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60
한자 李楨國
영어음역 Yi Jeongguk
이칭/별칭 목지(牧之),우원(尤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종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743년연표보기
몰년 1807년연표보기
본관 예안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목지(牧之), 호는 우원(尤園). 아버지는 이인섭(李寅燮),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통덕랑을 지낸 류성구(柳聖久)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정국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3(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신을 위한 학문에 잠심하였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의관을 정제한 뒤 가묘(家廟)에 참배하고 나서 자질(子姪)들과 경사(經史)를 강론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다.

정조가 인격·학식·경륜을 갖춘 숨은 인재를 찾을 때 경상감사가 여러 차례 추천하여 정조가 말을 내주어 상경시키려고 했으나 나가지 않았다. 특히 동몽교관에 임명하였을 때는 수차례 상경을 재촉했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이정국은 평소 효성이 도타웠으며 사람을 대함에 극히 공손하여 과객(過客)이나 동냥꾼에게도 소홀함이 없었으며 하인이나 종들 가운데도 착한 행실이 있으면 반드시 불러 칭찬하고 격려했다. 또 보릿고개 같은 궁핍한 계절을 만나면 가난한 가운데서도 절박한 친척들과 끼니를 함께 했다.

학문에 있어서는 실천을 중시하여 때때로 주변에서 저술을 권하면 “옛 어른들이 이미 남김없이 발휘했으니, 다만 배우고 행할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배우려는 뜻이 간절한 사람만을 가르쳤으며, 가르칠 때는 실천 위주의 인격 함양을 바탕으로 구두, 뜻새김, 음운을 정확하고 간명하게 하여 아무리 둔한 사람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깨우쳤다. 평소 임여재(臨汝齋) 류규(柳水+奎),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등의 학자들과 교의가 있었으며 사림의 존경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학서(鶴棲) 류태좌(柳台佐)가 묘갈명을 지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