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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A010203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재해

만송정숲 은 마을의 북쪽, 부용대 앞으로 흐르는 꽃내 옆에 만들어진 푸른 솔숲이다.

만송정숲은 마을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홍수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 북쪽으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내는 풍수지리적인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만송정숲은 조선 전기 선조 때 겸암 류운룡이 만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에 이른다고 전한다.

마을에는 만송정숲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겸암이 솔숲을 만든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마을에 일본군이 쳐들어왔다. 그런데 멀리서 만송정숲을 바라본 일본군이 마을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달아났단다. 우거진 소나무 아래에 떨어진 솔방울을 투구를 쓴 병사로 오인하고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난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짐작건대, 아마도 옛날에는 만송정숲이 지금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퍼져 있었을 듯싶다.

하회리에 거주하는 류시봉 옹이 마을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송정 그 낭기(나무), 겸암 할배가 심었다고 하는 건데. 요럴 때(소나무가 작을 때) 심었는데. 그 일정 때(임진왜란을 말함) 왜놈들이 올려고(마을에 침입하려고) 하니깐. 만송정 솔이 요만큼 했단 말이야. 그러니 금고개(지금의 큰고개)를 침범할려고 하다 보니께네. 군사들이, 노란 군사들이 콱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라. 왜놈들이 보니깐. 만송정 솔이. 솔이 요만큼 한 게. 군사들로 보여서 침범을 못했다 이거라.”

지금의 만송정숲 모습을 보고 이야기 속에서처럼 넓게 퍼져 있는 솔숲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마을 서쪽과 북쪽 어귀, 부용대 맞은편에만 솔숲이 우거져 있으나 과거에는 마을에서부터 방천을 따라 마을 관리사무소 뒤편으로 솔숲이 쭉 이어져 있었으며, 소나무의 수도 훨씬 많았다고 한다.

류시주 씨가 만송정숲으로 불리게 된 배경을 이야기해 주었다. “왜 만송정이냐 그러냐면 우리가 숫자를 요즘은 뭐, 몇 십억하고 이러는데 옛날에는 만이라 그러면 굉장히 많은 숫자야. 그래서 그 만이다. 십만이다 그래믄 어마어마한 거야. 조선시대는 대개 그 만이라 그래믄 굉장히 많은 요즘 말하는 억과 같은 배수의 수를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소나무를 한 몇 백 그루만 심으면 만 그루다. (그만큼 크다는) 크기를 나타내는 거야.”

이름이 만송정숲일지라도 실제로 소나무 만 그루가 심어져 있지는 않았으나 그 정도로 많아 보일 만큼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만송정숲은 그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2006년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되었다.

[정보제공]

  • •  류시봉(남, 1933년생, 하회리 거주)
  • •  류시주(남, 1943년생, 하회리 거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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