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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에 너른 들을 자랑하는 금소마을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B010201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양명

금소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농업에 종사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농사를 짓는 데는 농경지 확보가 필수적으로, 금소는 넓은 들을 갖고 있어 농사짓기에 유리한 지역이다. 1608년(선조 41)에 편찬된 경상도 안동부(현 안동시) 읍지 『영가지(永嘉誌)』 관개조(灌漑條)에 금소보와 버리들보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금소가 다른 지역에 비해 물을 이용한 벼농사를 일찍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금소는 일찍 시작한 수도재배와 보(洑)의 발달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경제적 혜택을 누렸다.

금소에는 금소들, 건너들, 나천들이 있다.

금소들은 마을의 남서쪽에 위치하는데, 약 200년 전 역(驛)이 있을 때 말을 매어 놓았던 자리라 해서 마우들이라고도 불렀다. 금소들은 주민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들의 면적이 800여 두락에 달하는데, 3,966.96㎡을 제외하고 모두 마을 주민이 소유하고 경작하기 때문이다.

비봉산 밑에 위치한 건너들은 길안천의 건너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들의 규모가 작고 대부분 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천들은 오대큰들이라고도 하는데, 오대리금소 사이에 위치한다. 이 외에도 고곡 및 오대리 일대의 상당한 토지와 신덕동 일대의 신당들 일부가 금소 주민들의 소유이다.

인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금소들 전역과 새들 및 버리들의 반 이상이 금소의 유력 성씨인 예천임씨 소유로, 들의 대부분이 논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민들이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게 했다.

한편 금소의 들은 대체로 사질양토로 토질이 비옥해서 농사짓기에 유리한다. 사질양토는 적당량의 모래와 점토를 함유하며 토성이 좋아 어떤 작물을 경작하더라고 잘 맞는 편이다. 또한 금소의 들에는 땅 밑에 자갈이 없어 가뭄에도 오래 버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주민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벼뿐만 아니라 대마 같은 여러 가지 밭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정보제공]

  • •  임승대(남, 1946년생, 금소리 거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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