뷰로(조선총국) 국내조직 책임비서를 담당하기도 했다.

1925년 2월 김경조는 조선민중운동대회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4월에는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제1차 공산당 책임비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26년 11월, 신만청년동맹사건으로 조선공산당 비밀조직이 발각되는 바람에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최고형인 6년을 언도 받아 경성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을 하고 1932년 11월 풀려났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 김재봉은 요시찰인물로 엄격한 감시를 받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지친 심정을 달래고 또 재기의 기회를 엿보기 위해 1937년 8월부터 전국 8백 리를 도보로 걷기도 하였다. 이후 1944년 광복을 목전에 두고 향년 5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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