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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54
한자 金萬植
영어음역 Gim Mansik
이칭/별칭 형일,근암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66년연표보기
몰년 1933년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경력 서로군정서 대원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형일(亨一), 호는 근암(槿庵)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도 도사(都事)를 지낸 김진린(金鎭麟, 1825~1895)이며, 만주 독립군 기지 개척의 지도자였던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아버지이다. 1866년(고종 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내앞마을)에서 김효락(金孝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김만식은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키기 위하여 1909년 석주 이상룡(李相龍)을 도와 대한협회 안동지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0년에는 나라가 무너지자 친족인 김동삼(金東三)이상룡 등 안동 출신 인사들이 신민회(新民會)와 더불어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추진할 때 선발대로서 만주 지역을 왕래하였다.

김만식은 1910년 12월 김대락(金大洛)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기지 건설에 힘을 쏟았을 뿐만 아니라, 1919년 4월 서로군정서 조직에 참여하여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를 출입하며 활동하던 중, 1928년 압록강 청성진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김만식은 이때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3년 9월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20 수정 요청 '아버지는 금부도사를 지낸 김진린(金鎭麟, 1825~1895)이며'를 '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김진린(金鎭麟, 1825~1895)이며'로 수정 완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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