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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일 당마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2301
한자 佳日堂-
영어의미역 Gail God Shrine
이칭/별칭 정산 당마당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유적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가일마을에 있는 마을 동제당.

[개설]

가일 당마당은 동신(洞神)이 모셔져 있는 가일마을의 정산 자락에 있는 동제당을 일컫는다. ‘정산 당마당’이라고도 한다. 가일마을풍산읍에서 하회마을 가는 길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언덕을 넘어서면 큰 못이 보이고 그 안쪽에 가일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옛날에는 지곡(枝谷)이라 하였으나 풍산들의 아침 해가 아름답다하여 후에 가곡(佳谷)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은 안동권씨가 500년간 세거해 온 집성촌이다. 고려 개국공신인 권행(權幸)의 후손 가운데 한 갈래인 안동권씨 복야공파가 살고 있는 동성마을이다.

[형태]

서낭당·산신당·당마당·서낭할배·산신할배 등으로도 불리는 정산 기슭의 동제당은 막돌쌓기로 낮은 울타리를 만들고, 돌로 쌓아 맞배지붕만 얻은 두 칸 건조물이었다. 목재 기둥이나 벽면 없이 돌을 쌓아놓고 지붕만 기와로 얹은 아주 독특한 형태이다. 1972년을 마지막으로 동제를 지내지 않게 되자 관리가 소홀해져 현재는 지붕이 내려앉았다. 가일마을 안기경 어른의 제보에 의하면, 두 칸 중 오른쪽 칸은 전사청 같은 기능을 했고 왼쪽에 신을 모시고 제를 지냈다고 한다.

[의례]

보통 제관은 안동권씨 1명, 순흥안씨 1명이 맡았고, 유사와 허드렛일은 타성에서 담당했다고 한다. 제사는 유교식 독축고사 형태로 지냈다. 제를 끝낸 보름날이나 16일에는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동편·서편 등으로 나누어 줄당기기도 했다고 하는데, 직접 경험한 분들이 없어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이 지신밟기를 하면서 걸립을 했다. 걸립을 하면 주민들은 쌀·보리 등의 곡식을 내주었다. 보통 한 되 정도이지만 정해진 것은 아니고 각자의 성의에 따라 달랐다. 이때 “눌리세 눌리세 지신 지신 눌리세” 등이라고 외치며 지신밟기를 했다고 한다.

[현황]

가일마을의 동제는 1972년까지 지냈다. 마을 주민들은 동제가 없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기독교·천주교인 등의 갹출 거부를 꼽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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