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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07
한자 權奇鎰
영어음역 Gwon Giil
이칭/별칭 공서,추산,권혁린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86년연표보기
몰년 1920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경력 한족회 구정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서(公瑞), 호는 추산(秋山), 또 다른 이름은 권혁린(權赫麟)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서 출생하여,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을 지낸 조부 권헌봉(權憲鳳)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였다.

[활동사항]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권기일은 1912년 3월경 조부모를 남겨둔 채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만주의 길림성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 정착한 권기일경학사(耕學社)에 참여하여 독립군 기지 건설에 앞장섰다. 여기에다 1912년 이상룡(李相龍)여준(呂準)을 중심으로 조직된 교육회(敎育會)에 참여하여 경리와 재무를 맡아보았다. 1916년에는 부민단(扶民團) 결성에 참여하여 한인 동포의 안정적인 정착과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기여하였다.

1917년 12월 국내에서 통화현으로 들어오는 독립운동 자금을 받으러 갔다가 해룡현 주재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곤욕을 치르던 권기일은 1918년 3월 다행히 일본 영사관을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1919년 한족회(韓族會)가 결성되자 권기일은 여기에 참여하여 구정(區正)을 맡았다. 한족회 구정과 교육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포들을 안정시키고, 또 그들을 교육시켜 독립전쟁에 필요한 인물로 육성하는 데 헌신을 다하던 권기일은 1920년 8월 15일 통화현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근처 수수밭에서 일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남후면 검암리 생가 마을 어귀에 권기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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