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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599
한자 金世鏞
영어음역 Gim Seyong
이칭/별칭 명우(鳴于),이호(伊湖),천전양수재(川前兩秀才)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673년(현종 14)연표보기
몰년 1742년(영조 18)연표보기
본관 의성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명우(鳴于), 호는 이호(伊湖). 아버지는 금옹(錦翁) 김학배(金學培),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로 고이절(高爾節)의 딸이며, 처는 팔거도씨(八莒都氏)로 도이망(都爾望)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세용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김학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 내종형 고세헌(高世憲)에게 수업을 받았고 11세에는 적암(適庵) 김태중(金台重)을 사사하였는데 김태중의 둘째 아들 우계(雨溪) 김명석(金命錫)과 함께 ‘천전양수재(川前兩秀才)’라는 칭송을 받았다.

27세 때에는 김태중의 명으로 당시 금양(錦陽, 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이배 생활 중이던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에게 수학하면서 밀암(密庵) 이재(李栽)와는 학문을 강토(講討)하였다. 1726년(영조 2) 여름 이재와 함께 황산사(黃山寺: 일명 봉황사. 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소재)에 모여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연보(年譜)를 편찬하였다.

1729년에 묵계서원(黙溪書院) 원장이 되어 서원을 사열해 본 결과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의 서적이 너무 초초(草草)함을 발견하고 이재와 함께 김계행의 연보를 정리하였다. 이듬해에는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고재(顧齋) 이만(李槾), 동애(東厓) 이협(李浹) 등과 함께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이 지은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을 교정하였다. 김세용은 평생 처사로 지냈으며 만년에 이덕촌(伊德村)의 임천수석간(林泉水石間)을 노닐며 학문에 침잠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이호집(伊湖集)』이 있으며 저술로 『봉선의(奉先儀)』, 『추원록(追遠錄)』이 있다. 『이호집』은 아버지 김학배의 문집 『금옹전집(錦翁全集)』의 부속(附屬)의 형태로, 아들 김익명(金翼溟)의 문집 『범암집(凡巖集)』, 손자 김여필(金汝弼)의 문집 『행산집(杏山集)』과 함께 1983년 간행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황학산(黃鶴山)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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