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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985
한자 平和寺
영어음역 Pyeonghwasa
영어의미역 Pyeonghwa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1408[용상북5길 140]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순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건립연도/일시 1987년연표보기
창건자 최사불
전화 054-821-6244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있는 대한불교미타종 소속 사찰..

[건립경위 및 변천]

평화사는 1987년 주지 최사불에 의해 창건되었다. 최사불은 26세에 병이 나서 3년 동안 병마와 싸우던 중 청량산 장군봉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 신령이 나타나 어느 곳에 가면 흑장미가 있을 테니 그 꽃을 먹으라는 계시를 내렸다. 최사불이 즉시 그곳에 가 보니 흑장미가 만발해 있었으며, 그는 그 꽃을 먹은 후 병이 완쾌되었고 일신상의 모든 어려움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최사불은 모든 것이 부처의 은혜라 생각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고, 29세에 경상북도 안동시 평화동의 판잣집에 작은 법당을 꾸며 관세음보살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87년 현재의 자리에 무량수전과 산신각을 짓고 평화사란 이름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공민당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상량문」에 따르면 1833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며, 6·25전쟁 때 당집이 거의 파괴된 것을 과거 성곡동장 임점진이 사재를 들여 중수하였다. 1994년 무량수전을 개축하였고, 같은 해 1월 26일 신도회 칠성회원이 공덕비를 건립하였다.

[활동사항]

법공양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으며, 매월 초하루에 법회를 연다.

[현황]

평화사는 성황데이라는 유서 깊은 곳에 자리한 산세가 고요한 사찰로, 성황데이의 경사면에 무량수전, 칠성각, 산신각 등 3동의 건물이 나란히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기타 건물로는 요사와 사불스님공덕비, 공민당 등이 있다. 무량수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면적은 89.26㎡이다. 건물의 외벽은 벽화로 장식하였다. 내부와 외부는 단청으로 채색하였고, 전면의 4개 기둥에는 칠언 절구로 된 주련을 걸어 두었다.

무량수전 내부에는 불단을 조성하여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등의 협시보살을 봉안하였다. 협시보살의 측면에는 관세음보살과 약사여래를 봉안하였고, 우측 벽면에 조성된 불단 위에는 지장보살을 두었다. 특히 측면에 따로 봉안한 관세음보살은 최사불이 평화사를 창건하기 전 29세 때부터 모신 부처로 ‘신비의 수박’의 이적과 관련된 부처라고 한다.

‘신비의 수박’이란 썩지 않는 수박으로 매년 부처님 오신 날 최사불이 시장에서 구입한 수박 3~4덩어리를 관세음보살에 공양하면 동짓날 음복할 때까지 썩지 않는다고 한다. 이 수박은 동짓날 법회가 끝난 후 개봉하여 인연이 있는 사람과 나누어 먹는다. 탱화로는 「후불탱화」와 「지장탱화」 등이 있다.

칠성각은 면적이 36.36㎡로, 상부는 목조로 된 맞배지붕이고 하부는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단을 조성하여 칠성상과 「칠성탱화」를 봉안하였다. 산신각은 13.22㎡로 맞배지붕이고, 내부에는 산신상과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사불스님공덕비는 신비의 수박을 먹고 효험을 얻은 신도와 주민들이 최사불을 위해 절 앞에 세운 것이다. 크기는 거북받침이 높이 60㎝이고, 비신과 새석은 높이가 각각 160㎝와 60㎝이다.

기타 경내의 건물로는 성황데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는 공민당이 있다. 1995년 최사불이 시비를 지원받아 보수하고 ‘여랑신사’라는 현판 대신 공민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관리와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공민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와가로서 앞 칸은 판자로 벽을 만들었고 뒤 칸은 흙으로 벽을 만들었다. 공민당 내부의 바닥에는 비닐을 깔고 상을 놓았으며 정면 벽에는 가로 138㎝, 세로 87㎝의 부녀 신도를 봉안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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